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설정

일상 2013. 2. 4. 13:40

금요일에는 제 정신이 아니었나보다. 소심함의 표본이며, 소심의 처음이자 끝인 내가 너무 열받은 나머지 폭발하고 버럭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뭐 남들 입장에서는 버럭 수준도 아니었겠지만 나한테는 내 직장인생 최고의 버럭이었다.

사무실의 최고 말단인 내가 윗사람에게 화를 냈으니 이 얼마나 큰 사건인가. 거기에 나는 여기 온지 1년도 안됐고 아직도 날 탐탁치 않게 보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뻔히 알고 있는데 말이다. 그 사건으로 인해 나는 회의실에서 1시간 동안 면담을 해야 했고, 결국 31살씩이나 되선 애처럼 엉엉 울고 말았다.

내가 윗사람에게 짜증 부린 것에 대해서는 집에 와서 생각해보니 너무 쪽팔리고 잘못한 짓이었다. 내가 잠시 미쳤었나보다.

하지만, 회의실에서 1시간 동안 내 성격의 단점에 대해서 줄줄줄 듣고 있는 건 너무 괴로웠다.

회의실에서는 정신을 차려서 안정을 찾고 죄송하다고 말씀을 드렸지만, 결국 난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다.

애초에 세울 자존심도 많이 남아있지 않았지만 말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직장 내 내 성격에 대해서 다시 재설정을 하고 업무 방향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보기로 했다.

윗사람은 윗사람일 뿐. 직장 동료는 그래봤자 직장 사람일 뿐.

왜 잊고 있었을까.

 


우편물 수발

일상 2010. 11. 4. 17:31

대학을 졸업하던 해에 뭐라도 해야겠다고 2월 달에 시작한 일은 사무보조 계약직 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사무보조 치고는 꽤나 빡센 계약직이었다. (마감이 있어서 뭔가 꼭 끝마쳐야 하는 업무가 있었다는 거 자체가)
사무보조가 내 업무다 보니까 자질구레한 심부름도 많이 가고 우리 팀 우편물을 각 사람들에게 뿌리고 그 사람들이 보내라는 우편물 있으면 우편 수발실에 갖다주고 그랬다.
거기를 관두고 다시 들어간 회사에서도 막내라는 명목하에 또 나는 우편물 수발을 했다. 팀 특성 상 우편물도 오지게도 많았다. 특히 월이 바뀌면서 잡지가 나오는 쯤이면 난 겁내 무거운 여성동아 여성중앙 같은 쓰잘데 없이 무거운 잡지 몇권도 거뜬없이 들어서 팀에다 가져다 놨어야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난 한 3시쯤 되면 또 우편물을 가지고 와서 각 교수님들 우편함에 넣는다. 내가 뭐 어디서부터 잘못한건지, 아니면 내가 아니라 다른 게 잘못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대학 졸업 후 부터 지금까지 하고 있는 일이 똑같다는 것에서 약간의 자괴감을 느낀다. 내가 지금 앉아서 하고 앉아 있는 일은 솔직히 말하면 초등학교만 나와도 할 수 있는 일이다. 물론 내가 배운 게 미천하여 내가 가진 능력만으로 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난 사람이 매일 매일 치열하게 노력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난 그렇게 살았고, 결국 이런 신세가 되었다. 내 사상을 바꿔야 하는 걸까? 이 세상과 자신에 대해 만족감이 높은 사람들은 정말로 하루 하루를 치열하게 산 사람들인걸까?

아. 이제금방도 어떤 교수가 내가 적어도 10번이상 알려준 사항에 대해서 또 전화해서 또 물어보고 난 또 대답을 했다 분명히 나중에 (그 나중이 내일이라고 하더라도 ) 또 똑같은 걸 또 물어볼 거라 생각한다. 그럼 난 아마 또 대답을 해줘야 할 거다. 이번 같은 경우는 맨날 학교 전화번호를 나한테 물어보는 건데 학교 홈페이지 가서 이름만 치면 전화번호가 나오는데 그게 그렇게 귀찮아서 꼭 나한테 전화해서 물어본다. 도대체 그런 사람들은 혼자 밥은 자기 손으로 퍼 먹긴하는걸까? 입만 벌리면 부인이나 자기 밑에 사람이 떠 먹여주는 건 아닐까?

