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작용

일상 2010. 10. 22. 10:04
오랜기간 여자가 매우 초과한 환경에서 애인도 살다보니 약간의 부작용이 있는데 첫째는 남자랑 얘기할 때 시선처리를 제대로 못하겠는 것과, 둘째는 남자가 조금만 나한테 잘해줘도 엇 나한테 관심있나? 하고 착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또 한가지를 덧붙이자면 표정관리가 안되는 거?
회사 다닐 때는 전혀 구경도 못해보던 23~30 살 사이 직장인 아닌 학생 남자애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니 어색하기도 하고.. 학교 다닐 때도 우리과에는 죄다 여자라 그닥 남자랑 말할 기회가 없었으니까.
대학원생들한테는 보통 氏 를 붙여서 이야기 하고, 학부생들한테도 웬만하면 다 氏 붙여서 존칭을 쓰고 있는데, 붙임성 좋은 남자애들은 "네 누나" "누나 고마워요." 이런식으로 이야기 하는데 어떻게 반응을 보여야 할 지 잘 모르겠다. 나보고 누나라니!!! 으아. (친동생 말고는 누나라는 호칭을 같은 또래 남자한테서 들어본 기억이 없음)  보통 그런 붙임성 좋은 애들은 학부생이니 말을 편하게 하라고 하는데 오히려 난 존댓말이 편하다. 예전에는 말도 잘 놓고 그런 성격이었는데 회사다니면서 변했다. 친하게 되면 오히려 더 불편해질 수도 있다는 지극히 이기적인 생각때문인 거 같기도 하고. 지금은 완전 친하게 지내는 회사 후배한테도 말을 놓는 데에는 6개월 이상이 걸렸다.
이러한 내 성격과 남자와의 상호작용을 많이 하지 못한 것에 대한 부작용 때문에 조금 곤란한 일이 많이 발생하고 있다.
한가지 예를 들면 대학원생 중에 예전에 처음 봤을 때 부터 잘생겼다고 생각한 사람이 한명 있었는데 그 사람이 자기네 연구실 서류나 뭐 물어볼 거 있으면 여기로 올 때마다 표정관리가 안되는 거다. 얼굴 달아오르는 것도 내가 느낄 정도고, 그거 때문에 부담이 되서 그런지 그 사람 있는 연구실 서류 막 엉뚱한데다 놓고, 다른 연구실 서류 거기에 껴놓고, 실수가 과도하여 맨날 미안하다고 사과만 하고 있다.
저번에는 그 사람이 내 앞에서서 한 십오분 정도 이야기를 하는데 어서 저 분이 자기 연구실로 돌아가셨음 좋겠단 생각을 하면서 난 무슨 얘기를 더 해야하나 하고 고민하다가 멀뚱 멀뚱 딴 이야기만 계속 했다. (정적이 두려워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며칠전에 썼다시피 워낙 회사에 낙이 없다보니, 잘생긴 남자 보는 낙이라도 있어야제 하는 생각에 오늘은 핸섬보이님 안오나? 하고 기다릴 때도 있다. 노크소리가 들리면 혹시?? 하는 기대까지 하게되니, 참 잘생기고 이쁜 사람은 좋겠구나 하는 생각을 뼈져리게 하게 되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