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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10.05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를 다시 읽고 4
  2. 2014.05.18 원래의 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국내도서
저자 : 줄리언 반스(Julian Barnes) / 최세희역
출판 : 다산책방 2012.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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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을 이미 읽었기 때문에, 영화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를 무척 기다렸다. 우리나라에서 인기 많은 배우 한명 안나오는데도 정식 개봉을 할 수 있었던 건 순전히 줄리언 반스의 원작 소설의 인기 덕분이리라.

  영화를 보며 나는 정말 나의 기억력에 놀랐다. 아니 정확히 말한다면 나의 '망각력' 에 놀랐다. 분명 재밌게 읽은 책이었다. 강력한 책이었다. 그런데 소설의 내용이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도저히 잊을 수 없는 결말 외에는 기억나는 부분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다시 이 책을 읽었고, 이 영화를 기점으로 독후감을 제대로 쓰기로 마음 먹었다. 좀 밀리긴 했지만 아직까진 잘 지키고 있다.


  조금 두렵지만 또 어쩔 수 없이 각색을 거쳐 쓸 수 밖에 없겠지만, 약 10년 전 내가 겪은 일을 말해보고자 한다. 이 사건을 이렇게 쓰기까지 오래 걸렸다. 하지만 이제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소설 속 '베로니카' 처럼 어떤 남자에게 나를 저주하는 내용의 편지를 받은 적이 있다. 시대가 시대인만큼 내가 받은 건 이메일이었지만, 어쨌든 그가 나에게 품은 건 이 소설의 주인공 '토니 웹스터'가 베로니카에게 그랬던 것 처럼, 오로지 증오와 혐오 뿐이었다. 내가 그런 편지를 받은 이유는 내가 그에 대한 이야기를 블로그에 (익명이긴 해도) 썼기 때문이었다. 그 사람은 내가 오랜 시간 짝사랑했던 사람이었는데, 바보같이 난 그가 내 블로그를 보고 있는지도 몰랐다. 아무에게도 알려준 적 없는 블로그였으니까. 어떻게 내 블로그를 알게됐는지는 아직도 의문이지만, 이제와서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랴.

  그런데 참 신기한 게 내가 블로그에 그에 대해 뭐라고 썼는지는 하나도 기억 안나고 그가 나에게 썼던 편지 내용만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는 거다. 그 편지에 내가 답장을 했는지도 기억이 안난다. 이렇듯 사람은 이기적이다. 내가 블로그에 쓴 글이 그에 못지 않게 지저분한 내용이었을 수도 있는건데 그건 전혀 기억이 안나니 말이다.


  베로니카와 비슷한 사건을 한번 겪고 보니, 내가 어린 나이에 치기어린 마음으로 써갈겨 친구 혹은 애인에게 건낸 수많은 편지를 근거로 누군가 나의 인생을 연구한다면 나는 얼마나 추하고 봐주기 힘든 인간일까... 라는 생각이 들면서 아찔해졌다. 내 필체와 완벽히 일치하는 그 증거들을 앞에 둔다면 사실은 내가 이 정도로 별로인 인간은 아니었다고 변명을 할 수도 없을 것이다. 어쩌면 수치심을 못이겨 바로 죽고 싶은 맘이 들지도 모른다.


  이렇게 수많은 헛발질과 실패를 하며 제법 나이가 들고보니 가끔 지인들이 나에게 고민을 상담할 때마다 내 대답은 거의 '하지마.' 가 되어버렸다. 솔직히 말하면 상대방의 고민이 뭔지 들을 필요도 없는 경우도 꽤 많다. 뭔가를 안한다면, 적어도 최악은 피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결국 이렇게 꼰대가 되어버린 것이다. 내 품위와 자존심을 다 버리면서 나는 왜 사랑을 했을까. 나는 왜 그딴 편지를 썼을까. 나는 왜 매달렸을까. 왜 울었을까. 왜 그런 말을 했을까. 한동안 나는 '왜 했을까?' 라는 생각에 수없이 괴로워했다. 하지만, 다시 10년 전으로 돌아가도 난 아마 그렇게 충동적으로 고백을 하고 글을 쓰고 또 편지를 쓰며 결국 최악의 상황으로 나를 밀어붙이고 말 것이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의 토니도 베로니카에게 편지를 쓰지 않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그는 결국 썼고 보냈고, 그 일을 의도적으로 완전히 잊고 살아왔다.


  줄리언 반스는 한 사람의 역사이든 한 나라의 역사이든 우리가 역사라고 부르는 '기억' 혹은 '추억' 이라는 것이 얼마나 허술한 것인지 '토니 웹스터' 라는 정안가는 주인공을 통해 서술한다. 하지만 우리 모두 언젠가는 토니 웹스터 혹은 베로니카 였음을 부정할 순 없을 것이다. 난 그런 적 없다고 말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다. 우리 모두가 어떤 기억은 남김없이 다 지웠거나 혹은 나에게 유리한대로 왜곡하여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것 아닌가. 그래서 난 이 책을 읽고 또 한번 결심했다. 죽는날까지 자기 미화의 욕구와 싸우며 살겠노라고. 나란 인간은 내가 지금 기억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인간일 가능성이 매우 높으니까 말이다.


  "핀?"

  "역사는 부정확한 기억이 불충분한 문서와 만나는 지점에서 빚어지는 '확신' 입니다."

