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할 수 없음

일상 2012. 5. 27. 01:08

나는 아무래도 올해 상반기, 또 올해 하반기에도 아니 영원히 서서히 내리막을 걷는 지금 상태를 유지할 것 같다. 나는 일생동안 너무 우울해서 겪었던 몇 번의 위기에서 나름대로 잘 빠져나왔다고 생각한다. 내가 우울함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은 다른 게 아니라 친한 친구 만나고, 집에서 혼자 영화보고 책보고 음악 듣는 거다. 내가 우울함에서 빠져나오는 데에는 큰 돈도 별로 안들고 사람도 별로 필요없고... 내가 이런 방법으로 우울함을 풀고 스트레스를 풀 수 있다는 게 다행이다.

 

좋아하게 된 남자가 하필이면 나와 전혀 다른 생활패턴으로 살고 있는 사람이다. 내가 이렇게 주말에 시간이 남아돌고 집에서 혼자 매니큐어 바르고 낮잠자고 놀고 있는데 볼 수가 없다. 한마디로 도저히 발전할래야 발전할 수가 없는 사이다.  얼굴을 못본지도 3주가 다 되가서 벌써 가물가물하다. 그냥 저쪽서 다 포기를 해주셨으면 좋겠다. 자꾸 우울해진다. 우리 둘은 도저히 안될 것 같으니 알아서 나한테 연락하지 말고 내가 연락해도 외면해 주시면 편할텐데 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안될 사이라는 생각을 하고나니 마음이 쓰려서 못견디겠다.

 

내가 바라는 삶은 거창하지 않다. 죽을만큼 출근하기 싫은 직장이 아니면 되고, 외롭고 심심할 때 만날 수 있는 남자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 뿐이다. 그런데 대학을 졸업한 이후 들어간 직장은 전철에 몸을 던지고 싶을만큼 출근하기 싫은 직장이었고, 25살 이후로 처음으로 좋아하게된 남자는 만날 수가 없으니 원.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것이 여러가지가 있는데 그 중 최고로 싫은 걸로 이력서 쓰기로 정하기로 했다. 정말 세상에서 최고로 싫다. 금요일 오후에 커리어 사이트에서 구직광고를 보는데 정말 어느 한군데도 내가 갈 수 있는 곳이 없어 보였다. 세상에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점점 계약 만료일은 다가오고, 난 전혀 모르던 계약직의 설움을 몸소 체험 중이다. 월급이 너무 적어서 불만이었는데 금요일에 구직사이트를 보다보니 그나마 월급주면서 나같은 사람을 써준 것만으로 고마울 지경이다. 한편으로는 어떻게든 먹고살 수 있겠지 라는 생각도 하긴 하는데... 니들 정말 구역질 난다고 때려치고 나온 회사 사람들이 내가 비참히 살고 있는 꼴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할 지 생각하면 당장 죽고 싶은 기분이 되고만다.

 

인생이 17살 이후로 지속적으로 한계단씩 내려가고 있다는 느낌도 끔찍해서 엊그제는 저번에 밑에 집에 불나서 우리집에 연기가 가득찼을 때 비상벨이 안울렸다면 난 어쩌면 좀 편히 이 세상을 하직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좀 했다. 마음에 여유도 없고 즐거움도 없는데 난 회사에서 친한 후배랑은 엄청 친하게 지내고 저번 회식 자리에서는 내가 하도 웃겨줘서 나랑 친한 언니는 소화도 잘 안됐댄다. 이렇게 웃고 떠들면서 잘 지내는 중이고 순간순간 좋아하는 음악 들으면서 행복하다고 느끼기는 하지만, 밤이 되면 좀 반 미친 상태가 되는 것 같다. 다 극복하고 주어진 하루하루를 살아내면 어떻게든 시간이 가겠지라고 생각하지만, 힘이 조금 든다. 아무것도 다르지 않다는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