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동안 날은 덥고 할 일은 없어서 극장과 집에서 영화를 엄청 봤더랬다. 토요일 일요일 한 편씩. 아무것도 안하고 영화만 본 거 같아서 민망하지만 어쨌든 리뷰 쓴다.



  좋아하는 소설을 영화화 했다고 하면, 어쩔 수 없이 보게 된다. 어쩔 수 없이 보고, 역시 책이 낫다고 거의 매번 영화에 실망하지만, 그래도 괜히 궁금해서 본다. 실망할 때 하더라도 보고 실망하고 싶어서.

  아주 아주 평이한 연출이었다. 소설은 전혀 그런 분위기 안나는데 영화는 뭔가 교훈을 주려는 느낌도 없지 않아 있고. 소설에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 토니의 딸이 태교하고 출산하는 등의 이야기는 왜 넣은건지 당최 모르겠다. 태교와 출산을 돕는 아빠의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에 소설보다는 토니가 덜 혐오스럽게 보이긴 한다. 흠. 이게 목적인가???

  소설에서는 베로니카가 158cm 의 아담한 키로 나오는데, 영화에서는 170cm 넘는 키에 어마어마하게 몸매 좋은 여자가 베로니카로 나온다. 내가 이걸 왜 기억하냐면 내 키가 158cm 기 때문에, (자랑은 아님)  그 부분 읽으면서 영국에도 160cm 안되는 여자가 흔한가? 하는 생각을 했거든.... 아마 흔하지 않으니 굳이 줄리언 반스가 158cm 라고 썼겠지만. (저번 여름에 쟀을 때 158.7 정도 나왔는데, 이건 키가 컸다기 보단 일자목이 되서 그런듯 ㅋㅋㅋ)

  런던 여행 갔을 때 가장 좋았던 순간 중 하나가 테이트 모던 앞에 있는 밀레니엄 브릿지 걸었던 시간인데, 노인이 된 토니가 베로니카랑 재회하는 장소가 바로 그 다리였다. 화면으로 세인트 폴 대성당이랑 테이트 모던 미술관 보니 여행 갔다온 보람 느끼고 또 가고 싶고 그랬다. 하지만 영국이나 아일랜드는 다신 못갈 것 같긴 하다. 물가가 비싸도 너무 비싸서...

  소설보면 토니가 베로니카가 나랑 사귄지 꽤 됐는데도 같이 안 자준다. 이 나쁜년..  뭐 이런 말은 안나오는데 결국 토니는 그로 인해 자꾸 상처받고 나중에 베로니카가 몸을 허락한 후 아주 보란 듯 베로니카를 차버린다. 소설과 영화에서 토니는 나는 헤어지고 나서야 베로니카와 잤다고 하지만, 아니야 앞뒤 맥락 따져보면 토니는 드디어 베로니카랑 자고 아주 미련없이 차버린 꼴이거든. 뭐... 잠자리 문제 외에도 나 혼자만 베로니카에 목맨 기분 들고 그러니 마지막 자존심 때문에 베로니카와 헤어졌겠지만. (또 마침 펍에서 만난 다른 여성도 있었고) 토니가 한 짓이 비열하긴 하지만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본다. 그렇다고 이 토니라는 인물에 정이 가는 건 아니고.... 나이 먹고 베로니카 만나서도 어떻게 한 번 잘 보이려고 노력하는 게 애처롭기도 하고. 결국 남자란 끝내 마음 안준 여자한테 집착할 수 밖에 없는건가. 하는 생각도 들고 뭐 그랬다.

  주연 배우들이 영국에서도 주목받는 신예들로 다들 풋풋한데, 난 애드리언 핀이 너무 몸이 건장한 청년이라 놀라버렸다. 내가 상상한 애드리언의 이미지는 그게 아니었는데.... 소설에서 키가 크다고는 나오지만 이미지 상 그리 건강해 보이면 안될 것 같았는데. 럭비 잘하게 생긴 어깨 넓고 보기좋게 살집 붙은 금발 청년이 애드리언으로 나와서 의외였다. 얼굴은 엄청 잘 생겼다. 베로니카가 첫 눈에 반할만 해. ㅋ

  이 영화에 내가 좋아하는 남자 배우가 두 명 나오는데 소설에서는 노인으로 나오는 역사 선생 조 헌트 역을 매튜 구드가 맡았다. 어우. 이름 모를 어린 청년들 보다가 갑자기 화면에 매튜 구드 나와서 너무 놀랐고 눈부신 외모에 다시 한번 감탄했다.

  열올리며 리뷰 썼던 모리스의 제임스 윌비 아저씨가 베로니카 아빠로 나온다. 젊은 시절 윤기 촤르르 흐르던 아름다운 금발은 이제 온데 간데 없었다. 머리 숱 너무 많이 빠져서 안타까웠다. 하긴 58년 개띠시고 내년에 환갑이시니... 흑 ㅜㅜ 그래도 아저씨 젊은 시절 미모는 내가 기억하니까.

  제일 놀란 건 베로니카 엄마 사라 포드로 나온 여배우 분. (이름은 에밀리 모티머 라고 함.. 처음 보는 배우심..) 중년의 나이 임에도 어쩜 그렇게 상큼하신지? 스포일러가 되니 더 말은 못하지만 사라 포드는 중년의 여성이어도 꼭 매력적이어야만 하는 인물인데, 정말 잘된 캐스팅이었다. 빨래 걷으면서 토니한테 막 손 흔드시는데 베로니카보다 더 예쁘셨다.

  나이든 베로니카 맡은 샬롯 램플링 이 배우 역시 난 처음 보는 배우였는데 (영국에서는 무지 유명하신 분인듯) 카리스마가 대단해서 집에와서 젊은 시절 사진 찾아보고 그랬다.

  영화는 너무 올바르고 교과서적으로 찍은 느낌이라 굳이 꼬집을 것도 없지만 또 칭찬할 거리도 없었다. 그래도 난 이런 분위기 영화 워낙 좋아해서, 보고 나선 기분 좋았다.


* 사진 출저 - Daum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