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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역 냄새

일상 2016. 3. 27. 21:33

1. 레일 토스트
성수역 개찰구 옆에는 레일 토스트라는 토스트 테이크 아웃 가게가 있다. 성수역 안에 있는 가게는 하나같이 다 망해가는데, 그 토스트 가게만 사람이 항상 많다. 먹어보진 못했지만 맛있는 모양이다.
아침에 전철에서 내려와 계단을 걸어 내려가면 대번에 토스트 냄새가 난다.
마가린을 바른 식빵을 굽는 냄새가 솔솔 나면 아침밥을 먹고 왔는데도 군침이 고인다.
어떤 기억이 청각이나 후각과 결합되면 훨씬 더 강렬한 법인데, 언젠가 이 회사를 그만 둔 후 토스트 굽는 냄새를 맡는다면 성수역 출근길이 자동으로 떠오르겠지.

2. 부정 교합
난 앞니가 부정 교합이라 토스트, 샌드위치, 햄버거 안에 든 햄이나 양배추를 한번에 자르질 못한다. 그런 음식을 먹고 싶으면 앉아서 칼로 잘라야만 하기 때문에 테이크 아웃으로는 샌드위치를 먹을 수가 없다.
내가 양배추를 물면 그 샌드위치 안에 있는 양배추 전체가 다 딸려 나오고 그걸 손으로 자를 수도 없으니 어쩔 수 없이 한번에 급히 먹다보면 배탈이 난다.
또 양배추나 야채를 처음 몇 번만에 다 먹어치우고 나면 느끼한 재료만이 남은 맛없는 샌드위치를 먹어야 한다.
치과에서 외관상 문제는 없더라도 너무 불편하니 교정을 하라고 했지만, 난 그냥 살고 있다.

내가 갑자기 부정 교합 얘기를 꺼낸 이유는 이 부정교합 때문에 성수역 레일 토스트를 아직도 못 먹어봤다는 얘기를 하기 위해서 였는데, 일생동안 부정 교합으로 살아온 것에 대한 불만 성토가 되어버렸네.


3. 공무원 시험
대학 졸업 직전과 첫직장 다니며 힘들어 하던 시절 끊임없이 주변에서 공무원 시험을 보라고 권유했다. 특히 공무원 내외이신 셋째 큰아빠 댁에서 제일 심하게 공무원이 최고다 라고 주장하셨다. 난 내 직업이 최고 인 거 같지 않은데, 유독 공무원들만이 내 직업이 세상 최고의 직업이라 생각하는 것 같다. 어찌보면 참 행복한 사람들 인 듯 하다. 군무원으로 국군 수도 병원에 근무하는 친구도 남편의 첫째 조건은 공무원이라고 한다. 솔직히 말하면 전 직장에서 공무원들이랑 같이 일하면서 그들의 나태함과 갑질에 지쳐 난 남자가 공무원이라면 (선입견이지만) 싫어진다. 공무원들이 자기 직업 최고라고 생각하는 게 본인들이 생각해도 너무 편해서 일까? 그리고 밑도 끝도 없는 자부심은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을 때 부터 생기는 걸까? 성실하게 일하는 공무원도 분명 있겠지만, 난 별로 못봤다.
난 공부하는 양에 비해서는 객관식 문제는 잘 맞는 편이라 아마 주변에서 그렇게 끊임없이 (심지어 남동생은 아직도 시험 준비하라고 함) 권유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난 체력과 집중력 부족으로 한 시간 공부하면 거의 무조건 누워 쉬거나 먹거나 하는 식으로 30분 정도 쉬어야 한다. 또 결정적으로 외롭게 공부만 하다보면 심하게 우울해진다.
내가 어른들 꼬임에 안넘어가고 시험 준비 안한 건 아직까지도 내 인생동안 최고 잘한 일로 남아있다.


