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람 있는 연휴

일상 2016. 5. 8. 23:06

1. 어린이날
  앞머리를 자를까 말까 엄청 고민하다 결국 그냥 자르기로 맘 먹고 오전에 미용실에 갔다.
  난 내 잘생긴 이마에 대한 자부심이 있지만, 너무 넓고 오랜만에 다시 이마를 까자니 어색하고, 당분간은 이 헤어 스타일을 유지할 것 같다.
  그리고 백화점에 가서 눈썹 왁싱을 했다. 저번 왁싱 때 너무 아파서 다시 왁싱할 용기를 못내고 있다가 양쪽 눈썹 비대칭이 너무 심해서 결국 다시 찾아갔다. 역시 돈이 좋긴 좋다. 기가 막히게 예쁜 눈썹이 되었다.
  집에 와서는 미루고 미루던 겨울옷 정리를 했다. 창고에 있어 못입고 있던 봄옷을 이제야 제대로 입을 수 있게 되었다. 세탁기만 세번을 돌렸다. 원래 드라이크리닝 하던 옷을 용감하게 그냥 다 세탁기에 돌렸는데 그 중 니트 두개는 드라이크리닝 세제를 넣었음에도 불구하고 완전 망했다. 니트가 어찌나 줄었는지, 머리 넣는 구멍에 내 머리는 커녕 내 발목 밖에 안 들어가게 생겼다. 니트가 그렇게 심하게 줄어들 수 있다는 사실에 너무 놀랐다. 겨울동안 잘 입던 니트였는데... 안타까울 뿐. 그 외 오리털 점퍼 등은 선방했다.


2. 5월6일 금요일

 여의도에 가서 영화를 보고 저녁을 먹고 차를 마셨다. 주토피아를 늦게 봤는데, 여우 캐릭터인 닉에게 반해버렸다. 여의도 공원을 좀 걷다가, 나중에 집에 가려고 대방역에서 급행을 기다리는데 어렸을 때 여의도에서 알바하던 시절이 생각나서 조금 울적해졌다. 그 때 25살 밖에 안됐는데, 이 세상에서 내가 제일 못난 여자라고 생각하면서 살았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는 건 거짓말이고 내가 왜 그랬는지 아주 잘 알고 있지만, 그 이유에 대해서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다.


3. 5월7일 토요일

  하남으로 이사간 친구네 집에 놀러갔다. 친구에게 일단 놀러 간다고 말했는데 편도 74km 나 되서 솔직히 가기 전까지 괜히 간다고 한건가. 하고 좀 후회했다. 하지만 막상 가서 멀끔해진 친구네 집을 보니 기분이 좋아졌다.

  이 친구에게 우리집에서 짐덩어리로 전락한 실내자전거를 팔았다. 다행히 우리집 차 트렁크에 들어가서 배달까지 직접 해줬다. 난 큰 짐덩어리 하나 정리하고 돈까지 벌어 좋고, 내 친구는 싸게 사서 좋고.

  혹시나 하여 기름을 가득 채워 가야겠다 다짐하고 원래 가던 동네 주유소를 가보니 셀프 주유소로 바뀌어 있었다. 한번도 해본적이 없어서 차에서 내려서 셀프 주유 기계 앞에서 멀뚱멀뚱 서 있었더니, 결국 주인이 와서 다 해줬다. 이번에 잘 배웠으니, 다음에는 잘할 수 있겠지.

  올때 갈때 모두 밀렸고, 주기보다 하루 일찍 시작한 생리와 함께 온 예상치 못한 생리통 때문에 운전하면서 좀 힘들었다.


4. 오늘

  어버이날이라 동생이 와서 점심 외식을 했다. 인천에는 옛날 송도유원지가 있던 구송도가 있고, 신송도가 있는데 오늘은 구송도로 갔다. 경사가 너무 심해서 운전하며 올라가는데 거의 차가 직각으로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왜 네비가 그따위 길을 인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난 그대로 우리집 차가 뒤짚히는 줄 알았다. 벌벌벌 떨면서 엑셀을 밟았다.

