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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의 혼란

일상 2012. 12. 24. 22:10

새로운 회사로 옮긴 뒤로 다이어리도 안 쓰고 블로그도 버려두고 있다. 나는 스무살 때 부터 개인 홈페이지에 일기도 쓰고 다이어리도 정리하는 사람이었는데.

이 모든 게 너무 시간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회사에서 남이 시킨 일, 그리고 내가 매일 매일 해야하는 들어온 물건 체크 그리고 공지 또 일일업무보고, 이 모든 걸 마치면 이미 오후 5시거나 그 이상. 그때부터 내가 진득하게 할 일을 할 수 있다. 또 시간이 되어야 전화에서도 해방될 수 있고.

항상 밤 10시나 그보다 더 늦게 집에 들어오다보니 허겁지겁 씻고 누우면 이미 12시반 1시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진득하고 고상하게 다이어리 펼쳐놓고 뭘 쓰거나, 노트북 앞에 앉아서 끄적대고 있을 시간이 없다. 더불어 책도 거의 읽지 않고 있다. 주말에는 평일동안 못만난 친구도 만나고 해야할 일 하다보면 또 하루가 다 가고.

요즘 들어 난 예전 회사에서 참 뺀질거리는 직원이었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좀 한가한 업무 시간에는 어김없이 내 개인적으로 할 일을 하고 친한 친구와 떠들었으니 말이다.

회사에서 친한 친구가 없는 생활에도 어느 정도는 적응을 해 나가고 있는 중이다. 이제까지 선임운은 없었지만 그래도 동료운은 좋은 편이었는데. 지금 회사에서는 그냥 내 할 일만 하기도 벅차서 그런건지 여하튼 개인적 대화없이 할일만 하고 있다.

오늘은 크리스마스이브.  회사에서 눈치주지 않고 쉴 사람은 쉬라고 해서 쉬었다. 이게 얼마만에 평일의 휴식인지, 밀린 은행 업무를 보러 부평에 갔었다. 산업은행 통장 거래 비밀번호를 5번 틀려서 산업은행 지점이 있는 우리집 앞 동인천역이 아닌 부평까지 갔는데, 산업은행은 사람이 너무 없고 파리가 날려서 빨리 업무를 봤는데, 농협은 내 앞에 대기인원이 26명, 국민은행은 대기인원이 36명.

끊임없이 밀려드는 사람들 상대하고 있는 텔러를 보니 대학교에서 근무할 때 제일 친했던 동생이 시중 은행 텔러로 취직한 게 생각났다. 걔도 이렇게 일하고 있겠구나 싶어서. 국민은행 창구에 있던 어려보이는 텔러에게  직장인 우대 통장으로 교체 신청하는데 그 텔러 아이(?)가 오늘 쉬시는 거냐고 나에게 물었다. 그렇다 대답했더니 엄청 부러워 하면서 '오늘 정말 미친듯이 바쁘네요.' 라고 살짝 말을 하는데 그 마음이 짐작이가고도 남았다 나도 대학 졸업하던 해 에는 텔러로 면접을 두번이나 봤는데 (두번 다 떨어졌다) 두번째 봤던 텔러 면접에서는 떨어지고 나서 낙담이 심했었다. 그런데 오늘 보니까 정말 은행일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닌 것 같다.

 

예전 회사에서 일을 하면서 주변 사람들이 가끔 나보고 꼼꼼하다고 해서 난 내가 꼼꼼한 줄 알았는데 새 직장에서 잔실수가 엄청나다. 이게 원래 내 모습인건지, 혼란스러울 만큼. 무식해서 팔다리가 고생하고 있는 형국. 이런 내가 텔러를 했다고 생각하면 끔찍하다. 그래도 내가 지금 이렇게 잔실수 작렬하고 있는 게 어쩌면 내가 아직 일을 잘 모르니까 그런 걸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며 위안 삼는다.

이런 추운 날씨에 부지런히 은행을 간 덕분에 이제 농협과 산업은행의 고이율 예금도 가입도 가능해졌고, 월급통장인 국민은행의 이체수수료도 안내게 되었으니 참 보람차다.

 

어제는 친구 만날 겸 마사지도 받을 겸 해서 부평을 또 갔었다. 원래 잘 갔던 명동 마사지샵은 내 활동 반경과 너무 먼 관계로 이제 좀 멀리 해야 할 것 같아서 새로운 마사지샵을 물어물어 갔는데 젠장 26일까지 24시간 예약이 꽉 차있다고 했다. 그래서 또 좀 후졌지만 싸다는 중국 마사지샵을 갔다. 시설이 너무 지저분하고 침대 위에 깔려 있는 수건 색도 불결한 기분이 들어서 반팔에 반바지 입고 마사지사가 들어오길 침대에 누워서 기다리는데 기분이 참 심란했다. 또 날도 추운데 실내가 너무 춥기도 추웠고.

한국말을 거의 못하는 얼굴 예쁜 중국 여자애가 들어왔는데 처음 내 기대치보다 안마가 시원해서 나올 때는 만족스러웠다. 정말 후미진 곳에 있는데도 사람이 끊임없이 오는 걸 보니 신기하기도 했고. 내 주변에는 내가 스포츠 마사지 받았다고 하면 신기해하는데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마사지를 받고 있는 모양이다. 그래도 다음에는 안 갈 것 같긴 하다. 아무리 마사지가 시원했어도, 너무 지저분했어. 어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