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취직한 곳은 내가 졸업한 학교이다. 뭐 어차피 여기 있는 사람들 중 대부분은 내 직장을 알든 모르든 상관 없을테니 그냥 적는다. 대학원 교직원 정규직은 뭐 숨겨진 신의 직장이라고 하는만큼 엄청난 사람들이 가는 곳이고, 나는 전에도 썼지만 100% 리얼 계약직이다.
내 전에 있던 언니도 계약기간 만료되서 관두고 나간건데, 그 언니는 잘 풀려서 나갔다. 정규직으로 갔으니까. 난 정규직으로 일하다가 계약직으로 인생이 다운 그레이드가 되었는데, 그렇다하더라도 출퇴근 도합 1시간 30분이 안된다는 건  엄청난 축복이다. 예전에는 가는데만 1시간 반이었으니 말이다. 갈 때 시간이 짧은게 더 좋은데 갈때는 50분 남짓, 올 때는 내가 타는 버스가 난폭운전을 해서 30분이면 집에 온다.
저녁을 안먹고 1시간 가량을 더 일해도 집에 올때까지 배고픈 걸 참을 만 하다.
대학교다보니까 개강 때 쯤이 가장 바쁠 때 인데 불행히도 난 가장 바쁠 때 여기에서 일하게 되었다. 내가 졸업한 학교긴 하지만 내가 졸업한 과는 아니다. 그래서 교수도 낯설고 과목도 낯설고 애들도 한명도 모르겠다.
회사에서 일하다가 학교로 온거라 난 회사보다 좀 느슨하게 슬슬 일하면 될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다. 퇴근하기 전에 해야할 일을 적어놓는데 항상 10가지가 넘고 야근을 한다고 한들 해결할 수가 없다. 난 아무것도 모르는데 물어볼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말이다.
과마다 적용되는 게 워낙 상이하다보니 가끔 대학본부에 있는 사람에게 물어봐도 답이 안나오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에는 어쩔 수 없이 전에 일했던 언니에게 물어보고 있다. 이런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서 그 언니에게 인수인계 받는 일주일동안 엄청 언니한테 잘보이려고 노력하고, 말도 잘 들었는데 그 언니 반응이 영 시원찮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언니도 다른데 일하는 상황이다보니 내가 물어본 것에 대답하기가 힘들겠지.
그 언니와 내가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보면, 내가 이미 다른 곳에서 일하고 있는데 관둔 직장에 새로 들어온 애가 뭔가 물어본다면 그냥 개무시하고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언니도 입장을 바꿔서 생각하면 아는 사람이 한명도 없는데 정말 용기내서 물어본 건데 무시하면 내가 너무 불쌍하지 않은가?
잘난 척 같지만, 난 쓰잘데 없이 오지랖이 넓어서 전 직장도 내 다음 사람이 뽑힐 때까지 기다리고 그렇게 바보짓 하느라고 원래 받아야할 돈도 100만원 넘게 못 받았다. 근데 난 그게 오히려 편했다. 후배가 이를 갈며 날 원망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고 입사초에 내가 똑같은 상황으로 인해 쌩고생을 했기 때문이다.
저번주도 이번주도 어쩔 수 없이 그 전임자 언니에게 물어볼 내용이 많은데, 가끔 네이트로 물어보면 " ^^;;;;;" 이런 표정만 찍어서 말을 할 때가 있다. 꼴에 자존심 때문에 내 딴에는 이 방법 저 방법 다 보고 전화해봐도 모르겠을 때 언니에게 말 거는데 저 "^^;;;;" 표정이 나오면 난 별안간 기분이 확 상한다. 거절하고 싶은데 거절하려고 하는 말은 못하는 그런 기분을 나타내는 것 같아서 말이다. 도대체 ^^;;;; 이 표정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무슨 의도로 이 표정을 사용하는가? 난 ^^ 이 모양도 무지하게 사용 안하는 편인데 ^^ 도 모자라서 ;;;; 까지.
안그래도 화가나고 서러운데 며칠전에는 밤에 횡단보도에 서서 음악 듣다가 눈물이 핑 돌았다. 군대에서 2주 적응기간을 준다는데 이제 난 2주째 일 뿐인데 뭔 물어보는 건 그렇게 많고 해결해야 하는 건 또 이렇게 많은지.
문득 계약직이 서러운게 짤리는 것도 짤리는 것 때문에 서러운 것도 있지만  새로운 일에의 적응 때문에도 무지하게 서럽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 직장에서도 느꼈지만 그 회사에서 뭔가 어떻게 해야겠다고 나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건 적어도 1년 6개월 정도 지난 시점이었는데 말이다.
아무리 전임자 언니가 원망스러워도 내 입장이 워낙 약자의 입장이다보니 그 언니가 대답해주면 고맙다는 인사를 절대 빼먹지 않고 진심으로 하고 있다.
아. 괴롭다.
참고로 과외에서는 짤렸다. 일주일동안 일이 많아서 제대로 못갔더니 아줌마가 날 짤랐다. 여차저차 힘들었는데 오히려 잘된 거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애랑 정이 많이 들었는데 아쉽기도 하고 그렇다.

