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같았다.

단문 2012. 11. 25. 13:46
25살의 나를 떠올려보면 당시 나의 미성숙함에 치를 떨며 반성하게 된다.
내가 지금 정신과 아량으로 다시 25살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쓰잘 데 없는 생각인 걸 알면서도 자주 이런 생각을 한다. 우울했던 20대 초반. 돌이켜보면 그 때 조금만 더 내가 영리하고 또 나에게 자신이 있었다면 내 인생은 180도 바뀔 수 있었다.
하지만 난 계속 망설이고 자신도 없었지. 일요일 낮 누워서 젊었던 그 때를 돌이키니 속이 쓰려서 견딜 수가 없다.
이런 후회를 하고 있단 것 자체도 내가 아직 멀었다는 증거겠지.
휴. 결론은 또 역시나 그 때 널 붙잡았어야 했어.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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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즌 호텔 : 가을 秋
아사다 지로
문학동네

솔직히 말해서 이번 권은 완전히 실망스러웠다. 진부하고 또 진부했다. 진부함을 노리고 이렇게 쓴 거라면 대성공.
물론 나는 아사다 지로의 만분의 일 만큼도 글을 못쓰지만 어찌되었든 기대가 컸기 때문에 실망도 컸다.
물론 여타 소설가 나부랭이라고 우리나라 서점가를 완전히 점령해버린 젊은 일본작가들보단 괜찮지만.

나카조삼촌의 사랑(보스의 여자를 사랑한다는 뻔한)도, 경찰과 야쿠자가 화해하는 과정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캐릭터인 기도 고노스케 라는 작자도 마음에 안들었다. 더 괜찮은 캐릭터가 나와줬음 했는데 나나 라는 여자도 매력 없고 기분 나빴다. 그나마 다행스러웠던 것은 와타나베 간사와 가가와 신스케 라는 사람이 등장했던 것.

이렇게 평면적으로 해석할 수 밖에 없는 나의 돌머리를 탓하시든지 말든지. 기도 고노스케 라는 인물은 애정을 갖고 봐달라는 캐릭터인지 환멸하라는 캐릭터인지 이해가 안간다. 아무리 성질머리가 드럽다고 해도 정이 가는 캐릭터가 있는가 하면 요 캐릭터는 정말 아니올시다 이다.

물론 기도 고노스케 라는 인물이 그렇게 폐륜아가 되어버린 건 그로 인해 나카조 삼촌하고 친엄마가 죄책감을 안겨주기 위한 설정이라는 것은 알겠다. 내가 기분 나쁜 건 기도 고노스케가 아니다.
개페미 라고 해도 이 말은 해야겠는데, 남자한테 얻어터지고 막말을 들어가면서도 그 남자를 사랑하는 여자가 있다는 건 개잡스런 허상이다. 설마 모든 남자들이 그런 여자를 원하는 것도 아니고 그런 여자가 있을 거라고 생각도 안하겠지만 아무리 소설이고 문학적 가치가 있다고 해도 기분이 나빠지는 건 어쩔 수 없다. 기요코라는 인물이 이해가 안가고 나나 라는 인물도 이해가 안간다. 개인적으로 세상에서 가장 역겨워하고 혐오스러워 마지 않는 것이 이런 관계다. 이렇게 기분 나쁜 상태에서 왜 계속 읽느냐 집어쳐라 라고 말하면 할 말 없지만 그냥 시작은 했으니 끝은 봐야겠다.

다음은 인상 깊었던 구절.

"어느 날 밤, 학교에 가보니 캠퍼스가 개판이 되어 있더군. 책상과 의자는 바리케이드로 변하고, 영문 모를 구호가 캠퍼스에 메아리치고, 한구석에서는 불길이 치솟고 있었어. 교정은 폐허나 마찬가지였지. 누가 그런 짓을 했을까? 우리는 아냐. 부모에게 학비 받으면서 아침 햇살을 받으며 학교에 오는 놈들이었어. 대단한 말들을 하더군. 일본제국주의 타도, 안보반대, 체제분쇄라고 말이야. 제국주의가 대체 어디 있는데. 그런 게 나와 무슨 관계가 있어. 허리까지 차는 눈길을 헤치고 고향을 떠나 개처럼 일을 해서 이제 겨우 대학이라는 문을 뚫고 들어왔는데. 즐거움이라고는 고작해야 일요일 밤에 신주쿠의 라이브 찻집에서 고함 한번 질러보는 것밖에 없었던 나한테 제국주의니 안보니 하는 게 무슨 상관이 있냔 말이야. 그렇지 않나? 자네는 어떻게 생각해?"

