2012년 11월 여러 주제.

일상 2012. 11. 15. 01:38

1. Terri 선생님 - 난 학원을 많이 다닌 적은 없지만, 그래도 "사교육"을 받을 땐 충실히 임하는 편이다. 그래서 그런지 초등학생 때 부터 나는 항상 학원 선생님들께 인기폭발이었다. (별로 소용도 없는 인기) 초등학교 3학년 때 이사로 인해 다니던 공부방을 관둘 상황이 되었는데, 날 가르쳐주시던 선생님은 심지어 나를 껴안고 우셨다.; 어쨌든 내가 내 돈 들여서 하는 거니까 돈 값은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임한다. 대학교 이후로는 영어 사교육을 많이 받았는데 토익강사도 대학영어 수업 외국인 강사들도 회사 다니면서 배웠던 영어 회화랑 작문 강사와 외국인 강사도 나를 정말 좋아했다. 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영어 공부는 해야겠고 시간 내기는 힘들고 해서 동생 추천으로 전화 영어를 3개월 째 하는 중인데 지금 하루 십분씩 나랑 통화를 해주고 계신 미시간의 60살 테리 할머니 역시 나를 좋아하시는 눈치다. 니가 나의 학생이라는 것이 자랑스럽다. 너로 인해 내 하루가 기쁘다 등등 매일 매일 칭찬을 늘어놓고 있다. 저번달도 테리 할머니랑 수업 했는데 테리 할머니가 수업 끝날 때 너무 아쉬워 하셔서 그냥 또 테리 할머니랑 두달 더 수업 한다고 신청했다.

2. 드디어 독립 - 혼자 운전을 하면서 출퇴근을 한지 이틀이 되었다. 출근길에 제1경인고속도로를 타고 요금소를 빠져나와서 외곽순환고속도로를 타는데 X 자 교차 지점이 있다. 오른쪽은 일산, 왼쪽은 판교 방향. 대부분의 차가 판교로 향하고 나는 일산으로 간다. 오늘도 그 교차지점에서 실수를 했다. 나 때문에 놀란 뒤의 아반떼 운전자 미안. 그래도 초보라고 써 붙여 놨으니까 조금은 이해해주겠지. 그 교차하는 지점이 어렵긴 한데 속도를 낼 수 있는 지점은 아니라 사고가 나도 죽지는 않을 것 같다. 퇴근하는 길은 부천까지는 국도로 오다가 고속도로로 합류하는데 밤이고 깜깜해서 고속도로로 합류할 때마다 심장마비 걸릴 것 같다. 엄마께 언제쯤 운전이 속 편해질까... 했더니 엄마가 운전은 항상 무서운 거랜다. 절망이다.

3. 자리 옮기기 - 앞서 말한 분이 관두시면서 내가 그 자리로 옮겨가게 됐다. 그 자리는 넓고 ㄱ 자 책상이지만, 컴퓨터 화면이 모든 사람에게 오픈되는 후진 자리. 간신히 지금 자리에 적응도 하고 이거저거 다 내가 편하도록 최적화를 시켜놨는데 그걸 또 언제 다 옮기나...

4. 인수인계 - 난 회사에 결원이 생겨서 입사한 게 아니라 충원이 되서 입사한 거였는데 그 분이 관두면서 결국 대부분이 나의 일이 되었다. 기계 쪽 전공 지식 필요한 거 빼고는 대부분 인수인계를 받았는데, 일을 하면서도 이게 맞게 하는 건지 틀리게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고, 해도 해도 끝도 없다. 쉴 새 없이 일하느라 블로그도 못쓰고 진짜 일을 하는데도 8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오늘도 결국 8시 30분 쯤 퇴근. 이제 대학교에서 일할 때 같은 칼퇴근은 절대 못하겠지. 영영.... 흑

5. 초록 카트 - 첫회사에서 초록 카트와 이별하는 게 소원이었다. 제조업이었기 때문에 공장과 창고가 경기도에 따로 있었는데 내가 일하는 부서가 특히 물건이 제일 많이 필요한 부서였다. 공장에서 물건 들어오는 목요일 오후에는 죽어라 그 박스를 들어 날랐다. 택배도 내가 다 수발신 담당했고, 퀵서비스도 내가 아마 회사에서 제일 많이 썼을거다. 대학교에서 일할 때는 전 회사처럼 물건 옮길 일은 별로 없었지만 혼자 일하니까 작은 카트 하나 사무실에 놓고 물건을 옮겼다. 아무래도 학교다 보니 학술 서적 같은 걸 옮길 일이 좀 있었다. 지금 회사에서는 그 업무에서 벗어나는 줄 알았는데 관두시는 분이 택배랑 퀵 수발신, DHL 이나 FedEX 로 들어오는 물건 수발신, 포워딩 통해 들어오는 물건 수발신 이 모든 걸 맡고 계셨는데 결국 그게 다 고스란히 내 업무가 됐다. 또 카트에 물건 싣고 창고로 옮기는 업무를.... 무거운 건 정말 무겁던데. 나는 정말 카트랑 헤어질 수 없는 운명인건가. 무역회사다 보니 물건 제대로 들어왔는지 체크하는 게 중요한데 어제에 이어 오늘 또 실수를 했다. 집에서 이닦는데 딱 생각이 나네.

