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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6.30 Full Metal Jacket 을 보고.

* 스포일러 있음.

 

  주말동안 Full Metal Jacket 을 봤다. 어렸을 때는 영화 평론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기 때문에 아무리 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라고 해도 평론가들이 별 4개이상 주면 챙겨봤다.

  어렸을 때 어떻게 피아니스트 (로만폴란스키 감독) 같은 영화를 잘도 봤나 싶다. 쉰들러 리스트도 그렇고,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도 지금 다시 보라고 하면 못볼 것 같다. 

  전쟁 영화를 보고 나면 며칠 동안 시달려서, 블랙 호크 다운 이후로 전쟁영화는 아예 쳐다도 안봤다.

  그러다 저번 주 엣지 오브 투마로우 의 미래 전투신을 보고나니, 오랜만에 본격 전쟁영화를 보고 싶다 생각이 들어 큰 맘먹고 어제 풀 메탈 자켓을 봤다.

  저저번주 샤이닝부터 이번 주 풀 메탈 자켓까지 스탠리 큐브릭 영화를 2편 봤는데, 충격이 상당하다. 정말 이토록 보는 내내 잘 만들었다고 감탄한 영화는 근 10년만에 처음인 거 같다. 카메라 앵글에서부터 음악 사용, 사운드 사용, 캐릭터 등. 영화 이론에 문외한인 나 조차도 스탠리 큐브릭 감독에게 무한한 경외감을 느꼈다. 

  스탠리 큐브릭의 풀 메탈 자켓은 해병 훈련소에 입소할 젊은이들이 머리를 미는 것 부터 시작한다. 보통 다른 영화들이 이미 잘 훈련된 병사들이 본격적으로 전투에 참여하면서부터 시작하는 것과는 다른 시작이었다.

  무자비한 군대의 훈련이 어떻게 젊은 남자들의 인격을 파괴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데, 운동신경이 둔해서 항상 골치거리였던 레너드 로렌스가 군대의 시스템의 가장 큰 피해자이지만, 그를 괴롭혔던 조커나 카우보이 등 다른 훈련병들도 어떻게 보면 그 시스템의 피해자들 아닌가? 그들도 사회에선 약한 자들에게 일말의 동정심을 느끼던 평범한 젊은이였을 것이다. 하지만, 훈련소의 무자비한 언어폭력과 말도 안되는 남성성의 강요로 인하여 결국 그들은 자신의 도덕성을 져버리고 레너드 로렌스를 괴롭히게 되고, 결국 레너드 로렌스가 자살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만다.

  다른 미국 감독들이 만든 전쟁 영화에서는 전쟁을 통해 결국 휴머니즘을 다루는 데 반해, 이 영화는 시종일관 건조하다. 어떻게 아이와 어린이에게 총을 쏠 수 있냐고 반문하던, 조커 조차 15살 남짓한 여자 저격수에게 총을 쏴버리는 것으로 끝나니 말이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와 같은 적나라한 부상장면은 나오지 않지만, 이 영화의 전투 신에서는 바로 군인의 뒤에서 직접 전투 장면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이 느껴지며, 이로 인해 전쟁의 공포를 관객으로 하여금 실감하도록 한다. 지금 나오는 영화들과 비교해도 전혀 뒤떨어지지 않는 훌륭한 전투신이었다.

   나는 이 영화에서 베트남에서 이야기인 2부보다, 베트남에 가기 전에 훈련소 내용을 다루는 1부가 더 인상깊었다. 샤이닝에서 느꼈던 심장이 멈춰버릴 것 같은 스릴을 이 영화의 1부에서도 느낄 수 있다.

 

  정말 전쟁은 안될 일인 거 같다. 만약에 우리나라에 전쟁이 난다면 난 그냥 더러운 꼴 안보고 전쟁 초기에 총 한방에 바로 죽고 싶다. 정말 전쟁에 대한 소설, 전쟁에 대한 영화를 볼 때마다 온 몸의 세포들이 다 충격을 받는 기분이다.

  영화를 보며 지원하여 가는 미국의 해병 훈련소에서 조차, 적응하지 못하고 집단으로 따돌림 당하는 사람이 있는데, 징집되어 가는 우리나라 군대의 상황은 얼마나 더 심각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여러 사람 앞에서 모욕을 받고, 남들 다 하는 걸 나혼자만 못한다고 느끼는 것 만큼 심각한 정신적 상처는 없는건데, 군대에 간 남자들은 그런 일을 얼마나 수없이 겪었을 것인가? 가끔 유일하게 이룬 업적이 군대 다녀온 거 하나인 남자들의 심한 군대 자부심에 의구심을 품은 적도 있었지만, 정말 2년 내내 자존심에 상처가는 더러운 꼴 다 참고 무사히 전역한 남자들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나같은 정신상태로는 어림도 없었을 거 같기도 하고.

 

  풀 메탈 자켓을 끝으로 다시 근 5년 간은 전쟁영화 못 볼 것 같다. 에너미 앳 더 게이트도 몇년전부터 보고 싶은데, 언제 볼 수 있을지 요원하고, 지옥의 묵시록은 그 많은 전쟁 영화 중에서도 시청 후 정신적 충격 넘버원으로 뽑히는 작품인 만큼 아마 죽을 때까지 못보겠지 싶다. 

 

P.S 난 근데 귀신 나오는 링, 엑소시스트, 컨저링 이런 영화는 소리 한번 안지르고 어쩔 땐 헛웃음까지 나오는데, 전쟁영화는 왜 이렇게 무서운지 모르겠다. 귀신은 이 세상에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거고, 그 귀신이 나한테 나타날 거 같지 않지만, 대부분의 전쟁영화는 사실에 기반한 실제 일어난 일이고, 또 전쟁은 얼마든지 나한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 그런 거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