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2019년

일상 2019. 1. 17. 14:30

1. 남편

  결혼하고 처음 맞는 새해다. 나와 남편은 남들과 좀 다른 신혼생활을 하고 있다. 편하기도 하고 우리가 좀 이상한건가 싶기도 하다. 나랑 남편이 10살 어린 나이에 만났으면 지금처럼 무덤덤하지 않았을까? 란 생각이 들다가도 30대 후반에 결혼한 부부라면 다 우리같을 수도 있겠단 생각도 한다. 몇십년 후를 예측할 순 없지만, 우리 부부는 그냥 지금 상태로 쭉 가지 않을까. 그러니까 남들이 생각하는 신혼부부마냥 엄청 뜨겁게 살고있지는 않다는 말이다. 


2. 자식

  이번 주 화요일부터 생리를 시작했는데, 난 내가 임신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생리할 줄 알았다. 이번 생리가 결혼하고 3번째 생리니까 내가 3번이나 임신을 못하고 넘겼다는건데, 이거 때문에 너무 힘들다. 임신을 못해서 힘든 게 아니고 우리 엄마 때문에 힘이 든다. 우리 엄마는 나를 허니문 베이비로 낳고 내동생도 임신 계획을 세운 직후 가임기에 바로 맘먹은대로 임신을 했기 때문에 임신이 엄청 쉬운 줄 안다. 그래서 전화할 때마다 임신일 수도 있으니깐 약먹는거 조심하라고 하며 임신을 너무 기대하고 계신다. 그래서 내가 어제 지금 생리 중인데 무슨 임신이냐고 했더니 너 지금 나이에 임신 안되서 고생하는 사람 얼마나 많은 줄 아냐며 왜 노력을 안하냐고 늙어서 임신 못한 거 하나로 또 내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3. 나이

  위에 이어서 하는 말이지만, 35살 넘었을 때 마음 속으로 결혼안하고 사는게 내 운명이라면 하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35살 넘어부터는 엄마아빠가 단지 결혼 못한 거 하나로 사회의 낙오자 취급을 하며 시시때때로 늙어서 애도 못낳고 시간은 가고 어떡하냐고 해서 정말 문자 그대로 미쳐버릴 것 같았다. 

  한편으론 어려서부터 부모님이 하지 말란 거 안하고 말썽한번 안 일으키고 살았는데 고작 결혼 못한 거 하나로 죽일년 취급을 받는 게 억울했다. 난 가족이라면 결혼을 안해도 애를 안낳아도 나름 세상 잘살 수 있다고 말해줬으면 좋겠는데 우리 부모님은 가만 있다가도 결혼 못한 거 하나로 날 얼마나 구박했는지 모른다. 

  나중에는 엄마아빠의 잔소리가 잔소리를 넘어 저주로 들릴 정도였다. (혼자 늙어서 보호자도 없을거라는 둥, 외로울 거라는 둥 기타 등등의 저주) 

  작년에 드디어 엄마아빠가 그렇게 바라는 결혼을 하고나니 이제는 나이 많은데 왜 애를 안 갖느냐고 성화다. 나도 내 나이 많은 거 알고 나이 많으면 애 낳기도 키우기도 힘든 거 안다. 그런데 만약 애를 낳고 싶은데도 나이가 많아 임신이 안된다면 제일 슬프고 속상한 건 나 아닌가. 그런 나한테 왜 자꾸 그러시는걸까. 아직 아픈 엄마한테 화를 낼 수도 없고 엄마가 임신 얘기 꺼낼 때마다 너무 힘들다.  


4. 치매 

  원래 일기를 쓴 목적은 매주 가는 교회에 치매 노인에 대해 쓰기 위해서였다. 우리집에서 제일 가까운 교회에 매주 가고 있는데 그 교회에 항상 치매에 걸린 할머니가 오신다. 시도때도 없이 큰소리로 떠들고 저번 주 예배시간에는 엄청난 난동을 부리며 막 욕까지 하셨다. 그런데 젊은 담임 목사님께서 치매 노인이 큰 소리를 내든 말든 개의치 않고 설교를 열심히 하는 걸 보고 감동을 받았다. 

  결혼 주례 때문에 시부모님이 다니시는 우리나라에서 손에 꼽히게 큰 교회에 한번 참석한 적이 있었다. 시부모님이 목사님을 어찌나 어려워하든지, 남편이 비유하길 대학교로 치면 총장님 1:1로 만나는 거랑 마찬가지라고 했으니 많이 어려운 자리인 거 같긴 했지만, 그래도 너무 심하다 싶었다. 

