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주에는 회사에서 늦은 환영회를 했다. 나와 함께 들어온 부장님의 환영회로 함께 합쳐서 하는 환영회였는데. 솔직히 난 환영회 같은 것 좀 안했으면 좋겠다. 잘부탁드립니다. 하고 고기 굽고 열심히 먹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굳이 일어나서 고개 숙여서 인사하는 바보 멍청이 같은 짓도 하기 싫고. (음식도 더럽게 맛없었다)

또 내 환영회라는데 2차를 안가기도 뭐해서 갔더니만, 사람들이 무슨 술을 물마시듯 마시고. 이미 그 동네에서 우리집 오는 막차가 끊긴 시각이라 인천 사는 사람이 술 다 마실 때 까지 어쩔 수 없이 기다리고 있는데 예전 직장에서 친하게 지내던 친구에게서 카톡이 왔다.

그 친구는 내가 알고 지내는 사람 중에 제일 얼굴이 예쁜 친구로, 새침해 보이는 인상과 달리 엄청 웃겨서 나랑 친했는데. 가끔 짬이 나면 우리는 각자의 윗사람 (나는 내 위에 과장, 그 친구는 위에 원장, 그리고 공통적인 윗사람은 팀장 과 사장) 흉내를 내며 복도에서 낄낄댔다. 

사내 정치세력에 끼어들지 못하고 표류하던 나와는 달리 그런 상황에서도 영리하게 대처도 할 줄 알고,(직장 경력이 나보다 한 3년 많았으므로 당연히 그런게 가능했을지도)  내 실수로 조금은 멀어질 뻔 하긴 했지만, 여하튼 둘도 없는 친구였다.

그 환영회 2차 자리에서 친하지도 않은 사람들 사이에 껴서 내가 이게 뭐하는 건가 싶고. 그 회사에서 일은 힘들었어도 가끔 친구 덕분에 기분 전환이 됐는데... 하는 생각에 회식자리에서 별안간 눈물이 핑 돌았다.

예전 직장에서 그리운 건 그 친구랑 또 둘도 없는 직속 후배. 진짜로 그 이후로 후배도 안들어오고 내가 계약직으로  있는 바람에 지금까지도 유일무이한 직속 후배가 되어버렸는데, 씩씩하게 아직도 그 직장을 잘 다니고 있다. 난 선배같지도 않은 선배였는데... 그래도 오븟하게 후배랑 커피 내려 마시고 퇴근 후에 가끔 밥 사주고 했던 게 좀 그립다. 혼자 서울 올라와 있느라 고생도 많았을텐데. 속깊은 후배도 좀 그립다.

충무로도 좀 그립다. 명동도 걸어갈 수 있고 금요일 밤에는 가끔 종로에서 차도 마시고, 70년대부터 지금까지 하나도 변하지 않았을 것 같은 충무로도 좀 그립다. 나 다니던 회사에서 점심시간에는 커피빈, 스타벅스, 카페베네, 일리, 톰앤톰스 다 걸어갈 수 있었는데 지금 직장은 그 흔한 테이크아웃 커피전문점 하나 없으니까. 점심시간에 가끔 가던 병원도 그립고 최고의 치과, 사랑니 잘뽑은 치과, 충무로 치과도 그립고, 거기서 상담해 주던 분도 좀 보고 싶다.

사용하던 오라클 ERP도 좀 그립다. 크크크크. 자료를 한번 입력하면 절대 지워지지 않는 지나친 시스템에 도스 화면같이 명령어 입력해야만 구동되는 불편한 ERP였지만, 그래도 안정감 하나는 최고였는데.

그룹웨어에 입력하던 휴가 신청서도 좀 그립고, 내 개인 이메일도 좀 그립고. 지금은 아웃룩으로 전직원이 내가 보낸 이메일도 볼 수 있도록 되어 있는데 이거 때문에 가끔 쓰는 영어 메일이 엄청 신경 쓰인다. 이미 메일을 보낸 후에 왜 문장에 this 를 두번씩이나 썼냐 이 바보 멍충아 하고 자책도 하게 되고 자꾸 남의 시선도 의식하게 되고. 으으. 그룹웨어라는 게 없으니까 모든 걸 다 종이로 처리해야 하는 것도 좀 번거롭고.

4호선 1호선도 좀 그립다. 죽어라고 아침 저녁으로 인천-서울 왔다갔다 하면서 돈벌고 있는 사람들 틈에서 느꼈던 묘한 동질감도 좀 그립고, 용산에서 동인천까지 아예 푹 자고 집에 가까워졌을 때 느꼈던 안도감도 그립고. 가끔 같이 퇴근하던 부평살던 목소리 엄청 큰 후배도 좀 그립고.

무엇보다 25살 26살, 27살, 28살 이었던 젊었던 나도 좀 그립고. (젊었다고 뭐 특별히 한 것도 없지만) 그때는 나이가 어리니 막연한 희망 같은 것도 있었던 것 같은데.

요즘 이랬으면 어땠을까. 저랬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엄청 자주 하게 되는데, 전혀 소용 없는 걸 알면서도 이런 생각하고 있는 나를 보면 벌써 지금 이 생활이 지겨워졌기 때문이겠지.

월요일 아침부터 비는 주룩주룩 내리고. 아 비 그쳐지면 추워질텐데. 지금 앉아있는 내 자리 완전 구석인 건 맘에 드는데 벌써 손시렵고 발시려운 게 심상치 않다. 다가오는 겨울을 또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 것인가!! 막상 엄청 추운 겨울이 되면 아무 생각이 안들 것 같아서 오히려 빨리 겨울이 왔으면 하는 생각도 드는 깝깝한 월요일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