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주지 않는 꽃

단문 2015. 4. 15. 00:53

우리동네에서 월미도 가는 길에는 도무지 정이 안가는 공장이 쭉 늘어서 있다. 평일 낮에 그 길을 걸어가면 사람 한 명 보이지 않고, 엄청난 고압전류가 흐르는 소리만 들릴 뿐이다.
하지만 그 동네 공장 사이에는 어울리지 않게 벚나무가 무척 많이 심어져있다. 매년 때가 되면 꽃이 피고, 항상 예쁘지만, 봐주는 이는 적다.
삭막하고 외로운​ 곳에서 그 나무들이 피워낸 벚꽃은 정 떨어지는 그 곳에서 유일하게 아름다운 존재지만,알아주는 이는 별로 없다.
난 나 혼자라도 걔네들의 아름다움을 봐주리라 결심하지만, 그게 참 쉽지 않다. 올해도 난 그 꽃들을 바라봐주지 않았다.
이틀째 비오는 밤에 운전을 했더니 기분이 다시 가라앉았다. 이 비와 함께 꽃도 다 떨어질 것이다.
나 자신을 꽃에 비유하기도 웃기지만, 공장 앞 꽃들에게 정이 갔던 건 묘한 동질감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난 이미 지고 있는데, 가장 예뻤던 때 부터 지금까지 나를 진심으로 바라봐준 이는 없었다는 슬픈 생각에 봄마다 좀 우울해진다.
괜히 봄에 자살을 많이 하는 게 아니다. 이상하게 봄만 되면 비참한 기분이 든다.
며칠전 누군가에게 편지를 썼다. 편지의 수신자는 아마 영원히 그 편지를 읽지 않을 것이다. 그걸 알고 보냈지만, 마음이 홀가분했다. 그 편지에 답장은 기대하지 않는다고 썼지만, 거짓말이다. 난 죽을 때 까지 기다릴 것 같다. 절대 오지 않을 답장을.


   약속이 없는 주말이었다. 20살 때 이후로 쭉 약속 없는 주말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약속 없는 주말이 더 많았으면 많았지 적지 않았을 거다. 난 혼자 있는 시간은 풍요로운 인생에 있어서 필수 요소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물론 누군가와 함께 있는 것도 마찬가지지만..  외로움을 위해 같이 있어 줄 것을 구걸하는 것도 구차하고, 나는 지금 같은 처지가 참 편안하고 안락하다. 누군가는 정신승리라고 비웃을지라도, 정말이다. 물론 정말 기쁜 일이 있을 때는 함께 기뻐할 사람이 없음에 아주 가끔 서글퍼지기도 하지만, 만약 이렇게 평생 고독하게 사는 게 내 운명이라면 기꺼이 감사하며 살 수 있다.

 

  저번주에는 1년 전부터 나를 가르쳐 준 학원 영국 남자 선생님께 여행가서 사온 선물을 드렸다. 선생님이 여자친구와 같이 살고 있는 걸 알기에 여자친구 선물도 함께 사서 줬는데 다 합쳐서 8유로 밖에 안들었으니, 비싼 선물은 아니었다.

  어제 그 선생님이 니 선물 진짜 예쁘고 거깃다 실용적이기 까지 하다고 하면서 고맙다고 나한테 인사하는데 기분이 좋았다. 이런게 여행의 재미 중 하나구나 싶었다. 다녀와서 기념품 주고 그 기념품 보면서 좋아하는 지인들을 보는 거 말이다.

  참고로 선생님 선물은 포츠담 상수시 궁전 벽지가 그려진 (특이하게 공작새가 그려져 있다) 안경 타올 이었고, 선생님 여자친구 선물은 역시 궁전 벽지가 그려진 (장미 모양) 손거울 이었다.

