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짐

일상 2015. 8. 3. 00:50

어제 오늘 집에만 있었다. 너무 뜨거워서 나갈 엄두가 안나기도 했고, 또 갈 곳이 없기도 했다. 오늘 오후 2시쯤 공부할 책을 보러 교보문고에 갈까? 잠시 결심 했다가 옷을 챙겨 입는 것이 너무 귀찮아서 그냥 인터넷 미리보기로 책을 보고 구매했다.

 

어제는 학교에서 하라는 신체검사를 하러 인천기독병원에 갔다. 적어도 30년 이상 된 것 같아 보이는 기독병원은 천장이 엄청나게 낮았고, 종합병원답지 않게 한산해서 좋았다. 큰 스탠드형 에어컨 두개가 양쪽 끝에 있었는데 시원했다. 그런 큰 스탠드형 구식 에어컨도 오랜만에 봤다.

학교 정직원들은 분명 학교에서 신체검사 돈도 내줄텐데 나같은 계약직은 내 돈 내고 내가 해야 한다. 이런 썩을. 이 세상은 뭔가 잘못된 거 같다. 내 월급의 2배 이상을 받는 사람들은 왜 공짜로 신체검사하고 난 그 사람들 절반만 받고 일하는 계약직인데 왜 내 돈을 내고 신체검사를 해야 하는가.

신체 검사 중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피뽑기를 하고 지혈을 제대로 안해 핏줄이 막 팔에서 튀어나오려고 했고 그걸 보고 있자니 좀 무서웠다. 결국 팔에 피멍이 들었다.

이번 신체검사를 계기로 내 정확한 키를 알게 되었다 158.2cm 였다. 우울하지만 난 대한민국 평균보다 작다. 

 

우리집에서 기독병원 가는 길은 담쟁이 돌벽 같은게 있고, 옛날 집들이 쭉 늘어서 있다. 그래서 그런지 거기서 유난히 드라마 촬영을 많이 한다. 어제도 윤계상 나오는 드라마 찍는다고 차량 수십대가 와 있고 막 대사 하는 소리가 들렸는데, 나랑 엄마는 구경할 생각도 없는데 스텝들이 막 앞서서 길을 막아 기분 나빴다. 그 더운 날씨에 서서 보라고 해도 보기 싫었는데... 그나저나 어제 같은 날씨에 야외에서 몇시간씩이나 일하는 방송 관계자들도 좀 안됐더라.

 

요즘 연애가 잘되가서 마음이 넉넉해진 남동생한테 전화가 왔는데, 다행히 이번에는 별로 안 혼나고 잘 넘겼다. 맨날 나를 타박하는 동생이지만, 어찌됐든 내 편이라는 생각이 드니 든든하기도 하고. 자매만큼은 아니어도 남매사이에도 끈끈한 남매애 같은 게 있기는 있는 모양이다. 동생이 날 타박할 때마다 미워 죽겠지만, 결국 동생이 이렇다. 하고 결론을 내려주면, 아하!! 하고 확신을 하게 되니, 나도 참 누나 자격이 없는 것 같기도 하고.

 

공부를 다시 해야해서 책상 책꽂이 정리를 새로 했고, 오랜만에 토익책을 꺼냈다. 내가 다시 토익공부를 하게 될 줄이야. 동생이 공부한다고 대학 졸업 전에 토익 모의고사 문제집을 2권이나 사놓고 단 한장도 풀지 않은 걸 버릴까 말까 하다가 그냥 놔뒀는데 이제서야 그 문제집을 풀게 됐다. 오랜만에 풀다보니 꽤 재밌었다. 그냥 혹시나 하여 봐두려는 거니 뭐 심각하게는 공부 안하겠지만, 그래도 점수가 높으면 좋을테니까.

난 할 일 없고 우울한 생각 들때 어렵지 않은 문제를 풀면 좀 안정이 되는지라 오늘도 토익 문제 풀면서 마음의 평화를 찾았다.

 

전 회사에서 당한 수모를 생각하면 뭘해도 될 것 같은데, 그것도 뭐 지금 뿐이겠지. 아까 인터넷 서점에서 산 책도 일단 한번 보면 느낌이 올 것 같다. 이게 내 머리로 될 건지 안될건지.

 

친구가 엉킨 실타래를 지금부터 하나씩 푼다고 생각하라는데, 늦은 거 아닐까 싶다. 며칠전 본 중학교 친구는 지금 애가 돌이고 벌써 둘째도 임신했다는데, 난 대체 뭐하고 있는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옛날부터 나는 뭐든 쉽게 되는 게 없었으니까, 이번에도 남들보다 늦는다고 생각하자. 맘 편히 먹자.. 이러면서 혼자 막 좌절했다 혼자 또 정신승리했다 그러고 있다.

