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동생

  우여곡절이 좀 있긴 했지만, 3월 둘째 토요일에 동생의 결혼식을 잘 마쳤다. 구두에 불편한 옷 입고 정말 엄청나게 뛰어다녔다. 이제는 동서가 된 신부네 집이 남양주라서 천호동에서 식을 올렸는데, 오전 9시반까지 가서 아침 먹고, 머리하고 화장하는 것만으로 난 완전히 지쳐버렸다. 그런데 그 날 인천-천호동 왕복 운전까지 내가 다 해서, 결혼식 끝나고 완전히 뻗었다.

  중간에 동생에게 들어온 축의금을 입금하라는 특명을 안고 남자친구랑 은행가서 어마어마한 거액을 입금했다. 축의금 받아주는 두 친척오빠가 너무 빨리 데스크를 정리해버리는 바람에, 늦게 온 몇몇 하객들은 식권을 못받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내 남자친구를 처음으로 가족과 친척들에게 공개했는데, 양복입은 남자친구 모습이 너무 멋져서 가슴이 뛰어 한동안 정신이 아득했다. 그런데 너무 바빠서 사진 한장 남기지 못했다. 제일 친한 이종사촌 언니들이 남자친구 잘 생겼다고 칭찬해서 기분 좋았다.

 

2. 엄마

  내일 모레 PET 검사 결과가 나온다. 아주 드물게 PET 에서는 암이 발견 안되는 경우도 있다고 하는데, 암이 아니리라 하고 기대하면 처음 암판정 받을 때처럼 너무 충격을 받을 것 같아서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다. 하지만 만약 결과가 너무 참담하다면 도저히 감당이 안될 것 같다.


3. 회사

  회사에서 자꾸 일을 너무 많이 시키려고 한다. 난 이미 두 사람 만큼의 일을 하고 있다. 누가봐도 두 사람의 일을 하지만, 내 월급은 정말 한숨나는 수준이다. 바로 전 직장을 쫓겨나다시피 그만둬야 했고, 대학 졸업하고 첫발을 들였을 때 부터 이미 망한 경력이지만, 가끔 정말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든다. 회사에서 내 연봉가지고 협박 아닌 협박을 하고 있다. 요즘 수십번 씩 때려치겠다고 말하는 상상을 한다.

  그런데 바로 전 직장에서 정말 최악의 상사 밑에서 일을 해서 그런지 그때만큼 정신적으로 힘들진 않다. 난 아무리 연봉 올려주신다고 해도 회사에서 제시하는 업무 도저히 납득이 안된다고 말해놨는데, 그 말 한 지 벌써 3주가 지났는데 아무 말이 없다. 이것도 솔직히 말하면 자기들끼리 이미 다 결정해놓고 나한테 통보만 할 작정인 것 같다. 이기적인 인간들. 자기들은 놀고 먹으면서.


4. 급체

  저저번주에 남자친구의 친남동생과 재수씨 그리고 남자친구의 부모님을 만났다. 평소 남자친구가 집이나 부모님 얘기를 전혀 안해서 내심 나를 맘에 들어하지 않는건가 했는데, 막상 집에 가서 어머님께 인사를 하니 왜 이제야 나타났냐며 안아주고 어화둥둥 좋아해 주셔서 한시름 놓았다. 재수씨가 결혼하고 처음 맞는 생일이라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가는데 나를 초대한 자리였다. 그런데 그 분이 보령 굴단지 가서 굴먹자고 하셔서 하는 수 없이 보령까지 갔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굴을 전혀 좋아하지 않고, 많이 먹지도 못하는데... 가서 평소 내가 먹는 양의 2배를 먹었다. 결국 급체해서 차안에서 토했다. 1차로 던킨도너츠 먼치킨 담는 종이 컵에 토하고, 토하는 와중에 오빠가 겨우 찾은 허술해보이는 비닐봉지에 2차로 토하고, 나때문에 들른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에서 3차로 모든 음식을 다 토해버렸다.

  남자친구 부모님께 너무 강렬한 첫인상을 남겼지만, 차안에 토하지 않았다는 것 만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5. 사랑

  주말에 오빠가 결혼하자고 했다. 정식으로 청혼을 안해서 서운하냐고 말했지만, 내가 서운할 리가 있을까. 좋아서 울 뻔했다. 결혼 얘기를 꺼낼 때 너무 좋아하는 티를 안내려고 노력했지만, 내가 너무 좋아하는 표정을 지어 자기가 무슨 한류 아이돌이 된 기분이었다고 한다. 결혼하자고 말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고 하니깐, 홧김에 말하고 후회 중은 아닌 것 같다.

  한 때는 결혼 같은 거 안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고, 애인 없어도 외롭다는 느낌 전혀 없었는데.... 사람 일이란 정말 알 수 없나보다. 남자친구를 만날 때 마다, 매 순간 반하고 가슴이 뛴다. 어떻게 나같은 인간이 누군가를 이토록 좋아하고 원할 수 있는건지 신기할 뿐이다. 난 진정한 사랑 이런 거 불가능한 인간인 줄 알았는데. 결혼하고 싶은 생각은 평생 안들 줄 알았는데...

