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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이 나버렸다.

일상 2008. 5. 17. 22:46
이제 이 얘기를 마음껏 해도 될 듯 싶다.

나는 작년 7월 말에 입사했다. 7월 일주일 남겨놓고 입사했기 때문에 월급은 8월부터 받았다. 그런데 약 5개월 정도 이 일을 했을 때 부터 도저히 이 일은 못해먹겠단 생각이 들었다. 다른 데 원서를 쓰기도 했다. 그러던 중 남들이 비교적 안정적이라고 말하는 대학병원 행정직에 서류가 붙었다. 그래서 그냥 부장님께 이제 더이상 여기 일 못하겠다고 그냥 관두려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 내가 있는 자리는 1년이상 버틴 사람이 한명도 없는, 거깃다 내 자리를 거쳐간 약 7명의 사람 중 한명은 뇌종양 한명은 자궁에 혹, 이렇게 화려한 병까지 얻어간 자리가 아니던가. 직장생활 다 힘들다고 하지만, 솔직히 내가 하는 일이 뭐다. 라고 말하면 다들 힘들다고 인정하는 일 중 하나다. 스트레스가 엄청나지. 그래서 그런지 누구한테 내가 하는 일 사실은 이거라고 속시원히 말해본 적도 없다.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3명 정도? 뭐 내 인간관계가 좁기도 하지만.
일도 일이지만, 내 윗 상사인 루꼴라가 인간의 인내를 시험해보는 인물 중 하나기에 더 힘들기도 했다. 사람도 사람이고 일도 일이고 도무지 좋은 것이 하나도 없었고, 나이 더 들고 나중에 왜 그때 박차고 못 나왔나 후회하기 전에 지금이라도 관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부장님께 관둬야겠다고 말한거고.

그랬더니 부장님께서 육아휴직으로 자리 비운 사람이 오면 나를 다른 자리로 빼주겠다고 말씀하셨다. 걱정하지 말라고까지 했다. 그 여자는 6월 복귀니까 그때까지만 버텨달라고 하셨다. 난 내심 기뻤다. 다시 또 이력서 쓰고 면접보는 끔찍한 짓을 안해도 되니까. 그래. 끝이 있다고 생각하면 버틸 수 있어. 라는 생각으로 버텼다.
원래는 그 육아휴직 간 여자가 내 자리로 오기로 되어 있고 그 여자가 오면 지금 내 옆에 있는 선배, 나, 복직한 여자 이렇게 3명이서 일하기로 한 건데 내가 있는 곳이 사실 3명이나 필요한 곳이 아니니 나를 다른 곳으로 빼주겠다는 거다. 난 현재 같이 일하고 있는 선배한테 좀 미안했다. 옆에 선배는 내가 관두려는 의사를 비췄을때도 가지 말라. 나는 미영씨를 잃고 싶지 않다. 앞으로 3명이서 일하면 좀 더 수월할거다. 라는 말도 하고 내 생일때는 앞으로도 미영씨 옆에서 힘이 되겠다고 말하며 날 많이 위해줬고 그나마 루꼴라 밑에서 버틸 수 있었던 것도 옆에 선배 때문이었다.
의도한바는 아니지만 친하고 의지하고 있었던 선배한테 말못한 비밀이 생긴 나는 양심의 가책도 좀 많이 느꼈다. 나만 쏙 좋은 자리로 빠지려는 것 같아서. 그렇다고 옆에 선배한테 내 속내를 다 털어놓을 순 없다. 아직 6월이 되지도 않았고, 어떻게 될 지 확신도 없으니까.

저번주 목요일 회의 때 부장님께서 육아휴직 간 여자가 6월 경에 복귀하고 내가 일하고 있는 부서에서 한 명은 다른 자리로 가게 될 것 같다고 말씀하시는거다. 근데 그게 나 라고 부장님이 말씀을 안하셨다. 그래서 회의 끝나고 저 어떻게 되는 거냐고 여쭤봤더니 부장님의 대답은 어떻게 될 지 모르겠다. 이거였다. 내 표정은 어두워졌다. 사실 버티면서도 내가 여길 벗어날 수 있는건가? 없는건가? 라는 불안함 때문에 항상 걱정이었고, 만약에 부서변경이 안되면 깨끗하게 관두자. 라는 생각도 아주 자주했다. 물론 육아휴직 확실히 주는 회사기 때문에 미래를 생각해보면 아깝긴 해도 그렇다고 내 인생을 이따위 일이나 하면서 보낼 순 없는 노릇이라고 생각했다. 왜 확실하지 않은지 부장님께 물었다. 그랬더니 사실 지금 다른 부서로 가려는 사람이 한 명 더 있어서 두명이나 되기 때문에 인사팀이랑 사장결제까지 올라가야 하고 그래서 이미 부장님은 결정권한이 없다고 하시는 거다. 난 그게 누구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부장님께서 대답을 망설이신다. 그러다가 그 사람은 바로 내 옆에 선배 라는 거다. 하하하. 나보다 훨씬 전에 이미 말했댄다. 휴직간 여자 복직하면 자기를 내보내주고 나랑 그 여자랑 지금 부서에 남겨놓으라고. 나보다 한 술 더 떠서 어느 부서 가고 싶다고까지 말씀드렸댄다.