  그런데 난 그냥 그 대형교회가 싫었다. 원래도 싫었지만 직접 가보고는 더 싫어졌다. 큰 교회에 몸담고 있는 게 대단한 줄 아는 대형교회 교인들과 예수님이 증오해 마지 않던 성경 속 바리새인들과 다른 게 뭔가 싶었다. 중간 기도도 교회 부흥을 위해 하는 거 정말 내 기독교 상식으로는 용납이 되지 않았다. (내 태도 때문에 그날 남편이랑 결국 싸웠다) 

  저번에도 썼지만, 난 장담한다. 예수님이 만약 다시 세상에 오시면 우리나라 대형 교회 목사들이 앞다투어 예수님을 못에 박아버릴 것임을.  

  권위적이지 않고, 치매 노인을 별나게 대하지 않는 우리동네 목사님 존경한다. 계속 다녀볼 생각이다.  


5. 회사

  난 생긴 것과 달리 의외로 회사 사람들한테 짜증 잘 부린다. 오늘 아침에 정말 참을 수가 없었다. 다 내가 부족해서 이런 회사 있는거라 부끄러워 큰 불만 안가지려고 했다. 하지만, 내가 다른 회사 사원 월급에 인사재무총무 하여튼 온갖 잡일 다 하고 있는데 은근슬쩍 또 관둔 직원이 하던 일을 나한테 시키는 행태를 보고 화가 안날 수 없었다. 

  이 회사도 너무 오래 다녔나보다. 

  너무 짜증이 나서 이직할 자리를 알아보는데 결혼을 하고보니 이직에도 소극적이 되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자신이 없다.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건 이직이 아니고 그냥 온전히 때려치고 노는 건데, 이제 가정까지 생겨 더더욱 회사 사람들 짜증나서 못다니겠단 얼토당토 않은 이유로 관둘 수 없게 되었다. 


6. 외모

  남편 얼굴이 잘생겨서 같이 외출을 하면 기분이 좋다. 남편 만나고 나서 깨달은 게 있는데, 내가 이제껏 결혼 안한건 내 맘에 드는 외모를 가진 남자가 없어서 였다는 거. 솔직히 조건 좋은 남자도 많았다. 그런데 하나같이 외모가 별로라 마음이 안갔다.

  못생긴 건 유전되고 조건은 언제든지 변할 수 있다.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외모가 남자가 가진 조건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일수도 있는 것이다. 하여튼 난 내 선택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 남편 외모 내 맘에 드는 거 어찌나 흐믓한지 모른다. 


어서 봄이 왔으면..

일상 2016. 2. 21. 21:35

1. 연휴 후

연휴가 끝나고 목금만 일하고 또 주말에 쉬고 저번 주에도 병원 때문에 목요일에 휴가를 내서 4일만 일했다. 연휴 후 일주일을 풀로 일하는게 다음주가 최초인데 벌써 몸이 배배 꼬이고 우울하다.

노동은 인간으로 태어난 형벌 같다는 생각을 자주한다. 다음 주에는 화요일과 목요일에 외근가고 아마 저녁도 먹고 들어와야 할 것 같다. 외근이 싫다기 보단 집에 늦게 들어오는 게 싫다.

매일 아침 6시에 기상하는 게 생각보다 많이 고되다. 날이 갈수록 더 힘들어 진다. 3월에 할부금 갚으면 인삼이라도 사먹을 작정이다.

 

2. 떠나는 자와 오는 자

회사에 정말 대책없는 또라이가 한 명 있다. 정말 그런 인간은 처음 봤다. 결국 그 사람으로 인해 한 사람이 사표를 냈다. 나도 참 이기적 이라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사표를 쓴 사람이 그 또라이로 인해 받은 상처보다 그 사람이 그만 둘 경우 나에게 올 피해에 대해서만 생각하게 되더라. 나도 대책없구나.. 싶어서 씁쓸했다.

사표를 쓴 사람이 맡고 있던 업무 중 가장 큰 업무 하나가 나한테 올 것 같다. 다음주 두번의 외근도 새로 맡게 될 업무 때문에 가는거다. 떠나야할 사람은 그 또라이 인데... 그 사람 때문에 관둔 사람이 벌써 이번이 세번째라고 하던데, 이럴 때마다 정말 이 나라를 떠나고 싶다는 생각만 든다. 어떻게 된 게 어느 직장에 가도 쓰레기 같은 사람이 한명씩 있고 그 쓰레기들은 잘만 사는지..