  동생이 한우를 사줘서 우리가족은 우리 아빠 환갑 이후 처음으로 외식하며 한우를 먹었다.

  그 동네에 있는 집들이 다 운치있고 좋았다.


5. 내 성격에 대해.

  일기를 쓸 때 나는 대체적으로 엄청 비관적으로 변한다. 중학교 때 부터 그랬다. 몇 명 없을 이 일기를 읽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찌질하고 부정적인 글만 보게 해서 좀 미안한 생각도 들 때가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맨날 쓰는 이유는 이게 유일하게 내가 제 정신으로 살아가기 위한 방법 이기 때문이다.

  내 성격이 좀 문제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요즘 자주 한다. 난 열심히 살고 있지만, 점점 더 내 자신이 혐오스럽게 느껴질 때가 많다. 난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할 수도 없고, 그렇기 때문에 당연하게도 진심으로 사랑받을 수도 없다는 생각을 자주 하는데, 이 때문에 요즘 들어선 정말 죽지 못해 사는 기분이다.

   이런 기분을 어떻게 해야 할 지 잘 모르겠어서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다급하게 책을 찾아 읽는다. 그나마 책을 읽으면 이런 생각이 안드니까. 그런데 책을 못 읽을 때에는 정말이지 미쳐버릴 것만 같다. 


긴 연휴 이후

일상 2015. 9. 30. 19:05

1. 내 우산
오늘 아침에 제일 좋아하는 우산을 잃어버렸다. 난 수동장우산이 좋다. 자동우산은 고장도 잘나고 우산이 접히는데까지 당기는 게 가끔 힘들게 느껴져서 싫다.
어렸을 때는 수동 우산의 얇은 철심같은 걸쇠를 여린 엄지로 누르는 게 두려워서 집까지 우산을 펼쳐들고 올 때도 있었는데…
오늘 잃어버린 우산은 우리집에 유일하게 남은 수동장우산이었고, (작년에 수동장우산 1개를 극장에서 잃어버렸기에) 키 작은 내가 손잡이를 잡아도 우산의 끝이 땅에 끌리지 않았다. 색도 회색빛도는 베이지색으로 무늬도 고급스러웠다.
지하철 유실물센터에 전화까지 했지만, 접수된 게 없다고 한다.
오늘 7:09 동인천발 용산급행 7-2번칸에서 잃어버린 내 우산이 다른 주인의 비를 충실히 막아주길.
이제 집에는 비가 쏟아져 급히 산 장우산과 보험사에서 준 못생긴 2단 우산만 남았다.

2. 연휴동안
동생이 추석때문에 거의 한분기만에 집에 왔다. 동생은 인천에 올때마다 투덜댄다. 미세먼지가 많아 목이 아프고 콧물이 난댄다. 부모님께서는 동생 직장도 내 직장도 가까운 성남으로 하루라도 빨리​옮겨 다시 4명이 모여 살았으면 하시지만, 우리동네 집값으론 성남으로 갈 수 없으니 하는 수 없이 인천에 사신다.
나역시 지금 월급으론 독립은 언감생심이고.
동생은 인천 싫다고 투덜댔지만 가까이 생긴 아울렛에서 엄청싸게 신발 옷 등을 잔뜩 사갔다. 미세먼지 흡입한 댓가치곤 꽤 많았으니까 위안이 됐겠지.

추석당일에는 이모댁에 갔다. 시흥 이모댁에 간 김에 가까운 생태공원에 갔는데 나중에 꼭 다시 와야겠다 생각했다. 넓고 황량한 공원에서 큰 한가위달을 보았다.

