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역에서 내 20대.

일상 2013. 8. 12. 00:47

친구와 영화를 보기 위해 용산역 롯데시네마에 갔다. 용산역과 바로 연결되는 CGV 와는 다르게 롯데시네마는 3번출구로 나가서 꽤 많이 걸어야했다. 8월 1일에 새로 롯데시네마가 개관한건데, 아마 거기 다른 극장이 있었는데 롯데시네마가 인수한 모양이었다.

인수해서 인테리어를 거의 대부분 남겨놓은 것인지, 내가 갔던 다른 롯데시네마들과는 내부 디자인이 많이 다르더군?

영화가 1시 30분 영화여서 우리는 12시 반 쯤 만났는데, 그리고 집에 9시에 들어왔으니 하루종일 친구와 함께 한 셈이다. 그게 조금 무리였는지 난 오늘 하루종일 먹고 자고 쇼파에서 자고 침대에서 자고 거실에서 자고 여하튼 계속 잤다.

친구나 나나 용산역 바깥으로 나가본 적이 거의 없어서 조금 헤맸는데, 헤매다가 내가 27살 어느 겨울 공항버스 정류장을 찾느라 헤매던 곳까지 나오게 되었다.

그대로였다.

 

2009년 12월과 2010년 1월, 그 겨울 기록적인 폭설로 1호선은 한 일주일간 멈추거나 아예 안가거나 했고, 만약 인천행 기차가 오면 그 차에 얼마나 사람이 많던간에 나는 무조건 그 열차를 타야만 했다. 사람들 사이에서 그 두꺼운 겨울 옷을 입고 있는데도 내 갈비뼈가 이러다 부러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으니깐.

내가 위에 말한 그날은 영화 15도에 칼바람이 무지하게 불어대던, 바로 한 이틀 전 미친듯이 많은 눈이 내렸던 겨울날이었다.

어느날 서울역에서 1호선을 타고 오다가 고민을 했다. 급행을 탈 것인가 그냥 지금 탄 인천 완행을 탈 것인가.

그러다 나는 급행을 타기로 하고 용산역에서 내렸는데 아뿔싸.

내가 내렸던 그 인천 완행이 인천으로 가는 마지막 열차였던 것이다. 동인천 급행도 없고, 그 열차 뒤로는 모든 열차가 고장이라 이제 인천행 열차도 없다는 것이다.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하라는 절망적인 코레일의 방송 잊을 수가 없다.

인천까지 택시를 타고 갈까 했는데 도로 사정을 봐서는 도저히 택시를 탔다간 밤을 새도 인천에 갈 수 있을 것 같지 않았고, 또 인천까지 간다는 택시기사가 있을리도 만무했다.

나는 용산역에 앉아서 무한정 기다렸다. 나 같이 인천행 열차를 기다리고 있는 인천 시민으로 보이는 사람이 무지 많았다. 한 시간 넘게 기다리는데도 도저히 복구될 기미가 안보였다. 밤이 되면 날이 더 추워지니까.. 다 망가져서 못달리는 열차가 단시간에 다 복구될리도 없었겠지. (그때 그냥 선량한 소시민 코레일 직원들도 아마 시민들 불평 불만 다 받아주는 방패하느라 무지 고생했을 거다. 그 사람들 잘못은 아닌데. 여러모로 참 슬픈 겨울이었다.)

고민을 하다가 생각한 것이 용산역에 KTX 가 있으니 공항 가는 버스도 있지 않을까 하는 거였는데, 당시에는 스마트 폰이 없었기 때문에 공항가는 버스 정류장이 어딘지 알 수가 없었다. 역내 직원에게 물어 물어서 용산역 주변을 목도리 두르고 돌아다니는데 난 정말 춥고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왜냐면 너무 외로웠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전화해서 나 이렇게 집에 가려고 개고생 하고 있다고 말할 사람도 없었고, 애타게 찾는 공항버스 정류장은 나오지도 않고. 어찌저찌 정류장을 찾아서 주변 아저씨에게 물어보니 공항버스 오려면 40분 정도 기다려야 된다고 하셨다.