그나저나 나는 쥐꼬리만한 월급에 너무 다양하고 많은 일을 하고 있다. 월급을 안 올려주면 정말 우울할 것 같아서, 종종 구직 사이트를 구경하는데, 볼 때마다 다시 정신이 번쩍 든다. 나같은 사람을 받아줄 회사가 거의 없다.

인턴 한명이 새로 들어왔다. 동생과 동갑인데, 저번 금요일에는 사무실 직원들이 모두 워크샵에 휴가 등등으로 자리를 비워 걔와 나 둘이 덩그라니 둘이서 사무실을 지켰다. 성격이 꽤 있는 것 같아서 마음에 든다. 위에 말한 또라이한테 호락호락 당할 성격은 아니라 다행이다.

걔와 2호선 전철까지 같이 나란히 앉아서 오는데, 어색해 죽는 줄 알았다. 걔가 여자였다면 좋았을텐데.. 또래 여자는 뽑을 생각이 전혀 없어보인다.  

 

3. 회피

문제를 회피하면 그 보다 더 큰 문제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 건 진리인 것 같다. 대학을 졸업한 후 직장생활을 돌이켜보면 항상 그랬다.

 

4. 친구네 집

용인 친구네 집에 갔다. 오랜만에 운전을 오래 했고, 이번에도 역시 용인 시내 들어와서 이상한 길로 잘못 들어 고생했다. 친구와 치킨을 먹고 낮잠을 한 숨 잤더니 밤 7시가 넘었다. 친구가 피곤했는지 치킨을 다 먹고 눕자마자 잠이 들었다. 새해 되서 처음 봤고, 언제나 하는 이야기는 비슷한데 언제나 편안하고 기분이 좋아진다.

이 친구가 없으면 대체 내가 어떻게 이 세상을 살까 싶다.

 

5. 자유공원

2016년 들어 처음으로 자유공원에 갔다. 사람이 별로 없었고, 아픈 뒤 처음이라 그런지 올라가는 데 예전보다 훨씬 힘이 들었다. 미세먼지 없는 파란하늘을 바라보며, 내일 회의와 업무에 대해 좋게 생각해보려 애썼지만 쉽지 않았다.

오늘 근 한달만에 교회에 갔는데, 담임 목사님께서 은퇴를 하신다고 한다.

성당과 달리 교회는 목사님 따라 교인들이 많이 관두고 옮기고 하는 편인데, 이 교회는 어떨지. 우리집은 항상 제일 가까운 교회 다니고, 현재 이 교회가 제일 가까우니 아마 계속 다닐 것 같다.

기도를 더 열심히 해야겠다 하고 다짐했다.



다짐

일상 2015. 8. 3. 00:50

어제 오늘 집에만 있었다. 너무 뜨거워서 나갈 엄두가 안나기도 했고, 또 갈 곳이 없기도 했다. 오늘 오후 2시쯤 공부할 책을 보러 교보문고에 갈까? 잠시 결심 했다가 옷을 챙겨 입는 것이 너무 귀찮아서 그냥 인터넷 미리보기로 책을 보고 구매했다.

 

어제는 학교에서 하라는 신체검사를 하러 인천기독병원에 갔다. 적어도 30년 이상 된 것 같아 보이는 기독병원은 천장이 엄청나게 낮았고, 종합병원답지 않게 한산해서 좋았다. 큰 스탠드형 에어컨 두개가 양쪽 끝에 있었는데 시원했다. 그런 큰 스탠드형 구식 에어컨도 오랜만에 봤다.

학교 정직원들은 분명 학교에서 신체검사 돈도 내줄텐데 나같은 계약직은 내 돈 내고 내가 해야 한다. 이런 썩을. 이 세상은 뭔가 잘못된 거 같다. 내 월급의 2배 이상을 받는 사람들은 왜 공짜로 신체검사하고 난 그 사람들 절반만 받고 일하는 계약직인데 왜 내 돈을 내고 신체검사를 해야 하는가.

신체 검사 중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피뽑기를 하고 지혈을 제대로 안해 핏줄이 막 팔에서 튀어나오려고 했고 그걸 보고 있자니 좀 무서웠다. 결국 팔에 피멍이 들었다.