4. 분노 조절 장애

"평소 분노 조절 장애인 사람들 = 자기보다 센 사람 앞에서는 기가 막히게 분노 조절 잘한다. " 라는 글을 봤다. 나이가 들수록 개인적인 사건에 대해서는 크게 화내거나 실망하는 일이 적은 반면, 회사에서는 자꾸 쉽게 화를 내게 된다. 직원한테나, 거래처나 기타 등등 사람들에게. 특히 전화를 하면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지는데, 화를 내고 나면 언제나 후회스럽고, 내가 이렇게 화를 내는 게 무의식 중에 상대방을 나보다 약자로 보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내 자신에게 실망하게 된다. 목요일에는 거래하는 회계 법인 직원과 언성이 높아질 뻔 하다가, 메일로 실수하고 법인카드 때문에 전화한 콜센터 직원이 자꾸 대답을 못해서 짜증나는 마음에 또 화를 내고 말았다. 아마 그 콜센터 직원이 일을 한지 얼마 안되서 버벅댄 것일텐데, 왜 난 별 것도 아닌 걸로 그렇게 열을 낸건지... 아직까지도 마음이 좋지 않다.

직장생활 오래하면 원래 성격에서 좋았던 건 점점 사라지고 나빴던 것만 남게 되는 것 같기도. 워낙에 훌륭한 사람들은 고귀한 인격 유지하면서 일도 잘하겠지만, 난 수양이 부족한건지 그게 참 쉽지 않다.

이 일이 있고 나서 전화기에 흥분하지 말자고 써 붙여놨는데, 항상 명심하면서 살아야 나도 지키고 상대방도 지키고 하는 거겠지.


5. 회계법인 담당자

회사 특성상 회계 법인 담당자랑 전화할 일이 많은데, 정말 나랑 너무 성격 안 맞는다. 그 회계법인 담당자도 아마 자기가 맡고 있는 회사 담당자 중 나를 최고 싫어할 듯 하다. 저번에 연말 정산 때문에 최초로 언성을 높였는데 그를 통해 걔가 (나보다 나이 어림) 나에 대해 갖는 불만이 뭔지 알게 되었다. 걔가 나한테 말하길 나는 기본적인 사항을 안 알아보고 다 물어본다는 것이었다. 그 담당자는 나에게 대리님은 너무 몰라서 하나부터 열까지 다 알려드려야 하고, 다른 회사 사람들은 이러저러한 거 같은데 맞나요 라고 질문한다면 나 같은 경우는 뭐예요 라고 묻는다고 했다.

그런데 나도 억울한 게, 나는 기본적으로 회계 업무는 처음이고 어떻게 생각하면 어떤 질문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조차 모르기 때문에 걔한테 다 물어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지금 회사는 너무 작아서 아주 간단한 질문도 대답해줄 사람이 없다.

내 무지에 나도 화가 나고, 하나도 모르는 업무를 지금 이 정도면 어찌어찌 유지는 잘한다고 생각해왔는데, 걔한테 너 너무 일 못한다는 말을 우회적으로 듣고나니 눈물이 핑 돌았다.

이럴 때 마다 전 회사의 L 부장 생각하면서 참는다. 그래 그래도 이 회계법인 애랑 전화하면서 열 받는 건 일주일에 한 두번 뿐이지만, L 부장이랑 일할 땐 하루에도 몇번씩 이런 시궁창 기분 맛봤으니 참자.. 하면서.


6. 전 회사 동료

나와 함께 잘린 제일 친했던 대리님과 오랜만에 통화를 했다. 그 대리님도 남편 따라 부산에 내려가서 재취업을 하셨는데, 다른 회사 다녀보니 L 부장이 얼마나 재수없는 상사였는지 알겠다고 했다. 나도 이 회사 와서 정말 L 부장 같은 인간이랑 내가 참 오래 버텼구나... 싶었으니까. 다 지난일 이니 잊자 하다가도 아직도 앙금이 남았는지, 가끔 울화가 치민다. 이것도 역시 수양이 부족한 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