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불소동

일상 2011. 10. 17. 13:41


10월 11일에서 12일로 넘어가는 새벽 2시반쯤 우리 아파트의 화재 경보가 울렸다. 학교에서 일할 때도 가끔 화재경보가 울리는데 정말 불이 나서 울린 적은 없었다. 아빠와 엄마 나는 잠에서 부스스 일어나서 당연히 잘못 울렸겠지 했는데, 집에서 정말 타는 냄새가 나는 것이 아닌가.
아빠가 현관문을 열어보니 흰 연기가 복도에 가득했다. 화재경보만 울리고 방송 안내가 나오지 않아서 어디에 어떻게 불이 났는지 알 수가 없고 이정도 연기가 나는 거면 얼마나 불이 난 것인지 알 수도 없고 순간 당황이 되고 미칠 것 같았다. 형광등을 켜보니 우리집에도 제법 연기가 차 있었다.
아빠랑 엄마랑 수건에 물을 적셔서 입이랑 코를 막고 천천히 계단을 내려오는데 (우리집은 5층) 내려오면서 보니 우리 바로 밑에 집에서 불이 난 것이었다. 아파트 통로 현관에 가보니 갓난애를 엎고 나온 아줌마부터 우리 옆집 아줌마 등등 다들 놀래서 대피한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다행히 불은 꺼졌고 불이 다 꺼진 후에 소방차가 도착했다. 큰 사건은 아니었지만 밤에 화재경보가 울린 것과 현관을 열었는데 연기가 가득차 있었던 것과 그 당황됨을 잊을 수는 없을 것이다. 연기 빠지기를 기다리느라 새벽 3시반까지 바깥에 나와 있다가 다시 집에 와서 누웠는데 타는 냄새가 아직도 나는 것 같고 가슴이 두근두근 뛰고 잠이 오질 않았다.

그날 누워서 우리 바로 밑에 집에 정말 엄청난 불이 난다면 우리집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았다. 밑에 집이니까 계단으로 내려가서 대피 할 수 도 없고 5층이니까 뛰어 내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베란다 창문을 열면 아마 연기가 다 들어와서 질식해서 죽을 것이고, 엘리베이터를 타도 안되고, 일단 옥상까지 뛰어 올라가는 게 최선인데 우리 아파트는 15층. 아마 올라가는 중에 질식 할 것이다. 옥상으로 올라갔는데 만약 옥상문이 잠겨 있다면? 으아... 복도로 올라가면서 일단 문 다 열어야 할 것이고 숨은 들이쉬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핸드폰을 들고 나가서 119에 신고도 하고. 아 탈출하기 전에 가스도 잠그고 두꺼비집도 내려놔야지. 

아파트에서 1층은 집값도 싸고 사생활도 침해되고 위험하고 햇빛도 안든다지만 그대신 마음껏 뛰어도 되고 불나도 상대적으로 안전하다는 장점이 있구나 생각했다. 복도식 아파트도 싼 대신에 대피 하기가 그래도 좀 좋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한편으로는 몇년 전에 본 씨랜드 화재사건과 대구지하철 사건에 대한 다큐가 떠올랐는데,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때문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봤던 생각이 났다. 난 그 다큐 두개 다 보면서 엄청 울었다. 작은 불에도 난 정말 무서웠다. 죽었으면 죽었지 불에 타서 죽거나 질식해서 죽고 싶진 않다. 질식은 괜찮은데 정말 불에 타서 죽고 싶진 않은데.... 지하철 역 안에서 불이 났다고 생각을 하면 정말 끔찍하다.불난 바로 앞집을 지나갈 땐 정말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고 순간 두려움이 극에 달했었다. 그 짧은 순간에 수건을 거쳐 마신 연기만으로도 머리가 띵했다. 그런데 그 넓은 지하 지하철 역 안에 연기가 가득 차 있는데 거기서 살기 위하여 출구를 찾아서 뛰었을 사람들 생각을 하니 눈물이 핑 돌았다. 얼마나 무섭고 두려웠을까. 정말 대구지하철 사건은 아직도 큰 충격이다. 화면으로 보는 것 만으로도 충격 받고 아직도 가끔 생각이 나니까.

어디에 어떻게 불이 났는지만 알아도 두려움이 많이 줄어들겠다 싶었는데, 400호 에서 불이 났으니 대피하여 주세요. 라든가. 400호에 화재가 발생하였습니다. 큰 불은 아니니 천천히 복도 계단으로 대피하여 주십시오. 이런 문구라도 방송을 했으면 두려움이 훨씬 더 줄어 들었을 것이다. 어디서 어떻게 불 나는지도 모르는데 그냥 막무가내로 출구를 찾아서 뛰어야 한다면....

