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의 재정립.

일상 2008. 7. 14. 12:15
1. 배출구.
: 어렸을 때 부터 일기 쓰는 걸 좋아했다. 방학숙제로 써오라는 일기는 맨날 밀려서 하루만에 다 써버리곤 했지만, 그때 그때 생각날 때마다 공책이든, 다이어리든 어디에 끄적거려 놓는 그런 일기는 자주 썼다. 학교에서 쓰는 공책도 앞면은 필기내용이었지만 뒷면 한 두장은 언제 쓴지도 모를 짧은 낙서나 글이 항상 있었던 것 같다. 아무도 읽으면 안된다고 생각했던 것들이고, 실제로 거의 나 혼자만 보는 일기였는데 왜 그렇게 일기를 쓰면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는지 모르겠다.찌질하게 엉엉 울다가 눈물 뚝뚝 흘리면서 쓴 적도 꽤 되고 분이 안 가셔서 글씨까지 분에 절어 있었던 적도 있고 그랬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한 페이지 정도 쓰면 이상하게도 평정심을 되찾게 되더라. 좋게 말하면 평정심을 되찾는 거였지만, 내 일기의 내용은 항상 비관적이었기 때문에 어찌보면 무기력 해졌다고 보는 것이 맞을 수도 있겠다.
저번에 읽어서 포스팅 했던 소설 프리즌 호텔 주인공이 (이름 벌써 까먹음) 도망간 엄마가 니가 어떻게 사는 지 알 수 있게 글을 써달라. 라고 부탁했나? (분명 다 읽었는데 왜 내용에 확신이 없는거냐) 여하튼 그런 부탁 때문에 엄마가 떠난 뒤로 365일 단 하루도 안 빼놓고 일기를 썼다는 내용이 나온다. 어느 정도였냐면 팔 깁스를 했어도 그 깁스를 풀고 아픈 손으로 울면서 일기를 썼다는 거다. 그 주인공  삼촌이 엄마를 원망하는 주인공한테 니가 하루도 빼놓지 찮고 일기를 썼기 때문에 작가가 될 수 있었던 것 아니냐. 라고 말 하는 장면이 나온다. 나도 그림일기를 쓸 수 있었던 시절부터 단 하루도 안 빼놓고 일기를 썼다면 작가가 될 수 있었을까? 흐흐.
일기를 많이 써서 그런지 내 심정을 글로 풀어내는 건 그닥 어렵지 않다. 어렵지 않을 뿐이지, 그 내용이 세련되고 멋있다는 건 아니다. 내가 쓰는 단어는 언제나 한정되어 있고, 내가 어떤 기분일 때 일기를 쓰는 지도 거의 비슷비슷하다. 기뻐 죽을 것 같은 때보다 슬퍼 죽을 것 같은 때 일기가 더욱 길어지고, 기쁠 때 쓰는 단어보다 슬플 때 스는 단어의 수가 훨씬 많다. 아마도 그럴거다.
내가 일기를 쓰는 이유는 그냥 내 감정을 분출하기 위해서다. 지금 이 감정때문에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밥도 제대로 못 먹느니 그냥 실컷 씨부리다가 내 생활로 돌아오기 위해서.
그 일기들의 대부분은 나중에 읽어보면 민망스럽고, 내 자신이 너무 쪼다같아서 찢어버리거나 검정 비닐봉지에 꽁꽁 묶어 바로 종량제 봉투로 직행해 버렸지만, 난 그시절 일기들을 다시 못 읽는 건 별로 안 아쉽다. 일기를 쓰는 이유 자체가 그 일기를 쓸 때 단 몇 분동안 제발 곽미영이가 제정신을 찾기 위해서 였으니까. 나중에 다시 꺼내봐도 쪽팔리지 않을 일기를 쓰려면.. 뭐 나한테는 일기를 쓸 필요가 없는 거겠지.
내가 내 속마음을 다 써도 나중에 봐도 쪽팔리지 않는 그런 멋진 사람이면 좋겠지만, 그건 또 아닌 거 같고.

2. 블로그의 목적.
: 블로그를 시작하게 된 이유는 예전 홈페이지에서 블로그로 인터넷의 흐름이 넘어오면서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거 같다. 예전 홈페이지도 본래의 목적은 일기 였지 거창한 내용이 있는 홈페이지는 아니었다. 예전 홈페이지 때 부터 지금 블로그도 이곳의 존재 이유는 '일기 쓰기' 인 것이다.

3. 부담.
: 블로그를 쉬고 있었던 6월, 주말마다 회사일이 있었다. 휴일수당도 없고, 아쉬우면 평일 휴가 쓰라고는 했지만 휴가 쓸 수 있는 환경도 아니었다. 집에가서 블로그를 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전에 블로그에도 썼다시피 집에가선 야구만 봤다. 헐; 그나마 야구도 응원하는 팀의 포스트시즌 진출이 요원해짐에 따라 스트레스의 원인이 되어버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구를 못 끊고 있다. 이 마약같은 야구 같으니라고)
6월은 참으로 피곤한 한 달이었지만 나름 주말에 야구장도 가고, 영화도 조금 봤고, 책도 꽤 읽었다. 회사에서도 내 거처 문제, 기가 막혔던 선배 문제 등등 뭔가 엄청 많은 일이 있었다. 예전에는 뭔가 특별한 일을 하면 블로그에 쓰고 싶고 어떻게든 사진도 넣고 내가 좋아하는 뮤직비디오도 올려놓고 그러고 싶었다. 다른 사람들 블로그 보면 참 성의 있어보이고 심혈을 기울인 것 같아보이던데.. 나도 몇 몇 포스트는 꽤나 긴 시간 공을 들여서 만들어서 보기 좋은 것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나는 보기좋게 포스팅을 못한다.
쉬면서 사진도 찍고 책도 뭐뭐 읽었나 다시 상기시키고 나중에 블로그에 써야지 써야지 하다보니 언제부턴가 이게 남다른 압박이 되어 다가왔다. 그래서 더 포스팅을 못한 것일지도.

4. 앞으로는.
: 전혀 일관성 없는 이 글을 쓴 목적은 앞으로는 내 블로그가 더욱 성의없어 질 것임을 말하기 위해서다. 그냥 잠깐잠깐 짧게 텍스트로만 블로그 채우는 건 요즘 같은 상황에서도 별 문제가 없다. 영화를 봐도 기본적으로 영화사진 하나 쯤은 넣는 나였지만, 앞으로는 그런거에 구애받지 않기로 했다. (이래보여도 꽤 구애받으며 포스팅 했다오)
다행히 7월 1일부터는 꽤 견딜만 했고, 오늘은 루꼴라도 옆에 없다. 우하하하하핫. 그래서 오늘은 그동안 못 간 블로그 이웃들 블로그나 구경하고 야구 게시판이나 봐야지. 아 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얘긴데 나 디씨인사이드 야갤에서는 활동 안한다. ;;; 누가 날 야갤 하는 인간으로보면 나 너무 속상할 것 같애! (하면서도 가끔 가서 움짤 퍼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