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반복 훈련의 효과.
사무실에 앉아 있으면서 전화가 오면 반사적으로 수화기를 들고 평소때와는 다른 멘트로 전화를 받는다. 전화오면 무조건 받아야 한다. 어쩔 땐 내가 인지하지도 못한 순간에 이미 전화기에 손이 가있고  저는 누구누구 입니다. 라고 말하고 있는거다. 이제 금방도 그랬다.
아침 저녁으로 출퇴근 할 때도 난 어떻게 가면 가까운 지 알고 내 몸은 본능적으로 어느 새 그 경로를 따라 움직인다. 우리집에서 동인천 역으로 가는 경로는 2개인데 어떤 경로가 몇 분 정도 더 빠른지, 이 순간 신호등에 걸리면 다음 신호등에 걸리는지 안걸리는지, 이로 인해 나는 9분 직통을 탈 수 있는지 아니면 16분 직통을 타야 하는지, 버스를 타러 오면서 고개를 들어 신호등을 보고 저쪽 신호등이 켜졌으니 이 다음은 이 신호등 그러니깐 난 여기서부터 뛰어야 한다. 는 것 까지 이젠 다 알게 되었다.
2개의 경로 중 내가 선호하는 경로로 동인천역에 도착했을 경우 4-3칸에 타야 대방역에서 갈아 탈 때 바로 계단과 연결되고 대방역에서 1호선을 탈 때는 10-4칸을 타야 서울역에서 바로 에스컬레이터로 연결되지만 10-4 칸은 정말 바쁘지 않음 안타는 것이 좋다는 것도 안다. (종점인 용산역에서 안갈아타고 대방역에서 갈아타는 이유는 대방역 환승로가 훨씬 가깝기 때문에) 정말 바쁘면 종종 타지만 그 칸에 탔다가는 단 4정거장만에 힘이 다 빠져버린다. 더욱 놀라운 것은 대방역에서부터 10-4번 문 앞은 단 한사람도 못탈 듯 미어터지는데 아무리 미어터져도 용산역에서 기다리던 15명 남짓한 사람 모두 무사히 그 10-4번 칸에 탄다는 것. 항상 그렇다. 그럴 때 마다 난 한국인의 저력을 느낀다. 위대한 한국인들. 절대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출근시간 지하철 안에서는 가능한 것이다.
 서울역에서 4호선을 탈 때는 6-3번 칸 까지 가야 충무로역에서 바로 에스컬레이터로 연결되는데, 정말 늦지 않았으면 내가 서울역 에스컬레이터를 걸어 내려가고 있는데 당고개행 전철문이 열렸다 하더라도 전혀 서두를 것이 없다. 그 시간대 당고개행 전철의 배차간격은 거의 3분 정도 밖에 안되기 때문이다.
퇴근길에는 정확하게 이 반대로 집으로 돌아오는데 예전에는 집에 지각한다고 시말서 써야 하는 것도 아니고 뭐하러 열심히 걷냐 싶어서 환승도 느릿느릿 하고 용산역 에스컬레이터에서도 그냥 서있지 안 걸어올라왔다. 하지만 그렇게 느릿느릿 하다가 직통 한개를 그냥 놓쳐버렸을 경우 굉장히 열 받는단 사실을 알고 난 후에는 무조건 환승할 때도 빠르게, 그 경사 심한 용산역 에스컬레이터 위에서도 막 뛰기까지 한다.
다른 사람은 전혀 관심없을 이런 것들에 쓰는 이유는 갑자기 내가 단 몇개월 위에 것들을 반복한 것으로 지금의 나는 거의 단 한번의 오차도 없이 저 모든 것을 매일 해내고 있다는 것이 갑자기 경이로웠기 때문이다. 또 단 한치의 오차도 없이 생활해야 별 탈없이 일주일이 지나간다는 것이 서글퍼지기도 하고 그렇다. 일부러 다르게 행동해볼테야! 라고 동인천역에서 직통탈 때 1-1칸에 타는 등의 일상에 대한 소심한 반항을 해봤자 고달픈 건 어차피 나 니까. 어쩔 수가 없다. 어쩔 수 없다는 것 처럼 판에 박힌 변명도 없지만.