지금 내가 일하는 사무실 옆에 있는 실험실에서 화재가 발생한다면 난 바로 밑에 있는 출구로 뛰거나 2층이나까 솔직히 그냥 뛰어내려도 크게 다치지 않을 것 같다. 그런데 우리집에서 불이 난다는 건 정말 상상하기도 싫다.
불조심을 나 혼자만 한다고 예방이 되는 것도 아니고. 그냥 하나님께 불 안나게 해달라고 비는 수 밖에 없는거다.

그 일이 있고 나니까 그 다음날 하루동안은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고, 다신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말자 하게 되고 하나님께 감사하게 되고 그랬는데 일주일 정도 지나니까 다시 원래의 나로 돌아왔다. 경각심을 갖고 살아야겠다.

그런데 나중에 불 다 꺼지고 계단으로 올라가면서 보니까 그 불난 집... 현관에 가족 중 누군가가 불을 질른 거였다. 신문지 같은 종이 뭉치가 탄 흔적이 있고 신발장 신발이 다 타버렸던데. 신고도 그 사람들은 하지도 않고 마침 새벽 2시반에 지나가던 다른 통로 아저씨가 신고하고, 관리사무소 가서 화재경보 울리라고 하셨댄다. 화재경보가 연기 만으로 작동하는게 아니라 누가 버튼을 눌러야만 한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었다.

그 일이 있고 이틀 후 우리 엄마가 그 주인 집 아줌마한테 너무 놀랬다고 말하니 우리보고 화재보험을 들어놓으라고 하셨댄다. 미안하다고 하지는 못할망정 난 그 소리를 듣고 너무 화가 났지만 참았다. 내가 가서 화 냈다가 에잇 윗집 여자 짜증나 하고 또 불낼까봐.

매일 아침.

일상 2009. 12. 21. 23:18

아침 6시 50분에 출근길에 나서면 완전 밤이다.
달 떠 있고 가로등 떠 있는 완전 밤.
따뜻하기만 해서 보기 좋은 옷차림과는 거리가 먼 두꺼운 겨울옷을 입고 목도리를 두르고, 장갑을 끼고 음악을 들으면서 아파트 현관을 나서면서 항상 생각한다.
내일은, 혹은 다음달에는, 아니면 이제 별로 멀지 않은 2010년에는 이런 지긋지긋한 생활을 청산할 수 있을까?
매번 이제 진짜 그만이고, 끝이라고 주변 사람들한테 말하지만 의도치 않게 항상 그 말이 거짓말이 되었다.
이제 아무리 친한 사람이라고 해도 내가 진짜 그만이라고 말해봤자 믿어주지 않겠지만, 내가 그렇게 마음을 먹은 그 순간에는 항상 진심이었다.
이제 믿어주지 않을 것 같아서 나 이제 진짜 진짜 진짜라고 말을 할 용기도 안생기고 염치도 안생기지만, 아마 난 내일 아침 6시 50분에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가면서 똑같은 생각을 할 것이다.
그럭저럭 나이에 맞는 도리라고 하는 것들을 나름대로는 착실하게 이행하면서 살아왔다고 생각하는데, 난 사실 실패할 기회가 없었다. 한번이라도 제대로 실패할 기회가 생겨서 지금보다 더 망하든, 흥하든, 단 한번이라도 지금과 다른 삶을 살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우울하다. 제길.


군대간 동생한테 면회 갔다온 얘기를 갑자기 하고 싶었다. 우리엄마는 필요이상으로 음식을 엄청나게 많이 싸 가는데 매번 갈 때마다 새로운 메뉴 개발을 위해 고심하고 있다. 저번에는 심지어 새우랑 꽃게를 저기 연안부두 가서 엄청 많이 사서 삶아갔다. 내동생은 굿 초이스라고 미친듯이 새우 까먹고. (맛있긴 하더라)
언제인지 기억은 안나는데 원래 맨날 토요일에 가다가 일요일에 한번 면회간 적 있었다. 우리 엄마는 동생이 다니는 교회는 어떻게 생겼는지 가봐야겠다고 가자고 그래서 결국 우리 가족 4명이 군대에 있는 교회에 갔다. 결국 우리만 사복입고 맨 뒤에 앉았다. 사람들이 신기한지 힐끔힐끔 쳐다보고 어휴. 진짜. 찬송가도 거기서 들으니 완전 군가야.