어린 친구.

일상 2010. 8. 21. 00:15
요즘 내가 하는 가장 중요한 일거리는 과외하기다. 과외하는 아이의 집안 사정을 일일이 다 쓰는 것 같아서 아무리 개인 블로그라고 해도 안 쓰려고 했지만 써야겠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과외는 2개인데 그 중 1집 아이와 엄청 친해졌다.
남에게 무심한 척 하면서도 알게 모르게 동정심이나 책임감 등을 과도한 나는 그 집 아이를 그냥 과외 학생으로만 대하기가 어렵다.

중2짜리 오동통하고 키는 벌써 165cm 라 이제 그만 커도 되는 여자애인데, 걔가 처한 상황을 보며 과거의 중학교 시절을 되돌아보곤 한다. 동생도 없고 언니 오빠도 없는 무남독녀인 그 친구(별다른 호칭을 찾지 못하겠으니 이제부터 친구라고 하겠음)는 밤 11시 부터 반지하방에서 혼자 자고 혼자 일어나서 학교에 간다. 새벽에 엄마가 들어오긴 하지만, 엄마는 들어와서 취침을 취하기 때문에 일어나서 씻고 학교에 가는 건 그 친구의 몫이다. 집이 가난한 건 아니지만, 집에서 밥솥에다가 한 집밥다운 밥을 먹을 수가 없는 상황이라 저번에는 이틀동안 과자 부스러기 먹은게 전부라는 말을 듣고 안쓰러워서 시장 안에 있는 밥집에 데려가서 밥도 사서 먹였다.

뜬금 없지만 중요한 이야기를 하나 또 하자면 아까 낮에 청년백수의 심정이라고 글을 썼지만 한정적으로 백수에서 벗어났다. 바로 다음주 월요일부터 출근을 하게 되었기 때문에. 그런데 또 취직이 되었다고 마냥 기뻐할 수도 없는 게 면접 볼 때 최장 2년 계약 정규직 혹은 계약 연장 절대 없음을 못박은 곳이라, 시한부인생으로 들어가는 기분이다. 2년 뒤는 여기서 짤린다 하는 절박한 상황이 되면 그 안에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내 인생에서 승부를 볼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결심으로 출근하기로 했다. 이러한 대우에 걸맞게 월급도 매우 저렴한데, 대신 우리집에서 버스 한번에 20분 정도면 도착하니까 업무 이외 시간을 정말 제대로 좀 활용해서 이런 비참한 상황에서 좀 벗어나보자. 제발.

출근을 하게 되어서 과외를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을 했는데 나의 괜한 오지랖 때문에 이 친구를 그냥 나 힘들어서 못하겠다고 할 수가 없었다. 그 집 어머니도 애가 너무 선생님을 좋아하고 따르는데 주말만이라도 와서 봐달라고  하니까. 또 나도 이미 친해질 대로 친해져서 모른 척 하기도 그렇다. 그래서 오늘 그 친구에게 주말 평일 다 활용해서 일주일에 4시간 정도로 수업 하는거 어떠냐고 물으니 괜찮다고 해서 당분간은 수업을 하기로 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내가 취직을 해야만 하는 이유, 부모님께서 하는 가게의 월세, 나의  미래에 대한 막연한 계획까지 그 친구한테 말했는데, 의외로 어른스럽게 내 상황을 이해도 해주고 위로까지 해줘서 고마웠다. 저번에는 진심으로 "선생님 이해해줘서 고마워" 라고 말했을 정도니까. 중3이면 96년생. 정말 내 기준에서는 어린이인데 요즘에는 수업 하는 시간보다 둘이 수다떠는 시간이 점점 더 길어져서 고민이다. 중간고사 닥치면 진도를 어떻게 빼야할 지. 수업하면서 질문하면 대답도 꼬박꼬박 하고 수학 문제 푸는 거 보면 원래 머리가 나쁜 애는 아니라 이번 중간고사때는 꼭 수학을 80점대로 올려놓으리라!!! 하고 의지를 불태웠는데 80점 맞으려면 4문제 정도 틀려야 하는거라 쉽지 않다. 수업하러 가면 얼굴에 "학교에서 있었던 일 이야기 하고 싶어요" 라고 써 있는게 눈에 보이는데 그걸 다 무시하고 수업만 주구장창 하기도 어렵다.