2. 전철 탈 때 선호하는 옆 사람의 유형.
난 용산-동인천 급행을 종점에서 종점까지 타고 가기 때문에 항상 앉고, 항상 어떻게든 자서 조금이나마 내 피로를 해소하려는 사람이다. 이 때문에 급행을 탈 때 옆에 앉는 사람은 나에게 무지하게 중요하다. 옆 사람을 제대로 못 만나면 그 아까운 40분 내내 잠도 못자고 짜증만 나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옆 사람은 메트로, 포커스 같은 공짜로 주는 신문을 읽지 않고, 이어폰 음악 소리 크지 않고, 팔장끼고 전철에 앉자마자 자려고 워밍업하고 있는 여자다. 그 이유는 신문을 보는 사람은 보통 신문을 넘기면서 자꾸 내 옆구리를 건드리고, 이어폰 음악소리가 크면 좋지도 않은 노래를 옆에 사람이랑 같이 들어야 하고, 팔장을 끼고 자려고 하는 사람은 어찌되었든 나와 목적이 같은 동지같은 사람이고, 남자는 덩치가 여자보다 커서 가만히 있어도 신체가 접하기 때문에 자는데 신경쓰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나 자는데 방해안하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나는 옆 사람 자는데 방해를 전혀 안하느냐. 그건 아니다. 근데 내가 방해할 때는 이미 내 몸의 상태가 내 의지를 벗어났을 경우다. 즉, 내가 자느라고 고개가 나도 모르게 옆사람의 구역을 계속 침범하는 경우가 바로 그런 경우. 그래서 나는 웬만하면 문 바로 옆에 자리, 그러니까 머리를 벽에 기댈 수 있는 자리에 앉는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문제는 발생한다. 이럴 때 잘못 자면 나도 모르게 입이 벌어진 채로 잠을 자는데 예전에 된장녀 같은 시리즈가 유행할 때 처럼 별명을 지어보자면 입벌녀 정도 될까? 흐흐. 가끔 날 보면서 흉하다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뭐 별로 신경 안 쓴다. 걔네들이 내 이름 아는 것도 아니고 다시 만날 사람들도 아니니까. 일단! 나에게는 이런들 저런들 자는게 남는 거니 말이다. 하지만 한가지 걱정은 이러다가 좀만 더 가면 침까지 흘리는 거 아닌가 하는 거다. 아무리 낯짝 두꺼운 나지만 침까지 흘리는 건 좀 아니지 싶다. 다행스럽게도 아직 침 흘리며 잔 적은 없다.

