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블린 사람들
국내도서
저자 :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 / 한일동역
출판 : 펭귄클래식코리아 2015.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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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9월 어느날 난 더블린에 갔다. 그때가 내 인생 통틀어 가장 사치스럽게 보낸 일주일이었는데, 그 일주일 동안 나는 런던(잉글랜드)-에딘버러(스코틀랜드)-더블린(아일랜드) 이렇게 세 군데를 홀로 여행했다. 더블린은 보통 사람들이 안 가는 곳인데, 이상하게 꼭 하루라도 있고 싶었고, 딱 1박 2일 체류하다 왔다.

  그때 더블린 공항에 내려 시내로 가던 버스 안에서의 기분 정말 잊지 못한다. 난생처음 느껴보는 순수하고 청량한 공기, 파란 하늘, 녹색 잔디, 아담한 건물들, 한가한 고속도로. 첫인상은 런던, 에딘버러보다 100배는 좋았다. 더블린의 가장 번화가에 호텔을 잡았는데, 나름 한 나라의 수도이고 어엿한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더블린은 평화롭고 느긋하고 조용했다. 이 시골같은 도시가 한 때는 영국에서 (독립 전에는 아일랜드도 영국의 일부였으니) 런던 다음으로 큰 도시였다니, 믿기지 않았다. 그런데 나는 더블린에서 뭘 할지 거의 정해놓질 않아서 정처 없이 떠도는 것 외 할 수 있는게 없었다. 런던에 비해 여행책자도 너무 없었고, 1박 밖에 안돼서 본격적으로 뭘 하기엔 시간이 부족하기도 했다. 결국 나는 트리니티 칼리지에 있는 고도서관에 가는 것과 길을 걷다 우연히 발견한 오스카 와일드 생가를 보는 것외 특별히 한 일 없이 런던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더블린 사람들'을 읽으며 4년전 괜히 더블린에 가서 쏘다닌 게 얼마나 잘한 일인가 싶었다. 물론 제임스 조이스가 살던 시대의 더블린과 내가 정처없이 걸어다닌 더블린은 많이 다를 것이다. 하지만 소설 속 골목이나 공원 등 도시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못가본 도시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읽을 때보다 훨씬 더 실감나게 느껴졌다. 그래서 러시아 소설에 줄기차게 나오는 상트 페테르부르그도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아주 오래 전 로알드 달의 단편 '카티나' 읽었을 때처럼 '더블린 사람들'도 전철 안에서 다 읽은 후 주책맞게 눈물을 쏟았다.

  8월에 다 읽었으니 읽은 지 벌써 2개월이 넘었는데도 아직까지도 여운이 남아있다. 이 소설이 왜 그토록 슬펐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도저히 행복해지지 않을 것 같은 소설 속 인물들의 인생이 너무 딱해서였던 것 같다. 대단한 행운 혹은 사건이 일어났을 때 흔히 사람들은 '소설같다.' 고 한다. 그런데 이 단편집에는 전혀 소설같지 않은 삶을 살고 있는 인물들만이 등장한다. 주인공들은 백만장자가 아니라 백만장자 옆에 있는 어떤 젊은이, 잘 나가는 저널리스트가 아니라 그 저널리스트를 친구로 둔 사람, 선거에 출마한 사람이 아니라 선거 운동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들, 혹은 그냥 하숙인, 직장인, 학생 등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의 일상은 발전없는 도시 더블린에서 어떠한 일도 없이 그저 흘러갈 뿐이고 그들은 또 그렇게 지겨운 오늘을 살아간다.  

  '더블린 사람들'의 등장 인물들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아무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 확신하며 낙담해있고 뭔가를 시작도 하기 전에 포기해버리며, 어떠한 일에도 크게 기뻐하지도 슬퍼하지도 화를 내지도 않는다. 설령 그들에게 새로운 삶을 살 기회가 주어진다고 해도 절대 의욕적으로 나설 것 같지도 않다. 그들에겐 그럴만한 용기도 배짱도 의지도 없다. 