예전에 루쉰이 쓴 책을 읽으면서 존경심이 새삼 샘솟았던 적이 있는데 물론 책으로만 루쉰을 접하기 때문에 진짜로 루쉰이 존경할만한 사람이었는지 아는 데 한계가 있지만, 루쉰 책을 보면서 난 주변에 진심으로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이 한명이라도 있으면 삶이 참 풍요롭고 내가 품을 수 있는 희망이나 꿈의 크기가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컸을 것 이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내가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이 나보다 나이가 많든 적든 상관없다. 딱 한명이라도 있었으면 했다.

하지만 내가 커가면서 느끼는 건 존경은 커녕 실망 뿐이다. 실망. 그게 상대방이든 내 자신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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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즌 호텔 : 가을 秋
아사다 지로
문학동네

솔직히 말해서 이번 권은 완전히 실망스러웠다. 진부하고 또 진부했다. 진부함을 노리고 이렇게 쓴 거라면 대성공.
물론 나는 아사다 지로의 만분의 일 만큼도 글을 못쓰지만 어찌되었든 기대가 컸기 때문에 실망도 컸다.
물론 여타 소설가 나부랭이라고 우리나라 서점가를 완전히 점령해버린 젊은 일본작가들보단 괜찮지만.

나카조삼촌의 사랑(보스의 여자를 사랑한다는 뻔한)도, 경찰과 야쿠자가 화해하는 과정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캐릭터인 기도 고노스케 라는 작자도 마음에 안들었다. 더 괜찮은 캐릭터가 나와줬음 했는데 나나 라는 여자도 매력 없고 기분 나빴다. 그나마 다행스러웠던 것은 와타나베 간사와 가가와 신스케 라는 사람이 등장했던 것.

이렇게 평면적으로 해석할 수 밖에 없는 나의 돌머리를 탓하시든지 말든지. 기도 고노스케 라는 인물은 애정을 갖고 봐달라는 캐릭터인지 환멸하라는 캐릭터인지 이해가 안간다. 아무리 성질머리가 드럽다고 해도 정이 가는 캐릭터가 있는가 하면 요 캐릭터는 정말 아니올시다 이다.

물론 기도 고노스케 라는 인물이 그렇게 폐륜아가 되어버린 건 그로 인해 나카조 삼촌하고 친엄마가 죄책감을 안겨주기 위한 설정이라는 것은 알겠다. 내가 기분 나쁜 건 기도 고노스케가 아니다.
개페미 라고 해도 이 말은 해야겠는데, 남자한테 얻어터지고 막말을 들어가면서도 그 남자를 사랑하는 여자가 있다는 건 개잡스런 허상이다. 설마 모든 남자들이 그런 여자를 원하는 것도 아니고 그런 여자가 있을 거라고 생각도 안하겠지만 아무리 소설이고 문학적 가치가 있다고 해도 기분이 나빠지는 건 어쩔 수 없다. 기요코라는 인물이 이해가 안가고 나나 라는 인물도 이해가 안간다. 개인적으로 세상에서 가장 역겨워하고 혐오스러워 마지 않는 것이 이런 관계다. 이렇게 기분 나쁜 상태에서 왜 계속 읽느냐 집어쳐라 라고 말하면 할 말 없지만 그냥 시작은 했으니 끝은 봐야겠다.

다음은 인상 깊었던 구절.

"어느 날 밤, 학교에 가보니 캠퍼스가 개판이 되어 있더군. 책상과 의자는 바리케이드로 변하고, 영문 모를 구호가 캠퍼스에 메아리치고, 한구석에서는 불길이 치솟고 있었어. 교정은 폐허나 마찬가지였지. 누가 그런 짓을 했을까? 우리는 아냐. 부모에게 학비 받으면서 아침 햇살을 받으며 학교에 오는 놈들이었어. 대단한 말들을 하더군. 일본제국주의 타도, 안보반대, 체제분쇄라고 말이야. 제국주의가 대체 어디 있는데. 그런 게 나와 무슨 관계가 있어. 허리까지 차는 눈길을 헤치고 고향을 떠나 개처럼 일을 해서 이제 겨우 대학이라는 문을 뚫고 들어왔는데. 즐거움이라고는 고작해야 일요일 밤에 신주쿠의 라이브 찻집에서 고함 한번 질러보는 것밖에 없었던 나한테 제국주의니 안보니 하는 게 무슨 상관이 있냔 말이야. 그렇지 않나? 자네는 어떻게 생각해?"

