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은 어쩌면 다른 사람들에게는 일반적인 주말일 수도 있는데, 나에게는 꽤 특별한 주말이었다. 회사 사람 외 사람들과 술집에 간 게 언젠지 기억조차 나지 않아서, 친구를 만나서 술을 마시기로 하고 죽전에 갔다.

죽전역에는 처음 가봤는데, 술집으로 가는 길이 꼭 여행 가는 기분이었다. 워낙 낯설기도 했고, 인천이나 서울보다 좀 한가한 느낌이 좋았다.

내가 남들보다 술에 안취하는 이유는 내가 술이 쎄서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이번 금요일에 보니 나는 술을 남들보다 엄청나게 느리게 마시는 편이고, 포만감을 쉽게 느끼는 편이다. 또 일단 배가 부르면 아무리 술이라고 해도 못 마시겠다. 그러니 남들보다 잘 마시는 것 처럼 보이는 것이었다. 뭐 그렇다고 약한 편은 아닌 것 같지만.. 여하튼 그렇다.

죽전역에서 술을 마시고 나서, 이 블로그에 자주 등장하는 용인 친구네 집으로 가려고 택시를 탔다. 택시 기사님이 친구네 카페가 있는 동네를 몰라서 어떤 초등학교 앞에 내렸는데 아무리 둘러봐도 친구네 집으로 어떻게 가는지 모르겠어서 혼자 밤길을 꽤나 헤맸다. 차라리 친구네 집 주소를 찍고 가달라고 할 걸 그랬다.

예전에는 택시 기사들이 말거는 걸 좋아하지 않았는데, 직접 운전을 한 뒤로는 혼자 운전을 하다보면 얼마나 외롭고 무료할까 싶어서 요즘에는 대꾸 잘해준다. 이렇게 나이 들어가나보다. 기사님이 본인은 미인을 택시에 태우면 원래 길을 헤매신다고 말했는데, 예전 같으면 좀 징그럽단 생각에 무반응이었겠지만 이번에는 웃으면서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마감한 친구네 카페 테이블에서 또 술을 마셨다. 내 친구도 진짜 친한 친구랑 밤에 술 마신 게 언제인지 기억도 안났는데 내가 와줘서 기분 좋다고 했다.

친구와 사온 술을 다 마시고 새벽 3시쯤 집으로 올라가서 너 먼저 씻으라고 난 스타킹와 원피스를 벗고 누웠는데, 렌즈도 안 빼고 화장한 그 상태 그대로 잠들었다. 친구 말로는 내가 그냥 베게에 눕자마자 잠들었는데, 너무 곤히 자서 못 깨웠다고 한다.  

새벽 5시 쯤 목이 말라 일어났다가 안 씻고 잤다는 사실에 너무 놀라 부랴부랴 미친듯 세수를 하고 샤워를 했다. 친구는 나같으면 그냥 잤겠다고 했지만, 난 살면서 안 씻고 잔 게 평생 10번 이내 (어쩌면 5번 이내일지도) 라, 내가 안 씻고 잤다는 사실에 얼마나 놀랐는지... 피곤하긴 했나보다.

토요일 12시쯤 일어나서 친구 카페로 내려갔는데, 저번에 왔던 친구 친척동생인 현역 군인을 또 만났다. 나와 띠동갑인 이 95년생 손병장은 어떻게 된게 내가 친구네 카페 갈 때마다 맞춰서 외박을 나오는지. 집은 전라도인데 군대가 서울이라 외박나와도 갈 데가 없어서 친구네 카페로 온다고 한다. 5월 말에 전역이라는데, 어린 놈(?)이 너무 능글맞아서, 이야기 좀 많이 했다. 내가 걔한테 머리카락이 어쩜 그렇게 곱슬이냐고 했더니, 자기 머리가 얼마나 심한 곱슬인지 머리 안에 담배를 넣어도 그대로 고정되서 안빠진댄다. (이렇게 쓸모 없는 이야기를 했다) 

순대국 먹으러 나가려는 찰나 바로 옆 삼겹살집 가게 사장님을 만나서 하는 수 없이 삼겹살에 냉면을 먹고, 커피를 두잔이나 마신 나는 약한 복통에 시달리며 2시간 10분만에 용인에서 집에 도착해서 또 푹 잤다.