  '더블린 사람들'이 흥미진진한 소설이라고 말할 순 없다. 그래서 조금 지루하고 재미없게 느껴질 때도 있다. 제임스 조이스가 그려낸 무기력한 도시와 인간들을 보고 있노라면 피곤하고 우울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누구도 의식하지 않고 행하는 사소한 행동과 그저 그런 일상을 이토록 잘 쓰고 또 한 권의 책으로 엮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더블린이 아니라 그 어느 곳에 사는 사람이라도 결국 대부분은 이 소설 속 주인공들 처럼 살고 있다. 멋지고 폼나게 비참하거나 행복한 삶을 사는 사람은 그렇게 흔치 않으니까.

  제임스 조이스는 그 누구도 소설로 쓰고 싶지 않고 남루하고 하찮고 보잘 것 없지만 어쩔 수 없는 삶도 누군가는 알아줘야 한다는 생각으로 소설을 썼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일까. 도저히 희망이라곤 찾을 수 없는 이 소설을 다 읽은 뒤 오히려 나는 앞으로 남은 인생이 쭉 지금과 같더라도 나름대로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읽으면서 깊이 절망했지만 끝내 나에게 희망을 준 역설적 소설 '더블린 사람들' 을 아마도 난 영원히 사랑하겠지. 아...  더블린에 또 가고 싶어졌다.


  아침마다 나는 앞 응접실 마루에 누워 그녀의 집 문을 지켜보았다. 창틀에서 1인치 정도의 틈새만 남기고 차일을 내렸기 때문에 내가 남의 눈에 띌 리는 없었다. 그녀가 현관 층계로 나올 때면 내 가슴은 마구 뛰었다. 나는 현관으로 달려가서 책을 움켜쥐고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나는 한시도 그녀의 갈색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하다가, 길이 갈라지는 지점에 다다른다 싶으면 얼른 걸음을 재촉해서 그녀 곁을 지나쳤다. 이런 일이 매일 아침 일어났다. 어쩌다가 우연히 몇 마디 말을 나눈 일 말고는 그녀에게 말을 걸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녀의 이름은 나의 온몸의 어리석은 피를 불러 모으는 소환장과도 같았다.


-p.37 ('애러비' 중)


  그녀는 갑자기 겁에 질려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벗어나야 해! 벗어나야만 한다! 프랭크가 그녀를 구해 주리라. 그가 그녀에게 새 삶을, 그리고 아마 사랑 또한 주리라. 그녀는 살고 싶었다. 왜 그녀가 불행해야 한단 말인가? 그녀에게도 행복할 권리가 있다. 프랭크가 그녀를 두 팔로 끌어안고, 꼭 감싸줄 것이다. 그가 그녀를 구해 주리라.


-p.49 ('이블린' 중)


  " 그런데 내가 떠나기 전날 밤 넌즈 아일랜드에 있는 할머니 댁에서 짐을 꾸리고 있는데, 누가 유리창에 돌은 던지는 소리가 나는 거예요. 유리창이 비에 젖었기 때문에 밖을 볼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입고 있던 그대로 아래층으로 달려 내려가 뒤편 정원으로 나가 봤더니, 그 애가 가엾게도 정원 한구석에서 몸을 벌벌 떨면서 서 있는거예요."

(중략)

  "즉시 집으로 돌아가라고 애원했지요. 이러다가는 비를 맞아 죽을 거라는 얘기도 했고요. 그랬더니 그는 살고 싶지 않다고 했어요. 그때 그 애의 두 눈이 지금도 눈에 선해요. 그 애는 나무 한그루가 서 있는 담벼락 끝에 서 있었어요."


-p. 281 ('죽은 사람들' 중)


P.S. 나 진짜 마지막 소설 '죽은 사람들' 에서 마이클 퓨리 죽는 부분 읽고 눈물 대폭발했다. 어쩌면 이 소설집 전체에서 분위기상 제일 이질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격정적(?)인 부분인데 어찌나 슬프든지. 어린 것이 살고 싶지 않다고 하는 부분부터 슬펐는데 결국 그가 죽는 부분에선 수습불가 수준으로 울어버리고 말았다네...