이번 신체검사를 계기로 내 정확한 키를 알게 되었다 158.2cm 였다. 우울하지만 난 대한민국 평균보다 작다. 

 

우리집에서 기독병원 가는 길은 담쟁이 돌벽 같은게 있고, 옛날 집들이 쭉 늘어서 있다. 그래서 그런지 거기서 유난히 드라마 촬영을 많이 한다. 어제도 윤계상 나오는 드라마 찍는다고 차량 수십대가 와 있고 막 대사 하는 소리가 들렸는데, 나랑 엄마는 구경할 생각도 없는데 스텝들이 막 앞서서 길을 막아 기분 나빴다. 그 더운 날씨에 서서 보라고 해도 보기 싫었는데... 그나저나 어제 같은 날씨에 야외에서 몇시간씩이나 일하는 방송 관계자들도 좀 안됐더라.

 

요즘 연애가 잘되가서 마음이 넉넉해진 남동생한테 전화가 왔는데, 다행히 이번에는 별로 안 혼나고 잘 넘겼다. 맨날 나를 타박하는 동생이지만, 어찌됐든 내 편이라는 생각이 드니 든든하기도 하고. 자매만큼은 아니어도 남매사이에도 끈끈한 남매애 같은 게 있기는 있는 모양이다. 동생이 날 타박할 때마다 미워 죽겠지만, 결국 동생이 이렇다. 하고 결론을 내려주면, 아하!! 하고 확신을 하게 되니, 나도 참 누나 자격이 없는 것 같기도 하고.

 

공부를 다시 해야해서 책상 책꽂이 정리를 새로 했고, 오랜만에 토익책을 꺼냈다. 내가 다시 토익공부를 하게 될 줄이야. 동생이 공부한다고 대학 졸업 전에 토익 모의고사 문제집을 2권이나 사놓고 단 한장도 풀지 않은 걸 버릴까 말까 하다가 그냥 놔뒀는데 이제서야 그 문제집을 풀게 됐다. 오랜만에 풀다보니 꽤 재밌었다. 그냥 혹시나 하여 봐두려는 거니 뭐 심각하게는 공부 안하겠지만, 그래도 점수가 높으면 좋을테니까.

난 할 일 없고 우울한 생각 들때 어렵지 않은 문제를 풀면 좀 안정이 되는지라 오늘도 토익 문제 풀면서 마음의 평화를 찾았다.

 

전 회사에서 당한 수모를 생각하면 뭘해도 될 것 같은데, 그것도 뭐 지금 뿐이겠지. 아까 인터넷 서점에서 산 책도 일단 한번 보면 느낌이 올 것 같다. 이게 내 머리로 될 건지 안될건지.

 

친구가 엉킨 실타래를 지금부터 하나씩 푼다고 생각하라는데, 늦은 거 아닐까 싶다. 며칠전 본 중학교 친구는 지금 애가 돌이고 벌써 둘째도 임신했다는데, 난 대체 뭐하고 있는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옛날부터 나는 뭐든 쉽게 되는 게 없었으니까, 이번에도 남들보다 늦는다고 생각하자. 맘 편히 먹자.. 이러면서 혼자 막 좌절했다 혼자 또 정신승리했다 그러고 있다.

 

한가지 위안이 되는 건 우리 엄마는 이 와중에도 쇼프로 보면서 큰소리로 막 웃으신다는 거다. 우리 엄마도 지금 회사에서 고생 많이 하고 있고, 딸 신세가 갑자기 우울해졌는데, 언제나 저렇게 즐거운 걸 보면 막 위로가 된다. 이런 상황에 엄마까지 우울함에 빠져 계셨다면 정말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엄마를 보면서 종교의 힘 같은 걸 느낀다. 그래서 저저번주부터 열심히 교회에 가고 있다. 이상하게 교회 가기 전에 눈이 떠지고, 예전과 똑같이 기도하고 있다.

 

오늘 동생의 조언에 힘입어 나를 힘들게 했던 관계도 오늘 마음 속으로 말끔하게 정리했다. 이렇게 쉬운 것을 왜 망설였는지 모르겠다. 정말 별 거 아니었고, 의외로 내 삶에 별 영향도 없다. 그만큼 뭐 중요한 사람이 아니었다는 뜻이겠지.

 

아까 8월부터 12월까지 뭘 어떻게 해야겠다는 계획을 좀 세웠다. 엊그제 포스팅 했듯 5년 뒤에도 이 상태면 난 죽든지 사라지든지 해야 하니, 난 누가 알아주든 아니든 열심히 살아야 한다.