6. 결혼 소식 - 20대 초반부터 중반까지 친구도 연인도 아닌 애매한 관계를 유지했던 지냈던 남자가 결혼을 한다는 소식을 전했다. 내년 3월. 결혼을 한다고 생각하니 나한테 이겼다는 생각에 득의양양한건지 아니면 정녕 내가 불쌍한건지 모르겠는데 그 말을 전하면서 카카오톡으로 나에게 악담을 엄청 했다. 나보고 현실직시를 하라면서 너는 평생 혼자 늙고 앞으로 너같은 여자를 봐줄 남자는 단 한명도 없을 거라고 말했다. 대체 뭐지. 어차피 결혼하면 앞으로 영원히 안볼 사이니깐 그러려니 했지만 일하다 말고 순간 욱 했었다.

7. 사람들은 참 남의 일에 관심이 많다. 본인이 아무렇지 않다고 말하는데도 괜히 나서서 측은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보면 왜저러나. 싶다.


인수인계 중

일상 2012. 8. 22. 16:55

자리에 딱 맞는 사람은 정해져 있는 모양이다. 난 2년 9개월동안 예전 회사에서 제대로 일했고, 내가 관둔 후 그 회사의 실장은 한동안 내 타령을 꽤 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있을 때 좀 잘해주시지는. 내 자리가 아닌 자리긴 했어도 여하튼 난 그 자리에서 일정기간 딱 맞게 일을 했다. 그리고 나 다음에 뽑힌 사람도 나 관둔 후부터 지금까지 예전의 나보다 더 열심히 잘 일하고 있다.

면접이라는 짧고 다소 황당한 절차로 그리고 엄청난 위험부담을 안고 한 사람을 채용하지만 대부분은 결국 정해진 그 자리에 딱 맞는 사람이 뽑히고, 뭐 처음에는 안 맞았다고 하더라도 결국에는 적응을 하게 되니까.

내가 지금 일하는 자리도 여러번의 우여곡절이 이었지만, 결국에는 제대로 된 사람을 채용하게 되었다. 솔직히 빨리 채용하고 나는 인수인계 해주고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아서 빨리 채용되었음 하는 마음이 컸는데, 역시 나보다 세상 오래산 분의 안목을 무시할 게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생각했던대로 급히 채용했으면 인수인계 받다가 뛰쳐나가거나, 얼마 못가서 관두거나 했을거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솔직히 거의 모든 잡다한 일을 다 했던거라서 그런지 인수인계를 할 게 엄청 많다.

처음에는 절대 어떤 절차로 처리되는지 예상되지 않는 것들만 알려주자는 생각으로 어제 하루 인수인계를 해줬는데 목이 너무 아프고, 인수인계 때문에 아직 남아 있는 일도 못하게 되고 여하튼 좀 피곤한 하루였다.

그런데 새로 들어오시는 분 학점도 좋고 말해보니 차분하고 인상도 괜찮은데, 이런 분이 왜 여기에 오시는걸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다. 물론 나도 일했던 자리긴 하지만, 너무 안타깝다.

겉보기에 대단한 회사 다니는 사람들이 그 회사의 명성만큼 훌륭하고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은 안한다. 반대로 초라한 회사에 다닌다고 해서 그 사람이 덜 떨어지는 것도 절대 아니고. 자리에 딱 맞는사람이 있다는 말은 이 회사에서 하는 업무를 가장 잘 인내심 있게 잘 할 수 있는 사람이 정해져 있다는 거겠지.

아 근데 "인내심" 과 "회사생활"은 말도 못하게 밀접한 관계. 솔직히 면접도 회사에서 얼마나 인내심을 갖고 일할 수 있는 건가를 보는 거니까.

새로 출근할 회사에서 내가 일을 잘 할 수 있을지 하는 생각에 걱정이 많지만, 오늘 쓴 것 처럼 결국에는 내가 잘 견디고 해낼 수 있는 일이 기다릴 것이라 믿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