  지금 내 소원은 오직 하나, 매일 매일 오빠를 보는 것이다. 조금만 기다리면 이뤄질 소원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1. 크리스마스 

  요 근래 매년 크리스마스 쯤 만나던 (남자인) 친구가 있었다. 올해는 그 친구한테도 메리크리스마스라는 형식적 메시지 조차 없는 정말 조용한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있다. 그리고 이틀 뒤면 내 생일. 매년 별 거 없었다. 아마 난 죽을 때까지 이럴 것 같다. 나는 누군가와 이 정도면 많이 친해졌고, 상대방도 나를 진짜 친구로 받아들여주겠지? 라고 착각하는 병에 걸린 것 같다. 이런 애정결핍적 행동과 태도가 스스로 짜증이 나서 날이 갈수록 사람을 멀리 하게 된다. 내가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사람들이 나 없는 곳에서 즐거운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있길 바랄 뿐이다. 27일 내 생일에는 가족 제외한 누구한테라도 축하한다는 말을 단 한번이라도 들을 수 있을까? 내 생일은 언제나 회사에서 제일 바쁜 시즌이라 생일답게 보낸 적 거의 없기 때문에 크게 의미부여 안하지만, 2016년은 개인적으로 너무 힘들었던 해 라, 혼자서라도 의미깊게 보내고 싶다.

2.  사무실 이전

  사무실 이전이 드디어 끝났다. 정말 죽는 줄 알았다. 난 사무실 이사도 가정집 포장 이사처럼 그날 아침에 다 싸고 옮겨주고 정리까지 해주는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나랑 막내만 죽어라 짐싸고, 죽어라 전화하고 일했다. 걔랑 전우애 같은 감정을 느꼈다. 어쨌든 끝났고, 나는 가산디지털단지 내 수많은 아파트형공장 중 한 건물 안의 한 사무실에 자리를 잡았다. 인천에서 비정상적으로 멀었던 성수역에서 가산디지털단지역으로 사무실이 이전한 덕분에 출퇴근시간이 약 90분 줄었다. 엄청나게 힘들었지만, 그나마 보람 있다. 만약에 2년 뒤 여기 계약 연장 안하고 또 이사간다고 하면 정말 심각하게 퇴사를 고민할 것 같다. 사무실 이사는 일반 가정집 이사와는 차원이 다르더라. 우리집은 이사만 한 15번 정도 했는데, 15번 이사하는 동안 이번 사무실 이사 처럼 힘든 적은 한번도 없었다. 이사를 토요일에 해서 어쩔 수 없이 토요일에도 출근했는데, 휴일 근로 수당 같은 것도 하나도 없었다. 얼마나 힘들었는지 심하게 몸살이 나서 월요일에 간신히 일하고, 화요일에는 도저히 거동이 불가능할 정도라 결근했다. 할머니 체력인 나는 평소보다 조금이라도 힘든 노동을 하면 무조건 탈이 난다. 나같은 체력의 소유자는 규칙적으로 살 수 밖에 없다.

 

3. 내 자리

  나는 언제나 딸린 짐이 많은 편에 속한다. 이번에 이사하면서 내 짐만 세 박스가 나왔다. (다른 직원들은 보통 한박스) 짐을 줄이려고 회사에서 쓰던 컵과 커피 드리퍼, 원두, 우롱차잎, 커피 필터, 잎차용 필터를 집으로 가져왔다. 아침에 커피를 내려 먹는 것이 내 유일한 낙이라고 할만큼 2008년 부터 쭉 아침에 원두커피를 마셨지만, 요즘 나오는 아메리카노 믹스가 워낙 훌륭해서 이제 그렇게까지 불편하게 직접 내려 마실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컵은 회사 싱크대를 열어보니 아무도 안 쓴 것으로 보이는 컵이 있어서 그냥 그 컵을 사용하기로 했다. 그런데 아무리 짐을 줄여도 내 왼쪽에 있는 서류 들은 정리할 수 없었다. 안쓰는 파일이 하나도 없이 다 수시로 꺼내보는 것들이라.. 어쩔 수 없다.

 


  회사를 워낙 많이 옮겨 다녀서, 내 자리 사진을 웬만하면 남겨 놓는 편이다. 위 사진은 성수동 사무실에 있을 때 내 자리다. 지금 가산동에도 거의 똑같이 정리해놓았다. 우리 사무실에서 내 컴퓨터가 제일 후지고, 모니터도 나만 유일하게  4:3 비율 모니터를 쓴다. 근데 뭐 상관 없다. 일하는 데 아무 문제 없다. 난 어차피 오피스 패키지 외 다른 프로그램은 하나도 안쓰니.

 

4. 고독한 삶

  12월 10일에 너무 우울하여, 혼자 산책을 나섰다. 하루종일 늘어져서 TV 보다, 책보다, 음악듣다, 석양을 보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하는 삶도 그리 나쁘진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가 생일인데 뭐 필요한 거 없냐고 나에게 물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난 요즘 필요한 게 없다. 아니, 내가 갖고 싶은 것 중에서 남이 나에게 줄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는 게 맞는 말이겠지. 내가 간절히 원하는 건 인간의 힘으로 안되는 것들이다. 그래서 너무 슬프고, 자주 좌절한다. 교회에서 기도할 때는 당연히 하나님께서 내 맘을 알고 들어주리라 확신하지만, 요즘들어 부쩍 마음이 약해진다. 의심하면 될 것도 안되는 건데.

 

 

 

 

  이 동네 살면서 셀 수 없이 자유공원에 자주 갔지만, 비가 억수로 오던 어느 여름날 이후 이렇게 사람이 없는 자유공원은 처음 봤다. 찬 겨울 바람을 얼굴에 맞으며, 추운 바다 속으로 야속하게 사라져가는 태양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나는 그 순간 인천에 유일하게 살아남은 느낌이었다.