 (중략)

  "그 일은 역사적 사건입니다. 사소하달 순 있지만요. 그러나 최근 일이지요. 따라서 역사로서 그리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어야만 할 것입니다. 우린 그가 죽었다는 것, 그에게 여자친구가 있었다는 것, 그녀가 현재 임신했다는 것, 아니면 과거에 그랬다는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외에 우리가 뭘 알고 있을까요? 단 한장의 문서 '엄마 미안해' 라고 쓴 한 장의 유서가 있습니다. (중략) 선생님, 그러니까 오십 년의 세월이 흐른 후, 롭슨의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그의 여자친구도 사라져버리고, 어쨌거나 누구도 그를 기억하고 싶어하지 않을 때에, 어느 누가 롭슨의 이야기를 글로 쓸 수 있을까요? 문제점이 보이시나요, 선생님?"


-P. 34~35



원래의 나

일상 2014. 5. 18. 23:45

정상적인 사람들은 대부분 객관적 증거와 이제까지의 경험 등에 의지하여 자신에게 당면한 문제를 돌파해보려 안간힘을 쓴다. 하지만 어떤 종류의 문제는 아무 것도 필요 없이 그냥 직감에만 의지해야 한다. 특히 인간관계라면 더욱 그렇겠지. 사람이 100명이면 100가지의 성격과 사연이 있는 법이니...

지금 생각해보면 20대 때는 어쩌면 그렇게 쉽게 모든 걸 결정내렸는지 모르겠다. 물론 그 가벼웠던 결단의 대가는 아주 컸고 아직까지도 종종 그 때문에 고통 받긴 하지만, 앞 뒤 생각 안하고 난 아직 젊으니까 그렇게 하지 뭐. 하고 결단을 내릴 수 있었던 그 때가 참 그립다. 지금의 나는 일단 모든 걸 회피하고 보는 쪽이다.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건지 확실하지 않지만 26살 쯤 직장일 하고 1년 쯤 뒤 였던 것 같다. 발단이 된 사건이 있었고, 난 아직도 그 사건의 영향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한 것 같다. 이쯤되면 인생의 사건인데... 난 오랜 시간이 지나면 모든 걸 다 극복할 수 있을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전혀.

32살 밖에 안된 주제에 인생의 비극 어쩌고 말하긴 우습지만,

인생의 비극은 악의적 의도도 선의적 의도도 없이 그냥 단순히 행했을 뿐인 어떤 행동이 갑자기 거대한 운명이 되어 일생을 괴롭히는 데 있는 것 같다.

난 그냥 멍청하고 애송이고 순진했을 뿐인데 말이다.

자유공원 내려오는 길에 대낮에 벌거벗고 춤을 춰도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을 수 있을만큼 조용하고 인적이 드문 곳을 발견했다. 작고 낡은 벤치가 있는. 근 1년간 그 누구도 앉아본 적 없는 것이 틀림없는 그 벤치에 오늘 벌러덩 누워있었다. 남자들은 공원이나 벤치에 잘 눕지만, 난 아무래도 여자라 그런지 혼자 가면 그렇게 쉽게 누울 수가 없었다. 두다리 뻗고 누울 공간을 발견해서 기분이 좋았다. 아무래도 밤에는 위험해서 못가겠지만. 누워서 하늘을 바라보며 사진도 찍고 1년 내내 이런 날씨면 우울한 일은 하나도 생기지 않을 지도 모른단 생각을 했다.

주말동안 줄리언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라는 책을 읽었다. 나에게는 조금 어려운 책이었다. 다시 읽어볼 작정이긴 하지만. (다시 읽는다고 온전히 다 이해할 수 있을 거 같진 않다) 밀란 쿤데라의 농담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는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밀란 쿤데라의 농담에서는 쪽지에 쓴 농담 때문에, 줄리언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에서는 치기어린 마음에 친구에게 보낸 편지 때문에 남의 인생을 비극으로 몰고 가게 된다.

사람은 자기가 기억하고 싶은대로만 기억하고, 나이가 들면 들수록 자기 미화의 욕구가 강해져서 결국 자기가 원하는 내 모습만을 기억하게 되는데, 나역시도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이리라.

이번 주 내가 내린 결정이 또 한 5년 뒤에 다시 또 큰 운명이 되서 나를 괴롭히지 않기를 기도한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어쩔 때 나는 내 결정이 틀림없다고 확신을 하기위해 나와 주변의 모든 것들을 크게 비관한다. 모든 걸 회피하면 좋은 일도 전혀 안생기겠지만, 반면에 나쁜 일도 생길 가능성이 희박하니 말이다. 100% 직감에 의한 결정이었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내 인생에 뜻밖의 행운은 존재한 적이 없었다. 그러니 아마 이번 결정도 최고의 결정은 아니었어도, 중간은 할 수 있는 결정이었다고 믿고 싶다. 어차피 존재하지 않을 행운 같은 데 내 남은 인생을 걸고 싶지도 않았으니까.

점점 더 죽지 못해 살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어쩌면 이게 원래의 나였던 것 같기도 하고. 속으로는 정말 너 한심하다. 겁쟁이다. 라고 스스로에게 외치고 있지만, 또 아주 틀에 박힌 변명을 해야겠다. 정말 어쩔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