 

  여행에서 다녀오자마자, 모든 게 아득할만큼 골치아픈 일이 회사에서 펑펑 터지고, 회사 사람들은 안그래도 힘든데 자꾸 정떨어지게 굴어서 심적으로 한동안 힘들었다. 저번주에는 다행히 그 모든 일들이 어느 정도는 마무리 되고, 내가 뭘 더 바라겠냐는 심정으로 회사 사람들에 대한 최소한의 기대마저 포기하니 오히려 일이 술술 풀렸다. 결국 금요일에는 할 일이 없는 지경에 이르러서 거의 놀다가 퇴근했다. 비오는 금요일 밤이라 그런지 인터넷 교통상황 보니 차가 밀려도 너무 밀려서 그냥 8시 30분까지 회사에 눌러 앉아 있었다. 덕분에 런던 포스팅도 완성했으니 수확없는 늦은 퇴근은 아니었지.

 

  내가 좋아하는 프로그램 재방송을 보거나, 평일에 못 읽었던 책이나 중앙선데이 신문을 읽고 밤에는 보고 싶었던 영화 한편을 본다. 이게 내가 생각하는 완벽한 토요일인데, 이 기준에 의하면 어제는 완벽했다. 요즘 올레티비로 보고 싶었던 영화 보는 것 마다 다 내 맘에 쏙 들어서 흡족하다. 어제는 '바스터즈:거친녀석들'을 봤는데, 근래 본 영화 중 제일 자극적인데도 제일 통쾌한 끝내주는 영화였다.

 

  엄마가 제주도 다녀온 뒤로 인천을 한번도 못 벗어나서 그런지 요즘 부쩍 울적하셨다. 인천을 한번도 못 벗어났다는 의미는 나무와 꽃을 못봤다는 것과 동의어다. 우리 동네 정말 삭막하고 계절이 어떻게 가는지 알 수 없는 자동차들이 뿜어내는 먼지만 가득한 동네다. 그러니 집값 싼 거겠지만.

  그래서 오늘 가까운 월미도라도 가자 하고 나섰는데, 항상 시끄럽고 천박한 음악이 흘러나오는 낡은 놀이기구들 있는 부근만 가다가 오늘 그 바로 전 정거장인 월미공원에 갔는데 무섭도록 조용한 점이 좋았다. 지금이야 무슨 국화 축제 한다고 해서 사람이 좀 있는데, 이런 축제 기간이 아니라면 공원 안에 한 10명 남짓 있을 것 같이 작고 조용한 공원이었다. 공원 내 큰 검정 돌판에 새겨진 "월미도 연표" 가 참 재밌었다. 효종 때 부터 월미도가 어떤 사건을 겪었는지 적어놓은 연표였는데, 병인양요, 갑신정변, 경술국치, 인천상륙작전 등과 맞물린 월미도의 운명이 시간 별로 서술되어 있었다.

  난 역사에 있어서는 거의 까막눈에 가까운데, 국사 시간에 배웠던 그 모든 사건과 관계 있는 곳을 버스타고 15분만 나오면 볼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나는 역사를 모르지만, 결국 나같이 아무것도 모르는 하잘 것 없는 사람도 우리나라의 역사와 전혀 관계 없이 사는 건 불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난 우리나라가 좋다. 뜬금없지만.

 

 

 

 

 

  난 꽃다발 받는 건 싫어하는데 땅에 뿌리박고 있는 꽃을 보는 건 참 좋아한다. 이걸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까? 어떤 꽃이든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이 세상에 못생겼다고 생각한 꽃은 한번도 없었다.

 

  월미공원에서 월미산도 보고 소나무 바라보면서 걸어서 월미도까지 왔는데, 코메디같은 월미은하레일 기둥과 무지비하게 큰 고철덩어리 레일 때문에 월미도는 완전히 흉물의 전시장 같이 변해있었다. 이렇게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되기 전의 월미도는 좋았다. 석양을 보고 싶으면 난 가끔 월미도까지 갔다가 오곤 했는데.. 지금은 가고 싶지 않은 곳이 되었다.

