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직장에서

일상 2010. 9. 28. 09:23
회사에 출근해서 처음으로 딴 짓을 하고 있다. 내일부터 조금 바빠질 것 같은데 오늘은 조용할 거 같다. 좀 있다가 저쪽 다른 건물 한번 가야 하는데 벌써 군기가 빠진건지 다른 때 같으면 부지런하게 아침에 오자마자 본부건물에 가서 제출할 거 제출하고 했겠지만 있다가지 뭐 하고 있다.
궁금해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약 한달간 여기에서 일한 느낌을 말하자면

1. 무서운 대학원생들
: 나와 가까운 사람 중에는 대학원에 들어간 사람은 단 한명도 없다. 다들 대학 졸업해서 돈 벌고 있고 아마 앞으로도 대학원에 갈 생각이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거다. 이런 이유들로 난 대학원생들의 세상을 전혀 몰랐고, 여기와서 일하면서 난생처음 대학원생들을 맞대하고 있다. 내가 있는 과가 우리학교에서 그닥 밀어주는 과도 아니고 워낙 소규모긴 하지만 생각보다 대학원생들이 엄청 많다. 소심한 나는 석사과정 말고 박사과정한테는 말도 제대로 못 붙이고 있고 더 정확히 말하자면 앞으로도 많이 안 부딪치려고 말을 많이 섞지 않을 예정이다. 특히 아저씨들 한테는 말이다. 난 누가 돈 주면서 공부하라고 해도 할까말까인데 여기 사람들은 몇백씩 줘가면서 공부를 하고 있는 걸 보자니 참 이해 안간다는 생각도 들고 그렇다. 솔직히 난 사회나가서 일하면서 내가 대학에서 배운 건 진짜 단 한가지도 필요 없고 그냥 사회로 나오기까지의 유예기간만 늘려주었을 뿐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물론 대학을 안나온 사람들에 대한 편견같은 것에는 자유로울 수 있다지만 일하다 보니 대학 나온 사람이나 고등학교 나온 사람이나 일하는 능력에서의 차이는 전혀 느낄 수가 없었다. 오히려 전문대 나오거나 고등학교 나오서 바로 일한 사람들보다 내가 딸렸으면 딸렸지. (내가 일하는 회사만 그랬을 수도 있다) 대학원에 몸을 담은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어차피 대학원에서 웅크리고 있어봤자 점점 겁쟁이만 될 거 같다. 또 한가지 신기한 점은 난 내가 나온 이 모교에 대해서 애정이 전혀 없는데 반해 여기 대학원생들은 나름 자부심 갖고 있고 다른 곳에서 대학 나온 사람들을 약간 무시하고 텃새 부리는 느낌인데, 내가 상관할바는 아니라고 해도 좀 같잖다. (역시 난 세상 사람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없는 인간인가!)

2. 출퇴근 시간과 새로운 세상
: 출퇴근 시간이 짧으니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흐흐흐. 무슨 소리인고 하니 난 예전 회사를 다니면서 편도로만 1시간 반이 걸렸기 때문에 퇴근 후에 무언가를 한다는 건 내 기력상 상상할 수 없는 일 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무리 오래 걸려도 집에 오고 가는데 40분이면 간다. 예전에 마을버스 - 전철 2번 갈아탈 필요도 없고 버스 한번이면 바로 직장으로 도착이다. 칼퇴를 해도 7시 이전에는 절대 집에 올 수 없는 회사를 다니다가 예전회사보다 30분 더 늦게 끝나는데도 집에 오면 7시가 안되는 이상한 느낌에 적응하느라 애를 좀 먹었다. 지금에서야 예전 회사 사람들은 이런 생활을 하니까 퇴근 후에 운동도 하고 사람도 만나고 술도 마시고 한 거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아침에 눈뜨기가 훨씬 수월하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예전 직장보다 직장 내 위치도 구리고 월급은 몇십만원이 깍였지만, 몸이 편하니까 전혀 슬프지 않다. 학교고 직장이고 뭐든 가까운 게 제일이야!

3. 윤택한 사무실 생활을 위한 물건들
: 예전에 내가 일하던 회사 사진을 올렸을 때 봤겠지만 난 사무실에 이상한 걸 많이 갖추고 사는 사람 중 하나였다. 큰 건 별로 없지만, 팔꿈치 보호대까지 갖추고 살았으니까. (근데 이 팔꿈치 보호대 사용해보면 다들 좋아할텐데. 정말 안아프다!) 첫 출근을 준비하면서 큰 가방에 짐을 엄청 싸놨는데 2주동안은 일하느라고 하나도 풀지 못했었다. 그게 마음의 짐으로 계속 남아있다가 추석 당일날 결심을 하고 회사에 와서 사무실도 쓸고 닦고 그 짐을 다 풀었다. 원래 사람이 관두기 직전이면 사무실에 애정도 안가고 별로 정리하고 싶지도 않고 그러니까 이해는 하지만 예전 사무실 모습은 너무 비효율적이고 불편하고 지저분했다. 다 정리하고 나니까 마음도 편안해지고 기분 좋고 일도 막 잘되는 거 같고 이제 손 닿는 곳에 비품이 있어서 편하다. 한동안은 커피도 못 내려마셨는데 혼자 커피도 내려마시고, 화분도 가져다 놓고 조금은 안정권에 접어들었다. 아직 모르는 게 엄청 많아서 긴장된 상태긴 하지만 조금씩 나아질 거라 위안하고 싶다.

4. 점심메뉴 고민
: 사무실을 혼자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는데 점심은 여기 같은 단과대학 소속 사람들이랑 먹어야만 한다. 그래서 11시 30분 정도가 되면 맨날 네이트온 창을 켜서 메뉴를 정하는데 난 그냥 제일 가까운 저쪽 사범대학 쪽 식당가서 밥 먹고 빨리와서 쉬고 싶은데 사람들은 그 메뉴를 골라서 맨날 멀리까지 간다. 또 그 단과대학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을 내가 별로 안 좋아해서 그냥 거짓말 하고 혼자 사범대학 식당가서 먹고 그럴 때도 꽤 있다. 가끔 도움 받을 일이 있어서 아예 모른 척은 못하고 있지만, 차라리 혼자 밥먹고 싶을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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