내가 부장님께 관두겠다고 말했던 시점에도 이미 부장님하고 옆에 선배랑도 얘기가 되어 있었던 상태고, 내가 원했던 것을 똑같이 옆에 선배도 원하고 있었다. 물론 당연하다. 그야말로 내가 하고 있는 일은 그지 같으니까. 루꼴라 역시 그지같고. 루꼴라가 갈아치운 사람이 도대체 몇명인데. 우리라고 뭐 별 수 있겠냐고.

그런데 왜 내가 관두려고 할 때 그냥 나는 다른 부서로 갈 수 있는 가망 없다고. 너 6월까지 버텨봤자 거기 계속 붙어 있어야 된다고 말 안했냐 이거다. 그리고 왜 나는 옆에 선배 때문에 맘 약해져서 그 좋은 자리 면접을 그냥 날리고 그래 6월까지 버티고 있어보자 하면서 몇 개월깐 그 스트레스를 다 받고 있었냔 말이다. 옆에 선배는 왜 나한테 앞으로 우리 잘해보자고 말하면서 앞으로 계속 같이 일할 것 처럼 말해놓고 왜 나보다 훨씬 먼저 부장님한테 다른 자리로 빼달라고 말했냔 말이냐. 6월이 되면 그나마 좀 나아질 거라고 생각했던 게 다 날아가고 6월이 되면 나는 옆에 선배 일까지 다 도맡아야 하는 건데.
나보고 버티라고 말한 것도, 옆에 선배가 계속 같이 일하자고 한 건도 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었고, 둘이 이미 다 다른 얘기가 되어 있었다고 생각하니 정말 미칠 것 같았다.

내가 바보 같은건가. 회사 사람들 연기력이 뛰어난 건 지 잘 모르겠다.
애초에 결심대로 난 정식으로 옆에 선배가 다른 부서로 변경된다는 발표가 나면 바로 관둘 예정이다. 괜히 옆의 선배 좋은 자리로 가고 난 선배자리로 가서 선배하는 일 다 떠안기 싫다. 그러는 건 다 그 선배 좋은 일일 뿐이다.
그런데 내가 이런 말을 했더니 다들 그냥 꾹 참고 버텨보랜다. 너 나가서 뭐할 거냐고 한다. 물론 그 말은 맞다. 내가 할 수 있는 일 뭐 일반 사무직, 사무보조 이정도 밖에는 없으니까. 나 정도 되는 스펙으로는 그 정도도 벅차다는 걸 이미 작년에 다 겪어봐서 안다. 그리고 이제 26살이고 졸업예정자들도 취직 안되서 전전긍긍하는데 한 직장에서 10개월 밖에 못버틴 사람을 써줄 회사가 별로 없는 것도 안다.
하지만 난 난 정말 이 일을 하기 싫은데.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 하나로 그냥 버텼는데 그게 다 물거품이 되고 그것도 전혀 예상치 못한 이유 때문에 이지경이 되고 나니 완전히 넋이 나가고 눈물이 나고 모든 게 다 싫어졌다. 부모님한테도 한마디도 못했는데 엄마아빠 반응도 뻔하다. 분명 죽어도 버텨보라고 그럴 거고.  

오늘 한달 115만원 준다는 계약직 공고를 보면서 이력서 쓸까 말까 고민하는 나를 보면서 한심했다. 결국 못썼다. 아. 답답하다. 답이 없고 진짜 싫다. 물론 20대를 이렇게 만든 사회의 탓이 더 크다는 걸 안다. 난 죽어라고 노력만 하면서 살지도 않았지만, 딱히 게으르게 산 것도 아니다. 오히려 돈 없어서 전전긍긍하면서 하고 싶은 것도 꾹꾹 눌러 참으면서 대학 졸업했다. 근데 내가 이력서 써서 서류 붙은 데라곤 외국계 회사긴 한데 대신 미국 시간에 맞춰서 출퇴근 하는 회사, 인천공항 근무긴 한데 새벽 3시에라도 회사에서 부르면 공항 나와서 일하라는 회사, 죽어도 정직원으로 안바꿔 준다는 신문 인쇄소, 면접 갔더니만 하는 일이 서류 복사고 옵션으로 남자직원들 커피도 매일 타줘야 하는데 할 수 있겠냐고 묻는 회사. 이런 회사 뿐이었다. 그때는 어렸고, 졸업한 지 얼마 안됐는데도 그런 회사 뿐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오죽할까.

아. 점점 우울해진다. 제길. 왜 이모양이냐. 왜이리 일생에 운이 없냐.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 때려치고 싶어지는 건 또 어떡하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