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시작'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3.09.02 힘들었던 한 주 2

힘들었던 한 주

일상 2013. 9. 2. 01:30

8월 마지막 주는 내가 이 회사에 들어온 이래로 가장 힘든 한 주 였던 것 같다. 몇날 며칠을 야근만 해야 하는 것도 힘든 한주겠지만, 진짜 힘든 건 아마 저번 주 같이 정신적으로 힘든 주였으리라.


저번 주가 힘들었던 건 회사 사람들과 보내야 하는 시간이 너무 많았던 것이 첫째 이유다. 

저번주 토요일에는 사장님 딸이 결혼을 해서 저 멀리 학동까지 갔다왔다. 주말에도 회사 사람들 얼굴을 봐야 한다니, 어찌 아니 우울할쏘냐.. 

전철을 타니 학동역까지 1시간 40분 넘게 걸렸다. 회사 사람들 모두 다 가는 분위기라 안 갈 수 없었다. 사장님 딸이 너무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안타까웠다. 물론 행복하겠지만, 난 내가 사장 딸로 태어났으면 그렇게 어린 나이에 결혼 절대 안하고 유럽도 가고 유학도 가고 그래볼 것 같은데, 그게 아닌 모양이다. 


토요일에 그렇게 회사 사람들을 보고 또 월요일에는 회식을 했다. 나는 용케 1차에 얄밉게 탈출하는데 성공했다. 이번에도 역시 회식 때 즐거워 보이는 사람들을 보면서 지독한 괴리감과 외로움을 느꼈다. 정말 재미 없어 죽을 것 같은데 억지로 앉아서 웃어야 하고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을 짓눌러야 하는 그 괴로움. 

맥주를 한 세모금 정도 먹었는데, 운전을 했다. 회식에서 음주 제로에 실패해서 우울해졌다. 난 절대 세모금 이건 한모금이건 절대 술 하나도 안 마시고 운전하고 싶었는데... 이것도 저번주 내 우울함의 원인 중 하나다. 


가장 큰 사건은 수요일에 터졌다. 

인천에 사는 우리회사의 누군가에게 엄청난 양의 상품권을 배달해야 하는 임무가 떨어졌다. 내가 무지 싫어하는 분이었다. 나와 상극. 내가 그 분을 얼마나 불편해 하냐면 그 분한테 전화를 돌릴 때 내선번호를 누르면 내 손이 굳을 지경이다. ( 회사의 높으신 분이다 ) 운전 제대로 하지도 못하는데 인천에 산다는 이유 하나로 나는 생전 처음 가보는 부평의 어딘가를 가야 했다. 시키는 데 안갈 수도 없고.. 고속도로를 탈 것인가 국도를 탈 것인가 고민하다가 부평 IC 부근이 항상 엄청나게 밀려 있던 게 생각나서 국도를 택해서 네비게이션 말대로 갔는데, 이런 젠장, 국도로 가다 보니깐 무슨 부천 테크노밸리인가서 부터 부평까지 가는 길은 또 왜이렇게 복잡하고 차는 또 왜이렇게 많은지... 정말 잘못한 선택이었다.

실컷 거기 까지 갔는데 집에도 사람이 없고 전화도 안받아서 또 식은땀이 뻘뻘 나고, 오라고 해놓고 집에 없었던 게 누군데 나는 그분께 오히려 이런 저런 이유로 엄청 혼났다. 


뭐 이거까진 그렇다 쳐도  더 큰 사건이 하나 터졌는데 

위에 말한 저 높은 분이 월요일쯤 나보고 택배를 하나 보내라고 했는데  그 분이 보내는 사람 쪽에 주소 하나도 쓰지 말고 택배를 보내라고 했다. 그런데 난 대수롭지 않은 택배인 줄 알고 우리 회사 이름을 볼펜으로만 쓱쓱 지운 송장을 붙여서 보낸거다. 이건 백번 내가 잘못한거라고 해도 왜 주소 없는 송장에 써서 보내라고 하는지 이유를 전혀 예상도 못했던 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게 당연했다. 바빠 죽겠는데 보내는 사람 쪽이 텅 빈 주소 없는 송장이 없어서 바깥 우체국까지 가는게 귀찮기도했다. 그래서 대충 볼펜으로 줄 긋고 지워서 보냈는데.. 거기서 일이 터진 것이다. 

나야 뭐 그 택배 보낼 당시에는 그게 어떤 성격의 물건인지 뭔지도 몰랐고,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예 내가 그 택배를 보냈는지 어쩐지도 까먹고 있었는데,

수요일 밤에 어렵게 운전하고 집에 와서 쉬고 있는데 난데없이 밤 10시 쯤에 회사 말아먹을거냐, 초등학생이냐, 책임감 없이 일한다는 등의 괴소리를 들었다. 위에 말한, 사람 불러놓고 저 집에 없었던 높은분한테서 말이다.


난 아직도 그게 뭔지는 모른다. 하지만, 뭐 대충 회사에서 보내면 안되는 성격의 물건이 아니었을까..하고 예상만 하고 있다. 아무도 말 안해주니까 알 길이 없다. 나는 그냥 알아서 기면서 무조건 부주의하게 처리해서 죄송하다고 빌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렇게 중요한 거면 말단인 나를 시킨 거 자체가 잘못이고, 또 저런 외부에 밝혀지면 회사가 망할만큼 큰 잘못을 저지르면서, 또 그런 일에 책임감을 갖고 일하라고? 휴... 


저런 안좋은 소리를 잔뜩 듣고, 목요일에 출근을 했는데, 이 사람들이 월요일에 회식을 해놓고 새로 신혼 살림 차린 다른 팀 대리 집에 집들이 가자고 성화인거다. 그 대리는 딱 봐도 회사 사람들 집에 부르기 싫어하는 거 같은데, 회식 좋아하는 무리들이 죽어도 그 집에 가겠다고 하는 걸 보자니 그 대리가 참 딱했다. 왜 저렇게 다른 사람에게 민폐를 끼칠까 하는 생각도 들고. 거깃다 전날 안좋은 소리 들은 나로서는 한시도 회사 사람들이랑 붙어 있고 싶지가 않았다. 결국 내 친구가 알려준 기발한 회식 빠지는 거짓말로 칼퇴해서 운전해서 집으로 오는데 고속도로위에서 기분이 정말 우울했다. 그 기분은 내가 첫직장 매일 이놈의 회사 언제 때려치나 하고 느낄 때 바로 그 기분이었다. 


금요일이 되서 이제 주말이 온다~ 하고 기분 전환하려고 했는데, 나랑 친분 있는 대리님이 운없게 어떤 일에 휘말려서 시말서까지 쓰는 상황이 되고, 그런 걸 옆에서 보자니 나까지 기분이 우울해지고 그랬다. 


정말 이제 나의 런던 여행이 임박했는데, 내가 딱 시기를 잘 잡은 것 같다. 내일도 마찬가지로 회사 사람들 얼굴은 꼴도 보기 싫을 것 같고, 정말로 어디 멀리 혼자 있고 싶은 마음 뿐이다. 여행이 끝나면 나는 또 다시 회사로 돌아와야겠지만, 그래도... 잠시라도 회사에서 벗어나야만 내가 그나마 좀 마음을 잡고 일에 집중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