요즘 거의 매주 혼자 영화를 보고 있다.

저번 주에는 싱스트리트를 봤다. 1980년대의 더블린을 배경으로 한 귀여운 음악 영화다. 발그레한 볼의 주인공 아이가 내 취향의 미소년이라 보는 재미도 있고, 영화 내내 80년대 팝과 그와 비슷한 분위기의 OST 곡이 흘러나와 듣는 재미도 있다.

이 영화 보면서도 느끼는건데, 영화에서 교복을 입는 남자 학교가 긍정적으로 묘사된 적은 없는 것 같다. 최근의 이미테이션 게임에서도 남자 고등학교는 정말 끔찍하고 부정적으로 묘사되었다. 이번 영화인 싱스트리트도 마찬가지다. 집안 사정으로 전학간 코너가 괴롭힘 당하는 장면을 보니 좀 안타까웠고, 남자끼리 모이면 허구헌날 하는 일이 서열 정하는 것 밖에 없는가 싶어 남자로 사는 것도 참 피곤하겠단 생각했다. 항상 영화나 소설에서 남자 고등학교는 정글 처럼 묘사가 되는데, 이러한 묘사는 한국 남자들이 군대에 대해 묘사하는 것과 조금 비슷하다는 생각도 잠깐 했다. 예술에서조차 '난 무시무시한 세계에서 살아남았지. 훗' 이런 식의 마초적 자부심 은근히 드러내는 것은 정말 싫다. (이 영화가 그렇다는 건 아니다. )

영화를 보니 더블린에 다시한번 가고 싶었다. 아일랜드 자체가 인구도 적고 유럽 대륙과 동떨어진 나라라 그런지, 더블린은 아일랜드의 수도인데도 시골같이 한가한 느낌이었다. 사람들은 또 어찌나 친절한지... 1박 밖에  못했지만 정말 좋은 인상으로 남아 있는 도시이다.

영화의 완성도로 보자면, 이 영화에 그리 대단한 점수를 줄 순 없을 것 이다. 이 영화의 결말을 보며 내가 정말 좋아하는 미국 영화 중 하나인 '인형의 집으로 오세요.' 의 결말이 떠올랐다.

내가 나이들고 워낙 매사 냉소적이라 그런 것도 있겠지만, 나에게 있어 '젊음'과 '사랑'이 주된 주제일 경우, 나쁘지 않은 영화와 좋은 영화의 차이는 "젊으니까, 우린 사랑하니까, 다 이겨낼 수 있어." 라는 결말은 전자, "이 세상은 녹록치 않아. 그래도 살아야지 어쩌겠니." 라는 담담한 결말은 후자인 것 같다. 순수한 영화적 메시지에 더이상 감명받지 못하는 나는 타락한 것일까 생각 해보았는데, '인형의 집으로 오세요.' 가 스무살 쯤 본 영화였던 걸 감안하면 난 원래 이랬다.

주인공인 코너가 좋아하는 '라피나'를 맡은 배우는 전형적으로 서양에서는 좋아하는데 내 눈에는 전혀 예쁘지 않은 (사각 턱에 여성스러움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외모였다. 그리고 그 얼굴이 16살이라는 설정은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수다.

뭐 그래도 2시간 정도 즐겁게 시청했고, Drive it like you Stole it. 은 상큼하고 좋은 곡이라 영화 본 이후 하루에 한번씩은 듣는다.



전자 음악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데, M83 의 Go 는 배철수의 음악캠프에서 듣고 반했다. 이 곡에 흐르는 기타 연주가 너무 멋져서 자주 듣고 있다. 연주자가 유명한 분이라는데, 과연 연주가 일품이다.



윤상에 대한 팬심으로 러블리즈의 곡을 다 들어봤는데, 그 중 비밀여행 이라는 곡이 좋아서 자주 듣는다. 가사가 귀엽다. (너와 나 단 둘이라면 좋아~) 하도 들어서 이제 가사도 다 외우는데, 이 곡은 대중들에게 별로 사랑받지 못한 곡인 듯 하다. 왜지?? 좋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