  월미도와 차이나타운 자유공원 이 동네의 매력은 뭐니뭐니 해도 1970년 이후로 아무도 신경도 안쓴 것 처럼 방치된 건물들과 거리였다. 어떤 장소에도 '흥망성쇠'의 운명이 있는데 이 동네의 매력은 '흥'과 '성'이 지나가 버린 '망'과 '쇠'를 느낄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매력이었다. 나한테는.

 

  인천시청이 제발 무식하고 조잡한 장식물 같은 거 이제 그만 만들고, 니들 알아서 그냥 살라고하고 계속 이 동네를 방치해줬으면 좋겠다. 물론 화장실 같은 편의 시설 만들어 주는 건 찬성이지만, 이상한 장식물 같은 건 제발 그만 해줬으면 좋겠다.

  한 때 월미도를 좋아했던 사람으로서, 인천시청이 자꾸 오래된 월미도를 망쳐놓는 걸 보는 게 괴롭다.

 

다음 주는 개천절이 있어서 인지 일요일 밤인데도 이상하게 슬프지 않다. 책 좀 더 보다가 잠들면 완벽한 마무리가 될 것 같다.


초복날 월미도.

일상 2010. 7. 20. 22:48
과외를 하는 집 중 다른 한 집은 내가 과외를 하러 가면 애가 없거나, 애가 있는데도 병원을 가야되서 과외를 못하는 날이 많다. 우리집이랑 가까운 집이긴 하지만, 그렇게 사정이 생기면 나한테 문자 하나만 딱 보내주셔도 정말 감사할텐데, 내가 그 집 앞에 있는 문앞에 가서 전화를 하면 그때서 오늘 안된다고 답변이 온다. 그나마 전화가 연결이 되면 다행인데 그것도 안되서 30분 정도 기다리다가 문자만 남기고 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복도식 아파트라 여름은 괜찮은데 이거 겨울에 복도에서 기다리려면 춥겠구나 하는 걱정도 한다. (그때까지 할지 안할지도 모르겠지만)
이렇게 매일 기다리는 일이 많다보니 어렸을 때 눈높이 선생님에게 갑자기 죄송해지기도 하고 그렇다. 난 어렸을 때 눈높이 수학도 하고 눈높이 영어도 했다. 나 초등학교 때는 그게 아주 선풍적인 인기였다. 가격도 저렴하고, 또 난 엄청 효과도 봤다. 그러나 당연히 난 교재를 엄청 밀렸고, 너무 밀려서 도저히 수습이 안되는 날에는 눈높이 선생님이 문을 두드려도 집에 없는 척을 했다. 미안해요. 눈높이 선생님. 흑. 아무래도 그때 쌓은 업보를 지금 받는 모양이다.
어제도 버스를 타고 그 집으로 향하고 있는데 문자가 왔다. 안될 거 같다고. 이미 버스를 탄 상황이고 우울하기도 하고 그래서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 월미도로 향했다. 마침 해가 딱 지는 시간이라 노을도 보고 우울한 마음도 달래고 좋을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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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간거라 핸드폰 카메라로 좀 찍었는데, 딱 적절할 때 도착하여 해 지는 모습까지 보고 왔다. 그 주변에 은근히 집이 많아서 산책하러 나온 사람도 많고 다양한 연령대의 연인들도 있지만 난 혼자였다. 생각해보면 회사다니면서 월미도 혼자 왔을 때 엄청 춥고 심적으로도 엄청 힘든 때 였다. 지금도 뭐 그렇게 좋은 상황은 아니지만, 마음이 많이 편해졌다는 걸 실감했다. 돈은 그때보다 없지만.
오는 길에는 2번 버스와 12번 버스를 햇갈려서 이상한 곳까지 갔다왔는데, 이제 내가 진짜 인천 사람이라고 느낀게 버스가 이상한 곳으로 가는데도 별로 불안하지도 않고, 대충 버스 번호 보니까 어느 쪽 가는지 감이 왔다. 항상 어떤 지역의 이방인 이었던 내가 그렇게 능수능란(?) 하게 생전 처음 보는 동네에서도 집을 찾아오고 나니 정말 인천이 내 고향이 된 거 같았다.
사람들 보면 고향 떠나기 싫어서 좋은 직장, 학교에 붙었으면서도 갈까 말까 고민하는 걸 보면서 정말 이해가 안간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나도 그런 기분을 이해할 것 같다. 사실 과외만 하면서도 대충은 먹고 살겠다 싶은 생각이 들어서 취직에 대한 의지가 살짝 꺽인 상태였다. 그러다가 어제 과외가다가 전화온 위의 저 집에서 돈을 너무 안 주시니까 이놈의 짓도 못할짓이다 싶어서 이틀동안 미친 듯이 구직 사이트를 뒤졌는데 인천에서 출퇴근이 불가능한 곳은 별로 가고 싶지가 않고 그렇다. 인천에서 그냥 일하면서 먹고 사는게 가장 큰 소망이고, (앞으로 혹시 인천을 떠나게 되는 일을 안 만드려고) 장롱면허에서 탈출하여 강남이나 분당 일산 같은데 그냥 아빠차 끌고 갔다올 수 있을 정도로 연습할 생각이다.

