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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의도

일상 2017. 6. 13. 17:20

1. 어제는 뜬금없이 예전에 학원에서 알았던 남자한테 메시지가 왔다. 나랑 동갑이고, 당시 아마 내가 블로그에도 썼는데 어느날 점심 같이 먹다가 갑자기 자기 연봉을 말해서, 난감했던. (당시 연봉 높으시네요. 라고 말하며 박수를 쳐야하는 건가. 아니면 나도 내 연봉을 말해야 하는건가 고민했다.) 

  그 남자가 어제 나한테 자기 내년 9월에 텍사스에 있는 대학에 박사과정으로 유학을 가게 됐다고 하는거다. 아니 1년 만에 연락해서 왜 본인 진로를 말하지? 의아했지만 모르는 사람이 아니니, 부럽다고 했다. 유학가서 공부하는 것보다 회사 때려치고 간다는 게 진심 부러웠다.  그런데  유학가기 전에 결혼을 하고 싶다는거다. 푸하하하. 아니 이건 뭐임? 1년 만에 연락해서 유학 전에 결혼하고 싶다니. 

  이번에도 역시 예전 '연봉' 때 처럼 대체 내가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하나 어리둥절 하고 있다 할 말이 딱히 없어서, 뭐... 유학 가기 전에 가정 이루시면 안정감도 들고 더 좋겠죠. 라고 말하고 말았다.

  그렇게 대충 답을 해주고, 화장실에서 곰곰히 이 사람의 의도를 생각해보니, 답이 나왔다. 이 남자는 소개팅을 원했던 것. 해답을 알고나니, 예전에 나한테 연봉/출신학교/직장 다 털어놓은 것도 이제서야 다 이해가 됐다.

  차라리, 대놓고 여자 좀 소개시켜주세요. 라고 말했으면 찾아본다고 했을텐데, 뭘 또 이렇게 힘들게 돌려 말하나 싶어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당시 같이 학원 다녔던 피아니스트 언니에게 물어보니, 그 언니한테도 저번달에 걔가 뜬금없이 자기 유학간다고 메시지를 보냈다는거다. 그 언니는 걔 너무 영업하는 사람처럼 군다고 싫다고 했던터라, 네 잘됐네요. 잘가세요. 라고 단답식으로 메시지를 보내셨다고 한다.

  내가 아닌 언니한테 먼저 메시지를 보낸 것도, 속이 뻔히 보였다. 언니가 레슨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엄청 부자집 자녀들이고, 우리에게 언니가 보여준 언니의 지인들이 다 워낙 예쁜 사람이 많기도 했다. (이 언니도 예쁘심) 이런 생각 전혀 못하고 걔 왜그러는지 모르겠다고 묻는 언니에게 '언니 제가 잘 생각해봤는데요. 아무래도 언니한테 여자 좀 소개시켜달라는 의도였던 거 같은데, 안되니 저한테도 연락한 거 같아요.' 라고 말해줬다.

  뭐 내가 넘겨짚은 것일 수도 있지만, 99% 맞을 거라 생각한다. 

  이 남자 애 때문에 오랜만에 언니랑 전화하게 되었고, 덕분에 언니랑 목요일에 같이 저녁 먹기로 했다. 언니가 맛있는거 사줄 것 같다.


 2. 엄마는 나보고 너는 어렸을 때, 책을 너무 많이 읽어서 그런가보다. 라고 말씀하셨다. 근래 엄마 주변에서 일어난 몇 가지 사건의 전망을 내 나름대로 분석해서 이렇게 될 것이다 예상해서 엄마에게 말씀드렸는데, 대부분이 다 현실이 되었다. 심지어 'OO가 이렇게 말하며 싫다고 할 것  같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한번 더 물어봐봐.' 라고 엄마한테 말했는데, 엄마가 그 사람이 너가 말한 고대로 말하면서 싫다고 했다는 거다. 엄마가 넌 다 아니 좋겠다고 하셨지만, 사실 이건 별로 좋지 않다. 

  뭐든지 예상대로 되는 건 정말 재미없다. 내가 책을 많이 읽어서 그런 거라기 보단, 워낙 사람 관찰하는 걸 좋아하고, 내 주변에 예측불가 행동을 하는 사람이 없어서 그런 것 같다. 그렇다고 뭐든 확신하면 큰 코 다칠 수 있으니, 건방지게 너무 내 예상만 100% 믿으면 안되겠지만.


3. 어제 카페하는 친구가 갑자기 전화를 해서 하는 수 없이 전화 통화를 좀 오래했는데, 스트레스 받았다. 나중에는 그냥 지금 얘한테 말해 뭐하겠나 싶어서 더 말 안했다. 걔는 현재 모든 게 즐거운 상태고, 나는 거의 정반대라 뭔가 벽에 대고 말하는 기분이었다.


 4. 앞으로 또 나쁜 생각이 들면, 그냥 내 핸드폰 메모장에 쓰고, 회복되면 바로 바로 지워버리기로 했다. 그렇게 하면 시각적으로 삭제되는 게 눈에 보여서 그런지 정상으로 돌아오는데 조금 도움이 되는 느낌이다.


5. 엄마가 아프신 뒤로, 일요일에 친척이 너무 자주 오신다. 처음에야 고마운 마음에 인사도 드리고 얘기도 나누고 했지만, 너무 자주 오시니 더 할말도 없고 하여, 전화로 친척이 지금 우리집으로 출발한다고 하면 나는 부랴 부랴 옷 갈아입고 화장하고 차타고 알라딘 중고서점으로 향한다. 인천에 중고서점 생겨서 너무 좋다. 저번 일요일에도 큰엄마 오신다고 해서 중고서점으로 피신했다. 거기서 책 2권 이나 샀는데 8000 원 밖에 안들었다. 


6. 넌 이민가면 훨씬 행복하게 살거라고 말하는 사람이 주변에 한 명 있는데, 이민은 무슨 이민? 이민은 아무나가나. 갈 수만 있다면 벌써 갔겠지. 사람들이 정말 말을 쉽게 한다.


7. 중고등학교때는 일기를 손으로 쓰다가 블로그로 넘어오게 된 계기 중 하나는 친구의 영향도 있지만, 내가 글씨를 쓸 때 지나치게 손에 힘을 주고 쓴다는 이유도 컸다. 저번에 회사에서 쓰는 3색 제스트스림 고무랑 볼펜 연결 부위가 부러졌는데 (제일 약한 부분) 이번에도 똑같은 부위가 부러졌다. 연필이 부러진 것도 아니고 볼펜을 부러뜨리다니. 난 이 닦을때도 힘을 너무 세게 줘서 칫솔이 부러진 적도 있다. 차인표가 드라마에서 하던 분노의 칫솔질을 나는 매일같이 하고 있나보다.


8. 내가 돈을 빌려드렸던 친한 고모는 인테리어 관련 사업을 하신다. 어제 그 고모께서 미수금 때문에 사업을 그만 두시려고 고민 중이란 소식을 들었다. 그래서 미수금이 얼마인지 물어봤더니 7천만원 이란다. 자그마치 7천만원. 그 얘기 듣고 너무 슬펐다. 고모랑 고모부 둘이서 하는 아주 작은 사업인데, 그런 사업장에서 7천만원이면 정말 어마어마한 돈이다. 어제 그 얘기 듣고 흥분하여 다 고소하면 안되냐고 했는데, 이 말은 내가 들었던 너는 이민가서 살아야 한다는 말 만큼이나 부질없는 말이라는 걸 이내 깨달았다. 마음이 너무 아프고 고모가 안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