 

엄마의 영향과 친구의 영향으로 잠들기 전에 기도를 하기로 했다. 마음을 곱게 먹어야 뭘 해도 될 것 같아서. 성경도 하루 한장이라도 보기로 했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종교가 왜 필요한지 뼈져리게 느꼈다. 나는 힘이 없어서 그들에게 복수(?)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벌을 주실거야. 내 마음을 알아주실거야. 하는 생각을 하니 이상하게 위로가 됐다.

하나님이 계시든 안계시든 난 죽을 때까지 기독교 신자로 살다가 죽기로 했다. 되도록이면 교회도 매주 가고.


집앞 교회.

일상 2010. 7. 6. 00:11
내 방은 불을 꺼도 밝다. 우리집 바로 앞에 있는 교회 지붕이 엄청 높은데 거기에 덕지 덕지 붙여놓은 조명이 어찌나 강한지 내 방까지 들어올 정도다.
원래 우리도 그 교회를 다녔다. 가깝기 때문이었다. 자리도 텅텅 비어있고 실내는 또 어찌나 어두웠는지 모른다. 그러다가 그 교회는 망했다. 교회에 망한다는 표현을 해도 될 지 모르겠지만 교인이 너무 없어서 교회를 다른 곳에 임대하면 망했다고 밖에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 후 그 교회는 대공사를 시작했다. 꽤 오랜기간 공사를 하더니 새로운 교회가 떡하니 들어왔다. 새로 들어온 교회는 소위 사이비라고 말하는 교회였다. 교주가 있고 그 교주가 죽고 그 교주의 부인을 믿고있는 교회였다. 나는 가족들이 교회를 다니니까 이정도 알고 있는 건데, 아마 전혀 모르는 사람은 똑같은 교회인 줄 알지도 모르겠다.
그 교회가 들어온 후 대대적인 전도 행사를 맨날 하고 있는데 예전에 난 한번 낚였다. 수영을 갔다가 집 앞 횡단보도에 서 있는데 대학생 쯤으로 보이는 애들 3명이 다가와서 동아리에서 나왔는데 자기들이 만든 UCC 가 괜찮은 지 봐달라는거다. 몇 분 안된다고 하기에 난 알겠다고 했다. 그래서 자기네들 노트북을 열어서 보여주는데 그 동영상은 자기네 교회의 정당함을 주장하는 동영상이었다. 그래서 내가 그걸 보다가 피식 하고 웃었더니 왜 웃냐고 물어보더라. 그래서 저 여기 교회 어떤 교회인 줄 충분히 아는데요. 저는 안 믿어요. 라고 말하고 와버렸다.
그랬더니 어떻게 알고 계신거냐고 물어보면서 날 붙들었다. 다행히 때 맞춰 신호등 파란불이 들어와서 건너서 다행이었다.
그 뒤로 그 교회는 매일 낮에는 매실물을 타서 나눠주고 있는데 그걸 받아서 마시는 사람들에게 저희가 저 교회에서 나왔다. 한번 꼭 와라. 라는 멘트를 붙이고 있다.
며칠전에도 역시 그 교회 사람들이 나와서 전도 활동을 하고 있는데 난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했다. 어떤 아줌마에게 그 교회 사람이 다가가서 종이컵에 들은 차를 주는데 그 아줌마가 그 차를 바닥에 다 버리고 나서 종이컵을 교회 아줌마에게 주는 거다.
그 정도로 심하게 하는 사람을 난 처음 봐서 많이 놀랬다. 아무리 싫어도 그렇지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기도  했다. 우리 동네에 사이비 교회가 생긴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난 좀 짜증이 났지만, 교회가 생긴 후 거기 다니는 사람들을 보니 생각보다 멀쩡해서 뭐 그렇게 나쁘게 볼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정통 기독교라고 주장하는 교회 중에서 엄청난 헌금으로 교회나 짓고, 장사하는 사람들을 너무 많이 봐서 차라리 교주를 믿는 이상한 종교라도 헌금으로 좋은 일을 한다면 정통 기독교보다 못한게 뭘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에 기독교 종사자들이 많다보니 평소 종교에 좀 관심이 있는 편인데, 내가 지금 이야기 한 게 기독교의 영원한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인 것 같다.
교회에 태어나서부터 계속 다녔지만 온갖 나쁜 짓만 하고 교회가서 맨날 회개하여 용서 받은 사람. 교회를 안다니고 교회에서 인정하지 않는 다른 교리를 믿는데 평생을 봉사하고 배풀다가 죽는 사람.
둘 중에 과연 누가 좋은 사람일까?
교회 말대로라면 좋은 사람이라도 교회를 안다니면 죄를 받는다고 말하는데 그건 말도 안된다. 차라리 예수님 하나님으로 장사하는 교회 종사자들이 벌을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뭐 성경이라는 건 해석하기 나름이겠지만. 진짜로 신이 있다면 그 정도는 판단하실거라 믿는다.
음료수를 다 버린 아줌마는 아마 집앞 교회가 어떤 교회인지 아는 사람이거나 아니면 아예 종교를 혐오하는 사람이거나 둘 중 하나겠지만, 집앞 교회가 사이비라고 해서 난 그 사람들을 이상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물론 걔네들이 믿는 교리에는 전혀 동의할 수 없지만 말이다.