아까는 미숫가루를 타 먹는데 초등학교 3학년 때 살았던 주안8동 안국아파트 시절 생각이 확 났다. 원래 기억이란 게 냄새나 노래, 맛, 음악 등이 가미되면 더 강렬해지는 거니까.(나같은 경우에는 어떤 상황에 맡았던 냄새에 엄청 민감해서 그 냄새를 맡으면 다시 그 때로 돌아간 것처럼 생생해지곤 한다) 주안 8동 살 때 우리집은 13평이었는데, 엄마가 미숫가루에 얼음을 넣어주거나 아니면 그때 당시 엄청 유행하던 아이스크림 만드는 틀에 넣고 미숫가루를 얼려주시곤 했다. 내가 살던 주안8동 안국아파트는 한신휴플러스 라는 고급 아파트로 재건축이 되었고, 난 화수목요일 과외를 가기 위해 그 아파트 앞을 마을버스 타고 지나다닌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안국아파트를 떠나서 대전 정읍을 거쳐 28살 때 다시 그 앞을 이렇게 매일 지나다니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이런거 보면 정말 사람일은 모르는거다.
원래는 월미도 다녀온 이야기만 하고 싶었는데 너무 이야기가 길었다. 점점 이 블로그가 인천 예찬 블로그가 되어 가는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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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ff day.