이제 거기 젊은 목사님이 설교를 시작했는데 군인 애들이 아예 대놓고 엎드려서 자는거다. 내동생 말로는 교회오는 이유가 일요일에 내무반에 멀뚱멀뚱 앉아있기 싫어서 그냥 자러 오는 거랜다. 뭐 그 목적에 충실하게 거기 있는 거의 3분의 2 이상이 다 엎드려서 자는데 설교하던 목사님 옆에 있던 드럼에서 갑자기 챙! 하는 소리가 나는거다. 그래서 아니 이건 뭔소리인가. 하고 쳐다봤더니 그 목사 왈 이제부터 예배시간에 2분의 1이상이 자면 드럼을 치기로 했다고. 크크크크. 별 거 아니지만 예배보다 갑자기 드럼 치는 그 상황과 아이디어가 너무 웃겨서 혼자 킥킥 댔다.

내동생 밑으로는 이제 3명이나 들어오고 대구에서 온 애는 오자마자 일주일만에 12키로가 빠져서 얼핏보면 주진모 같이 생긴 미남이 되었다고 그러고 울산에서 온 애는 경상도에서 왔는데도 사투리 하나도 안 쓰는 애고 서울에서 온 애는 뭔가 맘에 안든댄다. 서울에서 온 애가 89년 생이랜다. 맙소사. 군인아저씨가 89년생이래. 대단하다.
국군의 날 행사 때문에 두달 넘게 연습하고 대통령 앞에서 깃발들고 미친듯이 뛰어다녔는데 휴가도 안준다고 짜증부리고 있는데 아무래도 2008년 내에는 휴가 못나올 듯 싶다. 아.. 추운데 또 우리 엄마는 면회가자고 하겠지. 내동생네 부대 짱추워. 미안하다 동생아. 난 이기적인 누나야. 누나는 추워서 가기 싫어.

대학 때 그나마 최고 친했던 친구를 안 만난지 1년이 되간다. 보고싶긴 한데... 솔직히 말하면 이 친구 뿐 아니라 대학 때 알던 모든 사람을 안만난지 거의 6개월 이상이다. 이상하게 시간이 안나는데 주말에 보면 하는 건 잠 퍼자고 인터넷 하는 것 뿐이니..
갑자기 허하고 그래서 걔 이메일로 꽤 긴 편지를 보냈다. 답장 확인하는 걸 까먹고 있다가 일주일 지나서 확인했는데 너무 짧은 답장이 와 있었다. 별 거 아닌데 갑자기 너무 외로웠다.

주말마다 시간을 내서 매주 누구 만날지 시간표 만들어서 만나고 다녀야 모든 인간관계가 유지되는 걸까? 사교적인 사람이 되는 것은 참으로 힘들구나.

오늘 아침에 아파트 통로를 나왔는데 바닥에 눈이 쌓이고 있었다. 눈은 오는데 우산가지러 올라갈 시간이 없어서 그냥 눈 맞으며 걸어갔다. 새벽에 혼자 출근하면서 맞는 첫눈이라. 꽤 괜찮은데.. 라고 생각하면서도 또 다시 외로워졌다. 이젠 새벽이 괴로운 계절 시작이구나.

오늘은 회사에서 하나에서 열까지 다 꼬였다. 짜증이 폭발하기 일보직전인데 그나마의 위로는 내 눈이 겉 보기에도 조금 부어 있어서 이번 토요일 행사에는 빠지게 되었다는 거. 나 이번 토요일에 안과나 가려고 했는데 하필 이런 때 대학 선배가 보잰다. 그 선배는 참~~ 특이한게 꼭 내가 동생면회에 가 있거나 다른 친구 만날 약속 잡아놓고 이러면 뭐하냐고 물어보더라. 크크큭 안만난지 거의 8개월이 넘었네. 아 근데 별로 안 땡긴다. 이제 사람 만나는 것도 어색해져버렸는지 귀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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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옆의 사진을 공개하는 건 내가 내 무덤을 파는 것이나 다름없는 줄 알면서도, 워크샵때 일어난 일련의 사건을 설명하기 위해선 이 사진만큼 적절한 것이 없기에 공개한다.
옆에보이는 저 쭈그려 자고 있는 인물은 여러분들도 예상하셨다시피 본인이다. 그렇다면 나는 왜 이런 사진이 찍혔는가. 그렇다. 난 워크샵을 갔던 금요일 밤 술에 완전히 취해서 화장실 앞에서 잤다. (왼쪽에 조금 열린 문이 화장실 문 임)
  우리회사는 그닥 큰 회사가 아니라서 숙소를 좋은 곳을 잡지 못했는데 뭐 자는 곳이야 그렇다치고 금요일날 4시간 넘게 행사가 있었던 '실내'는 말이 실내지, 사람들이 물을 바닥에 흘리니 그 자리에서 그대로 얼어버리는 그야말로 바깥 보다 못한 실내였다. 진짜로 발이 얼어서 죽는 줄 알았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부장님의 동물적 센스로 인해 우리팀은 워크샵 행사에 참가 안하고 주관하는 쪽으로 빠지게 되었는데 그 때문에 뮤지컬이나 난타 마임 탈춤 등 다른 사람들이 하는 초큼 민망한 행사에 다 열외로 빠질 수 있었다.

