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복날 월미도.

일상 2010. 7. 20. 22:48
과외를 하는 집 중 다른 한 집은 내가 과외를 하러 가면 애가 없거나, 애가 있는데도 병원을 가야되서 과외를 못하는 날이 많다. 우리집이랑 가까운 집이긴 하지만, 그렇게 사정이 생기면 나한테 문자 하나만 딱 보내주셔도 정말 감사할텐데, 내가 그 집 앞에 있는 문앞에 가서 전화를 하면 그때서 오늘 안된다고 답변이 온다. 그나마 전화가 연결이 되면 다행인데 그것도 안되서 30분 정도 기다리다가 문자만 남기고 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복도식 아파트라 여름은 괜찮은데 이거 겨울에 복도에서 기다리려면 춥겠구나 하는 걱정도 한다. (그때까지 할지 안할지도 모르겠지만)
이렇게 매일 기다리는 일이 많다보니 어렸을 때 눈높이 선생님에게 갑자기 죄송해지기도 하고 그렇다. 난 어렸을 때 눈높이 수학도 하고 눈높이 영어도 했다. 나 초등학교 때는 그게 아주 선풍적인 인기였다. 가격도 저렴하고, 또 난 엄청 효과도 봤다. 그러나 당연히 난 교재를 엄청 밀렸고, 너무 밀려서 도저히 수습이 안되는 날에는 눈높이 선생님이 문을 두드려도 집에 없는 척을 했다. 미안해요. 눈높이 선생님. 흑. 아무래도 그때 쌓은 업보를 지금 받는 모양이다.
어제도 버스를 타고 그 집으로 향하고 있는데 문자가 왔다. 안될 거 같다고. 이미 버스를 탄 상황이고 우울하기도 하고 그래서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 월미도로 향했다. 마침 해가 딱 지는 시간이라 노을도 보고 우울한 마음도 달래고 좋을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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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간거라 핸드폰 카메라로 좀 찍었는데, 딱 적절할 때 도착하여 해 지는 모습까지 보고 왔다. 그 주변에 은근히 집이 많아서 산책하러 나온 사람도 많고 다양한 연령대의 연인들도 있지만 난 혼자였다. 생각해보면 회사다니면서 월미도 혼자 왔을 때 엄청 춥고 심적으로도 엄청 힘든 때 였다. 지금도 뭐 그렇게 좋은 상황은 아니지만, 마음이 많이 편해졌다는 걸 실감했다. 돈은 그때보다 없지만.
오는 길에는 2번 버스와 12번 버스를 햇갈려서 이상한 곳까지 갔다왔는데, 이제 내가 진짜 인천 사람이라고 느낀게 버스가 이상한 곳으로 가는데도 별로 불안하지도 않고, 대충 버스 번호 보니까 어느 쪽 가는지 감이 왔다. 항상 어떤 지역의 이방인 이었던 내가 그렇게 능수능란(?) 하게 생전 처음 보는 동네에서도 집을 찾아오고 나니 정말 인천이 내 고향이 된 거 같았다.
사람들 보면 고향 떠나기 싫어서 좋은 직장, 학교에 붙었으면서도 갈까 말까 고민하는 걸 보면서 정말 이해가 안간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나도 그런 기분을 이해할 것 같다. 사실 과외만 하면서도 대충은 먹고 살겠다 싶은 생각이 들어서 취직에 대한 의지가 살짝 꺽인 상태였다. 그러다가 어제 과외가다가 전화온 위의 저 집에서 돈을 너무 안 주시니까 이놈의 짓도 못할짓이다 싶어서 이틀동안 미친 듯이 구직 사이트를 뒤졌는데 인천에서 출퇴근이 불가능한 곳은 별로 가고 싶지가 않고 그렇다. 인천에서 그냥 일하면서 먹고 사는게 가장 큰 소망이고, (앞으로 혹시 인천을 떠나게 되는 일을 안 만드려고) 장롱면허에서 탈출하여 강남이나 분당 일산 같은데 그냥 아빠차 끌고 갔다올 수 있을 정도로 연습할 생각이다.