친척들이 날보면 할 말은 왜 결혼 못하냐는 거 밖에 없기 때문에 죄인마냥 만나서도 여기저기로 막 피해다녔다. 결혼 못한 게 죄는 아니건만…

3. 신도림발 2호선
연휴동안 만난 부천에서 강남으로 출근하는 사촌동생이 신도림에서 출발하여 대림방향으로 출발하는 열차를 타면 출근시간에 앉아갈 수 있다고 하여 오늘 그 열차를 타고 출근하였다.
보통 나는 문래방향으로 그냥 2호선을 타지만 앉아갈 수 있다하여 한강 이남 라인을 시도했건만 결과는 대실패였다.
출근시간 신도림역에서 거의 1분간격으로 오는 외선순환을 포기하고 10분간격으로 오는 신도림출발 열차를 택한 자들의 유일한 목표는 좌석이기 때문에 줄 서 있을 때 부터 좌석 경쟁이 치열하다. 자리에 앉고 말겠다는 기가 나한테까지 느껴져 열차가 들어올 땐 출발점의 육상선수 마냥 심장이 뛰었다.
다행히 앉았지만 옆의 여자 둘이 너무 떠들어서 한숨도 잘 수 없었다. 앉아서 자면 덜 피곤할 것 같아서 선택했지만 남은 것은 피곤 뿐.
한강 이남 2호선 경로는 한강 이북 2호선 경로보다 3정거장이 긴데, 이 3정거장이 생각보다 엄청나게 길었다. 정거장 사이도 그렇고.
결국 난 오늘 평소 출근 소요시간인 1시간 45분 보다 훨씬 긴 2시간 만에 사무실에 왔는데 9월의 마지막 날이라 안그래도 바쁜데, 아침부터 피곤하기까지 하여 지금 서있기도 엄청 힘들다.

4. 피하고 싶은 아이
작년 학원에서 알게된 현재 대학생인 남자애가 자꾸 연락을 하고 보자고 하는데 정말 얘가 왜 이럴까 싶고 부담스러워 미칠 것 같다.
나이가 어느 정도 든 후에는 어린 애들만 만나면 뭔가 해줘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리곤 한다.
처음 봤을 때 부터 듣기좋은 말만 좌르르 늘어놓았던 아이가 자꾸 자기네 집과 우리 회사가 가깝다고 하는데 고민 중 이다.
두달째 거의 매일 오는 카톡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한번 만나야할까 하다가도 계속 피하는 이유는 사실 최근 걔가 보험회사에 취업 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혹시나 사회생활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싶어서 날 보자고 하는걸까 싶다가도 영업이 목적이면 어쩌지 싶고.
휴. 얘야 너는 참 나에게 불편한 존재로구나. 미션을 해치우듯 한번 봐야하는 존재라니…


연휴를 끝내며

단문 2015. 2. 22. 22:12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은 연휴였다. 아직 아픈 발이 원망스러울 뿐이다. 난 이번 연휴가 지나면 완쾌될 줄 알았다. 하지만 아직도 완쾌되지 않았다. 발이 이렇게 되고 보니 내가 혼자 하는 산책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게 되었다. 혼자 산책을 나간다면 지금 이 답답한 기분도 말끔하게 씻어버리고, 연휴동안 찐 살도 뺄 수 있을 것 같다.

  내일 회사에 가면 언제 내가 쉬었냐는듯 쉬기 전 일상에 완벽하게 적응하겠지. 가끔 무서운 속도로 회사에 적응하는 나를 보며 놀란다. 회사 바깥에서 어떤 놀라운 일이 있어도 회사에 가면 전혀 벌어지지 않았던 일이 되어버린다. 난 무표정해지고, 회사를 갈 때 다시 태어나고 회사가 끝나면 그냥 죽어버리는 사람이 되는 기분이다.

  연휴 내내 머리는 매일 감았고, 샤워는 두어번 안했다. 이제 지겨운 일상으로 갈 시간이다. 음력으로 맞이한 새해에 좋은 일이 가득하길 나혼자 빌어본다. 다음주 일요일에는 발이 완쾌되어 산책도 가고 교회도 가고 싶다.


외삼촌댁에 가서.