6.25 이야기

일상 2010. 5. 25. 12:42

황석영 소설 '손님' 속의 한국 전쟁은 더 읽고 있기 힘들 정도로 괴로울 정도였다. 이청준의 (반 정도는 이해하지 못한 체로 읽었던) '우리들의 천국' 에서 잠깐 나오는 한국 전쟁 역시 마찬가지.
요즘 한국전쟁 60주년 기념해서 영화도 많이 나오고, 드라마도 나오고 한다는데 그러다 보니까 초등학교 1학년 때 일이 생각났다.
요즘에는 교회에 안가지만, 사실 우리 집은 엄마쪽 아빠쪽 모두 기독교다. 나도 어렸을 때는 교회에 다녔다.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는 정말 열심히 다니다가 그 이후서부터는 서서히 잘 안다니다가 지금은 아예 안간다.
그런데 어렸을 때 교회 가는 건 친구들도 만나고 놀러도 가고 좋은 것 같다. 나도 어렸을 때는 애들이랑 꽤 재밌게 놀았다. 중학교 1학년때는 작은 교회에 다녔는데 선생님부터 애들까지 다 남자애들인데 엄마가 죽어도 가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갔는데 친구가 없다는 외로움에 가기 싫어서 울기도 많이 울었다. 그런데도 교회 보낸 우리 엄마는 참 대단하다. 아무래도 그때부터 교회에 대한 반감이 커진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고3때는 유일하게 늦잠 잘 수 있는 요일이 일요일인데 엄마가 10시만 되면 깨웠다.(난 12시까지 자고 싶었다) 늦게까지 머리 감고 세수하는 나 때문에 맨날 지각을 하면서도 단 한주도 안 빼먹고 엄마는 교회에 날 데리고 갔다. 그때부터 난 아예 교회가 싫어졌다. 어떻게 보면 다 엄마 때문이다.
내가 오죽 한이 맺혔으면 23살 넘어서까지 엄마한테 가끔 엄마 왜 고3때 맨날 일요일마다 나 깨웠냐고 따졌다. (뒤끝 쩝니다) 어쨌든 난 그 이후로 아예 교회에 안간다. 마음속으로는 어느 정도 믿고 있지만 말이다. 그리고 종교로 사업하는 교회 꼴도 보기 싫고, 내가 단번에 어떤 사람한테 정이 뚝 떨어지는 수많은 이유 중  "교회 청년부" 소속이라는 걸 알았을 때도 있는 걸 보면 내가 싫어하는 건 기독교 라기 보단 교회 인 것 같기도 하다.
말이 길었지만, 초등학교 때 난 지금 처럼 잠이 많지도 않았고 일요일이라고 해도 바깥은 한 번 이상 나가야 직성이 풀렸기 때문에 교회 가는 게 싫지 않았다. 어린애들이 참 기운이 장사라는 생각이 드는 게 초등학교 때는 아빠 엄마한테 주말에 제발 어디 나가자고 그렇게 보챘는데 지금은 나가는 게 이렇게 귀찮으니... 확실히 어렸을 때 뭔가를 해야 하는 것 같다.
8살 때 난 황우석 박사의 고향인 충청도 홍성(엄청 시골이었음) 에 살고 있었다. 내가 다니던 교회는 중앙감리교회. 그 교회는 내가 학교를 왔다갔다 할 때마다 지나가야 하는 교회였고, 그 교회 문 앞에는 엄청나게 큰 개가 있었는데 봄 쯤에 새끼를 8마리나 낳었다. 등교길에는 아빠가 자전거로 데려다 주시는 경우가 많았고, 오는 길에는 혼자 집에 왔는데 워낙 시골이었기 때문에 정말 산을 넘어 집을 왔다. 난 너무 힘들어서 교회 앞을 지나가면서는 잠깐 쉬면서 그 새끼 강아지 8마리가 엄청 큰 엄마개 젖을 먹는 장면도 보고 그 앞에서 서서 손 모으고 기도까지 했다. 8살 짜리가 뭐 그렇게 기도할 게 많았는지 모르겠지만 교회 지나가면서 거의 매일 기도를 했다.
바람직한 기독교인이던 8살의 나는 어느 일요일 또 교회에 갔다. 그런데 원래 우리를 가르쳐 주시던 선생님이 안나오시고 어떤 아저씨가 (뭐 교회에서 장로님 쯤 되는 분 아니셨을까?) 오늘 선생님이 안오셔서 내가 대신 수업을 하게 되었다며 애들 앞에 앉으셨다. 그러더니 "내가 성경에 대해서는 너희들에게 이야기 하기 좀 어렵고, 니들 6.25 아냐? 내가 6.25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데..." 하면서 6.25 이야기를 해 주셨다. 지금도 생각나는게 중공군이 쳐들어 와서 죽여도 죽여도 계속 사람이 밀려들어와서 한국군이 쫓겨났다. 하는 내용.
지금 생각하면 참 그 장면이 웃기다. 8살이면 완전 애기들인데 왜 그 분은 그런 이야기를 애들 앉혀놓고 하셨던 것일까! 어찌되었든 난 그날 수업 끝나고 엄마에게 "엄마 오늘 교회에서 들은 이야기이인데.. " 이러면서 그대로 들은 이야기를 전했고 우리 엄마는 "무슨 그런 이야기를 했대~~참나." 하면서 기가 막혀 하셨다.


