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말못할 사정 하나씩은 간직하고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보통 이런 사정은 불행과 관련된 경우가 많고, 또 서로 자세히 말 안하기 때문에 내 불행의 크기가 남들에 비해 큰 편인지 작은 편인지도 알 수 없다. 설령 내 불행의 크기가 남들에 비해 형편없이 작다고 해도 전혀 위로가 되지도 않고.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를 다니면서도 심리학에 관심을 갖고 공부를 한 건 이따금씩 나에게 찾아오는 죽음과 같은 우울함의 원인을 내가 알아낸다면 아주 조금은 이 우울함에서 해방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가족이 가장 소중하다고 말을 한다. 가족끼리는 무슨 말과 행동을 해도 용서가 된다. 아니 용서가 되는 것이 아닌 지도 모른다. 어쨌든 죽을 때 까지 봐야하고 연인이나 친구처럼 영원히 안볼 수 있는 관계가 아니니까, 덮어두고 그냥 아무렇지 않은 척 연기하고 있을 수도 있다. 이 세상에는 죽을 때까지 아무렇지 않은 척 연기하면서 살고 있는 부부 혹은 부모 자식들이 무수히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어쩌면 나도 그 중 하나일 수도 있고.
어렸을 때 부터 지금까지 나는 얼마나 무수한 밤을 가족 때문에 울다 잤는지 모르겠다. 내가 심리학을 배우면서 깨달은 바는 가족으로부터 어렸을 때 부터 받은 상처는 극복이 거의 불가능에 가깝고, 결국 어른이 되어 겪는 모든 심리적 어려움의 원인은 그로부터 온다는 것이다.
나는 별로 대단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래도 죽을 때 까지 극복하지 못하고,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러는 것 처럼 아무렇지 않은 척 화목한 가정에서 구김없이 자란 척 해야 할 것 같다. 이런 연기를 하면서 어색함을 느끼지 않고 당연해 지는 게 어른이 되는 걸 수도 있고.
아직도 기대가 큰 내가 너무 순진하고 어리석다는 생각을 했다. 누구도 나에게 구원을 줄 수 없는데, 누군가에게 구원을 원하고 언제나 이번에도 틀렸다는 생각에 눈물을 흘리게 된다. 운이 좋아 누군가가 나에게 큰 사랑을 나에게 준다고 해도 난 아마도 더 큰 사랑을 갈구하게 될 것이다.
차라리 아무런 기대도 없다면 실망할 일도 없을 것이다. 기대를 한다는 건 내가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아직은 갖고 있다는 것이지만...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내가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는다면 어쩌면 한 방에 이 모든 걸 극복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래서 결혼을 하긴 해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에 초조해지기도 한다. 그 정도로 큰 일이라면... 극복이 되지 않을까 싶은 거다. 하지만 나같은 사람은 애초에 행복한 가정을 꾸릴 자격이 안되는 거 아닐까 하는 절망적인 생각도 든다. 불가능한 걸 원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결국 나도 내 자식을 울면서 잠드는 아이로 키우게 될까봐 두려운 것이다. 정말 싫다. 이런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