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황

일상 2017. 12. 12. 17:27

1. 바쁜 회사

  원래 11월에 로마에 놀러가려던 계획을 취소한 건 신의 한 수 였다. 11월 중순부터 저번주 까지 정말 미친 듯 바빴다. 물론 다른 회사 사람들처럼 절대적으로 바쁜 건 아니었다. 전 회사에서는 매일  저녁 안먹고 밤 10시까지 몇개월 내내 야근해도 도저히 해야할 일을 다 끝마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으니까. 하지만 이 회사에서 지금 내가 받는 월급과 이제까지의 업무량을 따져보면 분명 바빴다. 지금 회사로 이직한 지 이제 2년 3개월 됐는데 처음으로 6시 넘어까지 일했다. 그렇다보니, 야심차게 시작했던 독후감 쓰기도 전혀 안쓰고 있고, 일기도 못쓰고 그랬다. 오늘은 조금 짬이 나서 근황을 전한다. 


2. 친구의 연애

  친구가 연애를 시작하고, 행복에 들떠 있을 때, 내 우울의 모든 원인은 '남자'라고 단정지어서 당시 엄청 열받고 분했다. 실제 내가 연애를 하고보니, 역시나 난 친구가 말한 유형의 사람은 아니었다. 분명 지옥같았던 그 시기만큼 우울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에게 너그러워 지고 마냥 행복하지는 않다는 말이다. 1년이 지난 지금 약간 친구와 나는 어쩌다보니 약간 상황이 역전됐다. 친구는 여전히 그 남자를 만나지만, 그 남자 때문에 종종 우울한 모양이다. 글쎄.... 난 아무리 친한 친구여도 애정 문제에 있어서는 말을 아끼는 편이라, 걔에게 별다른 말은 안했지만, 내가 들은 모든 정황을 종합해 볼 때, 친구의 애인은 그다지 좋은 남자는 아닌 것 같다. 아니 좋다 나쁘다 말할 수 없고, 그저 둘은 원하는 바가 달라도 너무 다르다. 나 같으면 못참고 벌써 도망가고 말았을 것 같다.


3. 해프닝

  11월에 쓴 일기에 적었던 무단결근하고 회사를 관두겠다고 난리를 피웠던 직원은 어쩌다보니 다시 주저앉았다. 지금 내 대각선 맞은 편에 앉아서 일하고 있다. 그런데 언제 또 그럴지 알 수 없어서, 도저히 믿음이 안간다.


4. 도스토예프스키

  내 곁에 아무도 없었고, 어떻게든 살아보고자 손을 뻗었지만 무참히 무시당하고 말았던 지난 여름을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쓰리다. 아마도 20살 이후 인생 최고의 위기가 아니었을까. 그 때 내 우울에 전염될 것 같아서 나를 보지 않겠다고 말했던 사람과는 마음 속으로 영원히 절교했다. 우울의 절정에 있을 때 그나마 날 살려준 건 기도와 Bach 와 E.M 포스터의 책들이었고, 역시 사람은 나에게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우울의 진창에서 빠져나와 어느 정도 뇌가 정상 궤도에 도달했을 때 부터 도스토예프스키의 책을 읽었는데, 그때부터 난 진심으로 도스토예프스키를 존경하게 되었다. 아직 그의 작품을 다 읽진 못했지만, 요즘 도스토예프스키의 책이 너무 재밌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며칠 전 읽은 이반 부닌이나, 나쓰메 소세키처럼 아름다운 문장을 쓰는 작가는 아니다. 하지만 난 언제나 고독하고 괴팍하고, 다혈질에 결국에는 약간 미쳐버린 도스토예프스키 세계의 인물들이 너무 좋다. 그들은 분명 사랑스럽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인물들은 아니지만, 난 진심으로 그들을 사랑한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쓴 등장 인물에 대한 묘사를 읽을 때마다 매번 감탄하고 놀란다. 지금은 '죄와 벌'을 읽는 중이다.


5. 나의 연애

  남자친구 집과 우리집이 꽤 멀고, 그에게 차가 없어 결국 우리는 일주일에 한 번밖에 못 보고 있다. 거깃다 남자친구는 주말에 하루는 꼭 출근해야 하는 사람이라.. 더더욱 만나기가 쉽지 않다. 그와 만난지 꽤 오래된 것 같은데 따져보니 사귄 지 아직 한 달 밖에 안됐다.

  저번주에 만났을 때 오빠에게 정말 내 남자친구가 맞는 거냐고 물었다. 그만큼 아직도 실감이 안난다. 첫눈에 반한 이 귀여운 남자가 날 좋아한다니... 이거 정말 꿈 아니야? 행복할 겨를도 없이 끝없이 의아할 뿐이다.

  주책 바가지 같이 너무 좋아하는 티를 내서 민망할 때도 많지만, 모르겠다.. 난 좋아하는 남자에게 잘해줄 수 있는 한 최대한 잘해주는 게 소원이었는데, 이 기회에 소원 성취 하는 셈 치고 계속 잘해주려고 매일같이 다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들뜨지 않으려고 무지 애쓸 때도 있다. 조금 두려운 기분이 든다. 언제까지 이 감정이 지속될 지 알 수 없기도 하고, 나보다 남자친구가 먼저 변할 수도 있는 거니까 말이다. 나는 어쩔 수 없나보다. 행복할 때도 최악의 상황을 상상해보는 버릇은 도저히 고쳐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