나는 칼바람을 맞으며 영하 10도가 넘는 그 정류장에서 기다렸다. 눈물을 꾹꾹 참으면서.

 

다행히 공항고속도로는 말끔하게 제설이 되어 있었고, 빠른 시간 내 공항에 도착했지만, 공항에서 또 버스를 타고 우리집 오는데 평소면 30분 걸리는 길을 한시간이 넘게 걸려서 왔다.

결국 나는 회사에서 나선 뒤 거의 4시간이 넘게 걸려서 집에 도착했는데 엄마아빠에게 엄청 짜증을 부렸던 것 같다. 그리고 아마 그때 쯤 이 지긋지긋한, 그만둘까 말까 입사하는 첫날부터 고민했던 그 직장을 때려쳐야겠다고 결심을 굳혔다.

 

불행했던 위 사건 이후로 처음으로 용산역 바깥을 나가본 거 같은데 그때나 지금이나 내 곁에는 아무도 없고, 난 여전히 외롭다는 슬픈 소식이다. 오늘 그래서 집에서 많이 우울했다. 물론 내색은 안했지만,

아무래도 이렇게 어렸을 때 부터 평생 외로운 것이 내 팔자인가보다 싶다.

 


20대가 사라졌다.

위로 2007. 12. 4. 15:03
20대가 사라졌다

언젠가부터 20대가 대중문화의 중심으로부터 완연히 멀어져버렸다. 극장을 가도 TV를 봐도 책을 읽어도 20대의 주체적인 시각과 행동을 다룬 콘텐츠를 찾아보기 힘들다. 20대는 모두 어디로 사라졌나?

모두가 20대를 증오한다. 의식 없고 예의 없고 소명감 없고 사회정치 환경에 대한 관심도 없으며 할 줄 아는 건 영어밖에 없고 오로지 성공의 가치에 모든 걸 헌신하는 듯 보이는 '요즘 것들'에 대한 책망이 하늘을 덮었다. 심지어 20대마저 스스로를 증오한다. 전 세대들과는 판이하게 다르게 펼쳐진 세계의 풍경을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며 동기와 기성세대와의 무한경쟁에 더욱 더 몰입한다. 여기,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대한민국의 역사를 돌이켜 보건대 지금의 20대만큼 이른바 '세대 의식'이 전무한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지금 한국의 20대는 '세대가 없는' 세대다. 그래서 '지금의 20대들'이라는 말 자체에 어폐가 있는 게 사실이다. 그들은 한 가지 단어나 분류로 구획지어질 만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 않다. 거기에 모종의 악의나 연민을 담아 이야기하는 건 실체 없는 유령을 잡겠다며 굿판을 벌이는 선무당의 헛수고나 다를 게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대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까닭은, 그들 세대가 처해 있는 환경의 특수성 탓이다.

20대의 절반 가까이가 한자 문맹에 가깝다는 장탄식은 보수 언론이 자주 꺼내드는 주요 의제다. 누군가는 대학가 주변에 인문학 서점이 자취를 감춘 것과 연결지어 (거창하게도) 지성의 멸망을 한탄하기도 한다. 지금 한국의 20대는 대통령보다 더 만만하고 쉬운 존재다. 욕을 하려면 밤을 새가며 할 수도 있을 거 같다. 고대의 벽화에조차 "요즘 것들은 예의가 없다"고 적혀 있었다는 걸 보면, 젊은이의 역할에 대한 기성세대의 불신은 확실히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펼쳐진 상황은 또 다르다.