일상 2008. 4. 20.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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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1일 너무 떨려서 잠도 제대로 못잤던 휴가. 민양과 내가 한일은 결국 서울시청에서 만나서 밥 먹고 청계천 좀 구경하다가 스타벅스에서 커피 마시기. 난 스타벅스가 좋다거나 거기 커피 아니면 안마신다거나 하는 건 아닌데 어찌된 일인지 서울에서 놀기만 하면 스타벅스 혹은 커피빈에 가게 된다. 그냥 뭐 마시면서 수다 떨고 싶은데 일반 카페는 담배피는 사람이 너무 많고, 원래 가던 습관도 있고 해서 결국에는 그런 다국적인 별다방 콩다방에 가게 되는 것. 회사 다니면서 뭘 제일 하고 싶냐고 물어보면다면 세계 일주, 애인만들기(애인 만드는 게 언제부터 거창한 게 되버렸다냐) 같은 거창한 건 말 안할거다. 그냥 하고 싶은 건 쉬기, 사람없는 평일 낮에 친구랑 만나서 얘기하기 정도다. 이렇게 소박한 소원인데 그게 참 힘들다는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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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9일 민양이 핸드폰이 없다보니 민양한테 가끔 집에 전화를 하면 이상하게 그럴때마다 민양이 집에 없다. 그래서 맨날 민양 어머님하고 전화를 하는데 우리가 하도 자주 만나니까 민양 어머님이 우리보고 사귀냐고까지 물어보셨다. 그래도 시간 날 때 자주 그리고 오래 만나주는 친구가 있는 건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친구가 채워줄 수 있는 부분이 있고 애인이 채워줄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서 친구랑 아무리 친해도 애인이 있어야 한다지만 난 아직 그 단계까진 당도하지 않은 것 같다. 그냥 친구 만나는 것 만으로도 어느 정도는 스트레스가 풀린다. 아 저기 사진에 있던 스탬프 세트는 결국 나도 따라 구입했다. 이제까지 이쁜 스탬프 봐도 꾹꾹 참고 있었던 이유는 한번 사기 시작하면 계속 살까봐 였는데 이건 꽤 여러개 들어있어서 추가로 안사도 될 것 같다. 4월 들어서 다이어리에 스탬프 엄청 찍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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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3일 하도 무료해서 친구한테 뭐하냐 물어봤더니 지금 일어났다고 해서 우리 백화점이라도 갈까. 하고 만나서 진짜 백화점에 갔다. 4월 12일에는 원래 아는 언니 오랜만에 만나기로 했는데 몸살기가 있어서 미안하다고하고 약속을 취소했다. 어찌나 미안했든지. 토요일 하루 푹 쉬었더니 몸이 원상복귀가 되고, 엄마 아빠는 큰아빠 농장에 가셨고 집에 혼자 TV만 보고 있자니 무료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같이 만난 친구랑 같이 산 옷은 이제까지 거의 성공을 해서 이번에도 같이 가서 이거 저거 구경을 하면서 여성스러운 옷을 살 것인가 그냥 맨날 입는 청바지를 살 것인가 고민하다가 결국 청바지를 샀다. 취직하고 얼마간은 이제 나도 직장인~ 이러면서 꽤 여성스러운 블라우스나 치마 같은 거 샀는데 결국 한달에 한번 입을까 말까 한 옷이 되어버리더라. 그리고 우리 회사 그냥 청바지 입고 다녀도 되니까. (심지어 난 구두도 안 신음)