원래 하려던 이야기는 그 친구 집에 있는 애완견 이야기였는데, 외롭게 있어야만 하는 상황이다 보니 이런 경우에는 애완견이 참 도움이 되겠구나 생각을 했다. 요즘에는 애완견이라고 안하고 반려동물 이라고 하는건가? 여하튼.
나는 동물과 사람이 한 집에서 사는 건 불가능 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나다. 개들이 자기 몸을 털 때 마다 그 털에서 나올 세균을 생각하면 진저리가 쳐지고, 개가 집안 곳곳에 똥오줌을 싼다고 생각을 하면 소름이 끼치고, 심지어 만약에 나중에 결혼해서 남편이 죽어도 집에서 애완견을 키우겠다고 하면 별거사유 혹은 이혼사유일 정도로 털 있는 동물을 가까이 하는 걸 혐오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난 강아지 똥오줌 치워주고 밥 챙겨줄 자신 없다. 레옹처럼 난 최소한만을 요구하는 식물이 좋다. (백수가 되고 부터 집안에 있는 식물을 더 애지중지 하고 있음)
하지만 그 친구는 애완견이라도 없으면 너무 외로운 상황이고, 그 애완견도 그 친구를 무척 따르기 때문에 난 하는 수 없이 그 강아지와 한 방에서 함께 과외를 하고 있다. 옆에서 그 늙은 흰 개가 내가 수업하는 걸 앉아서 지켜보고 있고, 그 친구는 그 강아지가 움직이면 금방 또 그 개한테 정신이 팔리고 그러는 상황이다. 뭐 그거까지는 괜찮은데 문제가 또 있다. 하필 내가 과외하는 그 시간대가 그 개가 똥을 싸는 시간이라서 저번에도 그렇고 오늘도 그렇고 수업하고 있는데 옆에서 똥을 쌌다. 베란다가 없는 집이라 똥도 그냥 집에다가 싸는데 죽을 맛이다. 진짜. 냄새는 또 어찌나 지독한지. 그 개가 똥을 싼 날에는 집에 와서 누워서 잘 때까지 그 놈의 똥 생각만 난다. 아아아. 그런데 그 개는 내가 1주일에 3번씩이나 그 집에가서 그런지 나한테 엄청 들러 붙는다. 난 개 정말 싫은데, 애완견 키우는 모든 사람들 정말 존경스럽다.  오늘도 자야 하는 데 자꾸 그 개가 싼 똥오줌이 생각나서 이렇게 포스팅 한다. 참나.
 
아 그리고 저번 밀린 사진 정리 포스팅에서 빼먹은 사진이 있는데 그 친구네 과외하러 오다가 저번에 찍은 무지개다. 무지개보고 그 친구에게 무지개 떴다고 무지개 보라고 문자 보냈는데, 자기 방에서는 안보인다고 안봐도 괜찮다는 문자가 왔다. 아아. 너무 감정이 메마른 어린 친구. 그래서 나랑 말이 통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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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의 고뇌.

