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권이 아닌 나라의 영화를 얼마만에 본 건지 모르겠다. 원래 이 영화 극장에서 보고 싶었는데, 시기를 놓쳐서 집에서 봤다.

  이제까지 세계대전을 다룬 영화를 보며, 독일인들은 이런 영화들 보며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한 적이 있다. 대부분의 영어권 영화에서는 독일군들이 인격을 가진 사람으로 묘사되지 않으니 말이다. 그나마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워호스'에서는 독일 소년병 형제 얘기가 나온다. 아마도 그래서 내가 그 영화를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다.


  독일에 갔을 때, 유태인 기념비에 적힌 글을 보고 나치 정권이 유태인과 집시 뿐 아니라 수많은 독일인도 학살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사실에 나는 무척 놀랐다. 많은 독일인들 역시 나치 정권의 피해자였던 것이다. 나치들은 신체적으로 열등한 자국민들을 갖가지 생체실험을 하여 어마어마하게 많이 죽였다고 한다. 어떤 사람들은 현재 독일 의학이 발달한 것도 그때 쌓은 엄청난 생체실험 데이터 때문이라고 주장하던데, 역사적 아이러니다. 그러한 잔인한 만행이 지금 의학기술 발전의 밑거름이 되다니.  

  그때 독일 고모께서 여기는 아직도 주말마다 히틀러 다큐멘터리해서 지겨워 죽겠다고 하셨다. 모든 다큐멘터리의 결론은 앞으로 다시는 히틀러 같은 선동가에게 흽쓸려 과거와 같은 실수를 범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라고 한다. 유럽 사람들이 모여 있을 때, 독일 사람들은 전쟁 이야기만 나오면 죄인 마냥 입닫고 시무룩해진다고하니, 전쟁 후 그들이 느끼는 죄책감이나 수치심은 대단한 것 같다. 심지어 패전 후에는 국기를 공개적으로 거는 것 조차 망설이고, 독일인으로서 자랑스럽다 는 등의 민족을 들먹이는 말도 거의 하지 않는다고 하니 말이다.  


  '랜드 오브 마인' 은 덴마크에서 지뢰 해체를 했던 포로 독일 소년병들의 이야기다. 이 영화는 우리나라에서 소개된 영화 중 세계대전의 피해자로서 독일을 다룬 거의 유일한 영화 아닐까. 절대 독일인이 이런 영화를 만들었을 리는 없고, 자국에서 실제로 벌어진 일을 바탕으로 덴마크 감독이 만들었다.

  패전 후, 덴마크에서 독일 소년병들은 아무런 안전 장비도 없이 맨손으로, 심지어 최소한의 식량도 먹지 못하고, 그들에게 가해지는 모진 폭력과 학대를 견디며 쉬지 않고 전쟁 중 독일군이 해변에 묻어놓은 지뢰 해체를 한다. 아직 어린 티가 가시지 않은 소년병들은 힘들지만, 지뢰를 다 해체하면 독일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 하나로 극한의 지뢰 해체 작업에 임하지만, 결국 한명씩 비참하게 죽어간다.

  이 영화는 일단, 아름다운 해변에서 어린 애들이 엎드려서 지뢰를 해체하는 장면에서 느껴지는 긴장감이 대단하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전혀 지루하지 않다.

  특히 기억에 남는 장면은 위 포스터에서 오른편에 있는 여리게 생긴 아이가 자기 바로 옆에서 지뢰 폭발로 쌍둥이 형이 죽는 것을 본 충격으로 괴로움에 시달리다 끝내 자살을 택하는 장면이다. 저 아이는 지뢰 매설구역에 들어가 위험에 처한 덴마크 어린 여자애를 안전하게 아이 엄마에게 넘겨주고, 전우들이 제발 거기서 멈추라고 절규하는데도 계속 지뢰 구역으로 스스로 걸어들어가 자살을 택한다. 하얀 모래사장에서 덤덤하게 지뢰구역으로 걸어가던 아이의 모습과 그 아이가 지뢰 폭발로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모습이 너무 가슴 아팠다. 그 자살장면은 생명의 존엄성에 대해 심각한 고민도 없이 감히 '죽고싶다' 는 생각을 진지하게 했던 요즘의 나를 반성하게 만들었다.

  주인공은 포스터의 왼쪽에 있는 아이인데, 웃을 때는 엄청 해맑은데 소년병들 사이에서 리더역할을 할 때는 카리스마도 있고, 무자비하게 자기 전우를 때리는 덴마크 군에게 그만 하라고 용기있게 말하는 장면에서는 어린 애가 벌써부터 멋있다. 또 영어를 안쓰는 백인 배우를 영화에서 보는 것도 너무 오랜만이라 신선한 느낌이 들었다. 유럽영화 더 보고 싶은데, 한국에는 수입이 잘 안되니 참 슬픈 노릇이다. 이 영화가 나름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후보에도 오른 영화인데, 누적 관객이 만2천8백명이라니, 수입을 안하는 배급사 입장이 이해가 되긴 하지만, 그래도 아쉽다. 이 영화를 보니 내가 알게 모르게 미국 사람들 입장에서 사고 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이렇게 우울하고 슬픈 영화를 보고 우울함을 극복한 것이 신기하다. 지뢰 폭발 신이 많이 나오지만, 많이 잔인하지는 않아 보는데 큰 불편함은 없었다.


사진출처-Daum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