세일이라고 해서 백화점 가서는 세일 안하는 바지를 샀는데, 그 바지 입고 나왔을 때 '야 난 민망해서 이거 도저히 못 입을 것 같다. 어떻게 입어~' 이랬는데 친구 말로는 그보다 더 심한것도 잘만 입고 다닌다고 강권 하는거다. 결국 귀 얇은 나는 10만원이 훌쩍넘는 돈을 주고 그 바지를 사버렸다. 대학 다닐 때는 돈이 없어서 그냥 1~2만원짜리 청바지 입었다. 근데 입는 바지마다 다 허벅지하고 엉덩이는 맞는데 허리는 남아도는 난감한 모습이 되는거다. 내 체형이 이상한 줄 알고 그냥 그렇게 살았는데, 이제서야 내 체형에 딱 맞는 바지 브랜드를 발견했다. 그래서 그런가 계속 사입게 되네. (이번이 3번째)
다른 얘기로, 난 이번 봄에도 결국 벚꽃놀이를 못갔다. 예전 대학 다닐 때는 학교 안에 벚꽃이 많아서 별다른 노력 없이도 벚꽃을 실컷 볼 수 있었다. 특히 벚꽃이 만개하는 때는 항상 시험기간이었다. 도서관에서 공부하다가 밤에 혼자 집에 들어가면서 밤, 4월, 가로등, 벚꽃 등이 만들어내는 쓸쓸한 분위기 때문에 감상적이 되선 '아 오늘밤도 새야 하나' 라고 한숨 쉬곤 했는데. 난 왜 매해 4월은 이렇게 혼자인 것 같은지. 예전 남자친구도 벚꽃피기 전에 입대했고, 걔랑 사귀는 동안에도 벚꽃핀 길을 걸을 땐 항상 혼자였던 것 같다. 유난히 외로운 4월 같으니라고.
대전에서 살던 저층 아파트 화단에는 목련이 엄청 많았다. 사람들은 목련 떨어지면 지저분해서 싫대지만, 벚꽃을 생각하면 맨날 밤에 혼자 터덜터덜 걸어왔던 게 생각나고 목련을 생각하면 중학생이었던 나와 그때 친구들이 생각나서 난 목련이 더 좋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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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8일 - 팔자 좋게 휴가를 냈다고 할 지 모르지만 저번주는 너무 지치고 지쳤던 한 주였다. 결국 눈치 엄청 보면서 저 금요일에 쉬겠다고 하고 쉬었다. 몸이 안좋아서 쉬기로한 것이니만큼 별다른 약속은 잡지 않았다. 단 꼭 하고 싶은 일이 있었는데 그건 CGV 포인트 쓰기.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CGV 모두 이번 4월 30일 날짜로 포인트가 다 소멸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난 만육백점이나 되는데 영화를 보려고 봤더니 보고 싶은 게 하나도 없었다. 저번 포인트 쓸 때는 보고 싶은 게 없었음에도 포인트 쓰는 마지막날이라 울며 겨자먹기로 '메종 드 히미코' 를 봤는데 재미 없었다. 이 영화 좋았던 사람들 도대체 어느 점이 좋았는지요? 난 진짜 재미없어 죽는 줄 알았다. 그때와 똑같은 상황이 될 것 같아 직원한테 이 포인트로 그냥 영화관람권이나 상품으로 주시면 안되냐고 물어봤더니 작년 12월을 끝으로 그런건 없어지고 포인트는 현장 발권만 된다는거다. 결국 목적 달성 못하고 오후 5시경에 친구랑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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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랑 헤어지고 나서 45번 버스를 탄 나는 갑자기 집에 들어가기 싫어졌다. 그래서 그냥 종점인 월미도까지 가기로 했다. 그날에서야 안 건데 인천역을 지나서 월미도 가는 길 주변에 피어 있는 나무가 알고보니 다 벚나무였다. 월미도 가는 길에는 남항 입구가 있어서 컨테이너 박스도 산처럼 쌓여있고, 대한제분, 무지개 사료, 대한제당 등 무지막지하게 크고 삭막한 공장들이 즐비하고 바퀴 10개이상 달린 트럭들도 쌩쌩 달리는데 그런 길에 피어 있는 벚꽃이라. 이색적이고 멋질 것 같은데 이미 다 지고 바닥에 그나마 남은 벚꽃잎들만 굴러다니고 있었다. 그런 광경을 놓쳐버린 것이 원통하기까지 했다.
난 원래 부터 혼자 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나? 아니면 어쩔 수 없이 혼자 다니다 보니 이젠 혼자가 편해진걸까?
잘은 모르겠지만, 내년에 제분공장 옆 벚꽃을 또 혼자와서 구경하더라도 별 상관없을 것 같다.

