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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음

나쓰메 소세키


스마트 폰을 금요일 밤에 사서 이거 저거 여러가지 하던 중에 교보 e북을 시험해보고자 전자 책을 구매하는데 원래 읽고 싶었던 책을 곰곰히 생각하다가 마음을 구매하였다.
예전에 충무로로 출퇴근 할 때 스마트폰 샀으면 딱 좋았을 것을. 그때 무거운 책을 시원찮은 가방에 넣고 다니다가 끈이 끊어진 적도 있는데, 무려 1시간 30분 동안 무거운 책 들고 왔다갔다 한 거 생각하면 참 억울하다.
책은 종이로 된 거 넘기는 맛이라곤 하지만, 이렇게 사진이 필요 없는 글로만 된 책은 e북도 괜찮은 것 같다. 읽고 느끼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친구의 강력한 추천으로 읽게 된 이 책은 비통한 마음이 들어 중간 중간 끊어 읽을 수 밖에 없었다. 읽다가 다른 책 읽고 또 다른 책 읽다가 다시 돌아와서 읽고. 그렇게 무려 5개월에 걸쳐 끝을 보았다.
미천한 독서 경력으로 미루어 보면, 이 소설은 "문" 랑 느낌이 비슷했는데 "문" 의 주인공이 안고 사는 죄책감 때문에 그런 느낌을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소설 속 주인공인 선생님의 젊은 시절은 어떻게 보면 비겁했을지도 모르지만, 아마 나였다 하더라도 그와 똑같이 행동할 수 밖에 없었을 것 같다.  자신의 신념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절망감과 어렵게 털어놓은 진심에 대한 묵살 난생 처음 느낀 사랑의 실패 등으로 인해 친구는 결국 자살을 택하고 그 자살로 인해 선생님은 평생을 무거운 마음으로 살 게 된다.
이렇게 쓰다보니 그래도 내 입장에선 선생님보단 그 선생님 친구가 더 불쌍한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책을 다 덮었을 때에는 선생님이 너무 안쓰러웠는데.

p.s e북은 북마크가 아주 편해서 인상깊은 부분 표시하기가 좋다.
페이지는 모두 교보e북 기준.

p.29 - 인간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 사랑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사람, 그렇지만 자신의 품으로 들어오려는 사람을 팔 벌려 안아 줄 수 없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선생님이었다.
p.80 - "옛날에 그 사람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는 기억이, 이번엔 그 사람의 머리 위로 기어오르게 한단 말일세. 나는 앞으로 그런 모욕을 받지 않기 위해서 지금의 존경을 물리치고 싶다네. 나는 지금보다도 더 외로울 미래의 나를 참고 견디기보다는, 외로운 지금의 나를 참고 견디고 싶어. 자유와 독립과 자기 자신만으로 가득한 현대에 태어난 우리들은 모두 그 희생으로 외로움을 맛보지 않으면 안 될 걸세." 나는 이런 각오를 하고 있는 선생님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몰랐다.
p.87 - 아버지의 의식에 어두운 부분과 밝은 부분이 생기면서 그 밝은 부분이 어둠을 꿰매는 하얀 실과 같이 일정한 거리를 두고 연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는 듯이 보였다.
p. 71 - 진정한 사랑이란 종교를 믿는 마음과 그렇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굳게 믿고 있다네. 나는 그녀의 얼굴을 볼 때마다 아름다워지려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네. 그녀에 대해 생각하면 고상한 마음이 금방이라도 나에게로 옮겨질 듯했지. 만약 사랑이라고 하는 불가사의한 물체에 두 가지 단면이 있어 그중 높은 곳에 있는 한가지는 신성한 느낌이 작용하고, 낮은 곳에 있는 한 가지엔 성욕이란 것이 작용한다면, 나의 사랑은 정확히 높은 곳에 있는 극점을 취한거라고 생각하네. 나는 원래부터 육체를 떠난 인간을 상상할 수 없었던 그런 사람이었으나 이상하게도 그녀를 보는 내 눈이나 마음에는 육체를 탐하는 그런 느낌은 전혀 없었다네.
p.264 - 죽었다는 생각으로 살아가기로 결심한 내 마음은 가끔씩 외부 자극에 놀랄 때가 있다네. 하지만 내가 어느 한 방향으로 나아가려 하는 순간, 어마어마한 힘이 어디선가 나타나 내 마음을 꽉 움켜쥐고 한치도 움직이지 못하게 만든다네. 그리고 그 힘이 나에게, 너는 아무런 자격도 없는 사내라고 마치 압력을 가하듯 말하지. 그러면 나는 그 한마디에 축 늘어져 버린다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일어서려고 하면 또다시 나를 억누른다네. 나는 입술을 꽉 깨물고 도대체 무엇 때문에 남의 일을 방해하느냐고 호통을 치지. 그 어마어마한 힘은 그저 차갑게 웃다가 네가 더 잘 알고 있지 않느냐고 말한다네. 그러면 나는 다시 축 늘어지고 말지.

줄 곳 없는 마음.