일상 2010. 7. 31. 14:26
백수생활을 한지 8월 9일이면 4개월이 되어가려는 찰나였다. 운 좋게 과외하는 집을 잘 잡아서 한달 100만원 남짓의 돈을 벌고, 수영도 배우고 9시까지 잠도 자고 그럭저럭 잘 보내왔다. 나름 만족하면서.
그러다가 앞에 글에 포스팅을 한 다음부터 모든게 급물살을 타며 변화하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어느 정도 상황정리가 된 상태다.
우선 결론을 말하자면 난 8월 3일부터 한남동으로 출근을 한다.
저번 충무로 보다는 조금 가까워 졌지만 역시 멀다. 인천은 망해가는 도시인지 내가 일할 자리가 없었다. 저번에 송도에서 면접본 곳은 정말로 가고 싶었던 곳이었지만, 보기 좋게 떨어졌다.
교수가 말해준 곳으로 어떤 곳인지 하고 가봤는데, 전에 일하던 곳에서 미친듯이 하기 싫어했던 업무가 일단 빠져 있었다. 그리고 약간 정부의 모 부 밑에 있는 부서 중의 하나로 만약에 다닌다면 정년도 보장이고 육아휴직도 보장이고 4대보험도 들어주고. (일단 가기로 마음 먹고 나니 필사적으로 그 직장의 장점을 찾으려고 노력 중) 난 내 전공을 정말 싫어하지만 대학 때 내 전공을 좀 인정해 주는 분위기고. 정말 문제가 많았던 월급은 올려준다고 해봤자 얼마 안되겠지만, 조금은 올려준다고 했으니까 말이다. 가서 보니 사람들이 그냥 청바지에 티셔츠 운동화 신고 회사 다닌다. (나한테는 정말로 중요한 문제다. 맨날 화장에 오피스룩 입고 다니는 회사는 절대 못다닐 체질)
또 거기를 선택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한남동과 함께 고민중이던 다른 직장에  떨어져버렸다. 에잇.
밤에 누워 생각을 하는데 미친듯이 이력서를 쓰고 면접보러 가서 어떻게든 날 포장하는 짓을 또 해야 하나 싶기도 하고 그래도 한남동은 내가 말하면 될 분위기던데 싶고, 지금 과외 하나만 더 하면 대충 먹고 살긴 하는데 하다가도 그래도 내 나이가 28인데 정기적으로 나오는 월급이 있어야 어른 노릇 하는거 아닐까 하는 여러가지 고민의 고민을 거듭하다가 나중에 이래도 후회 저래도 후회일 거 같아서 결심을 했다. (고민 하는 동안 잠도 완전 설침)
그러다가 어제 약간의 문제가 발생했는데 한남동에 다녀온 후 그래도 이틀 정도는 생각을 해봐야겠다 싶어서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말하고 금요일 오전 중으로 말씀드리겠다 했는데 전화가 절대 안되는거다. 그래서 계속 전화를 하다가 지쳐서 여기를 추천한 교수에게 전화를 했더니 나한테 크게 화를 냈다. 너는 면접을 어떻게 봤길래 여기서 다른사람 뽑으라고 메일이 오냐고. 내가 한 말이라곤 전에 회사 왜 관뒀냐 물어봐서 정신적 스트레스가 너무 컸다고 말했는데 그 쪽에서는 힘들어서 관두는 사람이 일을 할 수 있겠냐고 따졌댄다. 그래서 다른 애 이력서 넣으라고 말을 해놨다고.갑자기 난 다급해졌다. 그래서 모양 빠지게 그 연맹에 매달리는 꼴이 됐고, 난 급히 8월 3일에 출근을 하게 된 것이다.
출근을 하기로 마음을 먹으니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그건 바로 과외. 물론 계약서 안 쓰고 하는 일이라지만, 2달만에 과외 이제 못한다고 학부모님들한테 말할 생각을 하니 머리가 지끈 지끈했다. 그리고 내가 과외하는 애들이랑 필요 이상으로 정이 든 것도 걸림돌이었다. 남의 집 사정이라 하나하나 열거하면 안되기 때문에 안 썼지만, 나 중학교 때에 비하면 어쩔 수 없이 의젓해질 수 밖에 없는 애들이라 정도 가고 안쓰럽기도 해서 정을 너무 많이 준 것이 화근.
두군데 과외 중 한 군데는 집이랑 가까워서 일단 다른 선생님 구할 때 까지는 주말에 해주기로 하고, (여기는 주말에 하루 2시간만 시간내서 하면 되는거라 괜찮으면 계속 해도 괜찮을 거 같다;;) 다른 한 군데는 (이 집에서 공부하는 여자애랑 정이 심하게 많이 들어서 울 뻔했음) 일단 내일 가서 주말에 2시간 정도면 봐주겠다고 할 예정인데, 본의 아니게 돈에 미친 사람처럼 당분간은 투잡 뛰게 생겼다.
여하튼 상황이 좀 정리되서 편하다. 다시 새로운 직장에 익숙해질 생각하니까 토나오지만.  

면접 탈락.

