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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관념

단문 2017. 9. 28. 11:38

  나는 트위터에 보통 욕만 쓴다. 트위터 내용의 80% 이상이 전철에 이상한 사람탔다. 내 옆에 앉은 사람 냄새난다. 회사 짜증난다. 배고프다. 춥다. 뭐 이런 본능에 충실한 내용들이다. 친한 사람이 있느냐? 절대. 여기 블로그와 마찬가지로 한명도 없다.

   그냥 이런 간단한 용도로만 쓰던 트위터에 IS가 다음 타겟은 로마라고 하는 바람에 엄마가 너무 걱정을 하셔서 결국 11월 로마 여행을 취소했다고 썼다. 근데 어떤 사람이 자기는 7월에 아직 걷지도 못하는 갓난 아이 데리고 패키지로 이탈리아 여행을 갔는데 너무 덥고 힘든데도 좋았다고 그 좋은 곳을 못가게 되서 안타깝다고 나에게 DM 을 보냈다. (대충 이런 내용이었음)

  아침 7시에 일어나서 밤 10시까지 해야하는 여행을 갓난 아이를 데리고 하다니?!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고, 굳이 왜 이런 내용을 멘션이 아닌 DM 으로 보내는게 의아하다 생각하면서도 며칠 서로 DM 을 주고 받았다.

  그런데 여기서, 위와 같이 DM 을 보낸 이의 성별이 뭐일 것이란 생각이 드는가? 

  나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당연히' 여자인 줄 알았다. 남자가 아이를 데리고 유럽을 그것도 패키지로 여행할 거란 생각은 정말 1도 못한 것이다.

  하지만, 나한테 DM 을 보낸 사람은 남자였다. 나는 너무 깜짝 놀랐다. 여하튼, 뭐 남자든 여자든 뭐가 문제냐. 싶어서 난 원래 쓰던 용도대로 트위터에 의식의 흐름대로 말도 안되는 글들을 싸질렀는데, 그 중에는 현재 읽고 있는 책에 대한 내용도 꽤 많았다. 근데 그 DM맨이 자기가 민음사 전집을 샀는데, 원래 갖고 있던 민음사 책이 두 권 있어서 남는다고 날 주겠다는거다. ( 그가 말한 두권의 책은 나쓰메 소세키의 '그 후' 와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였음) 아니 책 그 까짓거 몇 푼이나 한다고? 거깃다 난 나쓰메 소세키 책은 갖고 있고,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이거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사면 4천원 정도 할텐데 그것때문에 왜 만나냐 싶어서 괜찮다고 했다.

  근데 이 DM맨 자기는 춤동호회에서 여자 만나서 결혼을 했다며, 혹시 배우고 싶으면 가르쳐줄 수 있다는거다. 나를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이 내가 춤동호회 간다고 말하면 얼마나 웃을까. 내가 춤동호회에 나간다니 푸하하하하하하. 그만큼 내가 동호회를 거깃다 다른 동호회도 아니고 춤동호회를 간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여하튼 그것도 나는 춤에 전혀 취미가 없다. 동호회 싫어한다. 말하고 거절했다.

  그러다 한 2년동안 기다리던 드니 빌뇌브 감독님의 블레이드 러너 2049 예고편이 뜬 걸 보고, 가슴이 너무 터질 듯 기뻐서 '아아아아아아아 드디어 드디어~!' 뭐 이딴 트위터를 썼다. 그랬더니 자기도 그 영화를 너무 기다렸다면서, 벙개 (아 이'벙개' 라는 단어도 구려 싫어....) 해서 둘이 같이 보자는거다. 애딸린 유부남이. 영화를 보고 싶으면 자기 부인이랑 보면 될 것 아닌가? 아니 왜 나랑? 생면부지의 나랑 왜???

  아... DM 주고 받을 때도 자기가 영화계 종사자인데, 나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하다는 둥 써보고 싶다는 둥 이런 말 하길래, 뭐지 이 지극히 후진 멘트는? 하면서도 그냥 대충 응대만 해줬는데, 설마 설마 했다. 다른 의도가 있으리라곤 전혀 생각치 않았다. 난 DM 주고 받은 것도 이 사람이 처음이었으니까. 근데 영화를 보자는 말에 기분이 왓더퍽...........

  나는 저 영화보자는 DM에 시치미 뚝 때고 너 말고 다른 사람도 같이 나오는거냐? 근데 난 개봉 첫날 오후 반차내고 혼자가서 볼거다. 답했는데.. 답 없네. 제발 영원히 답하지 않았으면.


  고정관념이 이렇게 무섭다. 난 당연히 내 또래 여자인 줄 알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