 

5. 건강

  아직 감기 몸살이 다 낫지도 않았는데 화요일에 받아놓은 약이 떨어져 어제 병원에 가서 2시간을 대기했다. 정말 지루해 죽을 뻔 했다. 너무 심심해서 신문도 봤다가, 핸드폰도 보다가, 너무 심심해서 혈압도 쟀다. 혈압이 최고 87 에 최저 54 가 나왔길래, 네이버에서 저혈압에 대해 찾아봤다. 몇 년 전 신문에서 의사가 고혈압보다 저혈압이 위험하다는 건 완전히 잘못된 의학상식이라고 쓴 글을 읽은 적이 있어서, 난 저혈압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 안쓰고 산다. 네이버에서 보니 저혈압인 사람들의 일반적인 증세는 만성피로 라는데, 정상 혈압인 사람들의 일상은 나보단 훨씬 덜 피곤하고 활력이 있는 모양이다. 나는 평생 저혈압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현재 내 상태가 피곤한지 어쩐지도 모른다. 다만, 남들보다 쉽게 피로하고 지치는 게 운동부족이 가장 큰 원인이겠지만, 체질적인 것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근데 뭐 이런 취약점이 있는데도 운동 안하고 체력 키울 생각 안한 건 100% 내 잘못이다.

 

6. 엄마의 치료

  내가 엄마에게 감기몸살을 옮긴 것 같다. 암환자는 다른 병에 걸리지 않게 엄청 조심해야 하는데, 오늘 우리 엄마는 내가 사무실 이사 후 앓은 증세와 완전히 동일한 증상의 감기에 걸려서 앓아 누우셨다. 죄책감이 든다. 다행히 내일 원래 병원 가는 날이라, 의사 선생님께 관련해서 상담을 받을 예정이다. 문제는 요즘 병원마다 내과에 감기 때문에 사람이 너무나 많아서, 엄마도 2시간 이상 대기를 해야 한다는 점이다. 지금 15분 이상 앉아 있지도 못하는 상태인데, 나도 힘들어 죽을 뻔 했던 장시간 대기를 하실 수 있을지..

  엄마께 항암용으로 투약하는 약이 3개에서 한 개로 줄었다. 하지만 6차 항암 후 C.T 사진 결과가 그리 좋지 않았다. 이 나쁜 소식이 내 감기 몸살의 결정타가 됐다. 월요일에 간신히 일하고 있는데 그렇게 힘들게 6번이나 항암을 받았는데, 복수가 다시 찼다는 소식을 사무실에서 전해 듣고, 가슴이 터질 것 같아 물을 마시는데 손이 덜덜덜덜 떨렸다. 그리고 그 다음날 결근했다.

 

7. 그리운 친구

  자유공원에 갔다가 내려오는 길에 동인천 파스쿠치에 갔다. 그 카페는 지금은 시집간 친구와 같이 가던 곳이었다. 대학교를 중간에 그만둔 친구는 엄청난 독서가였다. 어느 날은 자기가 사랑방손님과 어머니 로 유명한 주요섭 소설가의 단편 소설집을 읽었다면서, 그 책 이야기를 신나게 해줬다. 그런데 주요섭 소설 이야기를 한 다음부터 친구는 자꾸 주요섭 소설 속의 말을 따라했다. "처녀티 좀 나면 나아디갔디."  같은 말로 대화를 할 때마다 난 배꼽을 잡고 웃었다. 혼자 파스쿠치에 앉아서 듣고있기 힘든 멜론 최신가요 100 곡 중 하나로 추정되는 구린 가요를 들으며 (예전에는 선곡이 좋았는데..) 주요섭 소설체 생각이 나서 혼자 베시시 웃다가 눈물이 핑 돌았다. 친구를 그리워하는 감정이 헤어진 옛 애인을 그리워 하는 것 만큼이나 절절할 수 있음을 그 때 느꼈다. 그 친구에게 이런 저런 고민을 이야기 하고 푸념을 하면 항상 최상의 상황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근데 그게 거짓말로 나 위로되라고 하는 말이 아니다. 그 친구는 정말로 내가 언젠가는 그 누구보다 행복해 질 것이라 믿고 있다. 그게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친구의 말이 정말 이뤄지기 힘든 일 임을 알면서도 너무 힘들때는 이상하게 듣고 싶다. 다 잘될거라는 진심어린 친구의 말이.

 

 

 

메리크리스마스


엄마가 걸린 난소암은 4기 환자의 5년 생존율이 11% 밖에 안되고, 재발확률은 70% 가 넘는다고 한다.
건조하게 적혀 있는 난소암 관련 수치를 볼 때마다 가슴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낀다.
수술도 굳세게 이겨내고, 1차 항암도 씩씩하게 견디고 있는 엄마가 항암을 마침내 다 마쳐도, 평생 재발하지 않게 해달라고 주님께 기원하면서 사는 수 밖에 없다.
출퇴근 길에 개신교 목사들이 쉽게 쓴 성경을 조금씩 읽고 있다. 개신교에서 만든 성경이라 그런지 구약이 뒤에 있고 신약인 마태복음이 제일 처음 나온다. 하루 두 세장씩 마태복음을 읽는 중인데, 난 마태복음에 이렇게 의심하지 말라는 말이 많은 줄 처음 알았다.
이제까지 일요일 신앙 이었던 내가 이번 일을 계기로 내 곁에 예수님이 계심에 진심으로 감사드렸다. 기도를 하며 우리 엄마가 완치될 것임을 의심하지 않는다고 고백하고 나면 거짓말같이 마음이 편안해진다.
우리 엄마는 9월 5일에 2차 항암 치료를 앞두고 있다. 1차 보다 훨씬 힘드시겠지만, 이겨내시리라 믿는다.
유방암을 이겨내고 직장생활을 하던 친구에게 유방암이 재발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저번 주 금요일에 조직검사 결과 듣는다고 했는데 어제까지 아무 연락이 없어 나쁜 소식임을 예감했다.
아직도 3주에 한번씩 치료를 받는데, 항암 끝난지 5개월 밖에 안됐는데, 왜 또 재발을 한건지... 병원에서도 흔치 않은 경우라고 했다는데, 또 수술을 해야 하는 친구가 너무 안타깝다.
그리고 겁이 나기도 했다. 치료는 너무 어려운데 암이 생기는 건 친구 사례를 보더라도 정말 순식간이니까..
친구는 복직 후, 우울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동호회에 가입했는데, 그 활동을 평일 밤 12시까지 종종 하곤 했다. 피로감을 쉽게 느끼는 나는 절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무리한 스케줄 이었다.
암에 직접적 원인은 없겠지만, 동호회 때문에 늦게자고 일찍 일어났던 게 재발에 약간의 원인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언제나 내가 상상할 수 없는 에너지로 일도 많이 하고 여행도 하고 동호회도 하던 친구가 이제 정말 생활 습관을 바꿔야 할 것 같다. 힘들겠지만..
좋아하는 남자가 생겼는데, 나에게 전혀 관심이 없는 것 같고, 고백을 해도 차일 것 같다.
사실 잘 모르겠다. 정말 걔를 좋아하는건지.. 내 상황이 힘들어서 누구라도 필요해서 자꾸 생각이 나는건지.
금요일에는 진짜 오랜만에 카페하는 친구네 가기로 했다. 오정세를 좋아하는 친구가 한국 코메기 영화의 명작 '남자사용설명서'를 아직도 안봤다고 하여 맥주와 함께 감상하기로 했다.
얼마만에 가족 혹은 회사 사람이 아닌 사람을 만나는 건지 모르겠다. 정말 기다려진다.


