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황과 푸념 가득

일상 2016. 4. 25. 18:24

1. 바로 오늘 아침에 있었던 일이다. 유방암으로 수술을 하고 복직을 앞두고 있는 친구가 수술한 가슴에 다시 뭔가 만져져서 병원에 가는 중이라는 메세지를 보고, 내 가슴이 미친듯이 뛰기 시작했다. 유방암이 재발하면 (내 입에 이 단어를 올리기 싫지만) 사망 위험이 크다는 말을 어디 선가 봤기 때문이었다. 그 친구가 내 곁을 먼저 떠날 것이란 상상은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친구가 검사결과 말해주기까지 몇 분 동안 만약에 만약에 결과가 최악이라면, 친구는 어떻게 해야하고, 난 어떻게 해야하나 하는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의사에게 암은 아닌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고 해서 한시름 놓았다. 이 글을 쓰다 보니 눈물이 또 핑 돈다.

2. 요즘 다시 읽고 있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 을 보면 (정확친 않지만) 주인공 소피가 어렸을 때부터 책을 많이 읽어서 자신의 인생에 대단한 일이 벌어질 확률이 매우 낮음을 너무 빨리 알았다는 내용이 나온다. 책은 이래서 좋다. 내가 느꼈던 걸 정확히 표현해주니까. 어렸을 때 부터 부모님 보다는 내가 더 경제적으로 발전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한 때는 동화 작가 같은 꿈을 꾼 적도 있었다. 하지만 난 언제나 사회진출에 유리한 쪽으로만 행동하고 그 방면에서 뛰어나길 원했다. 그런데, 지금 내 모습을 보면, 다 부질없었단 생각이 든다. 점점 더 내 인생이 내 기준에서는 실패한 인생에 가까워지는 것을 보면 내 자신이 한심해서 참을 수가 없다. 내가 더 강하게 버텼다면, 지치지 않았더라면, 이런 생각 때문에 점점 더 제 정신으로 살기 힘들어지고 있다.

3. 이 말을 글로 쓰는 순간 더 사무칠 것을 알기 때문에 웬만해선 일기에도 안쓰던 말이지만, 요즘 들어 정말 외롭다. 내 짝을 찾은 사람들이 세상에 엄청나게 많은데, 그 많은 사람들이 짝을 만난 게 하나같이 다 기적에 가까운 일임을 알고 그들은 행복하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누군가에겐 그런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으니까.
4. 주말에 영어학원에 가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인터넷으로 영작한 후, 첨삭 받는 걸 시작했는데 일주일에 두번 써서 내는 게 그렇게 힘들다. 호기롭게 써서 내면 온통 빨간색으로 틀린 부분이 표시되서 되돌아온다. 벌써 6번 정도 썼는데 자꾸 틀린 걸 또 틀린다.

5. 고용노동부에서 보낸 대표이사 출석요구서 사유를 보고, 이 회사 역시 오래 있을 회사는 아니라는 생각에 또 이직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런데 이 나이 되서 이력서 쓰는 게 너무 힘들고, 그거 때문에 올 봄은 꽃 한번 제대로 못봤다. 그렇게 4월이 끝나간다.

6. 어떤 남자의 메세지 혹은 전화를 받을 때마다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우리 엄마는 또 일단 사귀라고 성화다. 이제 내 의견 따위는 전혀 중요하지 않고, 남자가 좋다고 하면 무조건 만나야 되는 나이인가 보다. 동생 부모님 다 협공 중이다. 너 그럴 나이 아니니까 정신 차리라고 한다. 맞는 말이긴 하지만.. 어쨌든 여러가지로 내 맘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다.



일사천리

일상 2015. 8. 16. 18:55

내일부터 성수역으로 출근을 해야 한다. 대학교에 근무하기 시작한게 7월 21일인데 정확히 4주만에 그만두고 다시 취업을 하게 되었다.

구직사이트에 이력서를 올려놓고 잊고 있었는데, 어떤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직접 가서 보니 괜찮은 회사인 것 같고, 또 정규직이고 다만 우리집에서 너무 멀다는 게 단점이었지만 경력을 쌓을 수 있는 회사이니... 결국 가기로 했다.

하고 있었던 학교 일은 무조건 계약직이고, 입사를 제의한 회사는 무조건 정규직이었으니, 어쩔 수 없었다. 이로서 한동안 내 길이라 생각했던 대학원 입학도 없던 일이 되었다. 대학원에 붙긴 붙었지만 등록하지 않았다.

교수님께 그만둔다고 말하기가 죄송해서 잠을 한 이틀 설치고 살도 빠졌다. 하지만, 교수님들도 날 잡을 순 없었다. 학교는 2년 뒤에 무조건 짤리니 말이다.