3. 난 저러지 말아야지.
이 포스팅을 처음 시작한 건 어제였고 난 원래 이 말은 안 쓰려고 했다. 하지만 오늘 아침에는 써야겠다. 우리 회사에도 꼴보기 싫은 루꼴라(키드님 블로그에서 차용했습니다)가 있다. 제발 성숙해라. 루꼴라여. 물론 나도 하나도 잘난 거 없는 사람이고 누가 날 옆에서 본다면 욕먹을만한 짓만 하는 사람일지 모르지만 우리회사 루꼴라는 너무 심하다. 그 루꼴라는 가까운 부서에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다혈질인데, 뭐 저번에 어떤 사람 말로는 아마 우리회사에서 제일 구린 사람 중 하나. 랜다. 불행히도 그 루꼴라와 나는 일을 같이 한다.(불쌍하다는 말도 자주 듣는다) 처음 한 3개월 간은 심각하게 다른 이유 하나도 없이 순전히 루꼴라 때문에 회사 관두려고 했다. 근데 3개월 지나니 이젠 이 월급이 없음 생활이 안될 것 같아서 참고 정을 붙여보려고 했다. 지금은 뭐 포기단계다. 왜냐면 대화가 안되는 사람임을 알았기 때문에. 루꼴라 때문에 회사를 관둔 사람은 내가 아는 사람만 총 8명이다. 그 사실을 알고 난 묘한 안도감을 느꼈다. 나만 저 인간을 싫어하는 게 아니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서.
루꼴라는 시도 때도 없이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ㅆㅂ 이라는 두글자로 된 욕을 한다. 아... 나도 나름 귀하게 컸는데 저런 욕 들으면서 돈 벌어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든다. 뭐 더 심할 땐 ㄱㅅㄲ, ㅁㅊㄴ 등 욕도 하고, 그냥 아주 평온한 상태에서는 말 끝마다 씨~ 라는 말을 달고산다. 이제금방도 저런다. 그 입 제발 닥쳐라.
아까 오전에 아주 인텔리젼트 한 모 부장님이 루꼴라한테 왔는데 그 부장님이 루꼴라를 다그치면서 우리한테 원래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은 같은 말을 쓰게 되는데 너희들은(우릴 보면서) 꼭 이사람 말투 배우지 않도록 조심해라. 그리고 넌(루꼴라를 가르치며) 여기 책상위에 있는 약 (약 봉투를 집어들고) 먹고 정신이나 차려. 라고 말하고 가시는 거다. 그 부장님은 오늘부터 2008년 들어 최고 멋있는 남자 1위다.
루꼴라의 황당한 행동을 열거하자면 아예 블로그를 하나 더 만들어서 하루에 하나씩 써도 365일이 모자를 정도이니 이쯤 해야겠다. 내가 루꼴라를 보면서 가장 자주 하는 생각은 '나는 저러지 말자. 제발' 이다. 그런데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 했던 다짐들을 다 실천하면 정말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가끔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면 흠칫 놀란다. 앞으로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 했던 것에  대해서는 정말 저러지 말아야겠다. 많이 힘들겠지만, 내가 누군가의 눈에 루꼴라 처럼 보이면 당장 충무로역에서 투신자살 해버릴테다.

4. 강력한 마취주사.
난 화요일에 치과에서 마취주사 3방을 맞았다. 치과 점심시간이 1시부터 2시라고 해서 나는 12시에 예약을 했는데 때문에 밥을 못 먹은 상태였다. 상태를 봐선 마취가 당분간은 안 풀릴 것 같고 점심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고 그 마취주사가 내 위를 마취시킨 건 아니기 때문에 배는 무지하게 고프고 해서 마비된 왼쪽 대신 오른쪽으로 샌드위치를 허겁지겁 먹었다. 그런데 마취가 너무 강력해서인지 씹기가 매우 힘들었다. 고달픈 점심을 다 먹고 휴지로 입을 닦는데 피가 묻는거다. 그것도 아주 많이. 응? 이거 왠 피야? 이러고선 거울을 봤다. 그런데 왼쪽 아랫입술과 윗입술에서 피가 철철 나고 있었다. 내가 추리해본 바로는 내가 오른쪽으로 씹는다고 씹었지만, 습관적으로 난 왼쪽으로도 씹었고 씹는 과정에서 난 입술을 아주 힘껏! 깨물었다. 그러나 나는 마취가 안 풀린 상태라 그것도 모르고 그냥 계속 샌드위치를 먹은 거였다. 상태를 봐서는 한번 깨문 것도 아니고 아주 여러 번은 깨물은 것 같았다. 그 상태로 샌드위치 먹었을 광경을 생각해보니 피는 철철 나는데 나는 허겁지겁 샌드위치를 먹고있는 매우 그로테스크한 광경이 그려졌다. 시간이 좀 지나자 이제 피는 철철 안났지만 계속 조금씩 피가 났는데 오후 4시 반 경 되서야 마취가 풀리면서 그때서야 나는 입술에서 심각한 통증을 느꼈다. 때문에 그 이후로 나는 밥을 제대로 못 먹고 있다. 오늘 아침에 보니 다행히 붓기는 가라앉았다. 아. 밥먹기 불편하다.

