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 집들이

일상 2015. 4. 13. 01:12

  나와 제일 친한 친구가 용인으로 이사를 갔다. 부천에 살던 친구가 이사가고 나서 좀 허전했다. 1시간 이내로 볼 수 있는 친구가 아니라는 생각에. 친한 친구의 첫 독립 생활이니만큼 가서 응원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학원이 끝나고 집들이 꽃을 사서 용인으로 가기로 했다.

 

 

  꽃을 샀더니 기분이 좋아졌다. 학원 건물 밑에 있는 꽃집 볼때마다 들어가보고 싶었는데, 사장님께 알아서 예쁘게 만들어 달라고 했더니, 정말 마음에 쏙 들게 예쁘게 만들어주셨다.

  용인에서 대중교통으로 다시 인천으로 올 일이 심란해서 차를 끌고 광화문 학원에 갔다가, 친구네 집인 용인으로 가기로 했다. 내 운전 역사 상, 이번 주 토요일 처럼 고생한 적은 없었다.

  광화문에서 핸드폰 네비게이션 버튼이 잘못눌려서 화면이 거꾸로 나오는데, 어떻게 조작하는 지도 모르겠고 거꾸로 나오는 화면 때문에 두번 길을 들어선 대가가 너무 컸다. 보신각을 지나, 시위 때문에 일부 도로가 폐쇄된 도로를 간신히 빠져나와서 명동과 충무로를 지나면서 정말 식은 땀을 비오듯 흘렸다. 엄청난 오토바이들과 도저히 차선 변경이 불가능해 보이는 꽉찬 도로...서울 도심 운전의 어려움을 몸소 체험하고, 간신히 간신히 경부고속도로를 탔지만, 너무 밀렸다. 버스전용차로 있는 고속도로는 처음 이었는데, 버스전용차로는 정말 하나도 안 밀려서 신기했다. 버스전용차로는 누가 만들었는지 참 생각 잘했다.  

  용인에 들어와서도 친구네 가게 찾기가 어려워 한 30분을 용인 아파트 구석구석을 헤맸고, 거의 울면서 친구에게 전화했다. 결국 친구가 내 차가 있는 곳까지 와서 간신히 가게를 찾았다. 네비게이션에서는 자꾸 경로를 벗어났다고 하고 4시 방향 우회전 이라는데 아무리 봐도 4시 방향 우회전은 없고, 헤메며 너무 당황을 하니 차선도 막 바꾸고 신호위반도 몇 번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찔하다.

  이번 토요일 경험으로 확실히 깨달았다. 토요일에는 차를 가지고 서울에 가면 안된다는 것을. 친구네 집이 있는 용인도 운전을 하니 인천까지 50분 밖에 안걸려서, 차라리 일요일에 인천에서 바로 가는 것이 나을 것 같다. 서울에서 용인 가는 건 이제 다신 안하고 싶다. 

  친구는 나와 다르게 돈을 지독하게 아껴쓰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런지 집에 살림이 너무 없었다. 너무 없어서 불편할 정도였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친구가 돈 많이 벌어서 변변한 살림도 사서 놓고 그랬으면 좋겠다. 그런데 친구는 냉장고는 각종 반찬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나 혼자 살때는 냉장고에 물한병 우유 맥주 식스팩 이외엔 아무것도 없었는데.

  친구와 맥주 마시면서 새벽 4시까지 이야기를 했다. 맥주를 너무 조금 사서 아쉬웠다. 술이 정말 술술 들어갔는데.. 친구가 만들어준 소세지에 당근, 양파 넣고 볶아 준 요리도 맛있었다. 20대 때 거의 같은 시기에 똑같은 일을 당했으면서 서로 속내를 털어놓지 않아 각자 힘들어 했던 걸 생각하며 안타까웠다.

  걔와 나의 20대의 큰 어려움은 단순히 더럽게 운이 없었던 게 아니라, 알고보면 확실한 원인이 있었다는 것이 묘하게 위로가 됐다. 어떤 문제에 있어서 남들보다 늦게 극복한다고 해서 못났다고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말이다. 나는 그 사건을 극복하는데 한 10년 걸린 것 같고, 30살 쯤 되서야 드디어 그 일에서 완전히 초월했다고 자신있게 말할 정도가 되었으니, 온전히 건강한 정신으로 산지는 3년도 안됐다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어쨌든 극복을 했고, 마음가짐이 완전히 달라졌으니까 말이다.