간병

일상 2016. 8. 20. 23:45

나는 어렸을 때부터 자주 아파서 그런지, 내 몸의 변화에 무척 민감하다. 아프기 직전의 느낌도 알고, 열이 날 때도 내 체온이 어느 정도인지 대충 알 수 있다. 그리고 거의 맞는다.

아픈 것이 너무나 싫기 때문에, 나는 몸이 아플 것 같으면 만사 제쳐두고 쉰다. 조금만 몸이 아파도 병원에 가는 것은 물론이고, 사무실에는 상비약이 언제나 완비되어 있다.

어렸을 때부터 병원에 잘 안다니던 사람은 필요이상으로 병에 민감한 나와는 달리 타이레놀 하나 먹는 것도 꺼리고, 병원도 웬만해선 잘 안가는 것 같다.

우리 엄마도 그런 사람이었다. 거의 모든 엄마들이 그렇듯 아무리 병원에 가라고 해도 가지 않고, 아프면 약 먹으라고 해도 그렇게 완고하게 약을 드시지 않곤 했다.

재작년부터 요양보호사로 일하던 엄마는 올해 2월 쯤 돌보는 할머니 하나가 너무 증세가 심각하여, 그 할머니를 돌보고 집에오면 방광과 허리가 아프다고 말씀하시며 끙끙 앓았다. 나는 그렇게 아프면 일을 당장 그만두고, 가까운 기독병원 (우리동네에서 가장 예약이 쉬운 종합병원) 이라도 가라고 그렇게 말했지만, 엄마는 끝끝내 병원에 가지 않으셨다.

그리고 올해 초여름부터 무리해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하루에 두 집만 돌봐도 힘든데, 세 집을 돌아다니며, 어쩔 때는 밤 10시에도 부르면 일을 가시곤 했다.
엄마가 쉬엄쉬엄 일을 하나만 해도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먹고 살 수 있는데, 내가 그렇게 그만하라고 말려도 엄마는 뭐라도 홀린듯 그렇게 돈을 벌려고 기를 쓰고 일을 하셨다.

나중에 알고보니, 엄마가 갑자기 필요 이상으로 무리해서 일을 많이 한 건 다 동생의 전화 때문이었다. 6월달 어느 새벽에 성남에서 경찰이 전화를 했다. 난 통성명도 안하는 경찰은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서, 아직도 그 전화를 건 사람이 진짜 경찰인지 아닌지 확신은 못하겠지만, 여하튼 그 사람은 전화로 당신 아들이 지금 성남 길에서 누워서 자고 있으니 당장 와서 데려가라고 말했다.

엄마는 충격을 심하게 받았다. 엄마의 아빠, 그러니까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신 외할아버지는 평생 술을 전혀 드시지 않는 분이었다고 한다. 엄마도 거의 술을 안드시고, 평생 취한 모습을 거의 본 적이 없는 엄마는 술을 왜 마시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하셨다. 그래서 그런지 엄마는 아빠가 가끔 친구들과 술을 드시면 크게 화를 내시곤 했는데, 제일 아끼는 아들이 그렇게 증오하고 혐오해 마지 않는 술을 많이 마시고 인사불성이 되어 길에서 자고 있다고 하니 그 충격이 얼마나 컸을지.. 그날 밤 엄마는 밤새 속상해 하셨다.

사건 다음날 동생과 엄마가 전화를 하는 중에 엄마가 동생에게 왜 그랬냐 물어보니, 동생이 '요즘들어 내가 결혼하긴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을 했다는 것이다.

아마 동생이 결혼하기 힘들겠다고 한 건, 작년에 동생이 엄청 좋아해서 3개월 만에 얘랑 결혼하겠다고 선언(?)했던 여자에게 차인 상처가 아직까지도 너무 크고, 걔만한 여자를 평생 못찾을 것 같아서 아무래도 결혼 못할 것 같다는 말이었을텐데, 언제나 돈에 열등감을 가진 엄마는 그걸 또 당신이 전혀 다른 뜻으로 해석을 하셨던 거다.

엄마는 동생이 돈이 너무 없어서 결혼 못할 것 같다고 말한 것으로 착각하고 결혼할 때 동생에게 돈 천만원이라도 주려고 그렇게 무리해서 일을 했다고 수술 다음 다음날 고백하셨다.