5. 성인 게시판.
내가 사랑하는 한 게시판이 있다. 22살인가부터 가입했던 싸이월드 클럽 익명 게시판인데.. 비밀클럽이고 나잇대가 다 내 나잇대고 무엇보다 웃기다. 가입원들은 대부분 여자들이다. 남자도 몇 있긴 하지만 100% 중 한 10% 정도? 내가 요즘 블로그질이 좀 뜸했던 이유 중 거기 익게 읽느라. 도 있다. 심각한 얘기서부터 웃긴 것 까지 많은데 요즘 내가 최고로 웃기게 봤던 게시물은 바로 이거다. (댓글부분은 확대하여 보시길)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삭막했던 사무실에서 풋. 하고 웃어버렸다. 저 게시물에서도 알 수 있듯 대부분이 애인이 없고, (그렇다고 애인 없는 사람들의 모임으로 만든 클럽은 아니다) 또 대부분이 루저다. 그런데 어떤 남자가 익게에 여기 클럽 여자들은 성에 대해 너무 무지한 것이 느껴진다. 참 걱정이다. 우리 19세 이상 게시판을 만드는 건 어떠냐? 이런 제안을 올려놓은 거다. 난 이거 보면서 참나. 오지랖도 참 넓으셔. 라고 비웃었다. 아니 그래서 자기가 성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를 다 알려주겠다고? 어이쿠~남자 구성애 나셨네. (구성애님 죄송합니다. 저 구성애님 좋아합니다)  
난 그냥 저 남자가 좀 변태같다. 성인 게시판은 도처에 널렸다. 그런데 왜 굳이 여기 클럽에까지 성인 게시판을 만들려 하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 남자도 그런 얘기 할 게시판도 많을텐데.. 흠.. 내 머리론 이해가 안된다. 난 왠지 그 게시판 반댈세.

6. 모르는 전화번호.
요즘에는 대출받으라는 전화도 핸드폰 번호로 온다. 벨이 울리자마자 바로 끊고, 나중에 부재 중 전화가 있길래 전화해보면 다 대출 전화. 평소에 하루종일 문자 하나 안오는 날도 허다한 (자랑이냐) 나는 처음에는 그런 부재 중 전화가 있으면 전화를 해봤다. 몇 번이나 그런 시도를 했다가 이제는 모르는 핸드폰 번호로 전화가 와도. 응. 그래 대출? 이러고 만다. 조금 오래 되었지만, 저번에도 모르는 핸드폰 번호로 전화가 와 있었다. 근데 그 번호로 두번이나 부재중전화가 온 것이 아닌가. 흠... 2번이나 똑같은 번호로 대출 전화가 오진 않던데. 싶어서 다시 전화를 해봤다. 엇. 컬러링이 들리잖아. 대출받으란 전화가 아니네? 라는 생각이 드니까 괜시리 가슴이 두근 두근 했다.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뒷자리 4자리가 내가 알던 번호랑 조합 딱 한번만 달랐던 것이다. (가령 원래가 1234 면 1324 로) 2번이나 전화를 해봤으나 끝내 전화를 안 받았다. 난 그때는 그냥 그래 뭐 잘못 전화했나보다. 하고 말았다. 근데 우울했던 어느날 밤 나는 통화목록을 검색하여 그 전화번호를 끝내 찾아냈다. 골똘히 그 전화번호를 바라봤다. 누굴까? .. 도대체 누굴까... 혹시? 너? 이런 생각을 했다. 솔직히 나 그 번호 하도 되내여서 외워버렸다.
모르는 사람이 전화했든, 내가 지금 생각하는 사람이 전화했든, 아니면 전혀 상상치도 못한 사람이 전화했든 달라지는 게 무어냐. 얼마나 생활이 무미건조하면 이따위일에 마음이 동하는지 모르겠다.
지금도 가끔 궁금한 게 내가 그렇게 힘들었던 것의 100분의 1정도라도 그 사람은 힘들었을까? 아쉬운 건 좀 있었어도 힘든 건 별로 없었겠지.란 생각이 드는데.. 참나. 아직도 이모양 이꼴이니. 질기다 질겨.