  내 첫 휴가였던 금요일에 친구와 4시반에 헤어진 게 그 하루의 끝은 아니었다. 평소에 '굳이 안해도 될 불쌍한 짓을 괜히 만들어서 하는 것'이 취미이자 특기인 나는 또 한 가지 불현듯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월미도에 가야겠다"    바로 이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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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미도는 가면 정말 초라하고 볼품없는 곳이라 인천사람들도 굉장히 무시하는 곳이고 나역시도 그런 사람 중 하나였지만,

우리집 앞에 있는 표지판

월미도
月尾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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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 km

이 표지판을 보고 나서 부터 태도를 180 도 바꿨다.


우선 이름의 뜻  - 월, 꼬리 미, 도. 너무 아름다운 이름아닌가.   특히 '꼬리 미' 자라니!!!!

  이름 때문에 좋아졌다면 사실 좀 거짓말이고 우리집에서는 저 멀리로 바다가 보이는데, 인천 앞바다의 석양이 꽤나 이색적이면서도 쓸만하다는 걸 몇개월간 살면서 알았기 때문에 좋아졌다는 게 더 큰 이유이다.

  다시 금요일의 내 소중한 첫 휴가 때로 되돌아 가자면, 4시반에 집에 들어와서 그럭저럭 TV나 인터넷을 하면서 내 소중한 첫 휴가를 보내기엔 뭔가 안타까웠다. 바닷바람이 꽤 차겠지 싶어서 난 두꺼운 옷과 목도리를 두르고 집을 나서선 45번 버스에 혼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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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초의 목적은 해가 진 직후를 보는 것 이었는데, 생각보다 해가 너무 빨리 지는 바람에 해가 진 직후라기보단 깜깜해지기 직전 에 가까운 바다를 보게 되었다. 애초의 목적달성에는 실패했지만 썰물이라서 바닥에 바위만 보고 오면 어쩌나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완벽한 밀물이라서 물은 충만했다!
  월미도에 가면 사람이 없는데 워낙 그 주변의 모든 것들이 낭만과는 거리가 먼 공장 뿐이고 음식점들도 다들 촌스러움과 동시에 엄청 맛없어 보이는 외관을 자랑하고 있기 때문에 당연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난 아주 오래전서부터 그렇게 천천히 빛바래오고 재미없는 장소가 되어버린 월미도의 처량한 분위기가 마음에 든다. 막상 가보면 아무것도 없는 월미도지만, 의외로 영화나 드라마에서 자주 등장하는 배경이 아니던가! 그것도 다 이런 처량하고 처연해 보이는 분위기 때문이 아닐까.
 
  내가 갔을 때도 거의 10명 남짓한 사람들만이 월미도 주변을 걷고 있었다. 나로선 아주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남의 시선을 의식해서라기보단 왠지 끝없이 조용하고 고요하게 밑으로 밑으로 가라앉아버리고 싶은 기분이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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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 몇 분 사이에도 바다는 빠르게 어두워졌다. 싸구려 카메라인데다 사진 찍는 기술이 없어서 첫번째 사진과 두번째 사진의 변화가 별로 안 느껴지지만 말이다. (하늘색만 비교하면 미세하게나마나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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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자 온 아저씨 한명이 눈에 뛰었는데 묘하게 동질감을 느끼다가 좀 웃겼다. 저렇게 바위위에 올라가셔서 폼 잡으실 것 까진 없으실텐데 싶었다. 푸흐흐. 포즈로 봐서는 소리라도 크게 지를 태세지만, 그냥 저러고 멍하니 계시다가 바위에서 내려와선 돌아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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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바다에 모래사장이 있는 건 아닌가보다. 월미도에는 모래사장 따위 없다. ;; 대신 바닷물을 바로 눈앞에서 볼 수 있다.

바로 바다까지 연결되어 있는 계단.

이거야 말로 Stairway to heaven  인가?

훗. 계속 걸어들어갔다간 동사하기 딱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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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전히 어두컴컴해질 때까지 난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걸었다. 그래봤자 얼마 안되니까. 바닷바람도 쐬고. 카메라로 마구 셔터를 눌러댔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내가 미처 장갑까지는 준비해오지 못한 것이었다. 손이 상상초월로 시려웠다. 결국 편의점에 들어가서 이사짐 나를 때 쓰는 흰색 장갑을 하나 사서 끼었다. 훨씬 손이 따뜻해졌다.
  음악이 딱 필요한 순간이었는데 한쪽 이어폰 고무가 사라져버린 상태였다. 너무 손시려워서 정신없는 동안 잃어버린 모양이었다. 뭐 그렇지만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물결 소리라서 안들어도 그 나름대로 운치가 있었다.
  하지만 만약에 내 이어폰이 고장 상태가 아니었다면, 나는 이런 노래들을 들었을 것 같다.