난소암 진단을 받기 한달 전부터 엄마는 열이 며칠동안 계속 나는데도 새벽6시 반부터 밤8시까지 미친듯이 일을 하셨다. 내가 화를 내며 그만하라고 말려도 소용이 없었다. 아들에게 천만원을 주겠단 엄마의 강한 의지를 꺽은 이는 동네 내과 의사 선생님이었다.

10년 넘게 계속 다녔던 내과의 의사 선생님이 엄마에게 침대에 누워보라고 하신 뒤 배를 눌러보고 증세를 보더니,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증세는 간단한 병이 아닌 것 같다고, 당장 인하대병원에 가라고 하시면서 그 자리에서 외래 예약까지 해주셨다. 엄마는 거기서도 크게 아픈거 아닌데, 꼭 대학병원까지 가야하냐고 안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는데, 내과 선생님이 당장 가셔야 한다고 소견서까지 써주셨다.

그렇게 인하대병원에 가서 각종 검사 끝에 결국 난소암 진단을 받았고, 대수술 후 이제 항암 1차를 마쳤다. 

20대에 6개월 넘게 엄마 병간호를 했던 경험이 있는 나랑 가장 친한 친구는, 환자 외 가족 중 어느 누구도 아프면 안되는게 병간호의 첫째 조건이라고 이 말 명심하고 안아프게 체력 관리 하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요즘 그 말을 실감하고 있다. 아빠와 내가 같이 하고 있지만, 집안일에 요령이 없는 우리 둘은 뭘 하나 해도 엄마처럼 빠르고 옳게 되질 않는다.

제일 힘든 건 삼시세끼를 준비하는 거다. 자취할 때도 미역국 한번 안 끓였던 내가 반찬이나 국을 하며 출퇴근까지 하려니 보통 일이 아니다. 요리책을 세권이나 샀는데, 책에 있는 간단한 재료도 결국엔 마트를 한 번은 가야하고, 마트에서 장보는 걸 싫어하던 내가 간신히 장을 보고 집으로 오면 벌써 어질어질 하다. 그런데 거기서부터 시작이다. 재료도 다듬어야 하고, 요리 한번 하면 설거지는 또 산더미처럼 나온다.

엄마는 이 모든 일을 이제까지 애 키우면서 일하면서 다 혼자 하셨다는건데, 엄마를 비롯한 대한민국의 맞벌이하는 여자들에게 무한한 경외감을 느낀다.

결국 익숙치 않은 생활에 나도 힘이 들었는지, 이번주 내내 미열이 났다. 체온이 참 신기하다. 1도만 높아도 사소한 일상생활을 하는 것도 참 힘이 든다. 열이 나는데 출근해서 일하고 퇴근해서는 집안일을 하려니 힘들었다. 엄마 외 아무도 아프면 안되는 게 간병의 첫번짼데, 벌써 첫번째부터 나는 글러 먹은 것이다. 이제서야 내 약한 체력이 후회스럽고, 운동 좀 해놓을걸.. 하는 생각을 많이 한다.

엄마는 항암을 몇 차까지 할 지, 의사도 장담을 못하겠는 모양이다. 다만 3차 마다 검사를 해서 결정하겠다고 하셨는데, 제발 빠른 시일 내 차도가 있어서 길게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몸이 고되도 엄마를 보면서 내가 힘든 건 엄마의 100분의 1도 안되겠지... 하는 생각을 하며 마음 약해지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오늘은 엄마 수술 부위에 붙어 있던 습식 드레싱을 제거했다. 거의 30cm 에 걸쳐 있는 무자비한 봉합 자국을 보고나니 마음이 다시 무거워졌다.

아주 잠깐 아빠를 원망했다. 아빠 때문에 엄마가 저렇게 되지 않았을까... 하는 못난 생각이 들어서.

하지만, 나도 엄마에게 잘해드린 거 하나 없다. 엄마에게 일 그만하라고 화 내기 전에 차라리 그냥 내가 모은 돈 주면서 걱정하지 말라고 할걸.. 하는 후회가 든다. 어쩌면 내 탓이 더 큰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생각 다 쓸 데 없다.

불행에 이유를 찾다보면, 언제나 불행이 확대 재생산 되는 법이니, 엄마가 왜 몹쓸 병에 걸렸는지는 앞으로 더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큰 일이 닥치고 보니, 다시 느끼는 게 돈으로 해결 가능한 건 이 세상에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너무도 부질 없는 그 돈 때문에 엄마가 평생 마음을 졸였다니... 정말 가슴 아프다.

P.S 사실 상 엄마를 살린 건 동네 내과 의사 선생님이다. 엄마가 바깥 활동 가능할 정도로 회복되면 꼭 찾아가서 감사 인사를 드리려고 한다. 정말 고마운 분.


수술 후

일상 2016. 8. 16. 12:54

엄마가 그렇게 아파하는 걸 처음 봤다. 수술 전에 엄마랑 농담으로 애 낳는게 아플까. 이 수술이 더 아플까. 하는 얘기를 했는데, 우리 엄마는 마취에서 깨서 정신 없는 와중에도 이게 백배는 더 아프다고 말씀하셨다.

수술 전날 입원한 엄마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많이 울었다.

엄마가 입원하기 전까지는 계속 꿈인지 생시인지 알 수 없었다. 좀만 더 지나면 꿈에서 깨어나고, 우리 엄마는 건강하게 일도 하고 평소처럼 깔깔깔 웃으실 것만 같았다.

그런데 엄마가 환자복 입고, 병실에 누워 있는 걸 보니 정말 현실이구나 싶었다. 이 끔찍한 악몽에서 깨어나는 일은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엄마 앞에서 눈물을 흘리면 엄마도 나도 엉엉 울 것 같아서 엄마 앞에서는 눈물을 보일 수 없었다. 간신히 엄마는 이겨낼 수 있다고 말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흘렀다.