+1. 병주고 약주기.
원래 6번까지만 쓰고 말려고 했는데 저 6번 이야기가 너무 우울한 관계로 분위기 쇄신을 위하여 하나더 써놔야겠다. 이것은 욕먹을 각오로 쓴다. 금요일에 휴가를 친구와 보내고 토요일은 집에서, 일요일 역시 집에서 그냥 인터넷이나 하고 있을 때였다. 나보고 살빼라고 말했던 분이 자기 기숙사 복귀하기 전에 저녁이나 먹잰다. 비도 오고 날도 춥고 나가기 귀찮았지만 그래도 토요일 일요일 내내 집에 있기 싫어서 나갔다. 사람이 많았다. 우산을 같이 쓰고 가는데 난 원래 하던데로 후드자켓에 붙어있는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묵묵히 걸어가는데 이럴 땐 보통 팔짱끼지 않냐? 이러길래. 어 그래? 그러고선 그냥 뭐 까짓것. 하고 팔짱을 꼈다.
저녁먹고 차를 마시는데 또 아니 살빼라고 해놓고 왜 또 좋다고 그래? 흥? 이런 얘기나 하고 있는데 우리 미영이는 거의 요정이지 요정. 이러는거다. 살빼라는 얘기도 요정 이라는 말도 태어나서 처음 듣는 얘기니 상쇄하여 용서해주기로 했다.
그나저나. 나보고 요정이래. 왠일이야. 푸하하하핫. 진짜 웃기다. 아니 웃긴 것을 넘어 충격적이기까지.
병주고 약주는 건 안좋은 것이지만, 난 병주는 것 보단 약주는 것의 효과가 훨씬 커서 항상 잘 넘어간다. 귀가 얇아서 칭찬하면 진짜인 줄 알고 좋다고 또. 이런 지조 없는 성격 같으니라고.

설레임.

일상 2008. 3. 19. 11:48

3주 연속 우울한 금요일을 맞을까 두려워서 금요일에 휴가를 냈다. 어제 얼마나 눈치를 보며 휴가를 냈는지 모른다. 저번에는 다른 팀 부장이 쟤는 왜저렇게 일찍 퇴근하냐고 뭐라고 했다는 흉흉한 소문도 들려왔다. 그 얘기 듣고 진짜 열받았다. 님이 뭔상관? 이렇게 말해주고 싶은 걸 억지로 참았다.
이런 때일 수록, 나는 바빠도 휴가내고 아무리 뭐라고 해도 일 없으면 일찍 퇴근하는 사람이다. 라는 것을 확실히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연한 의지로!
정말 두려운 소문은 따로 있다. 나 그 소문이 진짜면 앞뒤 생각치않고 관둬야지 했는데 나 그럴 수 있을까? 아.. 아니야. 그 소문이 진짜면 관둬야지 어떻게 일해? 그건 인권침해야.

뉴스를 통해 금요일 날씨를 확인하니 비도 안오고 화창하댄다. 재작년 그러니까 24살 때 친구랑 종로 인사동 일대를 놀러다녔던 기억이 났다. 오전 11시쯤 만나서 저녁까지 먹고 어두워지기 전에 들어왔는데 아마 4월 말 정도였지. 24살 봄은 진짜 잔인했다. 오.. 생각만해도 끔찍하다. 그런데 유일하게  즐거웠던 기억으로 남아있는 나들이가 그 나들이다. 서울은 평일 낮에 보면 한가롭고 이쁘기까지 한 도시다. 저번에는 친구랑 남산, 명동, 경복궁 등등 완전 관광코스로만 하루종일 놀았던 적이 있는데 어찌나 유익하고 기분이 좋은지 다른 사람들한테도 마구 추천하고 싶었다. 특히 남산은 케이블카가 있어서 올라가는데 힘들지도 않고 올라가서 보면 또 기분이 극락이고. (뭔가가 극락이다. 라는 표현은 친구가 쓰는 표현인데 벌써 옮아서 나도 사용하고 있다)

