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의무

일상 2014. 11. 8. 23:51

  나는 부모님이 최선을 다해 날 키워주셨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일생 전체를 볼 때 나도 나름대로 살아남기 위해 열심히 살았다.

  첫 직장을 그만 뒀을 때, 결국 내가 이 치열한 사회에서 견뎌내지 못하고 낙오되었구나 하는 패배의식 때문에 몇 년을 심적으로 방황했다. 난 아마도 오만방자했나보다. 난 언제나 상위권은 아니더라도 평균 이상은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때 당시는 그게 아니었으니 말이다. 나를 지독히도 괴롭히던 더럽게 능력없던 선배는 내가 관둔 첫직장보다 몇 배는 더 큰 직장에 이직했는데 난 그 회사를 관두고 5개월을 놀았다. 그 악마같은 선배 소식을 건내 들었을땐 정말 분노에 치를 떨었는데... 아마 그 때 그나마 남아있던 내 안의 승부욕이 신기루처럼 저멀리 사라져 버린 것 같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우리 집이 어려웠을 시절, 아침에 눈을 떠서 잠이 들기 직전까지 엄마 얼굴 한번 못보는는 날이 계속된 적이 있다. 이맘 때 쯤이었던 거 같다. 낙엽이 지고 아침저녁으로 쌀쌀했던. 나는 무슨 영문인지도 모른 체 혼자 가방을 챙겨 학교에 가고 집에 오면 남동생이랑 놀아주고 그랬다. 아마 엄마는 내가 깊이 잠든 때 들어와서 새벽같이 나가고 그러셨나보다. 아직도 왜 그랬는지 잘은 모르지만...

  하루는 학교에서 알림장에 아빠 싸인을 받아오라고 했는데, 엄마는 커녕 아빠는 못본 지 오래인데 이걸 어떡하나. 나는 진심으로 고민하다가 결국 그 싸인란에 내가 싸인을 해서 갔다. 당연히 선생님은 아셨고, 니가 했냐고 물어봤지만, 난 그냥 아무 대답도 안했다.

  이런 사소하지만 아직도 생생한 슬픈 사건이 있는 나는 그래도 초등학교 1학년 2학년 까지는 엄마가 집에 계셨기 때문에 내동생보다는 덜 우울하다. 내동생의 경우는 초등학교 입학식 조차 부모님 두분 다 일하느라 못가셨으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나와 동생은 모두 부모님께 감정표현에 서툰 편인데, 모르겠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부모님께서 일하시느라 고군분투 하는 동안, 우리도 고군분투했다. 우리 둘은 어려운 와중에도 나쁜 길로 안 빠지고 꽤 잘 자란 편이다. 물론 이 모든게 아주 어렸을 적 우리 부모님이 사랑을 쏟아줬기 때문일거다.

  직장을 가진 뒤에도 부모님께 재정적으로 도움이 되려고 많이 애썼다. 내 월급 대비해서는 절대 적게 드리지 않는다고 자부한다.

  그런데... 차라리 엄마 아빠께 돈을 드려야 하는 건 마음이 편하단 생각이 든다.  

  가끔씩 부모님께서 내심 살가운 말과 행동을 요구하실 땐 정말 힘이 든다. 가족끼리 문제 하나 없는 집이 있겠냐만... 만약 내가 결혼을 하여 아기를 낳으면 가끔 내 자식도 나와 같은 문제를 겪을까봐 겁이 난다. 내가 배운적이 없는 건 내 자식에게도 못 가르치겠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어렵다. 세상에서 정말 최고 어려운 것 같다. 영원히 풀 수 없는 숙제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