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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내보곤 하는 기억

일상 2014. 12. 15. 00:44

  일요일 밤에는 술없이 잠들 수가 없다. 난 지금 술에 꽤 취한 상태인 거 같은데, 이 상태로 잠들면 내일 약간 숙취에 시달릴 수도 있을 것 같아서 헛소리 좀 늘어놓다 자려고 한다.

 

  사람은 나쁜 기억에 더 쉽게 사로잡힌다. 나에게는 직장생활이 힘들 때마다 꺼내보는 엄청나게 불행했던 시절의 기억이 하나 있다. 때려치고 싶거나 혼자인 것 같은 때마다 꺼내보는 그런 기억 말이다.

  불행한 사건이나 시절은 사람을 황폐하게 만들지만, 인생 전체로 볼 땐 불행했던 기억이 현재의 어려움을 이겨내는데 큰 역할을 할 때도 있다. 같은 논리로 행복했던 기억이 언제나 인생에 도움이 되는 건 아니라는 거다.

 

  사람이 큰 괴로움을 느낄 때는 불행했던 시절의 중심은 아닌 것 같다. 행복했다가 불행해질 때 그 순간이지.

 

  난 한국나이로 32살 평생 살면서 술에 크게 취해본 적이 없다. 술에 취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적은 꽤 있다. 하지만, 술자리에서 누군가 내 맞은편에 앉아 있으면 틀림없이 경계를 하게되고 결국에는 마셔도 마셔도 취하지 않는 것이다. 어제는 친구랑 20대 초반에 이랬다 저랬다 얘기를 했다. 20대 초반 때는 나는 술을 무척 잘 마셨다. 소주 3병에도 끄떡없었고, 소주 3병을 마시고 바로 맥주마시러 가도 절대 취하지 않고 멀쩡한 상태로 샤워하고 이를 닦고 잘 수 있었다. 지금은 소주 한잔도 입에 대기 싫은데 말이다.

 

  술에 취하고 비틀거려도 해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을 것 같고, 취해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아마 그 다음날 일어나서는 변하지 않는 현실에 더 우울해질 것 같다.

 

  초심을 기대하는 사람들하고는 가깝게 지내기 싫다. 사람이 언제나 의욕에 가득차 있을 순 없는 거다. 실상을 알고나면 더 좋아지는 경우보단 더 싫어지는 경우가 훨씬 많다. 이건 자연스러운 거다. 자연스러운 걸 용납하지 못하는 사람과는 친구가 될 수 없다.  

 

  생각만 하던 것을 실제 말로 꺼내면, 돌이킬 수 없는 진실이 되고, 그걸 글로 쓴다면 도저히 빼도 박도 못할 정도의 책임감이 생기는 것 같다. 어떻게 보면 가장 큰 증거 하나를 남기는 셈이니 말이다. 그래서 편지는 항상 매력적이고, 가슴이 벅차고 그런 것이겠지. 나에게 그냥 말로 고백했던 남자는 이제 이름도 기억 안나고 그러는데, 편지를 줬던 남자는 지금도 순서대로 이름을 나열할 수 있다.

 

  난 아무래도 진로를 잘못 택한 것 같다. 더 우울한 건, 지금 이 진로가 아닌 다른 일을 할 수 있을 정도로 특별한 재능도 없었다는 거다. 나는 아부도 못하고, 싫어하면 싫은 티가 그대로 다 나고, 경솔하기까지 한 것 같다. 지금 말한 게 내 단점들이라면, 대체 내 장점은 무엇인걸까? 누군가로부터 잘한다 잘한다 칭찬 들었던 게 언제인지 기억도 안난다. 칭찬을 갈구하는 종류의 학생도 직장인도 아니었지만.

 

  내일 눈이 안왔으면 좋겠다. 지금 이 포스팅 내일 읽어보면 무지 쪽팔리겠지? 크크크크.