일상 2010. 7. 16. 00:54
저번에도 이야기 했지만 난 예전 회사 경력을 이용하여 다른 일을 할 계획은 없다. 회사를 관둘 때 다시 정상적인 직장인으로 편입은 영원히 어려울 가능성이 높다는 거 정도는 각오했기 때문에 요즘 내가 이렇게 고용보험 가입자가 아닌 상태로 놀고 있는 것에 조바심도 두려움도 없다.
그래서 과외나 하나더 늘려볼까 하고 나름의 영업활동을 펼쳤는데 그것도 뭐 그닥 잘 되질 않고. (엊그제도 집 가까운데 사는 애 하나 하는건가 싶었는데 별안간 다 취소되고)  
일전에 내가 송도에 간 이유는 이력서 때문이었다.
취업에 목숨 건 사람처럼 하루 종일 구직 사이트 들여다보고 이력서 쓰는 게 하루 일상의 전부는 아니지만 가끔 집에서 가까운 괜찮은 자리가 있으면 하나씩 그냥 넣어보고는 있다. 그 중 하나가 송도에 있는 거기였는데 평생 계약직이긴 했지만 가깝고 무슨 일 하는지 대충 알겠는거라 이력서를 넣었다.
한달이 넘도록 아무 연락이 없어서 또 서류 탈락이구나 하고 있었다. 본격적으로 그냥 과외 하면서 당분간은 돈벌자 하고 한건데 저번주에 면접을 보러 오라고 연락이 왔다.
그래서 유령도시 송도에 다시 갔는데, 생각보다 경쟁자가 너무 많았다.
한 3명 면접 보는 줄 알았더니 무려 5명.
예전 대학 졸업 후 면접 보러 다니면서 떨어진 면접 같은 경우는 느낌이 딱 오더니 역시나 그 예감이 딱 맞았다. 내가 면접실에 들어가자마자 거기 면접관들이 나한테 관심없는게 대번에 느껴져서 이러려면 날 도대체 왜 뽑았니 싶었다.
경력직으로 다시 취직하는 사람들 이야기 들어보면 이렇게 아예 신입 뽑을 때 처럼 여러 명 면접도 안보고 나름 대접해주면서 하는 거 같던데 다시 이런 취급(?)을 받다보니 새롭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하고 그랬다.
부모님은 은근히 기대하는 눈치였는데, 난 보기좋게 떨어져버렸다.
역시 사람한테든 회사한테든 거부당하는 느낌은 좋지 않구나.
과외를 두 집 하고 있는데 한 집 애는 다행히 머리가 나쁘지 않은 애라 성적이 꽤 올랐다. 뭐 중간고사 성적이 50점 이었으니 거기서 더 떨어지기도 어려웠을 터. 그리고 다른 한 집 애는 수업을 하면서 얘는 수학에 아예 관심이 없구나. 싶었는데 아니나다를까 30점이나 떨어졌다. 은근히 신경이 쓰이고, 30점이나 떨어진 집 갈 때는 껄끄롭고 그렇다. 그리고 그 30점 떨어진 집에서 7월이 중순인데 아직까지도 과외비를 안주고 있다.; 달라고 말하기도 뭐하고.
그런데 그 30점 떨어진 애는 내가 일차방정식의 활용 부분에서 소금물의 농도, 속도 속력 부분을 너무 못해서 내가 똑같은 문제유형으로만 한 30문제 풀어준 것 같은데, 그래도 전혀 한문제도 못 풀고 과외 시간에 아무 생각이 없는 것 같다. 중간 중간 문제만 읽어봐도 아는 질문을 해도 엉뚱한 대답을 하고 있으니,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아...다음 중간고사 때도 점수 떨어지면 왠지 짤릴 거 같다.
돈도 없고 비도 오고 면접에서 떨어지고 해서 갑자기 좀 우울해졌다. 아직도 갈피를 못 잡고 있는 내 인생.