  금요일 행사가 다 끝나고  술을 마셨는데, 솔직히 말하면 난 어느자리에서고 술 못마셔서 고생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감사하게도 난 우리 집안의 나름 탁월한 알콜분해효소를 타고났기 때문이다. (알콜분해효소와 함께 술을 사랑하는 마음도 타고났다. 헐)
  1차로 식당에서 팀끼리 술을 적당히 마시고 방으로 왔는데, 우리 방은 사원급만 5명이서 쓰게 되어 있어서 그나마 맘이 편했고, 또 다들 나랑 친한 선배들이랑 방을 같이 쓰게 되서 난 매우 만족하면서, '우리 다른 방에서 안부르면 그냥 나가지 말고 씻고 윤도현의 러브레터나 보다가 잠들어요. 호호호!!!' 하고 짝짜쿵 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왠걸. 우리 팀 최고 주당인 대리님께서 바로 전화를 하셔선 당장 내려오라고 하시는 거다.(대리급들 방은 밑에 층 이었음) 거깃다 그 대리님은 대학 선배이기 까지. 이미 1차에서 나를 '자기~~ ' 라고 부르시며 옆에 끼고 연거푸 쏘맥을 들이키라고 강요하셨던 대리님이셨다. 아아. 맞다. 예전에 '난 니가 탐나' 비법을 알려주신 대리님이라고 말하면 편하겠구나. 워낙 대리님 성격이 호탕하고 웃기기까지 하셔서 내가 좀 따르는 분이라.. 안내려가기도 뭐했다.
  이미 1차에서 그 대리님이 쏘맥을 직접 제조해서 주시며 원샷 원샷을 외치셨고, 내가 좀 끊어 마시니까 "식도를 열고! 한번에 원샷!" 라고 뭐라 하신 상태였고, 내려가서도 날 옆에다 앉히고 컵 없으니까 아쉬운대로 커피잔에라도 마시라면서 손잡이 달린 커피잔에 계속 쏘맥을 주시는거다.

  난 순수하게 술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이고, 술자리는 별로 즐기질 않아서 대학 내내 쏘맥을 마셔본 적은 한번도 없었다. 내 주변도 쏘맥 마시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고... 솔직히 말하면 쏘맥은 소주와 맥주에 대한 모욕이라고 생각한다. 진짜로.
  또한 이제까지 10명이상 술을 마시는 자리에서 남자가 없었던 적도 한번도 없었다. 친구들이랑 마실때 많아야 3명이지 여자 10명이서 미친듯 술을 마시는 시츄에이션은 평소 때 만들기 힘든 시츄에이션 아닌가.
 도저히 못 마시겠다고 도망도 가봤지만 결국엔 발을 잡고 질질 끌려와서 술을 마셨는데 심지어 내가 옷장안에 숨으려고 까지 했댄다.(본인은 기억 안남) 그때 난 이미 적어도 소주 2병 맥주 3병 이상을 섞어마신 상태였다.
이 다음부터 필름이 끊긴 것 같은데, 지금 상태에서 기억나는 상황을 말하자면.

  더 이상 못 마시겠다고 아예 현관문을 열고 뛰쳐나옴 - 술을 깨야겠다고 생각하고 야외 주차장을 두바퀴 걸음 - 그래도 술이 안 깨서 로비에 있는 쇼파에 앉으려다 강하게 엉덩방아 - 전화함 - 전화 내용 기억 안남 - 전화하고 엘리베이터 타고 내 방으로 돌아감 - 어쩌다 화장실 앞에서 자게 되었는지 기억 안남 - 화장실에다 두차례 토함 - 지쳐 잠듬.

