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2008년의 여름으로 돌아와서 큐슈로 떠나보겠다. 스이젠지공원을 떠나 처음 탔던 전차를 다시 타고  점심을 먹기 위하여 구마모토 시내로 향했다. 스이젠지 공원을 갈 때도 느꼈지만 돌아다니는 사람이 참으로 없었다.  구마모토 시내는 아담했다. 뭘 먹을지 고민하다가, 라멘집으로 들어갔다. 구마모토는 말고기가 유명하다고 하는데 비쌀 거 같아서 안 땡겼다. 그리고 왠지 말고기는 엄청 질길 거 같고 맛 없을 거 같기도 하고. 그리고 난 먹을 거에 있어서는 호기심이 없는 편이라 맛이 그닥 궁금하지 않았다. (한번도 안 먹어본 재료로 한 음식은 아무리 맛있다고 소문났어도 웬만하면 먹지 않는 편에 속함-지금 내가 알고 있는 맛있는 음식들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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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 여행가서 느낀건데 큐슈 쪽 음식점 들어가면 다 잘생기고 귀여운 남자들이 서빙해주고 음식을 해주더라. 물론 지극히 주관적이지만 도쿄 갔을 때는 우리가 생각하는 키작고 등치 작고 멋 잔뜩 부린 일본 남자 이미지 그대로의 남자들이 많았는데 큐슈는 러블리 하신 분이 여길 봐도 저길 봐도 엄청 많았다. 오사카 가서는 남자들 키가 생각보다 너무 커서 놀랐다. 일본놈들은 다 키 작을 줄 알았더니만.
한국 사람 중에는 일본 라멘 느끼해서 싫다는 사람도 많지만 난 완전 좋아한다. 한국에 살면서 신라면을 안먹는 특이한 사람이어서 그런걸까? 매운 음식을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나는 신라면은 도저히 매워서 먹을 수가 없다. 이거 뻘소린데 매운 음식 좋아하는 사람은 대체적으로 나와 성격이 상극인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내가 한국 사회에 적응하면서 살기가 힘든건가. 으흐흐.
라멘 먹고 편의점에서 커피랑 과자 좀 사먹고 다시 전차를 타고 구마모토 성으로 이동.
히메지성, 나고야성, 구마모토성을 제일 좋은 일본 성으로 꼽는다는데 난 그 중 두개나 가봤다. 반성해야겠다. 우리나라 궁전도 제대로 안가놓고 일본 성만 계속 가서 조금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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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서양 사람들이 일본 문화에 열광하는 걸 보면서 서양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문화의 수준은 그 정도 밖에 안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우리나라 사람이라 그런 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문화가 일본보단 뭔가 더 오묘하고 깊은 게 있는 거 같다니까) 전 세계에서 일본을 무시하는 유일한 나라도 한국이라는 얘기를 들을 때도 한국만큼 일본을 알게되면 누구나 일본을 무시할 수 밖에 없다고 코웃음을 치기도 했고.
솔직히 우리나라 사람만큼 일본 사람 잘아는 나라가 있을까? 직접 맞대하진 않았더라도 난 집단무의식론을 신봉하는 사람으로서, 우리나라 사람은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어느 정도는 일본을 싫어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일본에 여행가면 진짜 책 한 권만 있으면 돌아다닐 수 있고, 사람들은 죄다 친절하고, 또 문화재 관리하는 거 보면 엄청 깨끗하고, 버스도 어쩌면 그렇게 곱게들 운전하는지, 손잡이 제대로 안 잡으면 사망 일보직전까지 갈 거 같은 인천 마을버스를 타는 나로서는 부럽기 그지없고 그렇다.
국력의 차이일 수도 있고, 정신 사나운 현대사를 간직한 나라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는 하지만 난 우리나라도 문화재 같은 거 일본 못지 않게 복원 제대로 해놓고 그랬으면 좋겠다. 국보1호 다 불태우게 내버려 두지 말고. 그리고 일본놈들이 빼돌린 문화재도 다 빨리 제대로 돌려다 놓고 말이다. 일본 가면 부러우면서도 갔다온 후 잠시동안은 애국심이 솟구치는 이유도 아마 이런 이유들 때문인 거 같다. 에잇. 일본은 왜 그렇게 깨끗하고 좋은겨.
다다미 바닥에서 차가운 스시를 먹는 일본, 온돌 바닥에서 뚝배기에서 따뜻한 밥 먹는 한국. 이렇게만 생각해도 일본과 우리나라는 다를 수 밖에 없는 나라다. 어떻게 생각하면 일본 사람들은 항상 최악의 경우를 생각해서 행동하는 반면, 우리나라는 항상 최상의 경우를 생각하는 거 같기도 하고. (얼씨구 이런것만 봐선 무슨 일본에서 한 몇년 살다온 사람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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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단체로 온 관광객도 많고, 일본 관광객도 많고 구마모토성은 관광지 분위기 났다. 역시 많이 더웠지만, 천수각 위에서 바람 좀 쐬고 그러니까 기분 전환도 되었다. 바로 옆에 호소카와 법관 주택을 걸어갈 수 있었는데 입장객 받는 시간이 정해져 있어서 우리는 서둘러서 걸어갔다.

아 그런데 위에 최악의 결과 최상의 결과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난 무슨 일을 할 때 항상 최악의 상황을 머릿속에 그리면서 대비를 하는 편인데, 자기 개발서 보면 그런 부정적인 생각이 실패를 부른다고들 한다. 그런데 나같은 사람이 부정적이 된 이유는 긍정적이려고 노력했는데도 최악의 결과가 반복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름 상처 덜 받으려고 마련한 자구책이 이건데 어떡하냔 말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