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정읍휴가 사진을 이제서 올린다. 2008년 큐슈 사진도 아직 안 올린 마당에..
난 한달이 안되서 오늘도 일하고 금요일에도 일한다. 그래도 어차피 계획도 없고 일한지 얼마 안되었는데 고맙게도 휴가가 끼어 있어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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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름휴가의 목적은 휴가의 목적 보다도 친구를 보러 가는 의미가 컸다. 실제로 2박3일동안 2일은 친구랑만 놀았다. 정읍에서 동생도 초등학교 중학교를 나와서 그때 친구들 만나고 엄마 아빠는 엄마 아빠대로 쉬시고.
첫날 나는 완전 포식했는데 처음에 친구 만나서는 와플이랑 커피를 마시고 그 다음에는 정읍에 내려오기 전 부터 먹여야지 먹고말리라 하고 벼르고 있었던 냉면과 시장에서 사온 순대까지 하루종일 먹었다. 냉면은 4천원 가격에 최고의 맛이었다. 으흑. 또 먹고 싶다. 인천에는 그만큼 맛있는 집이 없다. 난 맛있는 집 찾아다니면서 먹는 사람은 절대 아니고 밥은 한 끼 때우면 된다는 주의지만 진짜 인천으로 와서 맛있는 냉면을 먹어본 기억이 없는 건 유감이다.

아까 11시까지 이거 쓰다가 누웠는데 잠이 도저히 안와서 다시 2시에 일어났다. 연휴를 앞두고 설레여서 그런가? 아니면 낮에 편의점에서 사먹은 스타벅스 더블샷의 효과인가. 노래를 5곡 넘게 듣도록 잠이 안와서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다. 이왕 쓰던 거 마저 써야겠다.

친구와 맛있는 냉면을 먹고, 시장에서 순대를 사서 내장산 밑에 있는 공원에 가서 물쇼(?)를 보면서 여러 이야기를 했다.  생각보다 모기도 별로 없고, 발시려워서 구비해온 양말을 신었을 정도로 시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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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날은 정읍살 때 부모님께서 잘 가셨다는 담양의 카페를 가기로 하고 달렸다. 담양에서 정읍으로 오는 길은 영화 촬영도 많이 하는 메타스콰이어 가로수 길이 있는데 움직이는 차 안이고 하여 제대로 찍지 못하였다. 부모님께서 잘 가셨다는 카페는 문을 닫아 폐허가 되어 있었고 물이 넘실 넘실 댔다는 담양호는 물이 바짝 말라 있었다. 쓸쓸함을 뒤로하고 다시 차를 타고 전라북도로 넘어왔다. 동생이 운전을 해본다고 졸라서 동생이 운전을 했다. 난 2006년에 면허 딴 뒤로 운전을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는데 필요함이 느껴지면 자연히 될거라 생각하고 있다. 지금은 전혀 필요가 없다고. 그리고 차를 모는 편리함을 아직 누리고 싶은 생각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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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정읍으로 돌아와서 쉬었다가 친구 회사 끝나는 시간에 맞추려고 시내로 나왔다. 나 고등학교 때 보다 시내가 더 커져 있었는데 아무리 일요일이라지만, 문을 하나도 안 열었고 사람도 뜸했다. 고등학교 땐 도시가 그렇게 그리웠는데 이제 커서 정읍 시내를 가보니 그냥 여기서 조용히 사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것도 내가 다른 곳으로 돌아갈 사람이니까 하는 생각인지도 모른다.
친구를 기다리는데 시간이 남아서 아이스크림을 시켜놓고 카페 안에 있는 초등학생용 안철수에 대한 책을 읽었다. (진심 재밌었음. 끝까지 못 읽은게 아직도 한 ;)
친구가 먼 곳에서 왔다고 장어를 먹으러 가자고 해서 차를 타고 고창까지 또 갔다. (약 한시간 10분) 가는 길에 앞이 안 보일 정도로 비가 왔는데 친구는  씩씩하게 운전을 잘만 했다.
한마리에 만팔천원 짜리를 친구가 사줘서 황송히 먹는데 도저히 한마리는 다 못먹겠어서 남은 건 포장을 해왔다. 그리고 모텔 (우리 가족은 내장산 안에 있는 모텔에 묵었음) 에 돌아와서 케이블 영화를 한편 보고 죽은 듯 자고, 집으로 돌아와선 돈벌러 과외하러 갔다. 짧은 여름 휴가 사진 정리 끝!


