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취직한 곳은 내가 졸업한 학교이다. 뭐 어차피 여기 있는 사람들 중 대부분은 내 직장을 알든 모르든 상관 없을테니 그냥 적는다. 대학원 교직원 정규직은 뭐 숨겨진 신의 직장이라고 하는만큼 엄청난 사람들이 가는 곳이고, 나는 전에도 썼지만 100% 리얼 계약직이다.
내 전에 있던 언니도 계약기간 만료되서 관두고 나간건데, 그 언니는 잘 풀려서 나갔다. 정규직으로 갔으니까. 난 정규직으로 일하다가 계약직으로 인생이 다운 그레이드가 되었는데, 그렇다하더라도 출퇴근 도합 1시간 30분이 안된다는 건  엄청난 축복이다. 예전에는 가는데만 1시간 반이었으니 말이다. 갈 때 시간이 짧은게 더 좋은데 갈때는 50분 남짓, 올 때는 내가 타는 버스가 난폭운전을 해서 30분이면 집에 온다.
저녁을 안먹고 1시간 가량을 더 일해도 집에 올때까지 배고픈 걸 참을 만 하다.
대학교다보니까 개강 때 쯤이 가장 바쁠 때 인데 불행히도 난 가장 바쁠 때 여기에서 일하게 되었다. 내가 졸업한 학교긴 하지만 내가 졸업한 과는 아니다. 그래서 교수도 낯설고 과목도 낯설고 애들도 한명도 모르겠다.
회사에서 일하다가 학교로 온거라 난 회사보다 좀 느슨하게 슬슬 일하면 될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다. 퇴근하기 전에 해야할 일을 적어놓는데 항상 10가지가 넘고 야근을 한다고 한들 해결할 수가 없다. 난 아무것도 모르는데 물어볼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말이다.
과마다 적용되는 게 워낙 상이하다보니 가끔 대학본부에 있는 사람에게 물어봐도 답이 안나오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에는 어쩔 수 없이 전에 일했던 언니에게 물어보고 있다. 이런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서 그 언니에게 인수인계 받는 일주일동안 엄청 언니한테 잘보이려고 노력하고, 말도 잘 들었는데 그 언니 반응이 영 시원찮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언니도 다른데 일하는 상황이다보니 내가 물어본 것에 대답하기가 힘들겠지.
그 언니와 내가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보면, 내가 이미 다른 곳에서 일하고 있는데 관둔 직장에 새로 들어온 애가 뭔가 물어본다면 그냥 개무시하고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언니도 입장을 바꿔서 생각하면 아는 사람이 한명도 없는데 정말 용기내서 물어본 건데 무시하면 내가 너무 불쌍하지 않은가?
잘난 척 같지만, 난 쓰잘데 없이 오지랖이 넓어서 전 직장도 내 다음 사람이 뽑힐 때까지 기다리고 그렇게 바보짓 하느라고 원래 받아야할 돈도 100만원 넘게 못 받았다. 근데 난 그게 오히려 편했다. 후배가 이를 갈며 날 원망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고 입사초에 내가 똑같은 상황으로 인해 쌩고생을 했기 때문이다.
저번주도 이번주도 어쩔 수 없이 그 전임자 언니에게 물어볼 내용이 많은데, 가끔 네이트로 물어보면 " ^^;;;;;" 이런 표정만 찍어서 말을 할 때가 있다. 꼴에 자존심 때문에 내 딴에는 이 방법 저 방법 다 보고 전화해봐도 모르겠을 때 언니에게 말 거는데 저 "^^;;;;" 표정이 나오면 난 별안간 기분이 확 상한다. 거절하고 싶은데 거절하려고 하는 말은 못하는 그런 기분을 나타내는 것 같아서 말이다. 도대체 ^^;;;; 이 표정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무슨 의도로 이 표정을 사용하는가? 난 ^^ 이 모양도 무지하게 사용 안하는 편인데 ^^ 도 모자라서 ;;;; 까지.
안그래도 화가나고 서러운데 며칠전에는 밤에 횡단보도에 서서 음악 듣다가 눈물이 핑 돌았다. 군대에서 2주 적응기간을 준다는데 이제 난 2주째 일 뿐인데 뭔 물어보는 건 그렇게 많고 해결해야 하는 건 또 이렇게 많은지.
문득 계약직이 서러운게 짤리는 것도 짤리는 것 때문에 서러운 것도 있지만  새로운 일에의 적응 때문에도 무지하게 서럽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 직장에서도 느꼈지만 그 회사에서 뭔가 어떻게 해야겠다고 나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건 적어도 1년 6개월 정도 지난 시점이었는데 말이다.
아무리 전임자 언니가 원망스러워도 내 입장이 워낙 약자의 입장이다보니 그 언니가 대답해주면 고맙다는 인사를 절대 빼먹지 않고 진심으로 하고 있다.
아. 괴롭다.
참고로 과외에서는 짤렸다. 일주일동안 일이 많아서 제대로 못갔더니 아줌마가 날 짤랐다. 여차저차 힘들었는데 오히려 잘된 거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애랑 정이 많이 들었는데 아쉽기도 하고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