덧없는 관계

일상 2018. 5. 30. 16:04

1. 친한 사람의 기준

  나에게 친한 사람이란 상대방을 만날 수 밖에 없는 어떤 상황이 발생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시간을 내서 볼 수 있는 사람이다. 학창시절에 학교에서 같이 시간을 보낼 수 밖에 없었던 친구들과 학생이 아닌 지금까지도 종종 연락하고 얼굴을 보니 그들과 나는 아직까지도 정말 친한 사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직장에서 만난 사람들 중 지금까지도 얼굴 보고 연락하는 사람은 오로지 단 한명이다. 이제까지 같이 일했던 사람들과 직장에서 같이 일할 땐 분명 친했다.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하지만 더이상 그 사람들을 볼 기회 혹은 의무가 사라지고 나니 전혀 연락을 할 생각도 들지 않고, 볼 마음은 더더욱 안든다. 그렇다면 내가 그 사람들과 직장에서 보낸 그 시간과 관계는 대체 뭐였을까? 동료애? 이렇게나 거창한 이름을 붙일 수 있을까? 글쎄.. 모르겠다. 가끔 그들과 나는 서로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퇴직은 고사하고 업무시간이 종료됨과 동시에 서로 메시지 하나 주고 받지 않는 아무것도 아닌, 아쉬울 것 전혀 없는 관계. 이걸 어느 정도 인정하고 거리를 두는 게 내 직장생활에 이롭다는 걸 뼈저리게 느낀다. 좀 슬프지만 어쩌겠나...


2. 병원 사람들

 우리 엄마 때문에 병원을 자주 왔다갔다하면서 그곳의 의료인들에게 경외감을 느낄 때가 많다. 나는 고등학생 때 '교련' 과목을 마지막으로 배운 세대인데, 교련 수업시간에 위급한 상황에서 사람을 구하는 순서 같은 걸 배웠던 기억이 난다. 어린 나에게 수업 내용 중 가장 충격이었던 건, 가망이 없어보이는 사람은 포기하고 살 가능성 있는 사람부터 구하라는 내용이었다. 간신히 숨이 붙어 있으면 그냥 죽으라고 내버려 두는 게 최선이라니.. 이게 아무리 더 많은 사람을 구하는 방법이라고 해도 나는 죽어가는 사람 옆에서 그 사람들 유언이라도 들어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우리 엄마가 입원하신 병원은 전국에서 더이상 가망없다고 포기한 사람들이 많이 오는 병원인데, 원래 가던 병원에서 아무 것도 안해주겠다는 우리 엄마 상태를  담당 선생님께서 보자마자, 수술 날짜 잡고, 우리 엄마보다 심했던 사람들의 현재 상태를 보여주시는데 난 정말 그 자체로 너무 고마워서 의사선생님께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병원에서 일하다 보면 수많은 죽음을 목격할텐데, 수없이 많은 사람의 죽음을 목격하더라도 죽음에 초연해지지 않는 의료인이 정말 좋은 의료인이 아닐까. 정말 존경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