일상 2010. 2. 17. 12:28
13일 토요일
- 우리 엄마랑 제일 친한 외삼촌이 집으로 오라고 해서 부천에 있는 외삼촌네 댁으로 갔다. 원래 이종사촌 언니들하고는 친해서 반갑게 해후를 하고 외삼촌네 집 딸하고도 친해서 공부하고 있는 그 동생이랑도 많은 이야기를 했다.
엄마랑 별로 안친한 다른 외삼촌네 집 딸은 나랑 동갑이라 항상 나와는 비교 대상이었는데, 고등학교 때 나는 완전한 깡시골로 전학을 가고 걔는 의정부에서 공부 한 번 제대로 시킨다며, 서울로 학교를 다녔다. 고등학교 때도 반장을 도맡아 한다느니, 고액과외를 받고 고려대 연세대 혹은 교대를 간다고 난리를 쳐서 안그래도 외로웠던 나에게 그 집은 큰 거부감이었다. 가끔 시골에서 만나도 은근히 날 무시하는 게 느껴지고, 그 집의 숙모님께서는 친척들이 미영이가 날씬하네~ 몸무게 얼마 안나가겠다.(그 땐 지금 키에 몸무게가 4키로 정도 적게 나갔으니;) 말하면 쟤는 키가 작잖아요. 키가. 하고 말하는 식으로 죽어도 날 칭찬하는 꼴은 못보는 분이었다. (나는 158cm , 걔는 167cm) 그래서 그 뒤로는 걔 얼굴을 꼴도 보기 싫었다.;  
난 공부 더 하기 싫어서 대충 점수 맞춰서 대학 가는 동안, 걔는 재수를 한다며, 교대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걔는 재수를 했든데도 결국 나보다 안좋은 대학에 입학했다. 솔직히 난 그걸 보면서 비용 대비 효용이 저질이라고 생각하며 쾌감을 느꼈다.
대학 졸업 이후 원하는 곳으로는 아니었지만 어찌되었든 난 취직을 했고 걔는 학원 강사로 가면서 어떻게 보면 그때부터는 내가 걔보다 앞서가는 것 처럼 보였지만, 걔가 영국으로 유학을 가고 본격적인 토익강사로 일하면서 부터는 다시 그 반대가 되었다. (쳇. 외국물 먹으면 만사오케이인 나쁜 세상) 솔직히 영국으로 걔가 유학 갔다는 말 듣고 엄청 부럽기도 했고.
여하튼 이런 이유들로 걔와 나와는 이제 더이상 친해질 수 없는 먼 사이가 되어버려서 이번 설에 가서도 한마디도 안했다. 엄마는 왜 걔를 그렇게 따돌리냐며 나무랐고, 생각해보니 내가 좀 심했나? 하고 죄책감도 들었지만, 걔와 나와 가까워 지기에는 이제 너무 멀어진 거 같다. 어렸을 때는 곧잘 놀았는데.

14일부터 15일까지는 방정리를 했는데 묵은 먼지 때문에 죽을 뻔 했다. 그 내용은 다음에 써야겠다. 오늘은 집에 좀 일찍 들어가야겠다. 설연휴 동안 체했는데 그 뒤부터 밥 먹은게 계속 얹힌다.

이제서 새삼스럽게 올리기 좀 민망하지만 일본여행을 다녀온 다음날 우리가족은 그래도 명절인데 어디 가야하지 않겠냐 싶어서 예술의 전당에 갔다.

우리 친척들은(특히 친가) 명절이 되어도 가족들끼리 복작보작 모이거나 몇시간을 걸려서라도 귀향 하는 일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다들 성격이 비슷비슷해서 꺼려하는 분위기랄까? 혹시 만나도 딱 점심한끼 같이 하고 말지 그 집에서 자고 먹을 것 해먹고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래서 우리 엄마는 명절증후군도 없고 우리가족 역시 명절 연휴는 연휴 내내 늘어지게 잠자고 쉬고 그러는거다. 그렇다고 친척들이랑 원수지고 사는 것도 아니고 다만 성격의 차이일 뿐이다. 우리 엄마는 처음에 이런 게 다들 너무 차갑게들 지내는 거 아닌가? 라고 생각 했다는데, 솔직히 난 이게 훨씬 합리적이고 좋다고 생각한다. 20년 넘게 이런 집안 문화에 길들여진 나로서는 친척들이 다 둘러앉아서 음식하고 TV 보고 얘기하고 하는게 왠지 끔찍하고 싫다. 얼마나 불편해.;;

