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승떨며 일기쓰기

일상 2014. 4. 25. 00:29


 

  우울함에서 벗어나려고 온갖 노력을 하고, 회사에서도 사람들이 말걸면 웃으면서 대답하고 농담도 한다. 문득문득 혼자 시무룩해 지긴 하지만 그래도 많이 괜찮아졌다.

  생각해보면 난 항상 그랬다. 대학 때도 애들이랑 술마시고 웃고 떠들고 집에 들어와선 씻고 잠들기 전 누워서는 눈물을 뚝뚝 흘리곤 했다. 다음날 눈이 퉁퉁 부은 주제에 또 웃고 떠들다 그날밤 다시 울다 잠들고. 이런 나를 알아봐 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게 누가 되었든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리라. 언제나 생각하고 기다렸지만, 끝끝내 어느 누구도 알아주지 않았다. (아무한테도 얘기를 안했으니 모르는 게 당연한 거지만)

  4월 지독한 우울감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행한 일이 오히려 부메랑이 되어 날 더 우울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는데. 오늘은 소주를 한 3병 정도 마시고 진탕 취해서 나답지 않은 더럽고 부끄러운 짓을 하면 좀 풀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나랑 술을 마셔줄 사람이 전혀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막 술마시러가자고 사람들에게 말 걸 수 있는 성격도 아니고.

  해결책이 없는 이상 난 영원히 고통받을 수 밖에 없으니 불만조차 입에 올리면 안되겠지만. 오늘은 정말 많이 우울했다.

  평소보다 일찍 집에 도착했지만, 도저히 안되겠어서 결국 다시 자유공원으로 향했다.

  자유공원 가는 길에는 부처님 오신날이 다가와서 연등이 걸려 있었다. 어둠 속게 은은히 빛나는 연등을 보니 기분이 좋아지면서 이때가 1년 중 하루 하루 지나가는 것이 아쉬운, 제일 좋은 절기임을 다시한번 확인했다.  

 

 

 

  술을 어떻게든 조금은 마셔야겠다는 의지로 어두컴컴한 자유공원 벤치에서 혼자 맥주를 마셨다. 결국 울고 싶은 기분이 되었지만 용케 울지 않고 천천히 공원을 내려와서 돌아오는 길에 있는 답동성당 벤치에 가서 간절한 기도를 했다. 

  난 청승 떠는 게 특기인 사람인데, 이렇게 청승을 떨면 사람이 더 우울해질 것 같지만 신기하게도 기분이 조금 괜찮아지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용기를 얻게 된다.

  오늘 실컷 청승 떨었으니, 오늘 일어났던 일은 마음에 담아두지 말아야겠다. 내일 출근인데도 1시 30분 까지 일기 쓰면서 이렇게나 많이 내 감정을 소모했으니 괜찮아 질 거라 믿는다. 성당에서 기도도 진심을 다해 했으니까.  

 


예전 생각

일상 2011. 7. 13. 12:50

졸업 후 제대로 취직 못한 내가 아르바이트를 할 때 서랍에 손을 다친 적이 있었다. 서랍 위에 엄지가 올려져 있는 줄도 모르고 완전 세게 서랍을 닫는 바람에 엄지손가락이 멍들고 피까지 났다. 그때 아르바이트라는 직분에 맞게 복사도 많이 하고 팩스도 많이 받고 하느라 손에는 종이에 베인 상처가 많았다. 거기에 이 피나고 멍든 상처까지 곁들여졌던 것이다.

당시 내가 좋아하던 남자는 죽어도 자기가 먼저 만나자고는 안하는 남자였다. " 나 지금 바깥에 나왔는데 니 퇴근 시간이랑 맞을 것 같다." 까지만 말하고 그 뒤에 정작 내가 듣고 싶은 "만날래?" 이 말은 죽어도 안하는.
그럼 난 참지 못하고. 엇 그럼 내가 거기로 갈께. 라고 말하고 신이 나서 나가곤 했다. 난 시간을 같이 보내기는 좋은 여자였지만 사귀기는 좋은 여자가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을 가끔 한다. 앉아 있으면 끊임없이 떠들어줬으니까 말이다. 결정적으로 너무 없어보였다. 저게 뭐냐. 내가 간다니. (그리고선 또 퇴근 방향과 정 반대 방향인 곳이라 하더라도 친히 그곳까지 가고야 말았음)

여하튼, 그날 그렇게 퇴근 직전에 손을 다친날 지금 바깥에 있다는 문자를 받고, 바로 종각역으로 갔다. 밥을 먹는데 손을 보더니, 완전 걱정스러운 얼굴로 손 왜 그러냐고 물어보는거다. 서랍에 다쳤다고 대수롭지 않게 말하고. 밥 먹고 차마시고 집에 오는 전철에서 혼자 가슴이 설레고 기분이 좋았다. 표정이 정말로 날 걱정하는 표정이었으니까. 

6월달에 학교 일반수학 시험 끝나고 애들이 낸 시험지를 분반별로 무식하게 큰 스템플러로 찍다가 손을 크게 다쳤다. 그 때 서랍에 다친 거 보다 훨씬 크게 다쳤는데도, 아무도 손 왜그러냐고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어봐주지 않았다. 
빨리 새로운 남자를 좋아해서 모든 기억을 다 지우고 싶어버리고 싶은데 결국 또 생각이 나버렸다. 이정도면 병같다. 저게 몇년전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