아까는 미숫가루를 타 먹는데 초등학교 3학년 때 살았던 주안8동 안국아파트 시절 생각이 확 났다. 원래 기억이란 게 냄새나 노래, 맛, 음악 등이 가미되면 더 강렬해지는 거니까.(나같은 경우에는 어떤 상황에 맡았던 냄새에 엄청 민감해서 그 냄새를 맡으면 다시 그 때로 돌아간 것처럼 생생해지곤 한다) 주안 8동 살 때 우리집은 13평이었는데, 엄마가 미숫가루에 얼음을 넣어주거나 아니면 그때 당시 엄청 유행하던 아이스크림 만드는 틀에 넣고 미숫가루를 얼려주시곤 했다. 내가 살던 주안8동 안국아파트는 한신휴플러스 라는 고급 아파트로 재건축이 되었고, 난 화수목요일 과외를 가기 위해 그 아파트 앞을 마을버스 타고 지나다닌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안국아파트를 떠나서 대전 정읍을 거쳐 28살 때 다시 그 앞을 이렇게 매일 지나다니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이런거 보면 정말 사람일은 모르는거다.
원래는 월미도 다녀온 이야기만 하고 싶었는데 너무 이야기가 길었다. 점점 이 블로그가 인천 예찬 블로그가 되어 가는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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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은 운 좋게 휴가를 낼 수 있어서 난 25일부터 28일까지 4일이나 쉴 수 있게 되었다. 얏호!
24일 밤은 앞에 포스팅에서 썼듯 그냥 바로 집으로 왔고, 25일은 엄마 때문에 교회에 갔는데 교회에서 나보고 성가대도 하고 교회학교 선생님을 하랜다. 나보고 주말에까지 하기 싫은 일 하면서 보내라고 이 인간들아? 이런 생각이 들면서 갑자기 열이 빡 받아서 엄마한테 다시는 교회 안간다고 신신당부를 했다. (진짜 너무 열받아서 울뻔했다) 어렸을 땐 잘 다니던 교회인데 난 그냥 교회가 너무 싫다. 그냥 조용히 다니게 만들어 줄 순 없는걸까? 내가 그렇게 교회 등록하지 말고 다니자고 그랬는데 우리엄마는 결국 등록을 해버렸다. 일요일 아침마다 난 안간다고 버티고 엄마는 가자고 그러고... 내 성격 상 앞으로도 영원히 교회 다니면서 신께 기도할 순 없을 듯 하다.

엄마아빠는 이모 문병가신다고 나가고 나는 누워서 자기 시작했는데 세상에 거실 바닥에서 2시 반 부터 자다가 일어나보니 7시였다. 그렇게 내 26살 크리스마스는 지나갔다. 히히히. 좋은거야 나쁜거야.

우리집은 약간 남서향으로 창이 나 있는데 서쪽으로는 멀리 바다가 보인다. 멋있는 바다는 아니지만 해 질 때쯤 되면 멍하니 해지는 모습을 쳐다보고 그런다.
난 해지는 거 보는게 너무 좋다. 어렸을 때 해 지는 거 멍하니 쳐다보다가 눈물이 나왔다는 얘기도 썼지만, 그냥 난 해지는 거 보는 게 좋고 하루 중에 최고 좋은 시간도 해진 직후다.
맨날 12시 쯤 일어나서 느릿느릿 씻고, 느릿느릿 할 일 하다가 월미도 가서 해지는 거 구경하면서 살았으면 좋겠다.

오늘은 만 24살의 마지막 밤인데 머리에는 기름만 가득하고 하루종일 빈둥거렸구나.
억울하거나 우울한 느낌은 전혀 없고, 그냥 오래만의 이 여유로움이 너무 행복하고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