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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적인 느낌

일상 2011. 2. 5. 02:04

의외로 지역 수협 필기에 붙어서 난 최종면접을 보고 떨어졌다. 나보고 연평도 백령도 갈 수 있냐고 물어서 당연히 갈 수 있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떨어졌다. 사실 난 백령도나 연평도 못간다. 난 혼자서도 한정된 인간관계 내에서 잘 지내는 사람이지만, 그정도로 강한 사람은 아니다. 우리집 앞 인천항에서 쾌속선을 타도 4시간 걸리는 곳으로는 못 가겠다. 갑자기 생각났는데 저번에 태풍 불었을 때 인천항의 천 자가 날아가서 "인 항" 이 되어버렸던 게 생각나네. 엄청 큰 천 자가 날아갈 정도의 태풍이었으니, 곤파스는 짧고 강렬했다.
우리 동네에는 백령도가 고향이고 가끔 뭍으로 나오는 아주머니들이 있는데 우리 엄마가 그런 아주머니들이랑 좀 친하다. 지금은 쾌속선이 있어서 3시간 반이고, 예전에는 육지 한번 나오려면 10시간이었댄다. 10시간이면 이거 거의 미국 가는 시간인데, 이런거 보면 인천이 참 넓어. 인천이 공무원 하면 무조건 한번은 섬 한번 갔다온다던데, 그래서 인천시 공무원이 하기 힘들다는 거 같기도 하고. 전남도 공무원한번 하면 완도 이하 섬으로 발령나면 속된 말로 뭐 되는거라 전북 공무원 경쟁률이 더 높다고 한다.
난 솔직히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랑 섬 들어가라고 하면 백번도 더 들어가겠는데 혼자서는 못 들어가겠다. 이런 경험으로 인해서 내가 섬에 들어간다면? 하는 생각도 한번 하게 되어보고. 재밌었다. 면접비 5만원 줬으니까 뭐 본전은 한거라 치자.
29살이 되도록 안정된 이러고 있으니 참 한심한 느낌이다. 나랑 친한 언니한테 나 안정된 삶을 좀 살고 싶다니까, 안정된 직장 관두고 나온거 아니냐는 대답이 나왔다. 그런데 저번 직장에도 여기는 내가 머물 곳이 아니라는 느낌에 언제 관두지만 고민했다. 보통은 그렇게 고민만 하면서 다니는데 난 진짜로 실행에 옮긴게 골 때리는 짓이긴 했지만, 내가 만약에 거기 계속 다녔으면 진짜 전철에 몸 던져서 죽어버렸을지도 모른다. 크크크크.
요즘에는 나만 빼고 다들 잘풀리는 인생들인 거 같아서 배가 아프고 괴롭고 그렇다. 뭐 내가 그들이 잘되가는구나 하고 느끼는게 한정된 글이나 들리는 소식 말고는 없지만, 어쨌든 분명 나보다는 잘 되가고 있는게 분명하다.
면접을 보고 나오면서 연평도? 백령도? 허허허허허. 실없이 웃다가, 이렇게 늙어갈 것 같다는 생각에 마음에 다급해졌다. 갑자기.
면접을 보기 전 월요일까지 23살때 알았던 분이 사귈건지 안사귈건지 답을 달라고 했다. 대답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이다가 그냥 난 아무 연락도 취하지 않았다. 물론 나쁜 짓이지만 생각할 시간을 더 달라고 하는건 그쪽 기대감만 높이는 거 같았다. 생각은 계속 하고 있었지만.
갑자기 오늘 뭐든 그 사람한테 말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귀자는 말이 아니더라도) 하지만 상대방은 이미 날 영원히 안 볼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어쨌든 내가 그쪽 자존심을 완전히 뭉개버린거니까 이해는 했지만 이게 마지막이라는 통지(?)도 없이 혼자서 이게 마지막이야 하는 것에 화가나서 난 전화를 바로 했다. 회의 중이라서 받을 수 없다는 문자가 다시 왔다. 난 금요일이니 거기까지 직접 가겠다고 문자를 보냈다. 그런데 더이상 나랑 이야기 하고 싶지 않다는 문자가 다시 왔다. 난 원래는 그날 만나서 내 심정을 잘 말해볼 생각이었고, 사귀자고 할 생각은 없었지만 상대방이 이렇게 나오니 당장 사귀자고 해야겠다는 미친 생각까지 했었다.
하지만 난 그 사람 직장이 어딘지 정확히 몰랐다. 아마 정확히 알았으면 당장 가고도 남았을 것. (정말 다행이다)
그런데 단 5분 만에 난 완전한 평온을 되찾았다. 그렇다 난 이제 23살 짜리 찌질했던 곽미영이 아니었던거다. 다시 원래의 나로 되돌아왔고 면접도 연평도도 사귀자는 결심도 다 없었던 일이 되었던 거다. 영원히 못보는 거면 그래 못보는가보다 하면 되는 거였다.
또 몇 년 전 일이 오버랩 됐는데, 안될 인연은 어떻게 해도 안된다는 말로 자위를 하지만, 결국은 내가 타이밍을 놓친 거였다. 타이밍을 놓쳤다는 것도 아깝고 가슴이 아프지만 그 이후로 내가 괴로웠던 건 내가 남자에게 전혀 매력이 없는 것일까 하는 고민 때문이었다. 지금도 사실 그런 생각을 많이 한다. 그날 이후로 난  좋아하는 사람이 생겨도 그 사람이 날 좋아할 확률은 거의 0%에 수렴하지 않을까 하는 아주 자신감 제로의 삶을 영위하고 있는데 지금의 날 보면 그 생각도 무리가 아니긴 하다. 아마 예전 그 사람도 뭔가 최후까지 맘에 안드는 게 하나 있으니까 그렇게 내버려 두지 않았을까?
하지만 솔직히 지금의 나 같으면 그렇게 겁내 추한 모습으로 매달리고 찌질하게 굴진 않았을 거다. 25살과 29살의 차이가 뭔지 나도 잘 모르겠지만, 그때 난 더 젊고 몸무게도 지금보다 훨씬 적게 나갔는데 왜 그랬을까. 자존감은 지금이 더 떨어지는데 만약에 다시 그런 상황이 온다면 흔히 하는 말로 쿨하게 난 너 없이도 잘살 수 있다고 하고 적어도 다시 매달리는 일은 없을거다. 문제는 다시는 그걸 만회할 기회가 안 올 것 같다는 거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