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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로운 날들

일상 2014. 10. 6. 00:18

  이렇게 마음 편히 지낸 날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평화로운 날을 보내고 있다. 회사에서도 일주일 동안은 잘 풀려갔고, 아픈 데도 없고 날씨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좋다.

  역시 날씨가 좋으면 사람이 너그러워 진다.

 

  연휴 역시 평화롭게 보냈다. 토요일에는 여름 내내 못만나던 친한 고등학교 친구를 만나서 떠들었다. 부평에 오랜만에 갔는데, 지하상가에 예쁜 옷이 많았고, 내 친구는 원피스와 내가 추천한 가디건을 구입했다.

  친구와 함께 첫 직장 후배가 하는 카페에 갔는데 오래전 사귀던 애가 걸어 들어와서 정신이 혼미해졌다. 나는 어떻게든 옛 남자친구가 날 못알아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선글라스를 끼고 미친듯이 뛰는 것 처럼 걸어 카페를 빠져나왔다. (걔 집은 부평이랑 아주 가까웠다) 그런데 사장 후배한테 전화해서 물어보니 내가 옛날 남자친구라고 확신 했던 애는 후배 남동생의 친구랜다. 난 너무 신기해서 다시 되돌아가서 내가 착각한 애를 관찰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 후배 남동생 친구라는 이름 모를 애는 내 예전 남자친구와 너무나도 닮았던 것이다. 내가 착각한 게 무리도 아니었을 정도로.

  그런데 내가 걔랑 헤어질 때 당시 모습은 아주 어렸을 적 모습이니 지금도 20대 초반의 어린 그 모습은 아닐텐데 그 점을 간과했다. 휴. 얼마나 다행인지. 걔가 아니라.

  친구와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이 얼마나 무서운 사람들인가에 대해 이야기했다. 날이 갈수록 회사에서 알게 된 사람들 말을 그대로 믿을 수가 없어지고, 나도 진실되게 대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슬픈 일이다. 이런 게 삶의 지혜 라면 지혜일 수도 있는 건데... 이건 확실하다. 회사 사람들한테 진심을 말하면 안된다는 거 말이다.

 

  언제나 여기에 말하지만, 인간관계에 있어서 혈연 빼고 가장 고차원의 관계는 우정이 아닐까. 친구만큼 전 일생에 걸쳐 필요한 사람은 없는 것 같다. 학교도 들어가기 전부터 중고등학교 때는 절대적으로, 20대에도 30대에도 아마 늙어서도 친구는 계속 필요하겠지. 솔직히 애인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늙어서까지 필요한 사람이라는 생각은 안드는데 친구는 아니다. 이번 주말에 오랜만에 그 친구를 만나서 다시 느꼈다. 친구는 진짜 필요하다는 걸.

 

  친구를 만나기 전날인 개천절에는 미용실에 가서 앞머리를 자르고 앞머리 파마를 했다. 난 미용실 갈 때 원래 하던 사람한테 하는 유형의 손님은 아닌데, 내가 가는 미용실은 꼭 어떤 선생님한테 받았냐고 물어본다. 마침 지갑에 예전에 받은 명함이 있어서 보여줬더니 낯익은 어린 여자 미용사가 왔다. 난 그 어린 여자 미용사가 좋아졌다. 조용해서 다른 미용사들 처럼 나한테 말도 안걸고,  얼굴도 웃는 상이고, 미용실 보조 애들한테도 친절하게 대한다. 저번 그 어린 여자 미용사가 알아서 해준 파마도 친구들 회사 사람들한테 잘 됐다는 칭찬도 많이 들었다. 이번 앞머리도 우리 엄마 말로는 딱 좋댄다. 약간 길다 싶게 잘린 것만 빼면 마음에 들긴 드는데 없다 갑자기 생긴 앞머리가 아직까진 무지 귀찮다.

 

  오늘은 교회 안가고 메이저리그 포스트 시즌을 봤다. 난 메이저리그 시즌은 안 챙겨 보는데 포스트 시즌은 2009년인가 부터 엄청 열심히 본다. 이유는 간단하다. 너무 재밌다. 우리나라는 류현진 때문에 LA 다저스 위주로 중계를 해줘서 어쩔 수 없이 다저스 경기를 제일 많이 보게 된다. 오늘 경기에서는 잭 그레인키가 엄청 멋있었다. 잭 그레인키는 나랑 똑같은 83년생인 우완 투수로, CSI 같은데서 싸이코 패스 냉혈한 연쇄살인마 역할하면 딱이게 생겼고, 던지는 거 뿐 아니라 잘 치기도 하고 뛰기도 엄청 잘 뛴다. 야구보면서 내년에 야구보러 미국 갈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 

 

  주말동안 Mamas Gun 이라는 밴드를 알게 되고 그 밴드가 저번달 낸 Cheap Hotel 이라는 앨범의 Burn and fade 라는 무척 좋은 곡을 발견했다. 여기에 링크 걸고 싶었는데 방대한 Youtube 에도 동영상이 전혀 없다.

 

  내가 원래 배우던 영어 선생님이 휴가가서, 이번 주 토요일 다른 선생님 수업을 들었는데, 맙소사. 선생님이 너무 잘생겨서 수업 들을 맛이 났다. 금발에 파란눈인 키 엄청 크고 덩치도 큰 40대 남자 선생님이신데, 엄청 낡은 바지에 막 입은 셔츠, 스킨 한번 안 바른 것 같이 거칠한 피부에 전혀 다듬지 않은 금발 머리카락을 아무렇게나 벅벅 긁는 모습이 아주 사나이 다운, 진짜 미남 선생님이었다. 역시 얼굴 잘생기면 옷이고 머리스타일이고 뭐고 다 필요 없나보다.

  수업 시간에 같은 테이블에 앉은 남자가 낯이 익는다 낯이 익는다 생각했는데, 왜 낯이 익는지 생각해보니 그 남자 분 꼭 교회 전도사 처럼 생겨서 낯이 익는 거였다. 전도사 처럼 생긴 남자라니 짱웃기다 싶어서 혼자 쿡쿡 웃어서 속으로 쫌 찔렸다.

 

  2주 연속 중간의 휴일이 낀 행복한 주중을 맞게 되었다.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는데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다. 첫째는 날씨, 둘째는 휴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