秋夜雨中 - 최치원

위로 2010. 1. 1. 00:25
秋夜雨中

秋風唯苦吟 하니
世路少知音 이라
窓外三更雨
燈前萬里心
이라


가을 바람에 괴롭게 읊조리니
세상에 알아 주는이 없네
창 밖에는 밤 깊도록 비만 내리는데
등불 앞에 마음은 만리 밖을 내닫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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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에 말한 한자공부를 아직도 하고 있다.
초등학교 아이들 대상으로 하는 교재 안에서 한시가 나오는데 위에 시를 보고 마음이 찡해졌다.
특히 등전만리심 이라는 부분이 최고다.
몇백년 전 최치원이 쓴 시로 인해 감동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기록은 정말 위대한 것 같다. (이보다 더 멋진 표현을 하고 싶은데 기억 안난다)
이 시를 읽다가 중3때 대머리 한자 선생님이 생각났다.
아직 결혼도 안한 젊은 나이의 남자 선생님이셨는데 아주 훤한 대머리셨다.
한자 책에 나와있는 한시를 어찌나 열정적으로 가르쳐주시는지 한시 해석해주시면서 정말 멋있지 않냐고 여러번 강조를 했으나 워낙 만만한 이미지 였기 때문에 아무도 귀담아 듣지 않았고, 수업시간은 항상 정말 시끄러웠다.
중학교 1학년 2학년때까지 공부랑 담을 쌓은 나는 꼭 암기해야 백점을 맞을 수 있는 한자는 32점 맞은 적도 있을 만큼 취미가 없었지만, 그래도 중학교 3학년때는 나름 그 선생님이 멋있다고 한 한시들에 감동받은 바도 있고, 재미도 있고 해서 꽤 열심히 공부했다.
저 한시에 대한 해설을 읽으면서 갑자기 중3 한자 선생님이 생각나서, 중학교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다.
우리 중3때 대머리 한자 선생님 생각나냐고 했더니 생각난다며 이름은 기억 안난다고 했다.
나 역시 마찬가지로 이름은 기억 안나는데 오늘도 그 중학교 친구를 만나서 이 한시에 대해 이야기 했다. 내친구 말로는 고등학교 언어영역 공부할 때 이 시가 무지하게 많이 나왔다고 했다. 근데 왜 나는 기억이 안나지.
오늘은 그 중학교 친구 만나기 전에 정읍에서 올라온 친구도 만났는데 나랑 만나는 시간 중 반이 넘는 3시간을 나 미용실에서 파마하는 거 기다려줘서 진짜 미안해 죽을뻔 했는데 집에서 콜이 와서 그 보답도 하기 전에 집에 가버렸다. 내일 걔네 집이라도 놀러갈까 생각 중이다.
2010년 난 아무 생각 안드는데, 아마 주변에서 더 난리들 이겠지.
여러가지 상황 때문에 시도조차 못해보고 이렇게 시들어 가는 내가 조금이라도 용기를 낼 수 있게, 가족 중 한 명이 나한테 힘을 줬으면 좋겠다.
이건 정말 후레자식 같은 말이고 블로그에 써서 안될 말 같지만, 요즘에는 모르겠다. 난 솔직히 요즘 가족도 내 편이 전혀 안되주는 것 때문에 너무 힘들다. 나 하고 싶은 대로 단 한 달이라도 살고 싶은 생각 뿐이다.

모두들 해피 뉴 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