  친구가 오빠랑 함께 하는 카페에서 조각케익도 많이 먹고 맛있는 음료수도 엄청 많이 마시고 왔다. 다 친구가 만든 케익이고 쿠키에 커피였는데 내가 모르던 친구의 진면모를 봤다. 그냥 커피 체인에서 먹던 케익과 차원이 다르게 맛이 있어서 깜짝 놀랐다.  

  살아야 하니 살고 있지만, 친구가 많이 우울한 것 같다. 나와 친구를 이렇게 우울하게 만드는 건 미래에 대한 막연함인 것 같다. 20대에는 설마 설마 하며 막연해도 아직 젊으니 뭐라도 있겠지 하는 희망이 있었지만, 지금은 초조하면서 막연하기만 하니까 말이다.

  대만에 둘이 여행가서 얼마나 즐거울 지 모르겠지만, 즐거웠으면 좋겠다. 나도 우울해지지 않기 위해 항상 무지 노력하고 있는데, 친구는 노력할 시간 조차 없는 것 같다. 자영업은 정말 아무나 하는 게 아닌 것 같다. 걱정도 좀 되긴 하지만, 정말 친한 친구와 하루밤 보낸 것 자체로 기분이 참 좋아졌다. 친구도 나도 잘 극복해서 즐거워졌을면 좋겠다. 가끔 이렇게 서로 위로도 해주면서.



이태원에서 돌아오며

일상 2013. 10. 13. 21:46

  12일 토요일에는 친구와 이태원에 갔었다. 이번 영국 여행에 가서 선물을 사온 3명의 친구 중 한명이었고, 그 친구에게만 선물을 주면 이제 내 선물 전달식은 다 완료 되는 것이었다.

 

 

  이제까지 매일 만나던 곳에서 벗어나보자는 의도로 친구와 이태원에에서 만났는데, 마침 지구촌 축제인가를 하고 있었다. 우린 전혀 모르고 갔는데 말이다. 전철에서 내려서 올라가보니 차량 통제하고 길에서 DJ 들이 마련된 무대에서 디제잉하며 클럽음악도 계속 틀어주고 더 걸어가보니 무대에서 밴드가 공연도 하고, 길에는 각 나라별 Booth 도 있고 그랬다. 사물놀이도 하면서 걸어가고 그런거 같은데 난 키가 작아서 볼 수가 없었다. 이거 때문에 박원순 시장까지 봤네.

 이태원은 이색적인 곳이긴 했다. 외국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도 한국사람이 절대 다수긴 했지만, 주말 명동만큼 사람이 많았고 나는 또 한번 한국 수도권의 폭발적 인구 동원력에 경탄했다.

  친구와 나는 밥 먹으면서 우리 미래에 대해 서로 우려하는 대화를 했고, 클럽 뮤직을 가까이 들으면서 고개도 까딱까딱 하다가 유명하다는 펍에 가서 맥주마시고 돌아다니다 또 맥주마시고 그랬다. 친구가 즐거워 하는 거 같아서 나도 즐거웠다. 날씨도 딱이었고. 외국 사람들도 많고 클럽에 갈 목적으로 온 사람들도 많아서 옷차림 구경하는 재미, 화장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이 세상에는 참 예쁜 여자들이 많은 거 같다. 아 하긴 어제는 잘생긴 남자도 많이 봤군. 젊은 사람들은 다들 귀엽구나 라고 생각하며 10시쯤 전철을 탔는데 앉아서 음악을 듣는 순간, 갑자기 내 미래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하는 고민을 하게 되며 바로 직전까지 재밌었던 기분이 씻은듯이 사라지고 우울해졌다.

 

  요즘 자주 듣는 Shadowplay 를 듣는데, 가사를 듣다보니, 이 노래를 만든 사람이 그렇게 기다리던 사람은 끝끝내 오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절대로 안올 걸 알면서도 기다렸던 거 아닐까. 그렇지 않고서는 그렇게 곡이 우울할 순 없다.

