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느낌

일상 2011. 1. 26. 15:30
고등학교 때 시골로 내려갔을 때는 마음이 무척 허했다. 어린 마음에 팝칼럼니스트나 영화평론가 혹은 기자 같은 허세 가득한 직업을 원했던 나는 문화 생활 기회가 적을 수 밖에 없는 시골이 어찌나 감옥처럼 느껴졌는지 모른다. 고등학생이라 어차피 영화볼 기회도 별로 없고 공연은 지금도 잘 안가고 책도 잘 안읽는데 괜히 그랬다. 사춘기라 우울한데 적당한 이유를 찾지 못해 내 상황을 더 비관 했는지도 모른다. 상황이 그렇고 보니 고3때 내가 공부하는 이유는 무조건 서울 진출이었다. 대전에 있는 대학을 한군데 쓰긴 했지만 말이다. (우리 엄마는 거기 학비가 엄청 싸다는 이야기를 듣고 내심 거기 가라는 압박을 넣곤 하셨다) 수능 후 생각보다 점수가 안나와서 인서울 대학은 많이 못썼지만, 모든 원서를 수원, 인천 여하튼 서울과 가까운 쪽으로만 썼다.
저번에 박찬욱 감독이 인터뷰에서 자기는 영화 감독 하면서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란 것에 대한 열등감 같은 게 있었다고 하는 걸 봤다. 왠지 시골 출신이 아니면 예술을 하는 데 딸릴 것 같고 그랬다는데, 서울 사람도 나름대로 저런 컴플렉스 가진 사람이 있구나 싶어서 신기했다.
여하튼 깡시골서 태어난 내가 다시 시골로 복귀한 것 뿐인데도 그게 그렇게 속이 쓰리고, 내 자신이 퇴보하는 것 같고 그랬다.
막상 인천와서 살아보니 인천이라고 별 다를 것도 없고 말로만 듣던 서울 거리는 걸어도 그냥 거리일 뿐 이고 사람만 많고 별로 좋을 것도 없구나 하는 생각에 학교 다닐 때는 한 학기 중 서울을 두번 가면 많이 가는 편이었다. 꼭 가야만 할 때만 잠깐 갔다오고 말았지. 인천과 서울은 생각보다 엄청 멀어서 한번 갔다오면 한없이 피곤했다. 시골에서 볼 땐 수도권=서울 같았는데 막상 수도권으로 오자 서울땅과 아닌땅의 차이는 생각보다 큰 것이었다. 서울은 서울 인천은 인천 경기도는 경기도. 각각 그 지역만의 삶이 있는 것이었다.

그러던 내가 졸업하던 2007년 2월부터는 하루도 안 거르고 서울을 왔다갔다 했다. 물론 그때도 서울 많은 곳을 돌아다닌 건 아니었지만, 평일에 내가 밟고 있는 땅은 항상 서울땅이었다. 아침 6시 50분에 길을 나서서 항상 몽롱한 상태로 전철을 타서 피곤에 쩔어 지하철 환승로를 걸어다녔고, 제발 제발 제발 회사랑 집 좀 가까웠음 좋겠다고 열망했는데 진짜로 회사와 집이 가까워졌다.
하지만 수도 서울, 특별시 서울의 아침 저녁 출퇴근 시간의 분위기란 그것만의 분위기가 있어서 어제는 갑자기 그 시간대 서울을 죽었다가 이제금방 깨어난 사람처럼 돌아다니고 싶었다. 너무 너무 지긋지긋했는데 그 시간과 분위기가 그리워질 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