팔도비빔면

일상 2010. 6. 18. 15:30
어렸을 때 쫄면 먹고 체한거랑 설사가 같이 와서 엄청 고생한 적이 있어서 그런 빨간 면들을 별로 안 좋아했다. 그래서 28살이 되도록 팔도비빔면을 단 한번도 먹은 적이 없었다. 그러다가 며칠전 한번 팔도비빔면을 먹고 나서 하루에 한번씩 먹고 있다. 자극적인 팔도비빔면에 커피까지 마시고 나면 원래도 장이 안 좋아서 좀 쓰린 느낌이지만, 이제 하루에 한번 팔도비빔면을 안 먹으면 서운하다.
어제도 간식으로 팔도비빔면을 먹고 엄마 생신이라 치즈케익을 먹었더니 바로 속이 안좋아서 식은땀 좀 흘렸다. 내 위장은 왜 이모양인지 모르겠지만 그나마 위장에서 바로 신호가 와서 밀가루를 멀리하게 되서 다행이다.
내가 다니는 수영장은 시립인데 뭐 수영장 물이 깨끗해봤자 얼마나 깨끗하겠냐만 거기를 다닌 후로 피부와 머리결이 완전 거칠거칠 해졌다. 아까도 1시간 연습하고 왔는데 이제 발은 뜨는데 호흡이 안된다. 뭐 이것도 한 일주일 연습하면 되겠지 설마;
집에만 있다보니까 인터넷 등을 통해 나같은 류의 사람을 많이 보게 되는데 초조해하는 사람, 사회적 잣대로 볼 때 잉여가 되어가는 느낌에 우울해하는 사람이 많은데 난 어떤 편인지 모르겠다. 난 오락가락 한다. 아 졸라 불안해. 하고 취업 사이트 기웃거리는 시간도 있고, 아 좀있다가 과외 가야 하는데 이러면서 중학교 수학을 진지하게 풀이할 때도 있고, 한자 공부해야 하는데 하면서 한자 쓰기를 한글자당 10번씩 쓸때도 있고. 여하튼 이러나 저러나 시간은 참 잘간다. 이렇게 난 29살이 되고 30살이 되고 점점 위너들과는 동떨어진 루저가 되어간다고 해도 만약에 내 마음속이 평안하다면 그럭저럭 잘 살 수있을 것 같기도 하다.
난 중고등학교 시절에 대한 미련이 많아서 그런지 꿈속에서 자꾸 중학생이 되거나 고등학생이 되는데 오늘 밤에도난 중학생이 되었다. 그런데 같은 반 학생들이 예전에 회사에서 내가 싫어하던 대리들 이었다. 거기 대리들이 날 엄청 따돌렸다. 수학여행 가는 버스 안이었는데 내가 목말라서 물 한모금만 달라고 했는데도 안줬다. 난 쿨한 척 하면서 혼자 잘 돌아다녔는데 잠을 자다가 일어나서 만년필로 노트에 외롭다고 일기를 썼다. (꿈속에서까지 찌질함) 그리고 두번째 꿈이 이어졌는데 방글라데시 같은데서 오는 외국인 노동자 숙소가 배경이었다. 내가 아무래도 외국인 노동자 신세였나보다. 그런데 그 숙소 한 가운데서 폭탄이 터졌다. 생존자는 나 포함 8명 이었는데, 어떤 일인지 난 그 폭파된 숙소에서 절대 나갈 수 없는 신세여서 그 더러운 숙소 중에서 가장 깨끗한 방에 들어가서 책을 읽었다. 크크크크. 이건 무슨 꿈인지 나원 참.
과외로 내 용돈 정도는 벌고 있는데 의외로 이 생활이 그렇게 싫지 않다. 마음이 편해서 그런걸까. 여하튼 내가 과외하는 애들이 다 너무 귀여워죽겠다. 난 운이 좋은 것 같다. 예전에 과외하는 애들 이야기 들어보면 못된 애들디 종종 있던데, 진짜 착하디 착한 애들이 걸려서 편하게 과외하고 싶다. 가끔 볼에 뽀뽀해주고 싶다. (중1,중2 여자애랑 초등학교 2학년 남자애-이 애기한테 두자릿수 덧셈 가르치고 있는데 중학생 수학 가르치기보다 더 힘들다)
있다가 올시즌 처음으로 기아 경기 보러 문학 가는데 설마 표가 없진 않겠지?

신기한 인천.