나는 이런 말 할 자격 없는 편하게, 그리고 게으르게 살아온 인물이지만.. 취업전선에 있으면서 사람을 평가한다는 것이 얼마나 우습고 말도 안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미스 리틀 선샤인에서 오빠가 했던 말처럼 '그 사람들이 뭔데 사람 평가를 해?' 이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말 재주가 없어서 제대로 표현은 못하겠지만
충분한 비용이 있어야 하며, 충분한 시간이 있어야 하며, 충분한 심적 여유가 있어서 내 의지에 의해서 내가 하고 싶어서 예정대로 행한 사치와도 같은 '고생' '고뇌'에 대하여 그것의 자신의 심오한 경험인양, 마치 그것으로 인해  다른 사람보다 뛰어난 양 포장하는 것도 짜증이 났고, 그 포장대로 옳타쿠나 하고 인정해주는 사람들이 짜증이 났다.
그에 비해 예상치도 못하게 내가 정말 피하고 싶은 고통을 남들한테 말한마디 못하고 고독하게 아무도 모르게 다 감당해온, 그걸 견디느라고 남들은 멋있다고 말하는 경험 한 번 해 볼 기회도 갖지 못한 사람들이 왜 위에 말한 별것도 아닌 것들보다 못나게 그리고 불행하게 살아야 하느냔 말이다. 그리고 왜 더 게으르고 할 일없이 시간만 보낸 한심한 인간 대접을 받느냐 이거다.
내가 그런 대접을 받아서 억울하다는 건 절대 아니다. 난 그야말로 귀찮아서 이렇게 되어버린 거니까 이 벌을 달게 받겠지만, 별 것도 아닌 것들이 승승장구 하고 정말로 힘들게 견뎌온 사람이 겉에서 보기에는 초라하디 초라한 20대를 보내고 있다는 게 조금 화가 났다. 저 가가와 신스케의 말 처럼 말이다. 그냥 남들이 하는 거 평균정도만 하기에도 여러가지로 힘든 사람들이 있는거다. 물론 그런 사람들은 안그런 사람들을 평생을 두고 비웃고 애송이라 욕할 수 있지만 그래도  억울하다. 보는 것 만으로도 억울한데 당하는 사람은 어떻겠어.

다음은 내가 결정적으로 실망했던 계기.

나카조 오야붕은 주위에서 멍하니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더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말했다.
"아무래도 여흥이 너무 지나쳤던 것 같구먼. 자, 이제 칸막이도 없어졌으니 여기서는 딱딱한 이야길랑 집어치우고 신나게 한번 놀아봅시다. 곁에 있는 사람이 누구면 또 어떻소. 어이! 술,술 가져와. 술이고 안주고 있는 대로 몽땅 가지고 와!"
예잇, 하고 여급들이 먼저 웃음을 되찾고 달려나갔다.
까까머리를 맞댄 채 손을 꼭 잡고 있던 구로다와 마쓰쿠라 계장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무슨 오물이라도 만진 듯 손을 털고는 어이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얼굴을 돌렸다.


이 앞에서 부터 위의 장면이 있는 페이지를 읽으면서 대략.
'설마 아사다 지로. 내가 생각하는 그대로 경찰과 야쿠자가 화해하는 것은 아니겠지.'
'헉. 왠지 불길한 예감이'
'아아아아악. 안돼. 아사다 지로.. ㅠㅠ'
이런 상태였다. 소.. 솔직히 난 더 드라마틱한 화해를 원했다고.

어찌되었든 난 2권을 다 읽었고 현재 3권 즉 겨울 이야기 편을 읽고 있는데 다행스럽게도 반 정도 읽은 지금 내 느낌으로 봐서는 가을보다는 훨씬 훌륭한 것 같다. 이게 시리즈 물이고 어떤 권을 맨 처음으로 읽든지 내용파악에 어려움이 없도록 (해리포터처럼) 인물소개를 또 해주고 또 해주고 하는 건 좀 지겹지만.

아아. 그래도 아사다 지로에게 고마워하고 있다.
출퇴근 시간 지겹지 않게 해주셔서.; 적응안되는 저 표지는 그렇다 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