   

  술김이라서 더 그런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지만, 이제까지 살면서 내가 이루지 못한 것이 너무 많아서, 실패를 많이 한 인생이라서, 오히려 잘됐다는 생각을 했다.  

  가고 싶은 대학에 못가서, 하고 싶은 일을 못해서, 짝사랑 하던 남자에게 차여서, 좋아하던 남자와 결혼을 못해서, 얼굴이 별로 예쁘지 않아서, 아는 것이 없어서, 모험을 못해봐서 등등 

  내가 만약 원하는 대로 이것 저것 다 이루고 살았다면, 덜 괴로웠을지도 모르지만 난 재수 없는 사람이 되었을 것 같다. 가끔 일부 잘나가는 사람들이 그러는 거 처럼 잘난 체 하고 은근히 남 무시하는 그런 거 말이다. 난 오히려 열라 못나서 어떤 면에서는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었고, 또 언제나 처럼 지독한 열등감과 함께 32살을 맞이 하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며 또 울컥했는데.

  불행히도 간신히 떠올린 그런 생각도 당시 나에게는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진짜로 묻고 싶은 말

일상 2012. 5. 13. 00:48

오늘부터 주말마다 운전 연습을 하기로 했다. 더불어 주차연습도 함께. 오늘 동생을 옆에 태우고 롯데백화점에 가서 주차하는데 진짜 어찌나 진땀을 뺐는지 땀한줄기가 주르륵 흘렀다. 난 이런식으로 약 1년은 더 해야 남들하는만큼 할 수 있을 것 같다. 오늘 운전을 해보니 괜히 조바심 낼 필요가 없겠단 생각이 들었다. 내가 당장 운전할 일이 생긴 것도 아니고, 남들보다 좀 늦더라도 뭐 언젠가는 하겠지. 이런 식으로 그냥 1년동안 하다보면 언젠가는 내가 가고 싶은 곳도 가고 주차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동생과는 어벤져스를 보러 갔었는데, 난 토르도 안보고 아이언맨, 헐크도 안보고 하여튼 거기 나오는 모든 주인공이 나오는 영화를 단 한편도 보질 않아서 당최 뭔 소린지 알아먹기가 힘들었다. 그런데도 영화는 유쾌했다. 모든 스토리 다 몰라도 나름 깔깔 웃으면서 웃을 수 있을 정도로. 그리고 스케일도 장난이 아니고. 

영화를 한창 보고 있는데 카카오톡이 왔다. 자기는 집에서 쉬고 있는데 나는 뭐하냐는 물음였다. 동생과 있다고 했더니 이내 포기를 하고 재밌게 놀라는 대답이 왔다. 난 갑자기 술이 확 땡기는 바람에 동생을 먼저 보낼 생각으로 보자고 했고, 결국 만났다. 

난 솔직히 연락을 왜 이렇게 안하냐고 묻고 싶었다. 

아마 그 남자도 나에게 묻고 싶은 말이 따로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우리는 맥주 500cc 두잔을 마시면서 실없는 얘기로 서로 극존칭을 쓰며 얘기를 하다가 헤어졌다.

나는 아직도 "미영씨"다. 

겨울코트 입을 때 만나서 반팔입을 때까지 이게 뭔지 모르겠다. 진짜 나랑 친구를 하고 싶은 건가.