우리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대중문화는 사회의 욕망과 현상을 투영하기 마련이다. 그 대중문화에서 20대가 사라져간다. 대중문화의 주요 아이콘으로 가장 적극적인 역할을 하고 있어야 마땅한 20대가 어느 사이엔가 자취를 감춰버린 것이다. 20대 배우와 작가와 가수를 가리키며 반문할 것 없다. 그들이 만든 문화상품이 과연 20대를 위한 20대의 이야기인지에 주목해야 한다. 아니다. 20대가 가지고 있는 몸뚱이의 매력을 팔아 치우는 것, 혹은 20대를 내세워놓고 정작 기성세대의 판타지를 충족시키는 데 주력하는 트렌드 드라마들은 논외다. 정말 20대의 고민과 관심사를 담고 있는, 화자와 청자가 모두 20대인 콘텐츠가 없다. 20대는 시장 안에서 개별적인 소비군중으로써만 존재할 뿐, 대중문화 주체로서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아무도 20대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물며 20대 스스로도 자기 세대의 이야기를 외면한다. 그들에게 본인들의 세계를 성찰할 여유나 자존감 따위는 남아있지 않다. 오로지 끝없는 경쟁과 취업 전쟁만이 세계의 전부다. 그걸 그렇게 만든 건 20대 스스로가 아니다. 그런 세계가 주어졌을 뿐이다.

물론 그들은 여전히 대중문화의 주요 소비자층이다. 단지 소비만 할 뿐 그 안에서 어떤 주체성도 발휘할 수 없다는 게 문제다. 지금 당장 온라인 서점에 들어가 '20대'라는 키워드를 검색창에 넣고 클릭해보라. 첫 번째 페이지에 다음과 같은 제목의 책들이 출력될 것이다. <대한민국 20대, 재테크에 미쳐라> <20대가 꼭 알아야 할 경제지식> <20대여, 지금 당장 주식에 투자하라> <대한민국 20대, 인테크에 미쳐라> <여자 20대, 몸값을 올려라> <20대에 시작해 평생 고수익 올리는 금융 재테크> <20대 여자가 꼭 알아야 할 돈 관리법> <대한민국 20대 여자의 재테크는 남다르다> <20대 직장인 부동산에 빠져라> <대한민국 20대, 내 집 마련에 미쳐라>. 경제 분야에 한정해서 검색한 게 아니다. 모두들 20대가 경제에 '미치길' 권유하는 듯 보인다. 사실은 그게 아니다. 대다수 20대가 이미 돈에 미쳐있다. 돈을 벌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난 2002년 대선 때 조갑제는 "(한나라당의 패색이 짙어지고 있으니)50대는 용돈으로 20대를 제어하라"고 했다. 웃기지만, 웃기는 말이 아니다. 이 땅의 20대는 아르바이트 정도를 제외하면 자력으로 돈을 버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요는 이들이 첫 번째 포스트 IMF 세대라는 거다. IMF 이후의 세계를 살아가는 건 비단 지금의 20대뿐만이 아니다. 하지만 대학진학과 함께 IMF를 맞았고, 과거와 전혀 다른 환경을 세계의 전부로 경험했으며, 급격한 신자유주의 바람 속에서 무한 경쟁의 순환 고리 안으로 떠밀려진 세대는 지금의 20대가 처음이다. 대학 캠퍼스의 잔디밭에 앉아 기타를 치며 혁명과 역사와 민족과 독재를 논하면서 소위 의식이라는 걸 습득하고, 데모를 하거나 술을 마시거나 하면서도 괜찮은 직장에 취직할 수 있었던 과거의 세대와는 경우가 다르다. 참혹한 경쟁을 거쳐 대학교에 들어가더라도 미래는 조금도 보장되지 않는다.

청년실업의 문제는 이미 그 수치와 비율을 입에 담기도 민망할 정도다. 올해 통계청 월별 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 5~6월 대졸자들이 포함된 20대와 30대 취업자 수가 다른 연령대에 비해 계속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공무원 시험에 몰리는 대졸자 수도 갈수록 늘어난다. 올해 실시된 서울시 7·9급 공무원 시험에는 9만 1582명이 몰려 52.9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미래는 더 어둡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은 지난해 '중장기 인력수급 전망' 보고서에서 2015년까지 노동시장에서 초과 공급될 전문대 이상 학력자 수를 54만 8000명으로 전망한 바 있다. 진짜 무서운 건 취업이 되도 걱정이라는 사실이다.