나는 엄마가 60대가 되고 꼬부랑 할머니가 되어도 건강하실 줄 알았는데, 어쩌면 그보다 일찍 엄마와 이별할 수 있다는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나 혼자 남겨놓고 가면 도저히 편히 눈을 못감을 것 같다고 하신 것이 떠올라 그 날 태어나서 처음으로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엄마 마음이 편할 수 있다면 내일 당장 아무 남자와도 결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엄마가 수술 침대에 누워서 울고 계시는데, 나는 도저히 수술실로 들어가는 걸 못볼 것 같아서,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엄마가 수술실로 들어가고 나서야, 내가 엄마 손을 잡아줬어야 했다고 후회했다.

우리 엄마는 결국 4기초 진단을 받았다. 다행인 것은, 의사가 치료를 포기할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큰 일이 닥치고 보니 정말 작은 것에도 감사하게 된다. 간혹 전이가 너무 심하게 진행되서 개복하자마자 닫는 경우도 있다는데, 그래도 우리 엄마는 수술을 6시간 가량 하셨으니 치료를 포기할 정도는 아니구나.. 싶어서 안도했다.

한동안 정신없이 좌절하다가, 지금은 엄마가 항암치료가 가능한 정도라는 것에 감사드린다.

일요일에 교회만 가는 정도였는데, 큰 고난이 닥치고보니, 종교가 큰 힘이 된다. 기도를 하면 엄마가 완치될 것만 같고 마음이 편안해진다.

엄마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이제 나도 책임이 좀 무거워졌다. 제일 걱정인 건, 아빠다. 아빠가 잘 하실 수 있을까. 지금까지와 다르게 엄마 마음 편하게 해드릴 수 있을까.
이런 때 일수록 나나 동생이 아빠랑 잘 지내서 엄마 마음을 편하게 해드려야 하는데... 자신이 없다.

어쨌든 2016년 이 덥고 또 더운 여름은 두고두고 잊지 못할 것 같다. 잊고 싶은 여름이 되겠지만, 아마 절대 잊지 못하겠지. 


우리 엄마

일상 2016. 7. 24. 23:21

엄마가 결국 난소암 판정을 받으셨다. 8월 4일이 수술이고, 개복 후 조직검사를 해야 병기나 이후 항암 치료 등등 그 외의 것들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금요일에 엄마와 함께 병원을 가서 의사가 검사 결과를 말하기를 기다리는 동안 심장이 터질 것 같았고, 결과를 들은 뒤로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이미테이션 게임에서 어린 튜링 연기한 애가 연기를 참 잘했다고 느꼈던 건, 친구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 아이의 표정 때문이었다.

사람이 너무 충격적인 소식을 들으면 울음도 나오지 않고 슬프지도 않다. 그 영화 속 아이처럼 그냥 어리둥절 하게 된다.

금요일에 내가 그랬다. 동생은 회사에서 뛰쳐나와서 울면서 인천까지 한걸음에 왔지만, 난 하루종일 침대에 누워 있었다. 눈물도 나오지 않고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다가, 다시 정신을 차렸다. 엄마는 수술을 받으신 뒤 항암을 받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 극복하실 수 있다고 믿기로 했다.

토요일에는 원자력병원에 의사로 있는 이종사촌 언니에게 난소암은 예후도 좋고 완쾌도 가능한 암이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듣고 왔다.

엄마는 죽는 건 아무 상관 없다고 하는데, 치료비가 많이 나올까봐 걱정이라고 눈물을 흘리셨다. 우리 몰래 다시 병원에 전화해서 사는데 문제 없으니 암수술 안한다고 말했다는 걸 듣고 화가 너무 났다.

세상을 좀 오래 살다보니 돈으로 되는 것 중 중요한 건 단 한가지도 없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그런데 대체 엄마는 평생 얼마나 돈에 시달리셨으면 죽어도 상관 없으니 돈을 안쓰겠다는 말도 안되는 생각을 지금 하시는 건지.. 정말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작년에 암에 걸린 친구에게 치료비는 정말 얼마 안된다는 걸 들어서 그 얘기를 하고, 보험회사에 다 전화해서 보험금으로 받는 돈 액수를 구체적으로 엄마에게 말씀드려도 소용이 없다.

엄마가 본인의 건강보다 돈 걱정을 하는 걸 보고 돈이 더 싫어졌다. 내 팔자에 아마 죽을 때까지 풍족하게 살 일은 없을텐데. 부모님의 돈 걱정을 전해 듣는 건 너무 괴롭다.

하지만 엄마에게 화도 안내고 잘 견디고 있다.

엄마가 병원에 계신동안 아빠와 둘이 어떻게 지내야할지... 나와 아빠는 엄마가 없으면 언제나 큰 일이 터졌는데. 엄마가 아픈 중에 신경 쓰이지 않도록 아빠랑 잘 지내야 할텐데. 내가 그냥 죽은 듯 살아야 할텐데 그게 가능할지 모르겠다.

휴. 역시 사람은 이기적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나만 생각하다니.

하나님이 못되 처먹은 나에게 벌을 주신 것 같다. 차라리 나에게 주실 것이지 왜 평생 고생만 한 엄마에게 주신걸까.

난 작년이 너무 최악이었기 때문에 올해는 좀 즐거운 일이 생길 때도 됐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올해가 작년보다 더 최악이다 매년 매년 작년보다 올해가 더 최악이라는 생각만 하면서 산지 벌써 이게 몇 년 째인지 모르겠다.

죽지 못해 살고 있지만, 그래도 엄마에게 잘해드려야만 한다.