불면의 밤

일상 2010. 5. 15. 01:08
12시 반쯤 누웠다가 노래도 좀 듣다가 도저히 잠이 안와서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다.
원래 야구 끝나고 나서는 컴퓨터 안하는데 누워서 아까 새로 받은 노래 이어폰으로 끼고 좀 듣다가 도저히 잠이 안와서 결국 여기 또 앉았다.
백수라 하더라도 하루 시간은 잘만 간다. 난 대학 때도 그랬다. 그냥 하루종일 집에 있어도 여차저차 시간이 잘도 가더라. 그리고 나름대로 바쁘다. 집에서 밀린 거 할 것도 많았는데 막상 시간이 남아도니까 안하고 있다. 역시 귀찮은 일은 닥쳤을 때 해야 하는건가.
이불덮고 이어폰 끼고 누워 있다보니 혼자살 때가 생각났다.
요즘 하도 새로운 사건이 없다보니 맨날 과거 넋두리만 포스팅 하고 있는 내 신세가 웃기지만, 예전에 특별한 상황에서 들었던 노래를 들으면 그 상황이 생생하게 떠오르는 것 처럼 난 예전부터 지금까지 거의 그대로고 그렇다보니 맨날 과거에만 얽매여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새벽에는 머리가 이상해지므로 말이 이상해도 참고 내일 아침에 쪽팔려하자)
대학 4학년 여름 방학 때 난 어쩔 수 없이 계절학기를 들었다.
그때만 해도 엄마아빠가 다 지방에 계셨기 때문에 난 방학 중에는 돈도 아끼고 단 한두달만이라도 엄마밥을 먹고 싶어서 계절학기는 웬만하면 안들었는데 객기로 필수인 영어수업을 2학년 때 안들었다가 결국 4학년이 되어서야 들을 수 밖에 없게 된 것.
여하튼 그 계절학기 수업 때문에 나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매일 학교에 갔고 어쩔 수 없이 덥고 더운 그 방에 혼자 지낼 수 밖에 없었다.
학교 앞에 있는 날림 공사한 원룸들이 대부분 그렇듯, 앞 뒤로 건물도 빼곡하고 창문은 단 하나.
자기 직전까지 에어컨을 틀다가 자기 직전에 에어컨을 끄고 최대한 시원한 상태에서 잠들어보려고 매우 애를 썼다.
앞건물과 너무 가까워서 창문도 활짝 열 수 없어서 조금만 열어두고 어떻게 간신히 잠이 들었는데, 그 더운 여름에 역시 에어컨 없이 장시간 편히 잔다는 건 큰 욕심이었나보다. 어느날 밤 새벽에 너무 더워서 결국 일어났다.
전기세고 뭐고 살고보자 싶어서 룸에어컨을 틀어놓고 그때만 해도 열심히 애용하던 CD Player 를 작동시켰는데 새로 나온 jamiroquai 앨범이 들어 있었다. 지금도 좋아하지만 그때 한창 삘 꽂힌 talullah 를 3번 연속 들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울컥했다.
이런 상황에 맘편히 전화할 사람도 없고. 에잇. 시발.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 연애의 로망은 말하기 부끄럽지만, 새벽에 잠에서 깼는데 (더워서 깼을 수도 있고 꿈 때문일 수도 있고) 갑자기 심하게 외로워 지고 서러워 지는 그 새벽에 전화를 했을 때 남자가 내 전화를 받아주는 거다. 크크크크.
남자친구가 있을 때에도 한창 악몽에 시달려 새벽에 눈을 떴을 때 한번도 전화한 적이 없었다. 그냥 외로워. 무서워 하고 말았지. 걔가 그 시간에 내 전화를 반가워 할 것이란 확신이 전혀 없었다.
다시 대학 4학년 여름의 그 밤 이야기로 돌아가보면
음악을 들으면서 경찰차가 지나가면서 내 창문으로 비치는 빨강 파랑 빛을 보다가, 서러워져서 누워서 눈물을 쪼끔 흘리다가, 냉장고를 열어 위스키를 꺼내 얼음이랑 섞어서 한잔 쭉 들이키시고 잠이 들었다. 그 위스키는 놀러온 친구가 오빠껀데 그냥 너 주려고 몰래 가져다고 준다고 말하며 준 소중한 위스키였다. 나름 아껴서 먹었는데 한 달을 못가서 저런 식으로 다 마셔버렸지.
지금은 한달에 술을 한번 마실까 말까 하지만, 계절학기 들었던 그 여름에는 "냉장고에 맥주 항상 구비" 가 나의 철칙이었다. 자기 전 맥주 한캔 이 두캔이 되고 세캔이 되고 안주 없이 마실 수 있는 술의 양이 점점 늘어가면서 이래서 사람들이 맥주 맥주 하는 구나 하면서 맥주의 맛 세계로 입문하였던 때였다. 그때는 내가 평생 자기전 맥주 한캔을 즐길 줄 알았는데 지금은 전혀 아니네.
그 때 당시 내가 가장 좋아했던 맥주는 밀러 였다.
아.. 이제 누우면 잠이 올까? 잠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