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cond Date

일상 2012. 4. 16. 17:57

대학생 때 어떤 애가 갑자기 아무 이유없이 좋아져서 계속 걔 만날 날만 기다리다가 눈빠지게 기다려서 2주일만에 떡하니 만났는데 부풀었던 마음이 풍성 바람 빠지듯 빠져버린 적이 한번 있었다. 진짜 신기했다. 전주에 내려가 있는 동안 진짜 아침에 눈을 떠서부터 잠을 잘때까지 어쩌면 자면서도 걔 생각을 했다. 누군가를 좋아할 때 쓸 한달간의 에너지를 이주일 안에 다 소진해 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랬을까? 만나자마자 내 마음은 차갑게 식었다. 하지만 나같이 이기적인 인간이 그렇게 단시간에 누굴 좋아할 수 있는게 신기했다. 더불어 그렇게 단시간에 마음이 정리할 수 있단 것도 신기했지. 
저번주 금요일에 만났던 그 분은 얼굴이 제대로 기억이 안나서, 한참만에 누군지 알아봤다. 아마 저번 첫번째에 떨려서 제대로 못 쳐다보느라 얼굴을 제대로 숙지 못한 탓도 있겠지. 아.. 이 분 이렇게 생긴분이었구나. 라고 깨닫고, 그 분이 입고 온 남방, 자켓, 면바지, 신발을 보고 예쁘구나 생각했다. 두번째라 어색했고, 잠깐 나갔다가 다시 밥을 먹으러 들어와서 영화보는 장소로 가고.
영화를 보는 동안에는 각자 혼자 팔짱끼고 음료수나 마셨다. 좀 민망한 대사가 나올 때 안쳐다보려고 노력했다. 중간중간 짧게 대화했다가 웃다가 영화가 끝났는데 시간이 좀 애매했다. 그냥 들어가긴 아쉽고, 그렇다고 어디 들어가서 앉아있기도 애매한 시간이었는데, 그 분이 갑자기 자기가 가고 싶었던 술집에 가자고 해서 난 그냥 에라 모르겠다 하고 따라갔다.
가서 얘기하는 중에 그 분에 대한 여러가지 신상정보를 알게됐는데, 젠장 죄다 실망스러운 것들 뿐이야. 전부 최악이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주앉아서 같이 마시는 사케는 술술 들어가고. 내 앞의 남자는 오랜만에 마시니까 맛있다면서 술을 한병 더 시킬까 말까 심각히 고민했다. 그러다가 나를 보면서 내일 미영씨 출근하시는데 너무 늦어서 안되겠다고 가야될 것 같다고 일어나서 나왔다. 집에 도착하니 11시.
어제 알게된 정보를 조합해보면, 이 남자는 정상적인 회사. 그러니까 9시 시작 6시 퇴근 주말 휴식 이런 회사가 전혀 아니기 때문에 서로 쉬는 날이 겹칠 일도 거의 없고, 그러다보니 만나도 항상 이렇게 내일 출근이니까 그만 가자 라는 식으로 헤어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아마 이 사이가 더 발전한다고 해도 난 항상 외로울 수 밖에 없겠지.
11시에 집에 도착해서 급히 샤워를 하고 누운 한편으로는 내가 왜 이런 사람을 만나게 되고 하필 보자마자 반하게 됐을까. 주님을 원망하며 잠들었다.

근데 이 블로그 점점 진짜 내 진짜 일기장 처럼 되어가고 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