용인에서 인천으로 오는 날도 날씨 좋아서 여행하는 기분이 들었다.
재밌었다. 죽전에서도, 친구네 집에서도. 갑자기 생각이 많아지기도 했지만.


취하고 싶다.

일상 2016. 5. 11. 22:12

아는 사람만 아는 사실이지만, 난 술을 잘 마시는 편이다. 취하지 않겠다 마음 먹고 취한 적이 거의 없을 정도로.
알코올 분해를 잘해서 술을 잘 마시는 게 아니라, 그냥 정신을 놓지 않는 걸 잘한다고 해야하나. 취하려고 맘 먹으면 작은 맥주 캔 하나에도 취하는데..
대학 시절 혼자 살 때 비틀거리면서 술취해서 들어와선 많이 울었다.
비틀거리긴 해도 정신은 온전해서 언제나 목욕재계하고 개운한 상태로 누웠다.
아무리 즐겁게 술을 마시고 들어와도 하수구 냄새가 나던 그 방에 가면 어김없이 눈물을 쏟았다.
방에 혼자라 아무도 듣는 사람 없는데 나는 굳이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었다. 나중에는 이어폰 사이에 눈물이 자꾸 들어가서 이어폰을 뺄 수 밖에 없었지만.
어렸을 때 부모님이 학교 선생님들 찾아다니면서 나 몰래 상담 받고 다닐 정도로 한동안 못난 모습을 보인 적이 있어서, 우리 부모님은 내가 울거나 조금만 취해 집에 들어가도 심하게 눈치를 보고, 걱정을 하신다. 그럴 때마다 중학생 때 내 얼굴을 쳐다도 못보시던 게 생각나서 너무 슬퍼진다. 그냥 그런 일 없었던 것 처럼 날 대해주시는 건 불가능한거겠지.
그래서 부모님과 함께 산 뒤로는 술마시고 취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취한 순간에는 아무 생각이 안들지만, 다음날 일어나면 변한 건 하나도 없고 기분이 나아지기는 커녕 항상 더 우울해진다. 하지만 요즘 같아선 재능 발휘해서 진탕 마시고 펑펑 울고 싶다.
어제는 대학시절 이틀이 멀다하고 봤는데 갑자기 연락이 끊긴 수진이한테 메일을 썼다. 아마 그 메일주소를 사용도 안하고 그 편지도 영영 안 읽을 것 같다.
걔가 나와 연락을 끊은 이유가 뭘까.
걔에게 그럴만한 이유가 있으리라 믿지만, 걔가 없었으면 온전히 대학시절을 보내지 못했을텐데, 고마운 마음을 보답할 기회도 주지 않고 갑자기 사라진 친구가 밉다.
오늘 아침에도 자느라 정거장을 지나쳐서 지각했다. 회사에서는 되는 일 하나 없고, 엉망진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늘 청첩장 준다고 만난 언니 앞에서는 즐겁게 사는 척했다.


단문 2015. 4. 19. 01:27

집에 들어오는 길에 맥주를 사려다 참았다. 하지만 밤이 되니 술 생각이 간절하여 위스키를 마셨다.
물을 끓여 꿀을 탄 다음 위스키를 섞은 다음 얼음까지 넣어 마셨다. 이렇게까지 해서 술을 마시는 나를 보며, 쓸데없이 부지런하다는 생각을 한다.
혼자 살면 매일 마실 수 있다. 자제하지 않겠다 결심한다면 무한정 마실 수도 있을 것 같다.
혈압과 술이 관계가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지만, 며칠전 병원에서 최고혈압이 79 나온 나는 술을 마신 후 평소보다 더 건강해진 기분이 들기도 한다.
엄청난 노력에도 불구하고, 나아지지 않고 있다.
​나는 직업도 있고 부모님도 있고 사지도 멀쩡한데 왜 이렇게 나약한 생각에 사로잡혀 벗어나지 못하는 건지 모르겠다.
감기 후 계속 기침이 나서 밥먹기 약간 불편하다. 어딘가 몸이 안좋으니 더이상 즐거워지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