 

한가지 위안이 되는 건 우리 엄마는 이 와중에도 쇼프로 보면서 큰소리로 막 웃으신다는 거다. 우리 엄마도 지금 회사에서 고생 많이 하고 있고, 딸 신세가 갑자기 우울해졌는데, 언제나 저렇게 즐거운 걸 보면 막 위로가 된다. 이런 상황에 엄마까지 우울함에 빠져 계셨다면 정말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엄마를 보면서 종교의 힘 같은 걸 느낀다. 그래서 저저번주부터 열심히 교회에 가고 있다. 이상하게 교회 가기 전에 눈이 떠지고, 예전과 똑같이 기도하고 있다.

 

오늘 동생의 조언에 힘입어 나를 힘들게 했던 관계도 오늘 마음 속으로 말끔하게 정리했다. 이렇게 쉬운 것을 왜 망설였는지 모르겠다. 정말 별 거 아니었고, 의외로 내 삶에 별 영향도 없다. 그만큼 뭐 중요한 사람이 아니었다는 뜻이겠지.

 

아까 8월부터 12월까지 뭘 어떻게 해야겠다는 계획을 좀 세웠다. 엊그제 포스팅 했듯 5년 뒤에도 이 상태면 난 죽든지 사라지든지 해야 하니, 난 누가 알아주든 아니든 열심히 살아야 한다.

 

엄마의 영향과 친구의 영향으로 잠들기 전에 기도를 하기로 했다. 마음을 곱게 먹어야 뭘 해도 될 것 같아서. 성경도 하루 한장이라도 보기로 했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종교가 왜 필요한지 뼈져리게 느꼈다. 나는 힘이 없어서 그들에게 복수(?)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벌을 주실거야. 내 마음을 알아주실거야. 하는 생각을 하니 이상하게 위로가 됐다.

하나님이 계시든 안계시든 난 죽을 때까지 기독교 신자로 살다가 죽기로 했다. 되도록이면 교회도 매주 가고.


무서운 동생

단문 2015. 3. 24. 13:52

남자들은 군대를 다녀오면 본인이 삼라만상의 모든 이치에 대해 깨닫는다고 착각하는 것 같다. 내동생이 그 대표적 케이스다. 내동생이 군대 가 있을 때 우리집은 한달에 한번씩 면회를 갔다. 면회를 갈때마다 동생을 위해 나도 쫓아가야만 했다.

여기저기 다 들어봐도 내동생한테 간 거 만큼 자주 면회간 가족은 없다. 우리 엄마는 그것 때문에 동생이 온전히 군생활을 마쳤다고 믿고 있다. 나야 군생활 경험이 없으니, 남자들이 믿는 군대에서 깨달은 세상의 모든 이치가 맞는 건지 틀린 건지 잘은 모르겠다.

하지만, 내동생이 언젠가부터 나를 완전히 철부지 정신 못차린 30대 여자 취급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해선 불만이다. 

내가 잘못을 했으면 뭘 또 얼마나 잘못을 했단 말인가. 주변 친구들은 다 여자고, 남자라고 해도 솔직한 이야기를 못하니 가끔 동생의 의견이 큰 도움이 되는 때도 있지만, 걔는 이 사회에서 여자가 회사생활 하면서 느끼는 고충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내가 사회에서 잘못 들여놓은 첫발에서 벗어나기 위해 얼마나 큰 노력과 희생을 감수해야 했는지도 모르면서, 단지 연애를 자기보다 많이 못해봤다는 이유로 나를 얼마나 어리석은 여자 취급을 하는지.

아침에도 동생한테 한참 혼나고, 억울해서 업무 시간이지만 이렇게 블로그 글을 쓴다. 

난 이제 충격에서 완전히 헤어나오고 아무래도 상관없어졌는데 그 사건 하나로 남들 20대때 다 겪는거 누나만 왜 30대 되서 겪고 있으며, 누나가 이제까지 찬 남자들한테 어떻게 했는지를 생각해보면, 그건 다 누나가 뿌린대로 거두는 거란 막말까지 하였다. 

이제까지 내가 찬 남자들을 반추하며 반성하긴 했지만, 그래도 진짜 친동생이 이정도까지 4살씩이나 많은 누나한테 이렇게 막말하며 혼내도 되는건가!! 

이런 젠장!!!! 

