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할까봐 피해오던 쿠엔틴 타란티노 영화 중 큰 용기를 내서 바스터즈 를 본 후로는 그를 좋아하게 됐다. 킬빌은 여전히 엄두가 안나고, 장고는 언제 시간내서 보려고 한다. 바스터즈는 정말 재밌고, 유쾌하고 잘 만든 영화였다. 마지막 그 재기 발랄함이란!

  바스터즈는 각 등장인물 별로 이야기가 구성되는데, 최고는 역시 첫번째 이야기다. 한스 대령이 유태인을 숨겨준다는 소문을 듣고 프랑스 농부의 집으로 찾아와서 이어지는 대화. 결국 유태인이 있는 곳을 알려주며 눈물을 흘리는 농부 그리고 유태인을 향한 나치들의 무자비한 총격. 간신히 살아남은 쇼사나가 울면서 도망치는 모습까지 정말 흠잡을 게 하나도 없었다. 헉 하고 뒷통수를 맞은 기분이 들었고, 그 짧고 강렬한 이야기에 이미 마음을 빼았겼다.

  이 영화를 끝까지 보고나니 쿠엔틴 타란티노는 여자를 존중할 줄 아는 남자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나치에게 마지막 심판을 내리는 사람도 쇼사나 이고, 스파이 역할을 하는 독일 여자 배우도 남자 캐릭터의 보조 같은 느낌은 전혀 없다. 생각해보니 킬빌에서도 주인공은 여자다. 물론 그 영화는 못봤지만.

  여성 캐릭터가 영혼없이 남자를 위해 존재하며 쓸데없는 노출을 하는 역할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극 전체에서 남성과 동등한 지위를 갖고 있다는 점이 멋졌다. 

  또 한가지, 극 중에서 독일 사람으로 나오는 사람들은 모두 실제 독일어를 쓰도록 했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마지막 황제 같은 영화에서는 중국 황제 이야기 인데도 중국 황제인 푸이가 영어로 대사를 한다. 게이샤의 추억도 마찬가지다. 배경이 교토인데 죄다 영어로 말해. 이 무슨 병신 같은 경우란 말인가. 항상 그게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고, 서양놈들은 아주 기본적 상식조차 없는 놈들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바스터즈는 그렇지 않다. 어떻게 보면 참 이게 당연한건데도 말이다.

  킹스맨을 재밌게 봤지만, 킹스맨을 보고 나니 더욱더 타란티노가 멋진 아저씨다 라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구해만 주신다면 뒤로 하게 해드리죠." 라고 말하는 스위스 공주와, 마지막에 스크린에 뜨는 섹시한 여자 엉덩이를 보며 웃긴 한편으론, 이 영화는 타란티노 영화에 비하면 한 수 아래라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런 걸로 두 영화를 비교하자면 좀 웃기지만, 여자인 나는 쿠엔틴 타란티노 아저씨 영화를 더 좋아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킹스맨을 보고.

위로 2015. 2. 22. 21:56



 

  연휴기간 동안 영화 두편을 극장가서 봤다. 아직 다리가 불편하다보니, 운전해서 가기 편하고 활동을 덜하는 일이 뭐가 있을까 하다가 결국 또 영화를 보게 된 것이다.

  킹스맨을 보면서 쿠엔틴 타란티노가 난 놈은 난 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난 영화 속 잔인함을 견딜 용기가 나지 않아, 쿠엔틴 타란티노 영화는 딱 한편, 바스터즈 밖에 못봤지만, 결국 이 영화도 타란티노 스러운 영화 중 한 편이 아니겠는가. 이 정도면 영화의 장르 하나를 만들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본격 England 홍보 무비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감독의 온갖 미국스러운 것들에 대한 노골적 혐오와 (긍정적) 영국 이미지에 대한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무한 자부심에 실소를 금할 길이 없었지만, 즐겁게 봤다.

  가젤이 싸우는 장면은 잔인할 것 같아 눈과 귀를 다 막아버려서 거의 못봤다. 하지만 해리(콜린 퍼스) 가 교회에서 교인들을 집단 학살하는 장면은 큰 맘먹고 끝까지 봤는데 카메라를 아주 잘 사용한 것 같다.

  최고 클라이막스 장면인 여러 명의 머리가 날아가는 신을 폭죽으로 표현한 것도 재치있었고, 샤이닝 추격신을 따라한 벙커 추격신도 공을 들인 티가 많이 났다. 

  에그시 역을 맡은 배우가 신선하고 귀여웠고, 콜린 퍼스 아저씨는 멋있지만, 많이 늙으신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팠다. (그래도 월드워z에서 브래드 피트 봤을 때 보다는 덜 슬펐다. )  

  이 영화에 대한 요즘 사람들의 무조건적 숭배에는 동의할 수 없지만, 잘빠진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STILLCUT

 

  며칠 전에 모테키 라는 어이 없는 일본 영화를 봤다. 순전히 올레티비에서 공짜길래 본 영화였는데 의외로 난 엄청 집중해서 시청했고, 보길 잘했다는 생각까지 했다.

  왜냐하면 브리짓 존스의 일기 같은 영화를 볼 때 남자들의 기분을 정확히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모테키 라는 영화는 여성 판타지의 대척점에 있는 남성 판타지 영화였다. 그 영화는 쪼다 쭈구리 같은 남자가 예쁘고 잘빠지고 어리고 성격까지 좋은 최고의 매력녀를 쟁취한다는 간단한 내용의 영화이다. 여자인 나는 그 영화를 보며 남자주인공을 향해 어휴. 저 병신... 이라는 말을 할 수 밖에 없었고, 마지막에 예쁜 여자의 사랑을 쟁취하는 장면을 보며 말도 안된다. 고 생각했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 같은 영화를 볼 때 남자들의 기분도 나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었다.

  뭐 그래도 나같은 사람의 정신건강을 위해 브리짓 존스의 일기나 모테키 같은 영화도 가끔은 나와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원래 하려던 말은 이게 아니고, 브리짓 존스의일기에서 콜린 퍼스 아저씨 완전 젊고 멋있으셨다. 는 거다. 이 때부터 콜린 퍼스 아저씨를 좋아했다.  

 

POSTER

 

  그래도 콜린 퍼스가 최고 멋있었던 건 뭐니뭐니 해도 싱글맨 에서였다. 잘생긴 남자들만 계속 99 분 내내 볼 수 있는 이 바람직한 영화의 감독은 구찌 디자이너였던 톰 포드 다. 한장면 한장면을 공들여 찍으려고 애쓴 티가 나는 이 멋진 영화를 한동안 좋아했다. (핸드폰에 저장해놓고 심심할 때 마다 봤을 정도) 

  이 영화를 보면 오 헨리의 경관과 찬송가 라는 소설이 떠오른다. 어떤 사람이 진심으로 원하는 건 언제든지 변할 수 있다. 는 메세지가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했다.

  과거의 소원을 이룬 순간이 현재 최고 불행한 순간이 될 수도 있는거다.

 

P.S 그런데 자꾸 요즘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 이런 식으로 영화의 이름 한글 표기에  " : " 마크를 붙이는데... 이거 좀 이상하지 않은가? 한글에 이 " : " 마크 쓰는거? 바스터즈 도 원제는 Inglorious Basterds 라 " : " 이 없는데도 굳이 '바스터즈 : 거친녀석들' 이라고 만들고,  모테키 라는 영화도 한국 개봉 제목은  '모테키 : 모태솔로 탈출기' 였다. 몇 년 지나면 한글에도 " : " 표기가 허용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