나는 이런 말 할 자격 없는 편하게, 그리고 게으르게 살아온 인물이지만.. 취업전선에 있으면서 사람을 평가한다는 것이 얼마나 우습고 말도 안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미스 리틀 선샤인에서 오빠가 했던 말처럼 '그 사람들이 뭔데 사람 평가를 해?' 이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말 재주가 없어서 제대로 표현은 못하겠지만
충분한 비용이 있어야 하며, 충분한 시간이 있어야 하며, 충분한 심적 여유가 있어서 내 의지에 의해서 내가 하고 싶어서 예정대로 행한 사치와도 같은 '고생' '고뇌'에 대하여 그것의 자신의 심오한 경험인양, 마치 그것으로 인해  다른 사람보다 뛰어난 양 포장하는 것도 짜증이 났고, 그 포장대로 옳타쿠나 하고 인정해주는 사람들이 짜증이 났다.
그에 비해 예상치도 못하게 내가 정말 피하고 싶은 고통을 남들한테 말한마디 못하고 고독하게 아무도 모르게 다 감당해온, 그걸 견디느라고 남들은 멋있다고 말하는 경험 한 번 해 볼 기회도 갖지 못한 사람들이 왜 위에 말한 별것도 아닌 것들보다 못나게 그리고 불행하게 살아야 하느냔 말이다. 그리고 왜 더 게으르고 할 일없이 시간만 보낸 한심한 인간 대접을 받느냐 이거다.
내가 그런 대접을 받아서 억울하다는 건 절대 아니다. 난 그야말로 귀찮아서 이렇게 되어버린 거니까 이 벌을 달게 받겠지만, 별 것도 아닌 것들이 승승장구 하고 정말로 힘들게 견뎌온 사람이 겉에서 보기에는 초라하디 초라한 20대를 보내고 있다는 게 조금 화가 났다. 저 가가와 신스케의 말 처럼 말이다. 그냥 남들이 하는 거 평균정도만 하기에도 여러가지로 힘든 사람들이 있는거다. 물론 그런 사람들은 안그런 사람들을 평생을 두고 비웃고 애송이라 욕할 수 있지만 그래도  억울하다. 보는 것 만으로도 억울한데 당하는 사람은 어떻겠어.

다음은 내가 결정적으로 실망했던 계기.

나카조 오야붕은 주위에서 멍하니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더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말했다.
"아무래도 여흥이 너무 지나쳤던 것 같구먼. 자, 이제 칸막이도 없어졌으니 여기서는 딱딱한 이야길랑 집어치우고 신나게 한번 놀아봅시다. 곁에 있는 사람이 누구면 또 어떻소. 어이! 술,술 가져와. 술이고 안주고 있는 대로 몽땅 가지고 와!"
예잇, 하고 여급들이 먼저 웃음을 되찾고 달려나갔다.
까까머리를 맞댄 채 손을 꼭 잡고 있던 구로다와 마쓰쿠라 계장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무슨 오물이라도 만진 듯 손을 털고는 어이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얼굴을 돌렸다.


이 앞에서 부터 위의 장면이 있는 페이지를 읽으면서 대략.
'설마 아사다 지로. 내가 생각하는 그대로 경찰과 야쿠자가 화해하는 것은 아니겠지.'
'헉. 왠지 불길한 예감이'
'아아아아악. 안돼. 아사다 지로.. ㅠㅠ'
이런 상태였다. 소.. 솔직히 난 더 드라마틱한 화해를 원했다고.

어찌되었든 난 2권을 다 읽었고 현재 3권 즉 겨울 이야기 편을 읽고 있는데 다행스럽게도 반 정도 읽은 지금 내 느낌으로 봐서는 가을보다는 훨씬 훌륭한 것 같다. 이게 시리즈 물이고 어떤 권을 맨 처음으로 읽든지 내용파악에 어려움이 없도록 (해리포터처럼) 인물소개를 또 해주고 또 해주고 하는 건 좀 지겹지만.

아아. 그래도 아사다 지로에게 고마워하고 있다.
출퇴근 시간 지겹지 않게 해주셔서.; 적응안되는 저 표지는 그렇다 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