네이버 지식인에 다음과 같은 질문이 올라왔다. "안녕하세요, 제 나이는 20대 중반으로 공공기관에 비정규직으로 있습니다. 연봉은 1500만 원이 안 되지만 4대 보험과 의료보험은 해당됩니다. 대출을 받아본 적도 없고 카드가 연체된 적도 없습니다.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이런 대답이 올라왔다. "조건이 안 되십니다. 하지만 방법은 있습니다. 따로 쪽지 주세요." 제2 금융권에 손을 벌리라는 이야기다. 현재 20대 취업자 과반수 이상이 비정규직이다. 그들 대부분이 85 만원에서 150 만원 사이의 월급을 받고 있다. 앞으로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으리라는 희망도 없다.

최근 화제를 일으키고 있는 책 <88만원 세대>의 공동 저자 우석훈 교수는 지금의 20대를 "최초로 승자독식체제를 받아들인 세대"로 규정하면서 "현재의 20대 중 95%는 월 88만원을 받는 비정규직 노동자로 어렵게 살게 되고 5%만이 안정된 직장을 구하게 될 것"이라고 예견하고 있다. 책의 제목인 '88만원 세대'란 전체 비정규직의 평균 임금인 119만원에 전체 임금과 20대의 임금 비율을 곱해서 뽑아낸 숫자가 88만원이라는 데서 기인한다.

놀랍도록 새롭고 절실한 문제의식으로 충만한 이 저서는 주로 진보 지식인들이 인문학적 언어를 동원해 지적하곤 했던 사안들을 철저한 경제논리와 개념들에 입각해 풀어내고 있다. 우석훈 교수는 현 상황을 세대 간 무한경쟁으로 인해 벌어진 일로 파악한다.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이 몰고 온 승자독식체제의 게임법칙이 20대에게 특히 불리하게 작용한다는 거다. 기득권을 차지하고 있는 40대 50대가 쉽게 자리를 내어줄 리 없는 상황에서, 20대는 비정규직의 굴레로 몰릴 수밖에 없다. 승자독식의 법칙은 세대 간 경쟁에서뿐만 아니라 사회 전 분야에서 이뤄지고 있는 현상이므로, 이들은 앞으로도 갈 곳이 없다. 30대가 되고 40대가 되도 상황이 지금보다 나빠지면 나빠졌지 좋아질 수가 없다. 저자들은 "20대들이 스스로 더 이상 승자독식게임을 하지 않겠다고 윗세대에 대항해 자기 권리를 찾는 게 유일한 희망"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20대 스스로는 사실상 이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 결국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는 이야기다.

모두가 20대를 증오한다. 정작 20대의 존재감은 생존경쟁의 틈바구니 속으로 사라졌다. 서점을 방문하고 극장에 찾아가면 일본의 청춘소설과 영화들이 우리 20대의 이야기를 대신해 들어차 있다. 그들의 이야기는 우리 주위의 문제의식을 담아내지 못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20대조차 무관심하다. 88만원 세대에게 문화나 오락 따위는 헛배 부른 사치에 불과하다. 사회 첫 발을 내딛는 20대는 가장 행복한 세대여야 마땅하다. 제도적으로 그 시작을 보장받아야 한다. 그게 건강하고 상식적인 사회다. 그런데 당연히 축복받아야 할 세대가 한국에선 가장 힘 없고 갈 곳도 없으며 오로지 경쟁만을 강요당한다. 20대는 그런 세상을 바꾸려하기보다 그저 자학하기에 바쁘다. 세상에, 이건 끔찍한 공멸의 징조다.


허지웅 (GQ 11월호)


P.S 이 사람은 평론가다. 블로그에 방문하면서 나와는 모든 생각이 일치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알았지만, 내가 아무리 쓰려고 해도 쓸 수 없는 평론을 이렇게 많이 써 낼 수 있다는 것에 정말 존경을 표하고 싶다.(한 때 꿈이 또 영화 평론가 아니었던가)
대학 졸업 후 취업전선에서 처절할 정도의 경쟁과 치열함과 자학에 몰두해본 사람이라면 윗 글에 울컥하게 될 것이다. 정말로 브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