   -제목과는 달리 노래 분위기는 자살 직전에 들음 딱일 것 같은 radiohead의 Optimistic
   -1집 2집과는 달리 정붙이기 힘들었던 coldplay 3집의 x and y
   -'나는 널 위해 여기 있어. 나의 꿈에 들어와.' 서울전자음악단 의 꿈에 들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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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분과 상태는 정말 안좋았는데 뭐 좋다고 웃었나 모르겠다 흐흐. 이 사진을 찍고 새삼 나이들은 티 나는 내 모습에 놀랬다. 하긴 내년이면 이제 누구에게 말해도 20대 후반인 나이가 아니던가. 20대 중반이 더 가깝긴 하지만. 그리고 왠지 내 얼굴이 낯설어졌다. 내가 이렇게 생겼나? 싶기도 하고 아.. 내가 이렇게 생겼구나 하면서 좌절하기도 하고.
  갑자기 말하고 싶어서 말하지만 난 다른 사람과는 달리 눈동자안에 점이 있다. 왠만한 관찰력이 아니고는 발견 못하는 건데, 왼쪽 동공 바로 밑에 약간 미세하게 동공 색과 비슷한 게 또 하나 있다. 아직까지는 내가 말하기 전에 알아보는 사람을 못봤다. 그냥 내 신체 특징 중 하나라면 하나인거 같아서 말하는 거다. 어렸을 때 잘못된 줄 알고 엄마가 안과에 데려갔는데 사는데 아무 지장없고 종종 이런 경우 있다고 말했댄다.
 
  완전히 어두워진 월미도에서 단 몇 분동안 아주 골똘히 했던 생각은.

"지금이 '그때'만큼 힘드냐?"
"지금 힘든 게 도저히 감정조절 하기 힘들 정도냐?'

하는 질문이다.

  두 질문 모두 대답은 '아니오.' 다. 그래. 아니니까, 버티자 이거다. 그냥.. 이렇게 생각하면 쉬울 것 같다. 난 남자가 아니라 군대에 안가고 앞으로도 갈 일 없지만, 거기서 버티는 원동력이 언젠가는 끝이 난다는 거 아니겠나. 군대와 직장은 다른 거지만. 나도 그냥 끝을 기다리는 맘으로 살기로 했다. 내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하루하루 시간은 가는거니까.

  내가 지금 이제까지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때에 비하면 굉장히 괜찮은 상황이라는 것과 시간은 가는거니까 그리고 굉장히 고맙게도 그 시간이 다른 때보다 빨리 지나가는 것 처럼 느껴지니까 괜찮을거다. 라는 위안을 얻고 나니 집에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배가 많이 고프기도했고, 더 있기에는 내 손이 완전히 얼어버릴 것 같았다. (나중에는 장갑도 소용없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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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 점포수 1위라는 GS25에 들어가서 내 손을 녹여줄 막강한 임무를 맡길만한 음료수를 찾다가 생전 처음 보는 '로얄 밀크티'라는 따뜻한 캔음료를 마셨다.

  종점이라 멈춰있는 버스를 잡아타고 동인천역을 지나서 집에 오면서 '이제 겨우 3일중 하루가 지난거잖아!' 라는 생각이 드니 기뻤다.

  그리고 이제 5분만 있으면 월요일이다. 월요일. 스크롤의 압박이 굉장할 이 포스트를 끝마치고 잠이 들어 눈을 뜨면 나는 또 하루하루를 죽이려 회사로 간다.

다음주부터는 회사에서 굉장한 일이 있을 예정인데, 월미도에서 느꼈던 그 자신감은 어디가고 벌써부터 무서워지고 있다.
 
   나 견딜 수 있을까?... 

P.S 마지막으로 내가 처음으로 찍은 월미도 동영상까지 올린다. (그냥 걸어가면서 찍은 아주 재미없는)
      훗. 이걸로써 휴가일기 진짜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