이번 휴가에도 나랑 놀아줄 친구는 24살 4월 말에 놀아줬던 친군데 우리 사진도 그때처럼 찍기로 했다. 엊그제는 그 때 찍은 사진을 다시 보여주면서 우리 완전 늙었어. 나이 왜이렇게 쉽게 먹냐. 라고 했는데.. 얼굴이 완전 애띠고 심지어 지금에 비해선 해맑기까지 한거다. 서글퍼졌지만 그래도 그땐 즐거웠고 그럼 된거지. 어제 마을버스 타고 오면서 이번 주 휴가 낼 생각을 하니까 요근래 들어 최고로 가스이 쿵쾅 거리는 게 아닌가. 휴가는 아직 시작도 안했는데 벌써 이런다. 아.. 재밌겠다. 벌써부터 기대된다. 서울시청앞 분수대도 이제부터 다시 가동한대고, 잔디에 새싹은 좀 돋았나? 아 신난다. 요즘 내 일상에 너무 뭔가가 없었다. 맨날 퇴근 후 바로 집으로 와서 씻고 어떻게든 10시 반 이전에 취침하겠다는 일념하나로 살아온 3월이여. 점심시간에 청계천 가서 나는 오늘 일 한다는 걸 온몸으로 보여주며 직장인들 약올려야지. (그래봤자 나도 직장인이지만) 원래는 월요일에 쉴수도 있고 월요일에 쉬는게 나한테 훨씬 유리하지만 이번주 금요일도 안쉬었음 분명히 또 우울했을거다.

아 군대가서 아직도 훈련받고 있는 동생이 아무래도 심상치 않은 부대로 배치될 것 같다. 키 175 이상만 간다는 소문도 있고, 그냥 군인보다 훈련 두배 행군 두배 라는 소문도 있다. 우리 엄마는 어디서 그렇게 안좋은 소문만 듣고 오시는지. 내무반도 일반 군인과 다르게 10명 밖에 안 쓰고 월급도 무려 4만원이 많댄다. 거기서 많이 하는게 헬기 에서 줄타고 내려오는 거라는데 이거 생각하니까 블랙호크다운에서 블랙번인가? (블랙호크다운을 5번 넘게 봐놓고 그거 하나 모른다. 하핫) 그.. 반지의 제왕에서 꽃미남 아. 이름 기억안나. (결국 네이버에서 찾았다. 올랜도 블룸!) 하여튼 그 놈이 헬기가 흔들려서 땅에 떨어지고 의식불명 되는 게 생각났다. 고작 생각난게 이런 불길한 거라니! 우리 엄마가 대령으로 제대한 삼촌한테 여기 어떤데냐 물어봤더니 요즘 군대 죽을만큼 훈련 안시킨다. 다 할 수 있을만큼 시키는거다. 라고 말씀하셨댄다.  근데 그것까진 좋은데 삼촌은 왜 마지막에 엄마한테 기도 많이 해야겠다는 말을 덧 붙이신건지 원. 그 말에 우리 엄마는 다시 심란해지셨다.

휴가를 이틀 앞두고 있는 수요일. 오늘도 불길하게 일이 없다. 그리고 나 일하기가 너무 싫다. 오늘은 특히 싫은걸. 좀있다 점심먹고 치과에서 스케일링 받기로 했는데 아프면 어떡하지. 제대로 된 이가 거의 없고 금니도 엄청 많은 나는 치과에 대한 안좋은 추억이 너무 많다. 설마 스케일링 하다가 또 뭔가를 발견해서 견적 100만원 입니다. 하는 건 아니겠지. 무사히 스케일링 받고 오늘도 결연한 의지로 될 수 있는 한 빨리 퇴근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