우리가 갔던 날 예술의 전당에서는 칸딘스키와 러시아 거장전 이라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생전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칸딘스키라. 전시회 제목만 보면 칸딘스키 그림이 엄청 많을 것 같지만 그냥 러시아 거장전 이라고 하는 게 나을 뻔 했다. 다른 작가들 그림이 훨씬 많았다.

생전 처음 보는 러시아 그림을 보니 러시아에 한번 가고 싶어졌다. 여러 작가들이 각기 다른 그림을 그렸음에도 모든 그림에 뚜렷하게 나타나는 음침한 색감이 인상적이었다. 고흐 그림처럼 태양이 작열하는 느낌이 나는 그림은 거의 없었다. 여름을 그리고 아무리 화려한 색을 썼어도 약간 어두워 보였다. 단순한 난 러시아 춥긴 진짜 추운가보다. 이런 생각을 했다.

저번에 미국애들이 러시아를 도저히 눈뜨고는 못봐줄 정도로 싫어하는 이유는 러시아한테 문화적 열등감이 있기 때문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작가로만 봐도 그렇다. 톨스토이, 푸쉬킨, 도스토예프스키, 투르게네프, 안톤 체홉♡ 을 비롯한 러시아의 쟁쟁한 작가들과 비교해본다면 솔직히 뼈속까지 미국인이라 할 수 있는 굉장한 작가가 누가 있나. (그리고 미국애들은 '백경'을 굉장한 문학작품으로 포장하던데 난 읽으려다 너무 재미 없어서 포기했다) 음악도 그렇고 영화에서도 영화의 이해 같은 입문서를 펼쳐보면 러시아 감독이 많으니까. 거깃다 나 역시 러시아 하면 왠지 닥터 지바고 생각나고 왠지 낭만적일 거 같고 그런데 미국 하면 과장하기 좋아하는 놈들. 깊이 없는 놈들. 심지어 뿌리 없는 놈들. 이런 생각만 든단 말이다. (인디안이나 흑인 각 민족에 대해서는 아니지만 미국이라는 나라 전체를 볼 때)
아 미국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미국 애들이 스타워즈에 죽고 못사는 것은 미국인 전체가 공유할 수 있는 미국만의 설화나 이야기가 없고 그 자리를 스타워즈가 대체해서라는 주장도 어디서 봤다. 미국이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건 그들만의 특이한 정서가 없기 때문아닐까? 또한 난 미국이 그렇게 죽고못사는 스타워즈도 재미가 하나도 없던데. 돈주고 보라고 그래도 시간 아까워서 보기 싫을 정도.

이번 전시회를 보면서 러시아의 정서가 고스란히 그림에 담겨져 있는 것 같아 신기했다.
내가 가장 좋았던 그림은 바로 밑의 그림인데 이미 몇가지 색을 안 썼고 형태도 매우 간결하지만 보고 있는 것 만으로도 마음이 허해지고 쓸쓸하고 그랬다. 그래서 엽서도 샀는데 불행히도 난 작가이름도 그림이름도 벌써 기억이 안난다. 집에서 블로그 하게 되면 작가명하고 이름도 붙여 놓겠다.;;겨울과 관련된 제목이었던 것 같은데. (이 죽일놈의 아이큐)
그 전시장에서 봤던 인상적인 문구 는 (정확하진 않지만) '나쁜 평화가 뜻있는 전쟁보다 항상 낫다.'(러시아 속담) 라는 문구다. 전쟁 그림 위에 붙여져 있던 문구인데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혹시 더 궁금하시다면 http://www.2007kandinsky.com 을 방문해 보세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