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식'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7.09.26 문화 취향

문화 취향

일상 2017. 9. 26. 15:43

책이나 영화볼 때 의외로 가리는 게 엄청 많다. (근데 난 편식도 엄청 심하네 그러고 보니) 

영화는 잔인한 장면이 많이 나오면 아무리 평점이 높아도 안 보는 편인데, 그래서 아직까지 올드보이도 드라이브도 못보고 있다. 아무래도 평생 못 볼것 같다. 

책은 미성년자와 성인 사이의 본격적 사랑 이야기를 다룬 이야기면 피하는 편인데, 이유는 단순하다. 그냥 전혀 읽고 싶은 생각이 안든다. (여기서 '본격적'의 의미 = 단순히 짝사랑 혹은 정신적 사랑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서로 성관계까지 가는 사랑) 때문에 롤리타, 연인, 책 읽어주는 남자.. 이 세권의 책 감명깊다고 하는데도 아직까지도 못 읽었다. 

나는 평론가도 아니고, 업계 종사자도 아니고, 장래 글쓰는 사람이 될 가능성도 희박하기 때문에 억지로 읽고 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보기 싫은 작품들을 제쳐두고도 볼 수 있는 좋은 책이나 영화는 어마어마하게 많으니.


이제까지 완고하게 내 취향을 고수해왔지만, 며칠전 도스토예프스키의 '상처받은 사람들' 을 읽으며 좀 색다른 경험을 했다. (언제 리뷰를 쓸지 나는 모르오... 생각보다 리뷰 쓰는 게 엄청 힘이 드는구나.)

그 소설에서 중간에 주인공인 25살 소설가 이반이 13살 고아 소녀 넬리 앞에서 자기 첫소설에 대한 평가를 받으면서, 입을 맞출 뻔 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근데 그 부분을 읽으면서 나는 "놀랍게도" 이반이 진짜 넬리한테 입을 맞췄다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에 안타깝기까지 했다. 주인공 이반이 워낙 착한 남자고, 또 넬리를 전혀 사랑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기 때문에 그런 마음이 들었을 가능성이 높지만, 13살 짜리한테 이반이 입맞추고 싶단 말을 하는데도 일말의 거부감도 들지 않더라.

이런 경험을 하고보니 위에 내가 안 읽고 있는 소설들도 읽다보면 그들의 비정상적 사랑에 공감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근데 아까 어떤 블로그에서 어떤 소재를 지나치게 혐오하는 이유는 자기의 욕망을 강렬하게 자극하기 때문에 두려워서일 수도 있단 글을 봤는데... 순간, 아... 정말 그런가? 란 생각이 들면서 마음이 좀 혼란스러워졌다. 그럼 내가 비밀스럽게 욕망하고 있는 게 잔인함, 미성년자와의 육체적 관계라는건데, 어후 좀 징그럽고 소름끼친다.


그저 취미가 독서인 사람으로서 모든 이야기를 편견없이 받아들여야 옳은 것인가? 하는 생각을 잠시 하다가도, 아니 독서에 옳은 것이 어딨어. 란 생각에 결국 읽고 싶은 소설만 읽고 읽다가 기분 나쁘면 가차없이 안 읽고 있다.


뜬금없이 인생에 직접적으로 도움도 안되는 소설을 왜 읽어야 하는가? 란 질문에 스스로 답을 해본 적이 있는데, 나야 뭐 그냥 재밌으려고 읽는 게 가장 크지만, 만약 꼭 다른 이유를 하나 더 들어야 한다면 지금 세상을 바꾸진 못할지언정 적어도 의심 정도는 해봐야 하니까 라고 답하고 싶다. 근데 난 과거에도 아름다웠고, 현재도 아름답고, 미래에도 아름다울 책만을 찾아 읽고 있는 것 같으니, 의심할 기회 조차 없다. 그렇다고 내 독서 취향이 변할 것이냐. 아니 절대. 아마 평생 이럴 것이다. 나는 나를 아니까.


추신.

내가 한국 나이로 약 4살 쯤 됐을 시절, 외할머니가 우리집 오셔선 편식하는 내 버릇을 고쳐놓겠다고 김치나 나물 등 내가 싫어하는 반찬을 나에게 잔뜩 주신 적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의외로 내가 불평없이 밥을 다 받아먹더란다. 그래서 외할머니는 얘 (우리 엄마) 는 시도도 안해보고 애를 편식시켰다고 생각하셨다고. 그런데 밥 다 먹고 약 30분 뒤, 내가 미친 듯 구토하여, 먹었던 음식을 다 내놓아 버렸다고 한다. ㅋㅋㅋㅋ( 화장실 갈 때까지 구토를 못참아 거실 바닥에 토사물을 다 흘렸다고 함.) 어쩌면 나는 그 음식들이 몸에 안 받는 걸 알고 본능적으로 편식을 했을지도 모른다. 구토를 자기 맘대로 조절할 수는 없으니.. 여하튼 그 사건 이후로 우리 외할머니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나보고 골고루 먹어야 한단 잔소리 안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