P.S 내동생이 내가 겪은 작금의 사태에 대해 본인이 예상되는 답안을 알려줬는데 그 답안이 아무래도 맞는 것 같아서, 완전히 마음이 편해졌다. 마음이 편해진건 편해진 건데 그래도 내동생은 싫다. 오만방자한놈 같으니라고 지가 알면 뭘 또 얼마나 많이 안다고! 사회생활 2년 밖에 안해본 애송이 주제에!!! (무서워서 동생한테 말도 못하고 이러고 있음..)


꺽인 11월

일상 2014. 11. 16. 22:37

요즘에는 책도 재밌고, 노래도 좋은 노래가 쏙쏙 귀에 들어온다.

1. 셜록홈즈 전집
도서 정가제를 앞두고 전집류를 무지 싸게 팔고 있다. 그 덕에 난 셜록홈즈 전집을 4만원도 안되는 가격에 구입했고, 요즘 자나깨나 읽는 중이다.
아주 어렸을 때 읽은 거라 거의 처음 읽는 거나 다름 없는데… 이렇게 재밌을 줄이야?

2. Ryuichi sakamoto 의 YMO​

Ryuichi sakamoto 의 1996 앨범을 무지 좋아하면서, 다른 앨범은 듣지 못했다. 가끔 찾게 된 다른 루이치 사카모토의 곡들이 너무 난해했기 때문이다. (Sweet revenge 와 smoochy 앨범은 좋아하지만)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you tube 에서 1000 knives 를 듣게 됐고, 바로 한국에 출시된 YMO 음반 2장을 구입했다. 동양적 멜로디와 감성을 기반으로 도저히 70년대말에 만들었다고 믿을 수 없는 진보적인 전자음악에 살짝 감명 받았다. 젊은 시절 루이치 사카모토는 다 가진 남자였던 거 같다. 음악 잘하고, 실험적이고, 집도 부자고, 똑똑하고, 거기에 잘생기기까지.

3. Weezer의 Everything will be alright in the end 앨범
오랜만에 rock 밴드 음반인데 처음부터 끝까지 다 좋은 곡으로만 구성된 앨범을 만났다. 특히 lonely girl 이거 완전 내 곡 같다. 시작부터 마지막 곡까지 다 좋고 완성도 있다. 당분간 계속 듣게 될 것 같다.

http://youtu.be/jGUPsdOCZ-A

무슨 곡이 제일 좋다 말하기 어려울정도로 다 좋지만, 지금은 위 링크 곡이 제일 좋다. weezer 이 사람들 음악은 항상 깜찍한 면이 있다.

4. 더러운 남동생
한창 백수 시절에 난 어쩌면 타고난 백수체질일지도 모른단 생각을 했다.
왜냐하면 난 약속이 없고 하루종일 집에만 있을 예정이라고 해도 머리도 감고 세수도 한다. 아무데도 안나갔다왔다 해도 자기 전 샤워까지 다해야 직성이 풀린다. 그러니깐 난 집에만 있어도 폐인이 되는 타입은 아닌 것이다.
그런데 내 남동생은 어제밤에도 샤워는 커녕 세수도 안하고 자고 오늘도 세수 안하고 이만 닦고 그 더러운 꼴을 하고 성남까지 갔다. 나랑 엄마가 저 버릇을 고치려 엄청 노력했는데도 고치지 못했는데, 혼자 나가 살면서 안씻는 게 더 심해진 거 같다. 여자친구 없는 뒤론 더더더 안 씻는 거 같다. 진짜 더러워 미치겠다.
쟤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중국 사람 안씻는다 욕할게 아니었다. 진짜 더러워 죽겠는 사람이 바로 내 친 남동생이니까.
걔가 있던 방에 온통 페브리즈 뿌리고, 향초까지 피워놨다. 냄새가 나서.
3개월만에 집에 와선 동생은 집이 너무 춥단 짜증만 부려서 엄마는 동생한테 그러려면 오지 말라고 했다. 사실 너무 추워서 못씻겠다고 하며 안씻고 간거다.

근데 우리집은 엄마가 보일러 너무 안틀어줘서 너무 춥고 가끔 서럽기까지 한 것만은 사실이다. 집에서 양말필수에 패딩조끼까지 입어야한다. 보일러 틀면 분명히 나한테 난방비까지 내라 하실 거 같아서 그냥 이렇게 참고 산다.
이러니 내가 겨울만 오면 우울할 수 밖에 없다. 바깥 나갈 때만 추운 게 아니라 집에서도 아침저녁으로 너무 추우니까…(우리엄마는 잠들기전에 딱 15분 보일러 틀고 하루종일 안트신다. 아침엔 맨발로 방바닥 올라서면 정신이 번쩍 들정도로 차다. 흑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