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투에 풀 붙이기

일상 2011. 1. 4. 10:14
어렸을 때 는 편지봉투를 붙일 일이 참 많았다. 난 나름 펜팔도 했었고, 친구들이랑도 보통 여자애들 처럼 편지 주고 받는 걸 무척 좋아했다. 방학 때 친구들한테 종종 편지도 보냈고 말이다. 전학을 많이 다녀서 다른 지역에 있는 친구들이랑도 주고 받고. 우표가 붙여진 편지를 받는 건 전혀 예상치 못했기 때문에 기쁨이 더 컸던 거 같다. 요즘 처럼 뭐 택배 조회를 해서 언제쯤 도착하겠다 하고 알 수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난 편지 봉투에 풀을 아주 듬뿍 바르는 걸 좋아했다. 아주 틈이 안보일 정도로. 그리고 편지지를 봉투에 넣을 때도 봉투에 딱 맞게 종이를 접는 걸 좋아했다. 그렇다보니 어떤 친구가 니 편지 열기 너무 힘들다고 불평을 듣기도 했다.
지금은 3M에서 나온 양면 테이프를 이용해서 봉투 붙이는 걸 좋아한다. 적당히 붙고, 떼기도 쉽고. 3M이 없었으면 내 일상생활이 얼마나 황폐했을 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미즈키님 블로그에서 회사를 다녀서 좋은 이유 적어놓을 걸 보니까 난 딱 떠오르는 게 포스트 잇 이었다. 회사에서는 포스트잇 맘껀 쓸 수 있는게 좋다. 그거 딱 하나. 생각해보면 사실 집에서는 포스트잇 쓸 일이 없기도 하네.
어제는 평점표 라는 걸 시간강사 두 분한테 받았다. 과사무실에서 일하다보니까 여러가지를 느끼게 되는데 시간강사들은 참 말 잘듣는다. 착하다. 이번 학기에 오는 시간강사 두명 다 이번학기에 처음 강의해보는 분들이라 뭘 잘 몰라서 그러신지 몰라도, 서류 작성해주세요. 하면 그날로 바로 즉각 작성해서 나한테 메일로 보내주고, 뭐 부탁할 때도 어쩜 그렇게들 공손한지 모르겠다. 다들 완전 잘나신 분들인데 말이다.
두 분 다 약간 풍기는 이미지가 비슷한데, 한 분은 평점표가 들어있는 A4 봉투를 스카치테이프를 붙여서 봉하셨는데 한치의 오차도, 한치의 공기방울도 용납치 않고, 완전 무결하게 봉해서 보냈다. 그걸 보고 평소 말투를 생각하니 웃음이 났다. 이런것에서도 참 사람 성격이 티나는구나 싶어서.
그리고 다른 한 분은 어렸을 때 나처럼 풀을 엄청 발라서 뜯기 힘들게 해서 보내셨다. 그 분은 사실 몇 번 본 적 없긴 한데 그 분도 참 착하다.

저번에는 어떤 미친 학부생이 나한테 전화해서 쌍욕을 한 적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학부생들은 언제까지 뭐 하세요. 하면 그때까지 안하면 큰일 나는 줄 알고 전화해서 물어본다. 12/30까지 안내면 졸업안돼요? 1/9까지 장학금 신청 안하면 못받아요? 등등.
하지만 하릴없이 대학원에서 시간보내고 있는 대학원생들 대부분은 이미 학교의 섭리를 너무 잘 아는 나머지 언제까지 뭐해라 말하면 절대 그 날짜까지 안한다. 그리고 내가 백번 설명해줘도 백번 물어본다. 퇴근했는데 전화해서 과사무실 팩스번호 뭐예요? 이런 질문 하는 것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다. 나도 없는데 문 열고 들어와서 봉투 가져가는 놈들도 있다. 아니 봉투 그거 하나 좀 사서 쓰던가 아니면 한 열댓장 가져가서 오지 말든가. 별로 얼굴 보고 싶지 않은데 와선 그런다.

대학교 라는 곳이 대학 본부에서 명령(?)을 교수들한테 내리는 구조다 보니 무슨일이든지 제 시간에 되는 일이 없다. 대학본부 사람들이 교수보다 지위가 낮고, 대학교 안에서는 교수말이면 무조건 오케이 되는데, 뭘 하나 하려고 해도 제대로 될 리가 있나. 그러다보니 마감일이 적혀져 있어도, 그 마감일보다 기본 3일은 늦춰지고, 한 일주일 늦춰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예전 회사에는 그 날짜까지 못하면 그냥 되는데까지 해서 내거나 중간절차를 다 생략하고 그 기한 내 내는게 중요한데, 학교에서는 그런 거 절대 없다. 교수가 내일 모레 온다고 하면 마감일은 내일 모레고, 교수 서명 말고 도장으로 대체하면 마감일 내 처리가 가능해도 절대 교수님 서명까지 받아오라고 시킨다. 뭐 나중에 교수가 또 뭐라 할 수 있으니까 그런거겠지.
과사무실에서 일하다보니, 내 등록금이 이렇게 쓰여졌군 싶어서 씁쓸하다. 뭐 나도 애들이 낸 등록금으로 월급받아먹고 사니 할말 없긴 하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