일상 2010. 10. 7. 17:55
나는 과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다. 덩그라니 혼자.
혼자 일하니까 어차피 다 내가 해야 하는 일이고, 업무 가지고 서로 얼굴 붉힐 일 없고 조용하고 어떻게 보면 좋을 수 있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지금의 난 교수 9명의 모든 심부름을 도맡아 하는 비서와 다름없고, 까다롭기 그지없는 대학원 행정 업무도 매일 대학원 행정실에 전화해서 물어보고, 사회성이 부족한 성격 탓에 교수님이랑 몇마디 할라 치면 혀가 굳어 제대로 말도 못하고 그런다.
생각해보니 난 지금 여기 교수들 만큼 나이가 많은 사람들과 업무적으로 일해본 경험이 없다. 예전 회사도 내가 나이 많은 편에 속했으니까. 대리 과장도 거의 30대였고 심부장도 40살 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지금 여기 학교는 나이든 분들이 너무나 많아서 어색하고 도대체 그 나이대 아저씨 들과는 어떻게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학교 하면 뭔가 한가한 이미지가 생각나지만, 난 정말 과사무실에서 쉴 새 없이 일하고 있다. 각 부서에서 뭐해라 뭐해라 계속 공문이 온다. 공문 보면 기한이 항상 있는데 난 그 기한내에 맞추려고 노력하지만 지금 내 업무 능력 안에서는 모든 기한이 다 촉박하기만 하다. 거기서 하라는 내용을 아무리 쳐다봐도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안잡힌다.
또 여기는 엄청 외롭다. 전화가 많이 오니까 음악을 틀어놓기도 뭐하고 교수님을 맞상대해서 일하고 있는 동료가 한명도 없으니 답답한 마음이나 억울한 마음을 함께 토로하고 공감해줄 친구가 없다.
회사에서 사귀는 친구의 부질없음을 깨달아서 좀 씁쓸했지만, 친구사이인 척 하는 한시적인 관계라 하더라도 마음을 트고 지낼 딱 한 사람은 필요한 거 같다.
나같은 사람을 위해서 라디오 같은 게 만들어진 거 같기도 하고.
원래 혼자서도 잘 지내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난 어디에 있든 진짜 친한 한명은 있었다. 그 한 사람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면서 외로움도 안느끼고 잘 지냈던 거 같은데 여기는 그 한사람이 없네.
아. 청승맞게 갑자기 눈물이 핑돈다.
사실 오늘 너무 힘들었다. 아... 힘들다. 역시 사람은 간사해. 예전 회사에서는 거기만 벗어나면 장밋빛 행복한 미래일 줄 알았는데.

내가 실패한 이유.

일상 2009. 11. 6. 19:55
수요일에는 대학 때 친하게 지내고 지금도 연락하는 언니가 시간되냐는 문자가 왔다. 마침 아무 약속도 없고 일찍 끝내고 갈 수 있을 것 같아서 만났다. 퇴근 후 평일에 뭔가 하는 걸 굉장히 부담스러워 하는데, 너무 오랜만에 만나는 언니가 거절하기도 뭐했다.
그런데 나가길 정말 잘한 것 같다. 엄청 재밌었다.
언니와 이야기 하다가 또 몇년전의 내가 떠올라서 곱씹고 있는 중이다.

내가 좋아했던 사람과 제대로 되지 않은 첫번째 이유는 (뭐 가장 큰 이유는 물론 상대방이 내가 맘에 안든다거나, 끝까지 걸렸던 뭔가가 있었겠지만) 불평불만을 너무 많이 해서. 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당시의 나는 항상 즐거울 수 없는 사람이었다. 당연한거 아닌가. 날 즐겁게 해줄 수 있는 당사자가 날 괴롭게 만드는데 어떻게 할 도리가 없잖아. 그런데 그 불평 불만을 은연중에 쏟아냈으니 잘될리가.그리고 뭐 생각해보면 많이 꼬질꼬질 했던 거 같다. 예쁘게 좀 하고 다닐 걸.
그런데 당시의 나는 꾸미고 다닐 돈도 없었다고. 어쨌든 뭐 불평불만이 첫번째 이유같긴 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바로 외모와 관련된 이유도 50% 이상 작용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난 정말 진심이지만, 내가 그 사람 말대로 엄청나게 불행해지더라도 곁에 있으면서 불행해지고 싶었다.
위험한 생각이었다. 아무래도 그것 때문에 망한 거 같다.
낳아준 부모님 생각은 안하고 저런 생각이나 했으니.

그런데 난 아무래도 저 때 상처가 많이 컸던 거 같다. 정식으로 사귀지도 못했으면서 아직도 이러고 있는거 보면 찌질해서 어디 내놔도 부끄럽고 쪽팔리지만, 현재까지도 좋아하는 사람이 없어서 외롭다는 생각이 들지 않고, 없어도 그만 이라는 생각이 드는 이유의 9할 이상은 아직도 저 사건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아무리 발버둥을 쳐봤자, 사랑받을 수 없었던 그 절망감을 다시는 맛보고 싶지 않다.
그 두려움이 날 아직까지 이렇게 만든 것 같다. 그런데 내가 마음의 문을 활짝 열었다고 좋은 사람을 지금 만날 수 있을까? 글쎄. 오히려 사랑 받을 수 없다는 절망감만 더 심해졌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냥 내 결론은 난 이렇게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이런 저런 모든 상황이 만들어졌다는 것 뿐. 어쩌랴. 지금 난 이런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