26일은 운 좋게 휴가를 낼 수 있어서 난 25일부터 28일까지 4일이나 쉴 수 있게 되었다. 얏호!
24일 밤은 앞에 포스팅에서 썼듯 그냥 바로 집으로 왔고, 25일은 엄마 때문에 교회에 갔는데 교회에서 나보고 성가대도 하고 교회학교 선생님을 하랜다. 나보고 주말에까지 하기 싫은 일 하면서 보내라고 이 인간들아? 이런 생각이 들면서 갑자기 열이 빡 받아서 엄마한테 다시는 교회 안간다고 신신당부를 했다. (진짜 너무 열받아서 울뻔했다) 어렸을 땐 잘 다니던 교회인데 난 그냥 교회가 너무 싫다. 그냥 조용히 다니게 만들어 줄 순 없는걸까? 내가 그렇게 교회 등록하지 말고 다니자고 그랬는데 우리엄마는 결국 등록을 해버렸다. 일요일 아침마다 난 안간다고 버티고 엄마는 가자고 그러고... 내 성격 상 앞으로도 영원히 교회 다니면서 신께 기도할 순 없을 듯 하다.

엄마아빠는 이모 문병가신다고 나가고 나는 누워서 자기 시작했는데 세상에 거실 바닥에서 2시 반 부터 자다가 일어나보니 7시였다. 그렇게 내 26살 크리스마스는 지나갔다. 히히히. 좋은거야 나쁜거야.

우리집은 약간 남서향으로 창이 나 있는데 서쪽으로는 멀리 바다가 보인다. 멋있는 바다는 아니지만 해 질 때쯤 되면 멍하니 해지는 모습을 쳐다보고 그런다.
난 해지는 거 보는게 너무 좋다. 어렸을 때 해 지는 거 멍하니 쳐다보다가 눈물이 나왔다는 얘기도 썼지만, 그냥 난 해지는 거 보는 게 좋고 하루 중에 최고 좋은 시간도 해진 직후다.
맨날 12시 쯤 일어나서 느릿느릿 씻고, 느릿느릿 할 일 하다가 월미도 가서 해지는 거 구경하면서 살았으면 좋겠다.

오늘은 만 24살의 마지막 밤인데 머리에는 기름만 가득하고 하루종일 빈둥거렸구나.
억울하거나 우울한 느낌은 전혀 없고, 그냥 오래만의 이 여유로움이 너무 행복하고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