일상 2010. 6. 2. 16:35

난 우리집이 인천의 끝인 줄 알았다. 1호선을 보면 우리집은 분명 끝에서 두번째에 있는 곳이다. 캐나다에서 몇 년 살다가 잠깐 들어온 사촌 오빠는 인천이 엄청 큰 것 같댄다. 부평 쯤 가니까 여기가 인천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 우리 동네는 (고종사촌 오빠고 고모는 우리와 같은 아파트에 계신다) 완전 시골 같다고 했다.
나도 처음 여기를 왔을 때 뭐 이런 동네가 다 있나 싶었다.바로 옆에는 연탄공장이 있고, 또 바로 앞으로 기차가 지나다닌다. 기차가 지나갈 때는 기차 앞에 아저씨들이 호루라기 불면서 빨리 피하라고 엄포를 놓는다. 여름에는 그 기차 지나가는 소리에 깬다. 우리 베란다 앞으로 난 길은 연안부두로 난 길이라, 바퀴가 4개 달린 자동차는 전체 자동차의 10% 이내. 기본 바퀴가 8개 이상 달리고 3톤 이상은 되야 우리 베란다 앞 길을 달릴 자격이 된다.
가끔 그런 큰 차들 운전하는 아저씨들끼리 신경전 붙으면 그 경적 소리가 장난이 아니다. (한 아저씨가 경적 누르면 옆에 아저씨가 누르고 또 다른 아저씨가 누르고 정신 없어진다)
나중에 내가 엄마가 되어 아기를 낳아서 지금 내가 사는 동네에 아이를 키워야 한다면 아마 엄청 참담한 심정일 거다. 우리 동네 찻길에서 교통사고가 난다면 "꽥" 이라는 말이 딱 어울릴 거 같으니까.
미세 먼지는 또 어찌나 많은지, 우리 동네는 저번에 전국 미세농도 2위에 랭크되는 불명예를 얻었다. 인천 도시 축전 기간 동안에는 공항에서 부터 지나가는 버스 노선을 변경했을 정도로 인천시 자체적으로 수치스러워 하는 동네다. 그런데 인천시 말이야. 그렇게 이 동네가 쪽팔리면 보기 좋게 해줄 생각은 안하고 노선 변경하는 꼴이라니. 오늘이 선거날이지만, 뭐 보나마나 또 내가 싫어하는 그 사람이 당선될 게 뻔하다. (혹시나 하여 선거 다른 사람한테 하고 오긴 했지만)
 
우리 동네에 대한 악담을 늘어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우리 동네에 이미 정이 들었다. 좋다. 살아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이 이상한 분위기가 말이다. 구월동이나 송도 같은 삐까뻔쩍 한 동네는 진짜 인천이 아니다. 그 쪽은 가짜 인천이고, 우리 동네가 진짜 인천이다. 항구도 있고, 후줄근 하고 지저분하고 어두침침한 진짜 인천.

아직 여러가지로 생각을 정리할 것도 있고, 아직까지는 다른 곳에 또 취직을 하여 전과 같은 생활을 할 용기가 나지 않아, 난 내 생활유지를 위하여 과외를 시작하였다. 난 사실 대학생 때도 마트에서 물건 파는 몸으로 뛰는 알바만 했지 과외 같은 아르바이트는 한번도 안해봤다. 그런데 뭐 오늘로 두번 했는데 나름 할만 하다. 일단 중학생이기 때문에 그렇게 어렵지 않다. 다음주에는 영어 과외도 해야 하는데 영어는 도대체 어떻게 가르쳐야 하나 조금 고민이긴 하지만.

과외를 가는 동네는 우리집보다 더 인천의 끝이다. 바다가 보이는 진짜 인천이다.
월요일에 과외를 하러 갔는데 아무도 없었다. 복도식 아파트에서 진짜 인천 스러운 인천 남항을 봤다. 내가 과외가는 동네는 수산 시장이 있는 곳이라 아파트 앞에 바다 비릿내(기분 나쁘지 않은 비릿내) 가 진동을 하고, 그 아파트에 사는 모든 사람이 다 그 어시장에 종사하는 분들이 아닐까 의심이 갈 정도로 모든 사람들이 다 어시장 종사자로 보이는 차림을 하고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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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어린 중학생 여자애를 보니까 너무 너무 너무 귀여웠다. 난 혼자 친해지고 싶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려고 노력하지만, 걔네들이 날 너무 경계한다. 물론 엄마가 시켜서 하는 거고 놀고 싶은데 와서 문제 풀라고 시키는 내가 달갑지는 않겠지만, 난 이미 걔들이 귀여워 죽겠다. 다행스럽게도 내가 과외 맡은 여자애 둘다 순진하고 착하다. 아직 중3이 안되서 그런걸까? (한명은 중1, 한명은 중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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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우리집 베란다에서 바라본 인천항의 모습.(지난 겨울에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