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른 블로거.

일상 2010. 1. 12. 10:18

1월 4일에는 눈이 엄청 와서 정상적으로도 1시간 반 씩이나 걸리는 출퇴근 거리를 1호선 타고 일주일 동안 왔다갔다 했다. 블로그에 포스팅 했을 당시에는 엄청 화가 났지만, 한 수요일 쯤에는 이미 내 힘으로 어떻게 되는 부분이 아닌 걸 깨닫고 포기를 했다. 내가 화를 낸다고 해서 수도권에 엄청 쌓인 눈이 다 녹아버리는 것도 아니었고, 얼어붙는 전철문의 결함이 고쳐지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놀라운 자연의 힘이여~)
수요일에는 부모님과 일생일대의 중요한 대화를 하다가 속상해서 엄청 울었다. 지금 오면 내가 너무 오바해서 생각한 면이 있긴 한데, 그냥 단 한번도 내가 하려는 일이 성공할 것이라고 용기를 주지 않는 부모님이 야속했다. 부모님도 젊었을 때 꿈도 있고, 희망도 있고, 최악의 경우보다 최상의 경우를 먼저 생각했던 시절이 있으셨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에게 그렇게 최악의 경우만을 말씀하시는 부모님이 가여웠다. 내가 태어나기 전 태어난 후 최상을 생각했다가 숱하게 최악을 경험하셨을 것이고, 당연히 내가 지금 시도하려는 모든 행동은 최악을 향해 달려가는 것 처럼 보이겠지만, 세상의 이치는 어쩔 수 없다. 난 28살이다. 50살이 넘지 않았기 때문에 나중에 알게 될 일을 지금 알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세상에 멋지게 살고싶지 않았던 인간은 없다. 부모님도 그런 사람 중 하나였을 것이다. 날 믿지 못하셔서 그런 말씀을 하셨다기 보다는 세상을 믿지 못하셔서 그랬다고 생각하고 싶다.
1월 13일 부터 14일까지는 경북 문경까지 워크샵을 갔다. 말이 워크샵이지 가서 배드민턴, 사격, 골프, 알까기, 다트, 볼보이 등등 별의 별 운동을 시켜서 그걸 다했다. 하루종일.그리고 이틀동안. 13일 아침 7시까지 회사에 집합하라고 해서 새벽 4시반에 일어나서 용산역직통 첫차인 5시 28분차를 기다렸다. 올해 들어 최악의 추위라는 영하 15도의 새벽이었다. 너무 서둘러서 5시 10분쯤 동인천역에서 첫차를 기다리는데 지독하게 외롭고 추웠다. 아무래도 지구에 빙하기가 도래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지만, 북극 남극에는 얼음이 녹고, 동계올림픽 개최지인 벤쿠버는 이상고온이라는데 그날 인천은 필요이상으로 추웠다. 레깅스, 얇은 츄리닝바지, 조금 두꺼운 츄리닝바지까지 총 3겹을 입었는데도 추웠다. 위에는 총 5겹. 5겹이고 3겹이고 춥고 외로웠다.
동생이 말년휴가를 나왔다. 17일 복귀하여 하룻밤 자고 18일 제대라고 한다. 내동생이 군대를 갈 때도 난 직장인이었다. 지금도 직장인이다. 동생이 말하길 가만히 있다가도 "나 18일에 제대." 이 생각만 하면 좋아서 미칠 것 같다고 한다. 하루에도 자신이 드디어 제대라는 생각을 100번이상 하는 것 같다. (옆에서 보기에 그렇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기분 좋은 사람 중 한 명일 것이다.
저번 주 금요일 내 심경의 이상징후를 느낀 나랑 가장 친한 중학교 친구는 늦었어도 잠깐 자기를 만나서 이야기를 해달라고 했다. 그렇게 해주는 친구가 너무 고마워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고, 1호선이 또 종각역에서 연착되었음에도 친구를 만났다. 그때 놀라운 걸 알게 되었다. 내가 입사한지 두달쯤 되었을 때 내가 친구한테 그랬더랜다. "나 이 일 적성에 안 맞아. 아닌 것 같아." 라고. 2007년 가을부터 지금까지 난 미련하게 참았다. 내 동생은 이게 다 누나가 소신없는 삶을 살아서 그런 거라고 했고, 친구는 너무 착해서란다. 소신없고 착한척 한 걸 다른 말로 하면 바보 같아서 겠지. 난 바보다. 바보. 으하하하하하.
대학 때도 전공이 무지하게 내 성격과 안 맞는다고 대학교 1학년 때 이미 뼈져리게 깨달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과로 가봤자 졸업해도 실업자가 될 것이 뻔하다고 생각하여 꾹 참고 4년을 허비했다. 취직을 할 때도 이 일이 내 성격과 정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였는데, 그래도 돈을 벌자. 해서 취직을 했다. 누구를 위해서 이렇게 무식하게 버티고 살았는지 모르겠다.
1월 초에 하도 답답해서 썼던 인턴 서류에 붙었다. 썼는지 안 썼는지 까먹고 있었던 이력서였다. 당장 월요일에 인적성을 보러 오라는데, 머리가 나빠서 아이큐 테스트 비스므리한 문제는 절대 못푸는 나는 자신이 없다. 그런데 이 죽일놈의 오지랖 때문에 후배, 선배에게 사실대로 다 말했다. 사실 다른 데 알아보고 있다고. 내가 없으면 힘들 후배만 아니면 얏호 하고 회사를 박차고 나갈 수 있을 것 같은데, 후배만 생각하면 진심으로 눈물이 앞을 가린다. 남 생각해준다고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닌데 1년 넘게 "같은 적" 을 두고 하루 8시간 이상 함께 한 정이 만만치 않은가보다. 진짜 전우애 비슷한 기분. 그래도 후배는 나보다 2살이나 어리고 키도 크고 얼굴도 이쁘니까 괜찮을거야. 하면서도 못내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과거 내 모습을 보는 거 같아서. 농담이 아니라 이 블로그에 맹세하는데 지금 후배 결혼하면 축의금 30만원 이상 낼거다.
워크샵 다녀와서 일하고, 금요일에는 야근하고 월요일에는 되도 않는 머리로 시험도 봐야하지만, 2주일 사이에 성인이 된 이후 가장 큰 결심을 해서 그런가 기분이 꽤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