나와 같이 면접을 봤었던 사람 한명을 다시 불러서 앉혀놨고, 난 내가 아는 모든 것을 인수인계 해줬다. 교수님이 다시 모집공고내서 사람 모집한다고 하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보통 다른 과 교수님들은 내가 맘에 드는 애 뽑는다고 시간 끌어서 전임자가 속타고 힘들고 그런다고 하든데... 난 하루만에 그만둔다고 말하고 사람 뽑고 일사천리로 진행이 됐다. 나와 같이 일하던 교수님 별명이 "엔젤" 인데 왜 별명이 엔젤 인지 알 수 있었다. 공부도 최고로 잘하시고, 직업도 교수고, 인간성도 최고 좋고 대체 그 교수님께 부족한 게 뭘까.  

새로 오는 아이는 오자마자 시간표도 바꿔야 하고 수강신청도 해야되서 힘들것 같지만 의욕있고 똘똘해보여서 마음이 놓였다. 걔도 일자리가 급했는데 일자리를 갖게 되서 잘됐고 나는 인수인계 제대로 시켜서 사람을 앉혀놓고 가니 마음이 편하고 누이좋고 매부좋았다.

7월 21일부터 8월 13일까지 제일 더웠던 시기에 모교 사무실에서 혼자 시원히 잘 보냈다. 집에 있었다면 그렇게 시원히 있을 수 없었을 거다. 낮에는 혼자 라디오 듣고 음악도 들었으니 피서를 갔어도 그보다 좋을 순 없었을 거다.

정확한 월급이 얼마나 되는지 아직 알 수 없어서 독립을 하기도 뭐하고, 처음부터 지각하면 안되니 일단은 전철을 타야 하는데 7시에 집에서 출발해야만 한다. 잘 할 수 있겠지?

 

어제는 수술한 친구 병문안 때문에 아산병원에 갔는데, 정말 크긴 무지하게 컸다. 환자가 엄청나게 많고 친구도 힘들어보였다. 하지만, 잘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다. 나같으면 내 친구처럼 온화하게 친구 맞아주지 못했을 것 같은데 친구는 참 평소와 다름이 없었다. 존경스러웠다.

 

나는 아마도 내일 이게 꿈이야 생시야 하면서 전철에 탈 것이다. 몇 년전에 충무로로 회사 다니면서 신도림에서 내리는 사람들 보면서 정말 딱하다 생각했는데 나도 그런 사람 중 하나가 되었다. 역시 사람 일은 아무도 모르나보다.  


일한지 5년

일상 2012. 7. 15. 20:48

대학을 졸업하고 내가 월급을 받은지도 5년이 넘었다. 대학을 졸업하는 2007년 2월 부터 2010년 백수생활 4개월을 제외하고는 나는 그래도 월급을 계속 받는 사람이었다. 그 4개월 동안은 정말로 초조했다. 간신히 일자리를 찾았지만, 나는 어떻게 된 게 5년 내내 점점 더 다운그레이드만 되어가고 있는 느낌이다. 나는 아주 먼 옛날에서부터 첫단추가 잘못 끼어진 느낌. 그 길에 접어들어서 계속 계속 잘못된 길을 걷고 있는 느낌.

참 무서운 것이 당시에는 항상 최선이라고 생각하고 내린 결정인데 그 결정으로 인해서 서른살이 된 지금까지도 이모양이니.

하루종일 비오고 난 엄마와 함께 집에서 뭉갰는데, 왜 나는 이렇게 밖에 못살고 있는 것일까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 내 이상이 그렇게 높은 것도 아닌데.. 난 왜 이렇게 밖에 못사는 것일까.

계약직은 참 비참하구나. 쫓아내면 나가야 하고, 요즘은 취업 사이트를 아무리 뒤져도 괜찮은 일자리도 없고. 그나마 오라는 곳은 악덕한 업체일 뿐이고.

내일 먼 곳으로 아빠 차 타고 면접보러 갈 건데, 거기... 제발 괜찮았으면 좋겠다. 나는 솔직히 어느 회사에서건 최선을 다하고 일도 잘하는 편이고 똘똘한 편이었는데 세상은 그 정도로는 되는 세상이 아닌 것 같다. 못났다.

몇 년만에 좋아했던 남자한테도 차이고. 흐흐흐

삼십대에 들어오면 조금 풀릴 줄 알았던 인생이 더 우울해지고 젊었을 때는 그래도 아직은 젊다는 생각으로 버텼는데 이제는 그런 위로도 없고. 참 살맛이 안나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