공부도 하면 할수록 잘해지고, 운동도 그렇고, 경험이 쌓이면 뭐든 익숙해지고 능숙해지는데 불행은 그렇지 않다. 불행한 일을 계속 겪으면 사람은 점점 약해진다. 견딜 수 있는 힘이 커지는 게 아니라 점점 잃게 된다. 내게 남은 마지막 힘으로 어떻게든 이 난관을 극복하는 것이 지금 엄마에게 해드릴 수 있는 최선이니 힘을 내고, 기도도 열심히 해야겠다.


근황과 푸념 가득

일상 2016. 4. 25. 18:24

1. 바로 오늘 아침에 있었던 일이다. 유방암으로 수술을 하고 복직을 앞두고 있는 친구가 수술한 가슴에 다시 뭔가 만져져서 병원에 가는 중이라는 메세지를 보고, 내 가슴이 미친듯이 뛰기 시작했다. 유방암이 재발하면 (내 입에 이 단어를 올리기 싫지만) 사망 위험이 크다는 말을 어디 선가 봤기 때문이었다. 그 친구가 내 곁을 먼저 떠날 것이란 상상은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친구가 검사결과 말해주기까지 몇 분 동안 만약에 만약에 결과가 최악이라면, 친구는 어떻게 해야하고, 난 어떻게 해야하나 하는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의사에게 암은 아닌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고 해서 한시름 놓았다. 이 글을 쓰다 보니 눈물이 또 핑 돈다.

2. 요즘 다시 읽고 있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 을 보면 (정확친 않지만) 주인공 소피가 어렸을 때부터 책을 많이 읽어서 자신의 인생에 대단한 일이 벌어질 확률이 매우 낮음을 너무 빨리 알았다는 내용이 나온다. 책은 이래서 좋다. 내가 느꼈던 걸 정확히 표현해주니까. 어렸을 때 부터 부모님 보다는 내가 더 경제적으로 발전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한 때는 동화 작가 같은 꿈을 꾼 적도 있었다. 하지만 난 언제나 사회진출에 유리한 쪽으로만 행동하고 그 방면에서 뛰어나길 원했다. 그런데, 지금 내 모습을 보면, 다 부질없었단 생각이 든다. 점점 더 내 인생이 내 기준에서는 실패한 인생에 가까워지는 것을 보면 내 자신이 한심해서 참을 수가 없다. 내가 더 강하게 버텼다면, 지치지 않았더라면, 이런 생각 때문에 점점 더 제 정신으로 살기 힘들어지고 있다.

3. 이 말을 글로 쓰는 순간 더 사무칠 것을 알기 때문에 웬만해선 일기에도 안쓰던 말이지만, 요즘 들어 정말 외롭다. 내 짝을 찾은 사람들이 세상에 엄청나게 많은데, 그 많은 사람들이 짝을 만난 게 하나같이 다 기적에 가까운 일임을 알고 그들은 행복하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누군가에겐 그런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으니까.
4. 주말에 영어학원에 가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인터넷으로 영작한 후, 첨삭 받는 걸 시작했는데 일주일에 두번 써서 내는 게 그렇게 힘들다. 호기롭게 써서 내면 온통 빨간색으로 틀린 부분이 표시되서 되돌아온다. 벌써 6번 정도 썼는데 자꾸 틀린 걸 또 틀린다.

5. 고용노동부에서 보낸 대표이사 출석요구서 사유를 보고, 이 회사 역시 오래 있을 회사는 아니라는 생각에 또 이직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런데 이 나이 되서 이력서 쓰는 게 너무 힘들고, 그거 때문에 올 봄은 꽃 한번 제대로 못봤다. 그렇게 4월이 끝나간다.

6. 어떤 남자의 메세지 혹은 전화를 받을 때마다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우리 엄마는 또 일단 사귀라고 성화다. 이제 내 의견 따위는 전혀 중요하지 않고, 남자가 좋다고 하면 무조건 만나야 되는 나이인가 보다. 동생 부모님 다 협공 중이다. 너 그럴 나이 아니니까 정신 차리라고 한다. 맞는 말이긴 하지만.. 어쨌든 여러가지로 내 맘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다.



1. Santana 의 Supernatural 앨범 

  저번 주에 용인 친구네 집에 놀러가면서 오랜만에 산타나의 슈퍼내추럴 앨범을 들었다. 내가 한창 음악을 듣기 시작할 때 초히트를 쳤던 앨범으로 나 역시 열심히 들었다. 산타나 아저씨 다른 옛날 곡도 종종 듣지만, 젊은 시절 함께 했던 앨범이라 그런지 슈퍼내추럴 만큼 자주 듣게 되진 않는다.

  실제 히트한 노래들은 다 영어 가사로 된 곡들이지만, 난 Corazon Espinado 나 Migra, Primavera 같은 곡이 훨씬 좋다. 이 앨범을 어찌나 많이 들었는지 스패니쉬 전혀 모르는 나도 Migra 는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부를 수 있다.

  슈퍼내추럴은 표지가 참 좋다. 맨 위에 날개달린 개성 뚜렷한 산타나 아저씨 얼굴도 좋고 가운데 있는 왕관쓴 남미풍 인어공주도 좋고, 산타나라고 써진 폰트도 표지와 꼭 어울린다. 

  왜 산타나곡은 다 스패니쉬로 부른 곡이 훨씬 좋은지 생각을 해보니, 언어라는 게 한 나라의 문화의 정수기 때문에 한 나라에서 태어나 그 언어를 평생 쓰며 그 언어로 생각하고 말하다보면 자연히 연주도 곡도 그 언어에 맞춰지기 때문인 것 같다.