  일단 취중에도 내 방을 제대로 찾아간건 칭찬해줄만 하다. 취한 기분에 다시 그 술판이 벌어지는 방으로 들어갔음 진짜 큰일날 뻔 했지. 그 술판은 새벽 4시경 끝났다는데 4시에 돌아와보니 내가 위에 보이는 사진 처럼 화장실 앞에서 자고 있었다는 거다. 더욱 충격적인 건 내가 토하느라고 입과 머리는 화장실 안으로 들어가 있고 나머지 목부터는 방바닥에 있었다는 건데, 다행이다. 그 사진은 안 찍혔다. ;; 근데 이 사진을 찍은 분들 진짜 야속한 게 날 아침까지 저 상태로 내버려 두었다는 것이다. 자기들은 방안에서 이불 덮고 자고 나는 화장실 앞에서 자다가 너무 추워서 아침에 깼다. 흑. 내가 도대체 왜 나를 그대로 두신 거냐고 뭐라고 했더니 돌아오는 대답은 '웃겨서' 였다. 아니 웃겨서라니!!!!!!!

  토요일에 일어나서도 나는 속이 미식거려서 밥 한 술 못먹었는데, 토요일에 저 진짜 미칠 것 같다고 말했더니만 어제 뛰쳐나갈 때 '겉보기에는' 지극히 정상이었댄다. 절대 정상이 아니었는데. 또 하나의 실수는 아무도 안 보는 곳에서 토를 했다는 건데 이것 때문에 같이 마신 사람들이 다 내가 '술 엄청 마시고도 멀쩡한 애' 로 낙인이 찍혀버렸다.

  뭐 술병이 나고, 쏘맥이 세상에서 제일 싫어진 것과 나중에 또 술을 엄청 마실 가능성이 높아진 것 이걸 다 제쳐두고라도 사실 진짜 큰일은 따로 있다. 위에서 강조한 것으로 예상하셨겠지만, 저 전화가 문제다. 왜 전화를 그 오빠한테 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아니 도대체 왜 예전에 사귀던 사람한테도 안하고, 죽도록 좋아했던 사람한테도 안하던 짓을 도대체 왜 한 건지!!!! 여기서 말한 그 오빠는 힘든 일 있음 매일 상담해준다는 그 오빠인데. 토요일 아침에 밥을 못 먹겠어서 충주호 주변을 혼자 산책하다가 불현듯 내가 어제 전화한 게 꿈이었나 아니었나 긴가 민가 해서 전화목록을 봤더니 떡하니 그 분 이름 세글자와 함께 새벽 1시 58분 이 찍혀 있는 거 아닌가. 거기에 전화도 짧게 한 것도 아니고 14분 09초 씩이나.

  토요일에 집으로 돌아오면서 이걸 어떻게 하나 하다가 '그래 그냥 아예 기억 안나는 척 하는거야!' 라고 마음을 굳힌지 5분도 안되서 결국 궁금한 마음에 도대체 내가 무슨 말을 한거냐고 전화로 물어봤는데, 한동안은 얘기를 안해주다가 저번주 금요일에서야 그 답을 들었다. 일단 그 당시 나는 4개의 문장을 무한 반복했고. (무려 14분 동안이나) 막판에는 고맙고 미안하다는 말만 계속 하다가 끊었다는데, 그 말을 그 분에게 들으면서 얼굴이 어찌나 화끈 거리든지.
  거기에 한 편으로는 그 분이 무슨 말을 듣고 싶어하는 지 뻔히 아는데 취중에서까지 미안하단말만 되풀이 한 것 때문에 미안해져버렸다. (헉. 미안한게 또 미안해져버렸네) 하긴, 미안하단 말 듣는게 얼마나 짜증나는 건지 아는 나는 맨정신에선 미안하단 말을 한 번도 안했지.
 
  웃기는 건 이정도 했음 좀 쪽팔리고 어색해질만도 한데 결국 또 그 분과는 예전 그 상태로 그대로 돌아왔다는 거다. 역시 우리 둘이 그 분이 원하는 대로 더이상 발전하지 못하는 장애물은 너무 편해서인걸까? 잘은 모르겠지만 그 분과 이제 약 7주간은 연락을 못하게 되었다. 7주동안 있어보면 결판이 날 지도 모르겠다. 허전할 수도 있고, 오히려 아무렇지도 않을 수도 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