  신중현의 미인을 영어로 부른다면 엄청 이상할 것이다. 안토니오 까를로스 조빔의 노래도 영어로 바뀐 건 포루투갈어로 부른 버전보단 영 느낌이 별로다. 대학 때 보아의 Valenti 라는 곡을 꽤 좋아했는데, 일어로 듣다가 한국어로 된 Valenti 를 듣고 이건 뭔가 싶을 정도로 이상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내가 살고 있는 동북아는 각 나라마다 다 그들의 언어가 있고 그래서 더 재밌다. 가깝지만 그만큼 서로 엄청나게 다르니까. 영어와 스페인어를 쓰는 나라들을 보며 쟤들은 외국 친구를 쉽게 사귈 수 있어서 좋겠다는 생각도 가끔 했지만, 내 나라에 딱 맞는 언어를 갖고 있다는 게 더 좋은 것 같다.

  뭐 한글도 대부분은 한문이라고 말한다면 할 말 없지만 말이다. 


2. 인사이드아웃

  (본 지 오래됐지만) 인사이드아웃을 봤다. 난 종종 극장 애니메이션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라푼젤이나 토이스토리, 니모를 찾아서 같은 애니메이션을 보고 싶다 어서 보고 싶다. 하는 생각. 그런 생각을 하던 중에 인사이드아웃이 개봉했고 난 당연히 보러 갔다.

  보면서 울기도 했고, 이 애니메이션이 주는 심오한 메세지와 주인공이 여자애 인데다가 시골에서 도시로 전학간 모습이 내 어린 시절이랑 비슷해서 좋았다. 

  하지만 이런 극장 애니메이션을 볼 때마다 느끼는 건 토이스토리3이 얼마나 대단한 애니메이션인가.. 하는 것이다. 

  라푼젤은 주인공 남녀가 너무 내 맘에 쏙 들어서, 둘이 손잡고 I see the light 부르는 데이트 하는 장면만 50번 이상 봤다. 본 횟수로 따지면 토이스토리3보다 라푼젤이 훨씬 많지만, 솔직히 토이스토리3만큼 위대한 애니메이션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헤어질 때가 되어서 헤어지는 장난감과 주인을 보며 내가 극장에서 어찌나 울었는지.

  인사이드아웃은 기억을 시각화 한 게 정말 기발했고, 슬픔이 캐릭터의 표정과 말투가 너무 슬픔이스러워서 마음에 들었다.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어 주는 건 기쁨보다도 슬픔인 것 같다. 항상 즐거운 사람보단 공감능력 있고, 남의 슬픔에 진심으로 가슴아파 할 수 있는 사람이 훨씬 인간미 있고 정이 가니까..


3. 친구의 병

  제일 친한 친구 중 한명이 암 확진을 받았다. 사실 그래서 광복절에 아산병원에 간 것이었다. 그 친구가 얼마나 열심히 살아왔는지 알기 때문에 나까지 한동안 슬펐다. 하지만 제일 힘든 건 그 친구일 것이고, 사람이 곤경에 빠지면 옆에서 호들갑 떠는 사람보다는 평소랑 똑같이 대해주는 사람이 더 편하고 고맙다는 걸 알기 때문에 난 평소대로 대하고 있다. 

  친구네 집에 가서 금요일에 같이 밥을 먹었다. 친구가 완쾌 됐으면 좋겠다. 남들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일들도 정말 당연하게 그 친구도 다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남들이 당연하다고 말하는 게 사실은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 보통 사람들은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묻는다. 예를 들면 결혼한지 5년 됐다고 말하면 당연하게 사람들은 애는 몇살이냐고 묻는 식이다. 친구가 많이 아픈 걸 옆에서 보면서 난 절대 어떤 질문이든 함부로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난 솔직히 아직도 내 친구의 병이 실감이 안난다. 아마 내 친구는 더 하겠지... 세상이 참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친구는 대학 졸업해서 정말 착실하게 일만 했다. 그런데 왜 그런 큰 병에 걸린걸까. 생각하니 또 눈물이 날 것 같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냥 기도해주고 기원해주면서 옆에 있는 수 밖에는 없는 거 겠지.


4. 몇년 째 마이너스의 직장생활

  첫 회사부터 지금까지 쭉 다니는 회사의 규모가 줄어들고 있다. 규모가 작은 게 문제라기 보단, 체계가 없다는 게 더 큰 문제인 것 같다. 회사가 겉 보기엔 멀쩡한데 일하면 할 수록 이를 어째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대서 일을 해야할지 모르겠다. 적응하려고 노력 중이다. 다 바꾸려고 하면 힘드니 하나하나 차근차근 하자 마음은 먹었지만, 가끔 한숨이 푹푹 나온다. 


5. 프리랜서들의 삶.

  지금 다니는 회사는 프리랜서들이랑 일하는 게 거의 80% 이상이다. 처음 보는 삶이다 보니 프리랜서들의 삶이 좀 흥미롭다. 프리랜서도 결국 사교성 좋고 영업력 있는 사람이 잘 먹고 잘 사는 것 같긴 하지만, 돈을 버는 방법에 이런 방법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내일 월요일이다. 

엄마랑 한 겨울에는 우리 둘다 밤 10시에는 침대에 눕는 것을 목표로 부지런히 잘 준비를 하자고 의기투합했다. 그런데 벌써 12시네. 빨리 자야겠다.

휴. 시간이 참 빠르다. 


아까 공원가서 눈썹 위에 산모기에 물리는 바람에 눈썹 위의 이마가 엄청 크게 부풀어 올랐고 그것 때문에 얼굴 꼴이 지금 참 웃긴데 내일 아침에는 좀 가라앉겠지 설마.

 

아 그런데 새벽 전철안에서는 메이크업 하는 여자들 흔히 보는데, 요즘에는 메이크업 뿐 아니라 앞머리에 구르프 까지 말고 있는 여자들을 종종 보고 있다. 나도 메이크업은 남들 시선 의식 안하고 뚝딱 뚝딱 잘 하는데 구르프는 자신이 없다. 난 하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